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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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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9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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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36

DUMMY

“그나저나 활잡이 아가씨는 뭘 하고 있나?”

“니아 씨라면 샤크티랑 놀고 있어요.”


활잡이 여자의 이름인 것 같았다. 마차리는 이왕 왔으니 제대로 합류하기로 한 듯 칼을 꺼내 날의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집어넣었다. 마나폴로가 무기 손질을 게을리 하면 일찍 죽는다고 충고했지만 마차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답할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니아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데려올 수 있겠나?”


팔라둔은 여러 가지 가능성과 차선책을 마련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차리가 그녀를 부른 이유를 알게 된 건 조금 더 뒤의 일이었지만 팔라둔의 결정은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에선 타당한 방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능은 하겠지만 제가 없으면 힘들걸요? 귀는 들려도 목소리는 못 내는데다가 유사렛타인 공용어는 문자를 읽고 쓰는 것도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수화로 한 건가? 마차리, 자네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한 거지? 수화로는 이름 같은 걸 나타내기 힘들 텐데.”

“에란에도 문자 정도는 있으니까요. 쓰고 읽었죠.”


마차리는 오히려 팔라둔을 이상스럽게 보며 당연하다는 듯 답했지만 마나폴로는 이해 못하겠단 표정이었다.


“나도 있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은 건지 모르겠군. 글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저야 모르죠. 불러올 테니 오면 물어보세요.”


우파나히의 철퇴가 마차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가만히.”


또다시 그림자를 내리치려는 줄 알고 칼자루에 손을 댄 채 대기했지만 얼굴에 주먹질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함몰될 정도로 맞으면서 의자에서 떨어져 나동그라졌지만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신뢰받지 못하는 마차리는 혹시라도 도망갈 모든 방법에서 차단되고 있었다.

우파나히가 나간 뒤 들어온 라스코는 정리한 사건 내용을 던져주고서 다시 기록보관소로 돌아갔고 팔라둔은 그걸 몇 개로 나눠 돌려보며 개인의 인식으로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부분에 대해 토론했다.


“한 바퀴 돌았는데 이상한 부분은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

“아직이요. 비슷한 구절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헷갈리는 데요.”

“라스코······이놈이······”


마차리가 몇 개의 문단을 짚어가며 따지자 마나폴로는 라스코가 일부러 자신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적은 게 아닐까 오해해버렸다.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팔라둔은 그 부분에 대해 덮어씌우듯 일렀다.


“라스코 잘못이 아니다. 이건 사건을 처음 기록했던 사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에 지나지 않아. 같은 사람이 적었거나 같은 교육을 받았거나 했겠지. 헷갈리더라도 일단 계속 읽어보는 수밖엔 없어.”

“예······알겠습니다.”


다시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몇 개의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읽는 것과는 일반적인 서류작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각각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특이하거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이은 다음 상상력까지 더해 새로운 형태로 현재의 사건에 적용시켜본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걸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부분과 새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충돌하면서 관자놀이가 시큰시큰해질 수밖엔 없는 것이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마나폴로는 식당에서 요리용 술을 가져와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고 마차리 역시 과자를 잔뜩 가져와선 깨작깨작 먹기 시작했다. 팔라둔도 이때만큼은 뭐라 하진 않았다.


“서류작업?”


문이 열리고 알리샤의 목소리가 그들을 구원하듯 들어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우파나히와 니아, 니아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샤크티가 차례대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우파나히는 마차리가 먹고 있던 과자가 담긴 그릇을 뺏어 알리샤의 앞에 놓아줬고 알리샤는 차가 없다면서 툴툴 거리면서도 잘만 먹었다.


“잘 풀리진 않는군.”

“줘 봐요. 종이랑 펜도 좀 주고요.”


알리샤가 원하는 대로 해주니 사건보고서를 한 번씩만 읽고 돌려줬다. 그리고 종이에 뭔가 한가득 적더니 그녀만의 결론을 내놓았다.


“여기 귀족가문이 몇 개나 있어요?”

“내가 여기에 임관하기 전부터 도시 관리와 수비군을 담당하는 록셀 가문과 상업과 재정을 관리하는 라그나란 가문, 건축과 도시 정비 계획을 담당하는 타토 가문, 농지의 대부분을 관리하는 엔도릭 가문. 이 네 개의 가문이 관리자 가문으로써 있었네.”

“원래 라그나란 가문과 누루 가문은 수도에서 정치적인 세력을 가진 가문이에요. 문제는 고귀한 시대의 반란에 자금 지원을 한 게 라그나란 가문이었고. 타토 가문은 수도의 지하수로와 비밀통로 따위의 지도를 그들에게 반출했어요. 알고 있었나요?”


팔라둔이 알고 있는 내용은 반란을 모의한 자들이 실패했고 사형당하거나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 정도까지였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정보의 출처를 물었다간 금방 토라져선 이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단 느낌이 팔라둔의 머릿속에 번뜩였다.


“샬엔 전하께서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다른 도시로 쫓겨났어요. 몇몇의 가문들은 그 세력이 지방의 도시에도 있었기에 그쪽으로 빠졌고요. 여기가 그런 곳인가 보네요.”

“확실히 다른 가문들에 비해 그 힘이 약하긴 했어······록셀의 수장도 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고.”


하지만 팔라둔은 그녀와는 생각이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위협이 되질 않아. 말이 관리자 가문이지 록셀의 힘에 눌려서 그냥 그들이 시키는 일을 처리하고 그걸 보고만 하는 지경이니까. 몇 번 감사에 들어가기도 했었지만 크게 흠잡을 건 없었고. 전임 필리오림도 그들을 경계 했었지만 결국은 그 뿌리가 뽑혀버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란 판단을 내리셨어.”

“전임 필리오림은 누구였죠?”

“말할 수 없네.”

“네, 네 그러시겠죠······”


보고서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종이의 여백에 무어라 잔뜩 적기 시작했다. 팔라둔이나 마차리는 읽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문자였다.


“라그나란이나 타토 가문과 혈연관계인 가문이 있나요?”

“그라시아 록셀의 어머니가 라그나란 가문의 사람이긴 한데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다.”


마나폴로가 우연히 만났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팔라둔의 심부름을 하며 맛도 없는 술을 대접받은 것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알리샤는 그것 또한 정보로 여기며 그녀와 마나폴로가 나눴던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처형당한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살갗을 하나하나 도려내는 고문과도 같은 처형 방식에 대한 불평을 하며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버지와 오빠가 그렇게 죽었으니 조용해질 만도 하죠. 그전엔 꽤 오만한 성격이었어요.”

“본적 있나?”

“예전에요. 명예와 권력에 취해 있던 사람이었죠.”


어린 그라시아도 함께 했었던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았다.


“조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 부분.”


정체불명의 인물에 의해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과 투란스카 유물 강탈사건을 짚으며 이 두 사건을 이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는 필리오림과 그 동행자들이었어요. 이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이유로 보고서엔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이쯤 되니 정보의 출처에 대해 안 물어볼 순 없었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는 건지 궁금하군.”

“나한테도 의뢰가 들어왔었거든요.”

“나 참······”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는 알리샤의 태도에 마나폴로는 반쯤 비어 있던 요리용 술을 크게 들이켰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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