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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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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08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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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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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4

DUMMY

군대도 먹어야 움직인다. 하물며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뛴 전사 또한 당연히 먹고 자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고 나니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는 통에 배를 채울 만한 곳이 없었다. 마차리 역시 기억을 더듬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우파나히가 해주는 밥을 기대하기엔 일에 대한 그의 열의가 너무 높았다. 며칠 정도는 제대로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을 일이었다.


“젠장!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뿔 나팔이라니!”


결국 거의 유일하게 문을 열고 있는 식당 겸 여관인 흰 산양의 뿔 나팔에 올 수 밖엔 없었다. 마차리는 잔뜩 짜증을 냈지만 요리가 나오니 걸신들린 듯 입안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마어서!!! 마업서!!! 맛으서!!!”


뭐라 지껄이는지도 모를 정도로 입안에 음식들을 쑤셔 넣고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삼켰다. 뱃속에 물질을 분해하는 술법이라고 걸린 것인지 알을 낳지 못하는 닭 요리가 세 접시, 늙은 소를 도축한 고기 찜이 두 접시, 누렇게 변해가는 샐러드 두 접시, 냄새나는 증류주 다섯 잔이 증발하듯 사라졌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있던 손님들과 점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잊은 채 그 기상천외한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우파나히는 가게에 들어가지 않은 채 말린 고기 한 소쿠리와 빵, 그냥 물을 주문해 먹고 마신 뒤 마차리가 먹은 것까지 값을 치렀다.

값을 치르고 조금 기다리니 상쾌한 얼굴을 한 마차리가 뿔나팔 안에서 튀어나와 소릴 질렀다.


“갑시다!”


화장실에서 한바탕 쏟아낸 마차리의 몸은 예전보다 커진 것 같이 보였다. 키도 조금 자랐고 근육의 양도 늘었다. 얼굴에도 변화가 조금 생겼지만 우파나히가 아무 생각 없는 마차리의 말버릇에 폭력을 휘두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보통은 많이 먹는다고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맞은 부위가 잠시 붉어졌다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덩치가 조금 커진 마차리는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는 표정으로 중얼중얼 거렸지만.


“중요한 건 혈통이니까요! 샤엘라로 태어난 게 이럴 땐 참 좋단 말이죠!”


우파나히는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덩치가 커질 만큼 먹어치웠다. 거의 완전 연소 수준으로 영양을 흡수한 다음 몸에 남은 노폐물들을 전부 배출해 몸을 가볍게 했다. 지금쯤 기능을 끝낸 위와 장이 잔뜩 수축한 채 정지해서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를 줄이고 있을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 힘든 종이라는 건 확실했다.


“취한 건가.”

“안 취했어요! 그 정도밖에 안 마시고 취하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요!”


우파나히는 오랜만에 그가 귀찮아진 건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술 취했다고 생각하셨죠!”

“아니.”

“취하진 않았지만 취해도 잘 싸우니까 걱정 마세요~”

“알았다.”


한마디만 더 하면 그대로 짓밟아 버릴 것 같았지만 분위기에 둔한 마차리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결국 몇 대 맞은 다음 입을 다물었다.

한참동안 거리를 순찰한 다음 로나리나 동상이 있는 공원에 도착해 잠시 쉬었지만 우파나히는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며 일을 이어갔다. 바닥이고 동상이고 간에 알리샤가 깔끔하게 처리해서 전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용하다. 더운 밤공기였지만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우파나히가 한쪽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마차리도 뭔가 눈치 챈 것인지 피의 강을 뽑아들고 우파나히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경계했다.


분홍신이 있었다. 여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마차리를 습격했던 것과는 다른 개체. 그녀가 나무하나를 분해해 도끼로 만들자 그와 동시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한참동안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첫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분홍신이 바닥에 도끼를 내려치자 그걸 신호로 해 가면을 쓴 분홍신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약점.”

“신발을 신고 있는 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머리를 잘라내도 달려들어요.”


우파나히가 들고 있는 무기로는 꽤 힘든 일이었다.

분홍신의 숫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물론 체형이나 들고 있는 도끼의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가면과 분홍신은 같았기에 모두 쓰러트려야 할 적이었다.


“오늘만 세 번째라니······”


마차리가 한탄하는 동안 분홍신들이 도끼를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어림잡아도 열을 넘어보이는 숫자, 게다가 조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몇 개 되지 않는 등불뿐이었으니 어디에 어떻게 더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른달에서 밤새도록 싸운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데요.”

“시끄럽다.”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마차리는 투덜거리며 가장 가까이 다가온 분홍신의 다리를 잘라냈다. 덩치가 커진 탓에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마차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분홍신의 도끼에 잘렸지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악!”


다리가 잘린 이가 제정신을 차린 듯 고통에 몸부림 쳤다. 들고 있던 도끼는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비명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인지 아직 분홍신인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잘라 소리를 멈췄다.


“집단행동을 한다는 건······! 처음! 인데요!”


사방에서 휘둘러지는 도끼를 피하고 움직임에 영향을 줄 곳을 찌르고 베며 분홍신들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다리에 상처를 입어 움직임이 느려진 분홍신은 기회가 될 때마다 크게 휘두른 마차리의 공격에 다리가 잘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공격과 방어, 우파나히는 그런 움직임을 낼 수도 없었다.


분홍신에 의한 최초의 일격은 방패로 막았다. 시험삼아 목뼈를 잡고 으스러트렸지만 축 늘어진 머리를 단 채 또다시 공격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직 천에 쌓여있던 그의 무기가 손에 들려졌고 그대로 허리를 향해 휘둘러 일어설 수도 없게 허리를 분질렀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느리게 만들기엔 충분했기에 다른 분홍신의 공격을 막고 다리를 부러트렸다. 한번 휘두를 뿐이었지만 먼저 맞은 다리는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고 남은 다리 역시 겨우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그냥 칼을! 쓰시죠!”

“싫다.”


공포라도 느낀 것일까. 분홍신들이 조금 주춤하는 사이 무기를 싸고 있던 천을 벗겨냈다.

도끼날 같은 게 보였다. 그것도 여덟 개나. 그런 칼날들을 달고 있는 철퇴는 검은 빛을 내며 쓰러진 분홍신의 남은 다리를 으스러트려 끊어냈다.

깔끔하지 않은 단면과 사방으로 귓가에 들리는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런 때는 정말 쓸모없는 무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 같았지만 허리 뒤에 달아놓은 단검 같은 것으로 무기를 바꿀 생각은 없는 것인지 철퇴를 고쳐 잡고 천천히 전진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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