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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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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00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7 14:04
조회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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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27

DUMMY

우파나히도 구원해주지 않았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이용할 순 있지만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고 지금 보이는 마차리의 모습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의 표본이었기에 우파나히는 그를 그냥 내버려뒀다.


“아! 잠깐, 잠깐! 난!”

“어머, 어리게만 보이는데 근육이 단단하네요~”

“이 사람 샤엘라네.”

“어머, 귀여워~”

“전부 우락부락하게 생긴 건 아닌 모양이네~”


비명에 가까운 거절의 뜻을 비쳤지만 그냥 앙탈부리는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몸 이곳저곳을 만지며 장난을 쳤고 결정적으로 배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곤 선을 따라 쓸어내리기까지 했다. 칼에 맞거나 도끼에 찍히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간질이는 것은 못 참는 것인지 힘이 쭉 빠진 채로 분가루 냄새에 파묻혀선 끌려가기 시작했다.


“같이 놀아요~일행분도 즐거워하시잖아요~”

“저희가 땀도 씻겨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릴게요.”


여자들이 우파나히를 둘러싸고 칭얼거렸지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거절한번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마차리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밖엔 없는 것 같았다.

당장 마차리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인지, 아니면 귀찮은 것인지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다 쥐어주곤 혼자서 유곽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차리가 치사하다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스스로의 발로 유곽을 빠져나오진 못했다.


하루 동안 세 번이나 싸웠고 겨우 움직일 정도로만 먹고 쉬었다. 잔뜩 피곤한 상태에서 우파나히 씨가 유곽으로 끌고 가선 여자들 사이에 자신을 던져 넣은 다음 돈까지 쥐어줬다. 피곤한 상태에서 사방에서 덮쳐오는 분가루와 살갗에 취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알리샤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꺼낼 변명이었다.


그 외에도 잔소리의 유형에 따른 변명과 이유를 다섯 가지 정도 더 생각했지만 구세주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오! 마차리!”


고무로 된 집을 끼운 도끼를 천으로 감싼 마나폴로가 한쪽 팔에 술독을 끼고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얼큰하게 취해선 크게 웃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마차리의 머릿속에 번뜩였고 마지막 힘을 짜내 윗옷도 뺏긴 채 그에게 달려가선 말을 걸었다.


“여긴 어쩌어어언!”

“귀여워~”

“같이 살래요?”

“아아악!”


물론 이미 돈줄을 잡은 여자들이 가만히 두진 않았다. 술래잡기라도 하는 양 둘러싸선 달라붙었다. 마나폴로는 도망치려하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마차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뭘 그리 숙맥처럼 구는 거냐. 여행자잖냐. 여자 경험 정도는 있을 거 아니냐.”

“그러니! 까! 전, 전혀 이럴 생각이!”


싫은 건지 좋은 건지 알 수 없는 반응에 허리춤에 칼 말고 달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결혼도 안 했잖아.”

“그렇지만 저 이런 건 별! 로오오오!”


손가락이 척추를 쓸어내리는 힘이 쭉 빠져선 저항하지 않았다. 약점을 잡은 여자들이 소곤소곤 웃으면서 그를 끌고 갔고 마나폴로도 같은 가게로 들어가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


“아! 여기 좋군! 돈도 많이 주고 술맛도 좋고!”


여자가 술잔에 따라준 술은 돌려주고 자신은 병째로 들이켰다. 호쾌하게 마시는 모습에 여자는 조심스레 술을 더 주문했고 마나폴로는 이날 가진 돈을 다 쓰기로 생각한 것인지 술병이 들어오는 데로 쭉쭉 들이켰다.

마차리 곁에도 세 명이나 붙어 술과 안주를 먹여주고 잔뜩 뭉친 어깨까지 풀어주고 있었지만 아무리 잘해줘도 축 늘어진 모양새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여기 술이 제일 맛있네!”

“뭐······예······그러······네요······”


마나폴로는 임무 때완 다르게 상당히 방탕하게 놀고 있었고 마차리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단 생각뿐인 것 같았다.

여자들이 뭘 해주던 시큰둥한 마차리의 모습에 마나폴로는 안주를 먹여주는 여자를 잠시 물린 뒤 술병을 잡고 쭉 들이켰다.


“얘기는 대충 들었다. 로투 놈이 배신했다지?”

“아, 알고 계셨네요?”

“아, 말하지 말랬는데······상관없나······”

“예?”


술을 들이키며 중얼중얼 거렸지만 귀담아 둘 필요는 없어보였다.


“영웅의 제자라는 놈이 이따위 짓을 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텐데!”


가게에 들어오기 전부터 끼고 있던 술을 싹 비우더니 고함지르며 화를 냈다. 거칠게 구는 것과는 달리 안주를 먹여주는 것은 곱게 받아먹었다. 일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지만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 같은 마나폴로의 행동에 마차리 역시 긴장이 약간 풀린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한바탕하고 왔습니다.”


분홍신과 싸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피 묻은 옷은 갈아입었으니 티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팔라둔이 직접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한바탕하고 술 한 잔 하는 게 에란에 있을 때 낙이었는데! 하하!”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하루에 세 번이나 칼을 뽑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진짜 죽다가 살아났어요.”

“그래도 싸우는 거 좋아하잖냐!”

“그렇긴 하지만요······”


옅게 웃었다. 싸우는 게 일상인 삶을 살아왔던 조상들의 피가 마차리의 몸에도 흐르고 있단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게 여행자의 낙이잖냐! 에란엔 이런 곳이 없으니 결혼하기 전까진 즐겨야지!”


어깨를 툭툭 쳐 기운을 북돋아줬다. 이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과 술병을 기울였고 잔뜩 취한 마나폴로가 마차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노랠 부르자 마차리도 고향생각이 난 것인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두 남자는 벌게진 얼굴로 고향을 추억하며 웃음꽃을 피워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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