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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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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19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09 09:58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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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14

DUMMY

랑케는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갑작스럽게 나온 살인 사건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추리하는 것도 이상했다.

대부분의 일엔 각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에 배정된 자신과 그녀의 역할은 없다. 이상한 사람. 용병들은 다 그런 것일까 고민하며 그라시아의 저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화가 근처에 자리한 록셀 가문의 저택은 크고 웅장하며, 아름다웠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단순한 부자들의 저택과 다를 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위엄, 관리자 가문을 상징하는 커다란 녹색 휘장이 저택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이는 가문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론 걷어서 세탁을 할 땐 큰일이지만 록셀 가문 사람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진 않고 직접 해본적도 없으니 알려고 할 때까진 알 수 없을 일이었다.


무장을 한 병사가 지키는 문을 통과 해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사가 영혼을 쏟아가며 나무 하나를 변화시키고 있었고 그걸 묘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이 지긋한 하녀가 랑케를 알아보곤 말을 걸었다.


“응? 오늘은 일찍 왔네? 항상 밤늦게 오더니.”

“그냥 좀 기분이 이상해서요.”


기운 없는 얼굴.

나이 지긋한 하녀 탈라는 랑케의 표정을 읽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티가 혼자 세탁하고 있으니까 좀 돕겠니? 저녁 먹고 나선 쉬어도 좋단다.”

“네, 알겠습니다!”


종종 놀러 다닌다는 오해를 사곤 하는 랑케에게 탈라가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몸 상태를 잘 조절하는 것도 주인님들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하렴.”

“네······”


집 뒤쪽의 세탁장으로 가니 랑케와 동갑내기엔 나티가 이불 빨래를 하고 있었다. 밝은 성격이라 랑케와도 잘 어울리지만 일의 실수가 많아서 손님접대 같은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밝게 인사를 나누고 큰 물통에 든 이불을 같이 밟았다.


깔깔 웃어가며 빨래를 끝내고 난 뒤 집안 청소로 넘어갔다. 먼저 청소하고 있던 세 사람은 랑케나 나티보다 나이도 많은데다가 경험이 많고 손놀림이 빠른 사람들이라 거의 대부분의 청소를 끝낸 상황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들이 깔깔대며 놀고 있던 사이에 일을 거의 다 끝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나티가 억지를 부려 그들을 쉬게 한 뒤 랑케와 남은 부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뭘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는 거냐.”


랑케가 창가에 묻은 작은 먼지들을 닦던 차에 저택에 여러 가지를 납품하고 있는 장사꾼 토트가 창문 밖에서 말을 걸어왔다. 항상 거칠고 버릇없는 말만 하는 입으로 담배를 씹는 것을 멈추지 않는데다가 잘 씻지도 않아 눌린 머리를 모자로 숨기고 다니는 지저분한 사람이라 랑케의 개인적인 판단으론 좋아하진 않았지만 가끔 사탕 같은 것을 던져주곤 하니 말을 거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참고 넘어가야 했다.


“일은 다 하셨나요?”

“밀가루 다섯 포대에 설탕 두 포대쯤이야 간단하지.”


어릴 적부터 시작한 고된 일로 단련된 근육은 옷 위로도 크고 단단해보였다.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소매를 살짝 걷어 울퉁불퉁한 팔뚝을 보여줬지만 랑케의 눈엔 그저 지저분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런 건 애인한테나 보여주세요.”“얼마 전에 차여서 없어. 근육은 옷 아래에 더 많은데 보려고 하면 저녁 식사 뒤에 보여줄 수도 있고.”


까맣게 탄 얼굴이 음흉하게 웃는다. 랑케는 여자관계가 문란한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전 일이 많아서 그만.”

“야! 이! 젠장!”


랑케가 창가에서 사라지자 잘 정리된 화단에 씹는담배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걸 보고 있던 탈라가 조용히 그의 뒤로 다가와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저택에 있는 애들한텐 관심가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보다시피 잘 되진 않으니 걱정 마십쇼.”

“말버릇은 항상 고약하구나.”


담배 한 덩이를 입에 넣고 질겅거렸다.


“뭐, 이쪽일이 다 그런 걸, 거칠고 멋진 남자만 살아남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십쇼.”

“당신의 아버님께서는 신사적이셨는데······일거리를 잃고 싶지 않으면 입 조심하는 게 좋단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협박한다. 모든 곳에 경험 많은 자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쳇, 알겠습니다. 마님. 더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십······말씀하세요······”

“내일은 비료 세 포대와 두나텔란 차 두 상자면 되겠네. 지난주에 주문했던 포도주는 어떻게 됐니?”

“두나······그거 재고가 한 상자 밖에 없을 텐데 일단 먼저 드리고 더 구해보겠습니다. 포르폰 포도주는 아마 다음 주 중으로 들어올 것 같긴 한데 수확 전이라서 가격도 좀 비쌀 겁니다.”


성질이 거칠고 여자관계는 문란하지만 대부분의 물품을 취급하는데다가 모든 거래 내역과 창고 물품의 현황을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다. 그게 그가 록셀 가문과 거래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가격은 상관없단다. 내일 비료와 차는 점심식사 전에 배달해줬으면 좋겠는데.”

“예~그럽죠. 저 말고 다른 녀석으로 보낼 테니 여자애들한테 찝쩍거릴 일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네, 지금 같이 지내는 애들이 딸 같이 귀엽긴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내보내야하거든.”


토트도 탈라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저택을 떠났다. 저택에서 나오고 난 뒤 모자를 살짝 벗어 떡진 머리카락 사이로 공기를 통하게 한 후 다시 모자를 썼다.


다음 날. 그가 모자와 함께 죽은 채 발견되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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