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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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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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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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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8

DUMMY

필리오림의 주된 역할은 법의 집행이다. 필리오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법과 규율에 능통해야하고 강철 같은 신념과 난관에 굴하지 않는 정신, 정의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필리오림의 기원은 고대에 시행되었던 움직이는 법관이라는 체제를 개량한 것으로 얼굴이 알려져선 안 되기에 항상 얼굴을 숨기고 다니며 이름 또한 몇 년을 주기로 바꾼다.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도 키울 수 없다. 오로지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법을 집행하며 일반적인 경찰이나 법관들이 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맡아 처리한다. 숙련된 필리오림들은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며 일종의 상징으로써 남게 된다.

그렇기에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법의 수호자이자 저스라는 국가를 지탱하는 한 축이기에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필리오림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팔라둔 역시 느끼고 있었다.


“난 지난 몇 년 동안 시난들이 개입된 사건들을 몇 번이고 해결했소. 그 공을 인정받아 이 도시에 상주하는 필리오림이 되었고.”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오.”

“적절한 보상만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긋나긋하게 조건을 제시한 늙은 여행자는 지팡이처럼 보이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칼에 맞은 화살 한 대가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반대쪽 손이 날린 단검이 골목에 숨어 있던 암살자를 쓰러트렸고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동안 팔라둔은 늙은 샤엘라의 기술에 감탄했다.


“당신 이름이 꽤 알려졌겠군.”

“보잘 것 없는 여행자입니다.”

“하하! 당신 이름이 보잘 것 없으면 내 이름은 지나가는 개만도 못하겠군!”


마나폴로가 크게 웃으며 시체가 된 암살자를 잠자는 강아지 들 듯 간단히 들고 와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암살에 사용된 것은 소매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쇠뇌였지만 손으로는 현을 잡아당기기 힘들 정도로 장력이 강했다. 창잡이 동생이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확인하며 화살촉을 한번 핥았다.


“퉤, 안식초 독이네. 맞았으면 즉사했을 겁니다. 북부에서 자라는 식물인데다가 여긴 안식초 독을 취급하는 곳이 없으니 범인은 돈 있는 외부인일 수도 있겠네요.”


창잡이 형이 마나폴로에게서 받은 쇠뇌의 상태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이건 꽤 실력 좋은 장인이 만든 것 같은데······이정도 장력이면 일반적인 갑옷은 간단하게 뚫을 수도 있는데 겨우 이정도 크기라니 말이 안 되는 군. 필리오림! 무기 보관소에 연락해서 반출된 게 있는지 확인하시고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수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팔라둔은 가면 아래에서 미소 지으며 흡족해했다.


“다들 능력이 높아서 다행이군. 마차리는 어디 있지?”


조금이라도 투덜대서 자극을 주려는 팔라둔의 생각을 읽은 마나폴로가 큰 웃음을 띠며 손가락 하나를 펼쳐 지붕 위를 가리켰다.

지붕 위엔 다른 암살자를 참살하고 피투성이가 된 마차리가 암살자의 몸을 수색하고 있었다.


“이거 그냥 세뇌된 거 같은데요! 가슴에 술법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차리가 죽은 암살자의 몸에서 발견한 것을 알리자 마나폴로도 시체의 옷을 풀어헤쳐 술법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적들이 경솔해서 다행이군요.”


늙은 여행자는 적들의 수준을 예상한 뒤 코웃음을 쳤고 쌍둥이 창잡이들도 낙관적인 농담으로 투닥거리는 동안 마나폴로는 시체를 병사들에게 인계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들의 눈은 바쁘게 돌아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소득 없는 수색과 실전부족으로 인해 약간 풀어져 있던 병사들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시민들은 여전히 안심하는 자들과 불안해하는 자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좋은 징조인가?”

“멍청하거나 중심인물이 없어 체계가 잡히지 않았을 겁니다. 경솔한 자들이 많을 수도 있고요. 그것도 아니면 계획적인 행동이겠지요.”

“계획적이라면 무섭겠군.”

“이 나라에서 필리오림을 죽이는 것만큼 확실한 선전포고는 없으니까요.”

“당신들이 있으면 안심이겠지.”

“최후에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늙은 여행자는 시체에 박혀 있던 단검을 뽑아 시체의 옷에 피를 닦았다. 시체를 짊어지고 지붕 위에서 내려온 마차리가 피투성이인 것에 비해 깔끔한 마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일하는 건 내일부터 인데······”

“의뢰주가 죽으면 다 끝 아닌가. 그냥 오늘부터 하세.”


늙은 여행자가 지쳤다는 듯 기침을 두어 번 토해내곤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런 호위에선 옷을 깔끔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걸세.”

“좀 여러모로 귀찮네요. 투덜댄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지만요~”

떨떠름한 미소가 마차리의 얼굴에 피었고 다른 샤엘라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팔라둔은 어디가 웃어야할 부분인지 이해하지 못했기에 잠자코 있었다.

늙은 여행자의 조언을 들은 팔라둔은 그 수색이 끝나자마자 병력들을 단순한 순찰임무에 투입시켰고 자신은 필리오림 관사로 들어가 샤엘라 여행자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엄청 얇은 무기를 다루는 것 같아요. 제 칼도 꽤 날카로운데 그런 식으로 자르진 못하거든요.”


마차리는 자신의 기술과 무기의 품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태도였고 다른 시체들의 상처 단면을 봤던 이들도 그의 의견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얇은 데 부러지거나 날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는 건가.”

“그렇겠죠.”

“적은 소수의 실력자들이라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는가?”

“대규모 병력은 아닐 겁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 당신의 목숨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늙은 여행자의 의견엔 대부분 수긍하는 눈치였다.


“적들 중에 술사가 있는 건 좀 짜증나는 일인데. 장비도 좋았고.”

“단순하게 세뇌 술법밖엔 쓰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공격용 술법이라도 섞어 쓰면 위험해.”

“우리 중에 술법을 쓸 수 있는 자들이 몇 명이나 되지?”


쌍둥이 창잡이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늙은 여행자는 박수를 쳐 웅성거리는 회의장을 진정시킨 다음 술법을 쓸 수 있는 자들을 확인했다.

스물 두 명의 여행자 중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그 중엔 마나폴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까지 여섯이군. 그럼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조를 짜겠네. 불평하지 말게.”

“조를 짜는 건 좋은데 우린 당신 이름을 알고 싶은데! 실력도 없는 늙은이가 설치는 걸 몇 번 봐서 말야!”


도시에 들어오기 전부터 조를 짜서 활동하던 여행자들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수는 일곱 명, 전통에는 따르고 있었지만. 생존한 자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이름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네.”

“그럼 우린 우리끼리 조를 짜겠어!”


젊은 혈기로 맞서는 아이들에게 웃음으로 답해주었지만 팔라둔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마음대로 하지 마라!”

“필리오림, 성과만 내면 되는 거잖소!”

“규율과 정의가 없는 칼에 의미는 없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는 쓰지 마쇼!”


언쟁을 벌이는 동안 늙은 여행자가 그 일곱 아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름을 높이고 싶나?”

“뭐요?!”

“그럼 생존하게.”


단검이 춤췄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공중으로, 공중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더 아래로. 한 자루에서 시작해 다섯 자루까지 늘어난 단검은 아직 어린 여행자를 완전히 농락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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