퀵바

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05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07 06:48
조회
167
추천
1
글자
10쪽

12

DUMMY

“힘드셨겠네요······”


랑케의 눈동자에서 공포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연민과 위로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우파나히는 신경 쓰지 말라고 이른 다음 가게에서 수레를 세웠다. 랑케는 우파나히가 잠시 수레를 세운 사이 마음에 잠시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많이 죽였나요······?”

“그렇다.”

“그렇군요······”


랑케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파나히 역시 그랬다. 랑케가 침울해 있는 동안 우파나히는 향신료를 사서 수레에 실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인다니 좀······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알 수 있을 때 알게 된다.”

“담배처럼요?”


조금 옅었지만 웃었다. 우파나히는 항상 같은 표정으로 “그렇다.” 라고 짧게 답해줄 뿐이었다. 그 뒤로 우파나히는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수집하듯 사들였고 랑케는 그 옆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참새처럼 조잘거렸다. 물론 우파나히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레가 세 번째로 서려고 하던 찰나, 랑케가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감지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우파나히는 물건을 사는 것에 집중했다.


“여기 있네.”


돈을 지불하고 받은 것은 화장품, 하지만 우파나히가 원하지 않는 것도 딸려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제 저녁에 살인사건이 벌어졌으니 조심하게.”


멀찌감치 떨어진 골목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들이 사건장소를 통제하곤 있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며 불안한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랑케의 빨간 머리카락도 그 불안한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자주 있나.”

“아니, 아니야. 적어도 저런 형태로 사람을 죽인 건 십 수 년만이지.”


불안한 듯 떨리는 손으로 담뱃대를 무는 화장품 상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저런 형태라는 것에 관심이 생긴 것일까. 우파나히는 화장품 상인에게 수레를 잠시 맡아 달라 한 뒤 궐련 하나를 건넸다.

불안한 군중들을 헤집고 들어가니 경찰들이 그의 발걸음을 저지했다. 그 위치에선 굳은 피가 낭자되어 있는 골목과 지나치게 간격이 벌어진 두 다리가 가지런히 누워 있는 것만 보였지만 우파나히가 상황을 판단하기엔 그걸로 충분했다.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잘리거나 찢어지거나. 혹은 다리를 토막 낸 뒤 가지런히 놓은 것이겠지. 화장품 상인이 저런 형태. 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군중에 섞여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랑케의 뒷덜미를 끌고 수레로 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사람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그의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


“우파나히!”


약간 울리는 목소리였지만 그가 구분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팔라둔.”


팔라둔이라 칭해진 이는 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갑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니 체형을 읽어내는 것도 힘들었다. 원래의 목소리와 구분하기 힘든 약간 울리는 목소리 또한 가면 때문이었지만 항상 쓰고 있는 것이었으니 우파나히가 기억하는 목소리는 약간 울리는 목소리뿐이었기에 그가 팔라둔이라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랑케가 기겁하며 “필리오림께 무슨 말버릇이에요!” 라며 조용히 화를 냈지만 우파나히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쪽은 록셀의 하녀가 아닌가! 두 사람이서 뭘 하는 거지?”

“장을 보······”

“상관없다.”

“하! 여전하네!”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말이 끊긴 랑케가 푸푸 거리며 수레 쪽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그게 그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필리오림이라고 한 번 더 칭해진 그와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에 군중들이 웅성거렸다.


“죽었나.”

“그래, 살인이야.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뭔가로 잘려나갔어. 단면이 깨끗한 걸로 봐선 한 번에 잘린 것 같은데 아직 조사해 봐야해······볼래?”

“아니.”

“하긴 식사 전후로 볼 건 아니지. 도와줄 거면 도와주고 아니면 돌아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잖아.”

“알았다.”


팔라둔 필리오림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팔라둔은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었지만 아쉬워하는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한 뒤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했고 우파나히는 두어 번 더 수레를 세워 필요한 물건을 산 뒤 집에 던져 놓고 수레를 반납했다. 그동안 랑케는 사색이 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하기만 하면 오늘 할 일은 다 끝나는 차에 랑케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런 걸 보고도 배는 고프네요······”


부끄러운 듯 헤헤거리며 웃음 지었지만 우파나히는 반응이 없었다.


“밥 사주세요!”


짜증이 나기라도 한 것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는 우파나히의 반응은 골목으로 들어가 궐련에 불을 붙이는 것뿐이었다.


“아침 사드렸잖아요!”

“그라시아가 샀다.”

“그라시아 님이에요!”

“상관없다.”

“같이 먹어놓고선!”


이름 모를 노점 음식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푸푸거리면서 화내는 그녀가 감기 걸린 새끼 돼지 같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맛있는 집 알고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요리 한다.”

“귀찮잖아요!”


억지 논리를 주장하는 랑케를 따라가려 했다간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그냥 무시하고 점심식사에 쓸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집엔 아무도 없었다.


화덕에 장작을 깐 뒤 불을 피웠다. 불이 어느 정도 커지자 새로 산 냄비에 물을 부어 화덕에 걸었다. 물이 끊는 사이 거실에 대충 던져두었던 식탁과 의자를 주방 쪽으로 옮겨 놓은 뒤 물이 끊을 동안 궐련 한 대를 피웠다. 그 사이 랑케는 그가 대충 던져 놓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정리하고 있었지만 짐 정리라는 틀에 어긋나지 않았기에 우파나히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누가 했는 진 몰라도 여기 청소가 깨끗하게 돼 있어서 좋네요~”


물이 끓었기에 점심식사 용으로 사온 면을 한 움큼 집어넣었다.


