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89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22 00:15
조회
911
추천
0
글자
7쪽

29

DUMMY

몇몇의 병사들이 지키는 필리오림의 관사는 처음 오는 자들에겐 미로나 다름없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에 똑같이 생긴 갈림길이 많았고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길도 있었다. 거기다 주요 관계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통로는 물론이고 비상시 사용하는 오래된 함정도 몇 개 설치되어 있다. 혹시라도 있을 비상시국에 농성을 하기 위해 만든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물론 마나폴로는 그 위치나 종류를 다 외우고 있으니 설령 함정이 사용된다고 해도 피하거나 망가트릴 자신이 있었다.

몇 갈래의 갈림길에서 필리오림의 사무실로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느긋하게 걸으며 아무도 지키지 않는 창고 같은 방이 나왔다. 문 위에 달린 푯말도 ‘서류 보관소’라고 적혀 있을 뿐인 전혀 중요해보이지 않는 방을 열고 들어가 서류가 잔뜩 쌓여 있는 책장을 옆으로 밀었다. 빈자리엔 작은 문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고 자신의 키보다 낮은 문의 크기를 불평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자 밀려 있던 책장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아무도 일도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비밀 문의 안쪽엔 필리오림의 사무실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곳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창문하나 없어 답답하기만 한 곳. 그곳에 팔라둔 필리오림이 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쌓인 서류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여~대장.”

“대장이 아니다.”

“예~필리오림.”


반갑게 인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면의 시선뿐이었다. 마나폴로는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가면과 마주하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꾹 참았다.


“성과는 있었나.”


필리오림의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마나폴로를 노려봤다. 가끔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 나쁘지만 그것이 필리오림이 짊어질 법칙이고 마나폴로 자신은 그 필리오림과 함께하는 동행자였기에 참고 따라야 했다.


“그럭저럭 입니다.”

“술은 자제하게.”

“냄새 납니까?”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니 피부에 밴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가면 아래의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뱉는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결과부터 말하게.”

“로투가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신발 장사를 한다고 들어왔습니다.”

“신발? 분홍신인가!”

“칠을 해서 위장한 뒤 들여왔겠죠. 문제는 수량입니다.”

“몇 켤레나 들어왔지?”

“서류상으로는 여든 여섯 켤레입니다.”

“온 대륙의 분홍신을 다 쓸어왔군······”


여든 여섯.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분홍신의 기원은 상당히, 아니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때 고대의 것에 가깝다. 인간을 싫어하는 어떤 존재가 고대의 종족인 리안에게 의뢰를 해 만들게 한 것.

신고 있는 자에게 인간을 죽이고 싶어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며 충동을 행사하게 하는 도구와 도구를 휘두를 수 있는 육체적인 힘을 준다. 몇 백 년 전에는 흔한 물건이었다곤 하지만 일곱 영웅에 의한 유사렛타인 조약이 맺어지면서 국가적인 정책으로 분홍신과 같은 도구들을 회수, 파기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현재에 이르러선 평생 동안 그런 전문적인 역할을 가진 도구를 보지 못하는 자들도 많다.

팔라둔의 시각에선 여든 여섯이라는 숫자는 로투가 무슨 일을 계획하던 간에 필요 이상으로 많아보였다.


“현 시점에서 여든 여섯 켤레나 되는 분홍신을 가질 정도로 광적인 수집가는 없습니다. 로투가 이상한 수집 욕구가 있긴 하지만 분홍신은 수집 목록에 없고요. 누군가에게 사주 받은 것 같습니다.”

“전쟁의 뿌리인가!”


팔라둔의 가면이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모든 별명엔 이유가 있다. 전쟁의 뿌리라고 불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 별명이 붙을 이유가 있다. 팔라둔이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그가 개입했다.’ 라는 상황은 위험하고 큰 희생이 동반될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나폴로는 단호하게 가능성을 잘라냈다.


“아뇨. 전쟁의 뿌리는 반드시 자신의 하수인을 보내 일을 처리합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는 규모가 지나치게 작습니다. 그 망할 것이라면 유사렛타인 조약을 파기하려고 들겠죠.”

“그런가······”


가면 아래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과거의 기록을 다 읽어본 적이 있었기에 전쟁의 뿌리에 대한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거기다 스승의 스승께서 전쟁의 뿌리가 보낸 하수인과 맞서다가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기록이 나타내는 그의 행적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팔라둔의 마음속에선 전쟁의 뿌리란 존재는 항상 대비해야 하고 항상 걱정해야하는 것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금 부하들이 다른 도시에 정보를 요청하러 갔으니 기다리셔야 합니다.”

“늦지 않게 해주게.”

“예.”

“그리고 마차리 쪽은 어떻게 되었나.”

“술이 약하더군요.”

“쓸데없는 소린 말고.”


표정으로 봐선 나름 고급정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조금 자극을 주면 알아서 이쪽으로 붙을 겁니다.”

“나린······”


잠시 말을 멈췄다. 마나폴로가 이해하기 어려워 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알리샤가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게.”

“전력에 도움이 됩니까? 분홍신뿐이라면 여행자들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미 로투의 배신을 경험한 팔라둔으로선 믿을 수 있는 사람부터 늘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니, 신뢰라는 것은 단시간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들이 필요해.”

“그나저나 나린은 누굽니까?”

“여기선 알리샤라고 하지.”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겁니까?”


마나폴로가 자기감정을 드러내자 팔라둔의 가면 아래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는 마나폴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린 이전엔 베티, 베티 이전엔 라자야, 라자야 이전엔 마리였다.”

“저로썬 이해하기 힘들군요.”

“만날 때마다 이름을 바꾸고 그 모습도 바꾸지. 그런 능력이 있고 그걸 활용할 뿐이야. 우파나히는 용병이니 돈으로 고용할 순 있었지만 알리샤는 어지간해선 참여하지 않으려 할 걸세. 잘 유도해주게. 그리고 이건 내 최종판단이니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하지만 팔라둔이 그들에게 가지는 믿음을 이해하지 못한 마나폴로는 이름과 모습을 마음대로 바꾸는 그녀만큼은 신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표정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홍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39 17.08.02 113 1 8쪽
38 38 17.08.01 134 1 6쪽
37 37 +2 17.07.29 180 1 8쪽
36 36 17.07.28 116 0 8쪽
35 35 17.07.27 109 0 6쪽
34 34 17.07.26 298 0 6쪽
33 33 +2 17.07.25 155 0 7쪽
32 32 17.07.24 101 0 8쪽
31 31 17.07.23 214 0 7쪽
30 30 17.07.22 120 0 7쪽
» 29 17.07.22 912 0 7쪽
28 28 17.07.20 86 0 7쪽
27 27 17.07.17 351 0 6쪽
26 26 17.07.16 120 0 8쪽
25 25 17.07.16 119 0 8쪽
24 24 17.07.15 109 0 7쪽
23 23 17.07.15 127 0 7쪽
22 22 17.07.15 112 0 8쪽
21 21 +2 17.07.13 238 1 7쪽
20 20 17.07.13 167 0 8쪽
19 19 17.07.12 148 0 6쪽
18 18 17.07.12 745 0 8쪽
17 17 17.07.11 105 0 7쪽
16 16 17.07.11 162 0 7쪽
15 15 17.07.10 134 0 7쪽
14 14 17.07.09 192 0 6쪽
13 13 17.07.08 125 0 7쪽
12 12 17.07.07 167 1 10쪽
11 11 17.07.06 137 1 6쪽
10 10 17.07.04 151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