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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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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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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6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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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1

DUMMY

순찰은 지루하다. 거기다 누군가의 경호까지 하고 있으면 신경이 잔뜩 곤두서서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 할 수밖엔 없다. 그런 점에서 팔라둔 필리오림이란 고용주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팔라둔은 흉흉해진 거리의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짧은 대화에서도 물가나 전체적인 분위기, 수상한 자들에 대한 제보를 수집하는 치밀함이 있었다. 간간히 그의 존재를 신기해하는 아이들과 농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긴장을 풀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고생하는 건 호위를 맡고 있는 이들 뿐이었지만.

팔라둔의 계획은 절반정도는 자기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팔라둔?”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팔라둔의 눈앞에 황금물결이 펼쳐졌다.

풍성하고 선명한 금발의 여인 그라시아는 고혹적인 미소를 띠며 붉은 입술 안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인지한 팔라둔이 아이가 옷깃을 살짝 잡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일어서다가 목에 매고 있던 휘장의 일부가 풀리며 아이의 손에 남았다. 팔라둔은 나중에 받아 맬 생각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우선시 했다.


“아, 그라시아. 결례를 보인 것을 사죄하오.”

“괜찮습니다. 필리오림. 근데 오늘은 경호원 몇 명뿐이네······요?”


자신이 이끈 이들도 최소한의 경호인 린다와 짐을 들 두 명의 하녀뿐이었지만 당당함은 한 나라의 공주와 같았다.


“임무는 게을리 하지 않으니 걱정 마시오.”


가느다란 손가락이 붉은 입술 끝에 닿았다. 길지만 단정하게 손질된 손톱과 손가락, 붉은 입술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형태의 미를 나타냈다.


“당신은 충분히 이 도시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시니까요.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는답니다.”


긴 속눈썹이 매력적인 눈으로 약간 풀어진 그를 옷차림을 한 번 아래위로 쓸어보았다. 정신없이 놀다가 옷이 찢어진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에 무심코 가볍게 입 꼬리를 올린 그녀는 아직 휘장의 일부를 쥐고 있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서 사탕 하나와 휘장의 일부를 바꾼 뒤 팔라둔의 목에 매달아주었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의 위엄은 유지하셔야죠.”

“주의하겠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외출인가?”

“네. 필리오림께서 열심히 일해주시는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답니다.”


바람이 일자 몇 가지 꽃향기와 알 수 없는 것 몇 가지를 섞은 향수 냄새가 주변 사람들의 코를 간질였다. 익숙해질 듯 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아 코에 계속 남았고 지루해질 듯 지루하지 않아 계속 맡고 싶어지는 향기에 주변 사람들은 전부 그녀의 미모와 향기에 끌린 벌떼처럼 굴기 시작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마나폴로는 그녀가 들으라는 듯 팔라둔에게 일렀다.


“필리오림. 호위에 문제가 생깁니다. 물리시지요.”

“알겠네. 그라시아. 보고 할 것이 있으면 관사로 오시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중한 인사가 팔라둔과 그녀의 만남을 끝맺었다. 그라시아는 군중들 사이로 스며들었고 서로 눈짓으로 경호에 관한 신호를 보낸 린다와 마나폴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 모른 채 하며 눈을 돌렸다.


“미인이네.”

“그러게. 형이라고 불러.”

“결혼 할 거면 강한 여자가 좋지.”

“튼튼해야 애를 많이 낳지. 한 번 더 말한다. 형이라고 불러라.”

“싫은데.”

“한 판 할까!”


똑같은 얼굴들이 별것 아닌 일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이 주변의 시민들에겐 작은 즐거움 정도는 되는 모양인지 그들을 보는 사람들 중엔 미소를 띠는 이들이 많았다. 팔라둔도 뭐라 하진 않았지만 마나폴로는 필리오림의 호위가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자, 다들 일이나 하자!”


쌍둥이들이 일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일 때마다 마나폴로가 으름장을 놓았다. 쌍둥이들 역시 그때마다 대장같이 굴지 말라며 중얼중얼 거렸지만 보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탓푸’에 이르진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걸으며 순찰을 한 뒤 시민들의 점심시간을 피해 점심을 먹었다. 다른 제대에서 희소식이 들려오는 일도 없었고 자신들이 찾은 성과도 없었다. 그럼에도 팔라둔은 적당히 느긋한 척하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주문했다. 자신이 초조해하면 그 감정은 시민들에게 옮아 들불처럼 타오를 것이 분명했다.

팔라둔의 민물조개 요리에 향신료 몇 가지를 추가해달라고 주문하는 동안 마나폴로와 쌍둥이들은 고기요리를 대량으로, 시모네는 여러 가지 토핑을 올린 생선살 빵 구이, 마차리는 빵과 스프, 활잡이 여자는 물 한 잔을 주문했다.

모두 식사엔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지만 마차리는 전날 술을 마신 것이 탈이 난 것인지 식사 중에도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고 쌍둥이들은 그걸 놀려댔다.


“술 못 마시는 샤엘라라니.”

“본 적 없는데.”

“식사 중에도 일은 해야 한다!”

“대장처럼 굴긴.”

“타르안이라곤 해도 용도 아닌 게 대장처럼 굴어봤자······”


중얼중얼, 중얼중얼, 중얼중얼 거린다.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듯 험담하는 것이 내심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야, 야. 그거.”


시모네가 신발 끝으로 마나폴로의 정강이를 살짝 두드렸다. 그제야 마나폴로는 자신이 쥐고 있던 포크가 뜨거운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젠장.”

“조심해야지. 딴 사람한테 피해주면 안 되잖아.”


마나폴로는 이미 포크로써의 기능을 잃은 그것을 꾸깃꾸깃 접어 아무데나 던져 놓곤 새 포크를 주문해 식사를 계속했다. 이에 시선이 가 있던 팔라둔이 포크였던 덩어리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뻗는 순간 활잡이 여자가 쥔 화살 한 대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와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 활잡이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물이 들어 있는 컵을 보여준 뒤 포크였던 쇳덩이에 물을 조금 뿌렸다. 물은 뜨거운 것에 닿은 모양으로 바로 증발되며 수증기를 일으켰다.


“녹은 건가······”

“아, 죄송합니다. 좀 짜증이 나서.”

“멍청이 타르안.”

“혼자서 열 받고 그러지 말라고.”


마나폴로는 쌍둥이들이 뭐라하던 참았다. 물론 쌍둥이들이 일에 집중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었다. 빈정거리거나 중얼거리면서도 경계는 확실히 하고 있었고 식사 역시 오른손에 창을 잡은 채 왼손 하나로 하고 있었다.

마나폴로가 그들이 일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쌍둥이들은 마나폴로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의견을 제대로 나누지 않는 이상 골이 깊어질 수밖엔 없어보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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