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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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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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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7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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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0

DUMMY

로투는 마차리의 허리에 있는 ‘피의 강’을 지팡이로 한 번 더 때린 뒤 근처의 가게에서 술 한 병을 사서 공원에 앉았다.

젊은 얼굴을 한 긴 머리의 여성이 쇠사슬이 달린 갈고리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마개를 따 크게 한 모금 마신 로투는 술주정이라도 부리는 듯 “로나리나 님은 가슴이 저렇게 크지 않아.” 라며 투덜거렸다.


“하하······뭐······여자의 매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동상 만드는 사람한테 부탁했겠지. 허세부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한 모금 더 마시고 마차리에게 병을 내밀었다. 뿔 나팔에서 마신 술이 아직 충격으로 남았던 것인지 조금 주저했지만 결국 호기롭게 받아 마시곤 특이한 맛과 엄청난 열기에 감동한 뒤, 뿜었다.


“푸핫!”

“하하하! 여행자씩이나 되서 술도 못 마시나!”

“이런 제대로 된 술은 오랜만이라서······”


변명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칼집으로 마차리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못 마시는 건 죄가 아니야.”

“네, 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왜 날 따라 온 거지?”


영웅이시니까요. 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적이라면 당신을 죽여야겠다. 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같은 생각이군.”

“세뇌의 술법까지 사용하는 걸로 봐선 적이 소수라도 방심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아.”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마차리가 무어라 말하던 신경 쓰지 않고 한 모금 더 마시며 동상을 감상했다. 과장된 동상일지라도 옛 기억이 떠오른 듯 가볍게 한 번 웃고는 한 모금 더 마셨다.


“스승님께는 재능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실력을 쌓았다네.”

“그 칼놀림은 잘 봤습니다.”

“시침질이라는 기술을 조금 변형시킨 거야. 로나리나 님이 만드셨지. 검술로 성공하고 싶다면 배우는 게 좋을 걸세.”


로투에게서 병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다 마셔도 좋다는 말에 쭉 들이켜 병을 비웠다. 뿔 나팔에서 마신 쓰레기 같은 술에 비할 수 없었고 마차리의 표정으로 봐선 가능하다면 한 병 더 마시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것 같았다.


“일곱 여행자는 많은 걸 만들었어.”

“최근엔 그걸 개혁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을 시작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시작되었으니까. 마침 시난들과의 싸움도 막바지였었고.”

“라달소렌에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라달소렌 출신인가?”

“네.”

“나도 라달소렌 출신이라네.”


인간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둘 다 고아라는 뜻이었다. 천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하고 주변에 적들이 많아 성인들의 사망률이 높다. 양쪽 부모를 모두 잃은 경우도 흔하다. 이런 아이들을 누군가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제도를 만들었고 이 제도를 계획하고 만든 사람을 기리고자 제도에 그녀의 이름이 붙었다.

같은 지역 출신인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듯 로투도 마차리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내 시절엔 라달소렌 출신들이 많았어. 에란 산맥에서 시난들을 몰아내는데 너무 많은 피가 흘렀거든. 내가 에란에 있었을 땐 라달소렌 님도 계셨다네.”

“그분도 보셨나요?!”

“두어 번 정도 뵈었지만 바쁘신 분이라 말을 나누진 못했어. 여행 중에 허리 두르개를 양쪽에 달고 큰 창을 도끼처럼 휘두르는 여자를 보면 이름을 한 번 물어보게. 그분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허리 두르개를 양쪽에 달았다고요?”


샤엘라의 전통에 따르자면 굉장히 이상한 뜻과 모양의 옷차림이었기에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엔 없었다.


“뭐, 옛날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로투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로 쓰던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이름 모를 꽃의 색과 비슷한 자주색 칼날과 적으로 보이는 개체가 마차리의 눈에 들어왔다.


석양조차 거의 저물어가는 시각, 주변은 고요했다. 특별한 술법이라도 써서 일반 시민들을 차단 한 듯 공원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적의 수는 다섯, 둘은 공원을 차단하는 술법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직접적인 전투를 하려는 것은 셋으로 보였다.

가면을 쓰고 체구에 맞지 않는 큰 도끼를 든 호리호리한 여자와 추가 달린 쇠사슬과 짧은 검을 들고서 두꺼운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덩치 큰 남자. 그리고 검은 망토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감싼 채 그들의 뒤에서 무언가를 조립하고 있는 자 한 명.


“여자 쪽을 맡게. 내 무기론 저걸 못 막아”

“알겠습니다.”


마차리가 ‘피의 강’을 뽑았다. 날카로운 칼날은 저물어가는 석양을 비추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대를 잘 만들어 주네요.”


도끼를 든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동시에 마차리의 배를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윽?!”


이름 모를 꽃의 색을 닮은 자줏빛 칼날. 로투의 칼이 그의 등에서부터 꽂혀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무슨······!”

“적절한 보수만 받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걸세.”


이 사람은 필리오림에게 고용되기 전에 그의 적에게, 도시의 적에게 고용되었다. 고결한 샤엘라의 정신은 시간에 묻혀 사라졌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그 어떤 자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로투의 남은 손이 단검을 뽑았다. 가만히 있으면 마무리를 하고 마무리를 당한다. 배를 뚫고 나온 칼날을 잡고 뒤쪽으로 피의 강을 휘둘렀지만 맞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젖힌 것으로 피할 수 있는 서툴고 얕은 공격이었다.

마차리의 상처는 깊다. 칼이 박혀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공포로 부수는 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인데. 아주 듣기 좋군.”


로투가 몸에 쑤셔 넣은 칼을 살짝 돌리자 마차리가 낮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오래 되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잘 기억하는군.”

“이 배신자가!”

“그렇게 불러도 변명할 생각은 없네.”


단검이 주저앉은 마차리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는 듯 마차리는 의식을 유지하는 것에 온힘을 쏟았다.


“일곱 영웅은 위대한 분들이야.”


단검과 칼을 뽑아 마차리의 옷에 그의 피를 닦았다.


“그들의 유품을 수거해서 에란으로 모시는 것은 제자인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네.”

“궤변을 늘어놓는 건가!”

“어떻게 말하던 변명은 하지 않아.”


칼들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마무리를 하는 것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자의 도끼였다.


“좋고 싫고를 떠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네.”


여자의 도끼가 높게 들어 올려졌다.

시선이 아래로 향해 있던 마차리의 눈에 그녀가 신고 있는 분홍빛 신발이 들어왔다.

과거에 한 번 이런 신발을 신은 시체를 본적 있었다. 피를 좋아하는 분홍신. 주변의 물질을 분해해서 도끼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무기를 만들어 휘두르는 위험한 존재. 시난이라고 규정되는 것이 당연한 살인을 위한 존재. 거기에 옛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로투와 힘과 능력을 알 수 없는 자들이 있으니 어딘가에서 느긋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죽음과 협상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난과 손을 잡아서라도 해야 할 일인가!”

“이번엔 특별히 자네를 위해 계획한 거야. 이 자들이 그 다음에 할 일은 내가 상관할 것이 아니네.”


도끼가 내려가며 그의 목을 자를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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