“침대 같은 건 무거워서 못 옮기니까 알아서 하세요~”


식기를 꺼내 물에 한 번 씻은 다음 식탁 위에 놓았다.


“요리라는 거 배워보고 싶긴 했는데 요리사 분께서 신성한 주방엔 참새가 있을 곳이 못 된다면서 쫒아내셔서 별로 잘 하진 못하는데 요리 하시는 분들은 다 말수가 없으신가요?”


면이 다 삶아졌기에 채에 걸러 흐르는 물에 식힌 다음 접시에 얹었다. 접시에서 넘칠 정도로 쌓은 면 위에 올리브기름과 후추를 뿌리는 것으로 요리를 마무리 한 뒤 먹었다.


“아! 치사하게! 제꺼는요!”


접시 하나를 더 식탁에 놓은 다음 자기 접시에 있는 것을 덜어주었다. 의자는 랑케가 가지고 왔다. 배고팠는지 조금 급하게 먹었지만 표정은 미묘했다.


“음······별로······맛이 없네요······”


밍숭맹숭한 맛이다. 면을 삶은 다음 기름과 후추를 더 했을 뿐이다.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다. 그냥 면에 기름 맛이 느껴지면서 조금 화끈한 기운이 코끝을 간질일 뿐. 그냥 그 정도인 맛일 뿐이다.


“항상 이런 식으로 드시나요······?”

“아니.”

“그래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먹었다. 랑케도 후추 씹히는 맛이나 기름과 면의 만남을 천천히 음미하곤 “먹다보니 괜찮네요.” 라며 재잘거렸다.

우파나히가 자기 접시의 것을 반쯤 먹었을 쯤 인기척이 나더니 물 끓는 냄새에 이끌린 알리샤가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 손님이시네요~식사 중?”

“네, 네! 랑케입니다!”


입 안에 있던 것을 급하게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우파나히는 먹는 것에 집중했다.


“아침에 봤던 분이잖아요. 기억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의자, 가져올게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또 이런 거 먹고 있는 거예요?”


우파나히의 접시에 있던 밍숭맹숭한 맛의 면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다.”

“밖에 나가면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손님한테도 먹이고······미안해요 랑케.”

“괜찮습니다~! 계속 먹다보니 맛있는 걸요!”

“뭐······괜찮다면 다행이지만······”


알리샤가 좋아하는 맛은 아닌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것은 그녀밖에 없었기에 우파나히는 입안에 든 것을 삼키고 난 뒤 입을 열었다.


“샤크티.”

“마차리한테 맡겨놨어요.”

“살인.”

“그거 저도 오면서 봤어요.”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마차리한테서 칼을 뺏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진심은 아닌 것 같았다.


“칼이요?”

“네. 허가받고 소지하는 거니까 문제는 없어요. 그렇게 쉽게 사람죽이는 사람도 아니고.”

“얼간이.”

“마차리가 실수로 죽였다고 하기엔 너무 정확하게 잘라놨던데요~뼈랑 근육이랑 전부 한 번에 잘라서 정확하게 토막 냈어요. 우발적인 범행은 아니죠. 얼간이긴 해도 재미삼아 사람 죽이진 않잖아요?”

“날붙이.”

“칼로 자른 거 같긴 한데 단면이 너무 깨끗해요. 무지막지한 힘과 샤엘라 같은 정확도를 가진 사람이 엄청 얇고 넓은 걸 휘둘러서 자른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점심 뭐 먹었나요? 라는 느낌의 대화 분위기에 랑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알리샤의 소매를 붙잡았다.


“안 무서우세요?”

“나도 용병이었는걸요. 그거보다 더 이상한 형태······로 죽은 건 많이 봤어요. 오히려 이번 경우가 이상한 거죠.”


그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은 우파나히의 표정과 같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국수를 삶아서 약간 물기가 남아 있게 한 상태에서 참기름과 후추를 뿌려 먹으면 한끼 식사 정도는 됩니다.

밀가루 맛 뿐이지만 면이 불기 전에는 먹을만합니다.

추천은 안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홍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39 17.08.02 114 1 8쪽
38 38 17.08.01 135 1 6쪽
37 37 +2 17.07.29 181 1 8쪽
36 36 17.07.28 117 0 8쪽
35 35 17.07.27 110 0 6쪽
34 34 17.07.26 299 0 6쪽
33 33 +2 17.07.25 155 0 7쪽
32 32 17.07.24 101 0 8쪽
31 31 17.07.23 215 0 7쪽
30 30 17.07.22 120 0 7쪽
29 29 17.07.22 912 0 7쪽
28 28 17.07.20 86 0 7쪽
27 27 17.07.17 352 0 6쪽
26 26 17.07.16 121 0 8쪽
25 25 17.07.16 120 0 8쪽
24 24 17.07.15 109 0 7쪽
23 23 17.07.15 127 0 7쪽
22 22 17.07.15 112 0 8쪽
21 21 +2 17.07.13 238 1 7쪽
20 20 17.07.13 167 0 8쪽
19 19 17.07.12 148 0 6쪽
18 18 17.07.12 745 0 8쪽
17 17 17.07.11 105 0 7쪽
16 16 17.07.11 162 0 7쪽
15 15 17.07.10 135 0 7쪽
14 14 17.07.09 192 0 6쪽
13 13 17.07.08 126 0 7쪽
» 12 17.07.07 168 1 10쪽
11 11 17.07.06 138 1 6쪽
10 10 17.07.04 152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