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11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5 15:10
조회
127
추천
0
글자
7쪽

23

DUMMY

“좀 상냥하게 깨울 순 없나요? 네?”


곤히 자고 있다가 걷어차인 마차리가 투덜거렸지만 우파나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런 관계였으니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투덜거리지 않고선 버틸 수 없는 짜증이라는 게 마차리의 머릿속 한구석에 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적들은 어떻게 찾아내시게요.”

“순찰.”

“수만 명이 사는 곳에서 대여섯 명 찾는 일이네요.”


속칭 “아~주 잘~되겠습니다!” 라는 비꼬기. 우파나히는 불필요한 잡담은 하지 않았다.


“적에 대한 정보는 알고 계세요?”

“말해라.”


이런 사람이었지. 라며 과거에 있었던 추억들을 떠올리던 마차리는 휘두른 주먹에 코를 한 대 맞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쏟아냈다. 맞섰던 적의 모습이나 종류, 쓰는 능력, 그에 맞섰던 알리샤까지. 알리샤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것에 비해 길었고 적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우파나히는 그 정보는 불필요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로투의 행적에 관해선 팔라둔이 조사한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야 하고요. 강하니까 조심하세요.”

“칼.”


자기 것도 아닌 칼을 칼집도 없이 들고 다니는 게 우파나히의 눈에도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아, 이거요? 로투의 칼입니다.”

“필요한가.”

“아뇨. 쓸려고 하면 쓰겠지만 주인도 멀쩡히 살아 있는데다가 손에 익은 것도 아니니 좀 그렇죠. 녹여서 팔면 돈 좀 되겠지만요.”


자줏빛 칼날이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통의 금속에서는 볼 수 없는 빛깔이었지만 마차리나 우파나히는 과거에도 이런 빛깔을 내는 무기를 본적이 있었다.


“순도 높은 ‘자줏빛 꽃’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까요.”

“강한가.”

“물론 강하죠. 형태가 이래서 그렇지 베는 형태로 가공해서 날을 살리면 강철 무기도 댕겅댕겅 해버린다고요.”


생각보다 우파나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마차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장황하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자줏빛 꽃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선 술법을 증폭시키거나 차단하기도 해요. 강도 경도도 뛰어나고 무기나 방어구로 만들던 촉매로 활용하던 전부 쓸모가 많아요! 얼마나 좋아요! 과거 기록엔 자줏빛 꽃 무기로 무장한 백 명의 전사들이 수천의 적들과 싸워 이겼다는 기록도 있으니까요!”

“필요 없다.”

“쳇, 우파나히 씨한텐 필요 없겠지만 전 필요하거든요!”


마차리가 자줏빛 꽃이라 부르는 금속에 집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줏빛 꽃이라는 것 자체가 샤엘라들의 본거지인 에란 근교에서만 나는 광물을 특별한 비법으로 정련해야만 나오는 샤엘라만의 금속이었고 종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샤엘라들로써는 그 누군가에게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써라.” 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좋지만 쓰는 게 있으니 무기를 늘리기도 싫고······한번 녹여서 가공하려면 에란에 한 번 들려야 하니 귀찮아요. 내꺼도 아니고······그냥 팔라둔한테 줘 버릴 걸 그랬네요.”

“버려.”

“이거 엄청 비싼 거라고요!”

“필요 없다.”


그렇게 한참동안 “필요 없다.”와 “버리긴 아까운데.” 라는 대화가 반복되었다. 우파나히는 같은 답변만 내놓았고 마차리는 버릴 듯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아무도 모르는데 묻어버려야지 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몇 개 되지 않는 등불만이 거리를 비출 쯤 “버릴 거면 돌려주게.” 라는 짜증 섞인 말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로투, 이 배신자가!”


마차리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격분하며 피의 강을 뽑아들고 달려들었지만 로투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마차리의 공격을 모두 피한 다음 칼집으로 명치와 턱을 후려갈긴 뒤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하는 마차리의 얼굴에 입안에 숨기고 있던 독액을 뿜어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비싼 거야 그거.”

“정보를 받겠다.”

“공짜는 아니라는 건가.”


우파나히는 마차리가 격분하며 달려들 때 땅에 떨어트리고 간 칼을 집어 들고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우파나히! 지금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우파나히는 얼굴에 독액을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는 패배자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숫자, 능력, 목적.”

“말이 상당히 짧군.”


로투는 웃는 채하며 독 묻은 단검을 던졌지만 들어 올린 방패로 막았다.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군.”


예전이었으면 방패를 들어 막을 시간도 주지 않았을 거란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만큼의 능력이 우파나히에게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일곱 영웅의 유품을 수거해 에란으로 돌려보내는 것일세. 물론 그 때문에 조금 질이 나쁜 것들과 협력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것이지. 유품만 회수한다면 난 빠질 걸세.”

“조금 질이 나쁘다고?! 분홍신 같은 미친 것까지 이 도시에 들여와 놓고 무슨 개소리야!”

“자네 조금 시끄럽군.”


아직 해독하지 못한 독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아 버둥대는 패배자의 목젖에 칼집을 찔러 넣어 조용하게 만들었다. 죽진 않은 것 같았으니 우파나히는 얌전하게 있었다.


“물론 내가 빠지고 난 다음에도 협력자들은 남아서 자기들 목적을 이루겠지. 난 그쪽에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군.”


오래 생존했기에 감정이나 진실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날 터였다. 하지만 우파나히는 그 말을 믿기라도 하는 것인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숫자.”

“이 얼간이가 공원에서 본 게 전부라네.”

“능력.”

“술사들은 몇 가지 공격 술법을 쓰겠지. 분홍신은 늘 그랬듯 도끼만 주구장창 만들 거고. 나머지는 별 것 없네.”

“능력.”

“말 했네만······”


우파나히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제야 로투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답을 이어갔다.


“난 ‘등잔 밑 그림자와 같은 용’ 로투 하르일세. 그림자와 어둠을 다루지.”

“됐다.”


로투의 칼이 허공에 던져졌다. 로투는 칼집의 구멍으로 칼을 받아 집어넣었고 그 사이 독을 해독한 마차리가 달려들었지만 배에 구멍이 몇 개 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쓰러졌다.


“젊은 샤엘라는 지나치게 혈기 왕성한 것이 탈이군.”

“그래도······너 같은······배신자는······”

“그래, 그래. 나 같은 배신자는 아니겠지. 하지만 힘이 없는 정의는 위선이라네.”


그 다음 공원에서와 같이 그림자가 로투의 몸을 집어 삼켜 어디론가 이동시켰다. 마차리는 독에 중독되어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일어나선 영양이 부족하다며 징징거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홍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39 17.08.02 114 1 8쪽
38 38 17.08.01 135 1 6쪽
37 37 +2 17.07.29 181 1 8쪽
36 36 17.07.28 117 0 8쪽
35 35 17.07.27 110 0 6쪽
34 34 17.07.26 299 0 6쪽
33 33 +2 17.07.25 155 0 7쪽
32 32 17.07.24 101 0 8쪽
31 31 17.07.23 215 0 7쪽
30 30 17.07.22 120 0 7쪽
29 29 17.07.22 912 0 7쪽
28 28 17.07.20 86 0 7쪽
27 27 17.07.17 352 0 6쪽
26 26 17.07.16 121 0 8쪽
25 25 17.07.16 120 0 8쪽
24 24 17.07.15 110 0 7쪽
» 23 17.07.15 127 0 7쪽
22 22 17.07.15 112 0 8쪽
21 21 +2 17.07.13 238 1 7쪽
20 20 17.07.13 168 0 8쪽
19 19 17.07.12 148 0 6쪽
18 18 17.07.12 745 0 8쪽
17 17 17.07.11 106 0 7쪽
16 16 17.07.11 162 0 7쪽
15 15 17.07.10 135 0 7쪽
14 14 17.07.09 192 0 6쪽
13 13 17.07.08 126 0 7쪽
12 12 17.07.07 168 1 10쪽
11 11 17.07.06 138 1 6쪽
10 10 17.07.04 152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