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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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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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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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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3화 : 상어(Agent Shark) (6-3)

DUMMY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소? 전략 자산에 가까운 그릇을 잠재적 경쟁상대에게 넘기겠다는 뜻 아니오?}

{넘기겠다는 건 아닙니다. 미유키는, 죽음으로 위장하고 「망명」을 신청할 겁니다.}

{뭣...!}


한강진 국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회의실 내부의 분위기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커뮤니티 간 볼리셔니스트의 이동을 얘기하는 거 맞소?}

{맞습니다. 일반적인 망명을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


볼리셔니스트의 「망명」이란, 범죄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볼리셔니스트가 원래 소속된 커뮤니티를 떠나 다른 커뮤니티로 그 적(籍)을 영구히 옮기는 것을 의미했다.


원칙적으로 볼리셔니스트가 커뮤니티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도적인 이유(인종, 정치, 민족, 신분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망명을 신청할 수 있으며, 또 그 이유가 합당하다면 신청을 받은 커뮤니티는 망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망명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적인 망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없다는 데에 있었다. 한 마디로 사문화된 규칙이었다.


한강진 국장이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망명이 성립될 거 같지는 않소. 인도적인 이유가 없잖소.}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이오?}

{소속된 기관의 장입니다. 그것도 유일한 혈육인 언니에게서 말이죠.}


두 사람 사이에 찰나의 눈빛이 오갔다. 한강진 국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프더레코드로 처리할 대화만 가득하군요. 그러니까, 당신이 소류... 아니, 미유키를 망명시키기 위해 악역을 맡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명분도 간단합니다. 활용도가 없어진 ‘그릇’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기밀 그 자체를 말소한다?}

{네. 흔히 있는 일이죠.}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을 텐데.}

{그런 만큼 더 빨리 파기해야 됩니다. 승리를 가져다주지도 못했고, 팀이 붕괴 되서 쓸모도 없는 기밀자료 덩어리는 그저 짐일 뿐이죠. 상부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만약 우리가 망명을 받으면, 단물만 빼먹고 버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소?}

{그때는 저도 망명 사실을 사방에 알리면 될 일입니다. 인도적 이유로 받은 망명자를 내팽개치는 조직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는 오명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만.}


흔들림 없는 그녀의 말에, 한강진 국장이 웃었다. 확실히 9국이 그렇게 할 여유가 있는 조직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셈법은 복잡해졌다.


조직에서 버려져 죽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기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시도하는 망명은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특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그저 조직의 판단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사실 지금껏 볼리셔니스트 망명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커뮤니티가 구성원을 찍어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볼리셔니스트라는 공감대와 거기에서 오는 구성원 사이의 동질감은 그만큼 강력했다. 인종, 정치, 민족,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은 볼리셔니스트들 사이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산하의 볼리셔니스트 조직에서 동질감이라는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목적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조직에 해가 되는 존재는 충분히 치울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이 케이스였다. 전례가 없다뿐이지 명분 자체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문제였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후폭풍은 이쪽에서 뒤집어 쓸 가능성이 컸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왔나본데...’


한강진 국장은 허를 찔렸다고 생각했다. 실무적인 얘기를 할 거라고 생각한 자리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한강진 국장은 아까 보다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소. 일주일 전만 해도 칼을 맞대고 싸운 상대에게, 망명을 요청하는 이유를 알고 싶소. 망명지를 찾는다면 SOSS도 있을 텐데 말이오.}

{......}


한강진 국장의 물음에 미사키가 침을 삼켰다. 약간 대답을 주저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다 그녀가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했다.


{... 봤어요.}

{??}

{정은정 과장이라고 하셨나요?}

{네? 네, 맞습니다.}


갑작스레 대화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왔다. 정은정 과장이 놀라며 대답하자, 미사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절 보고 옆의 동료와 얘기하는 걸 봤어요.}


이건 뭔 소리야. 정은정 과장의 의아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키의 말은 여전히 낮고 차분하게 이어졌다.


{분명 미유키와 닮은 제 얼굴에 놀란 것이었겠죠.}

{그렇습니다만...}

{그때 얼굴을 봤어요. 다양한 표정이 있었죠. 놀란 것도 분명했지만, 그 뒤로는 훨씬 더 많은 감정이 느껴졌어요.}


한숨에 섞여 나온 말에는, 회한마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고 있었다.


{전... 볼리셔니스트로써 살아온 20년 동안, 그런 표정은 처음 봤어요.}


미사키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가 쓰게 웃고 말았다. 확실히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주 조금 맡은 사람냄새에 망명지를 정했다는 말은,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은정 과장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D가 죽었다는 말에 대한 반응. 누가 봐도 혈연임이 분명한 소류와의 관계. 악역을 맡으면서까지 그녀를 보내고자 하는 마음, 돌아가면 있을 곳이 없다는 말까지.


{글쎄요. 믿고 싶기에 그렇게 봤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미사키의 말은 자조적인 투레질로 끝났다. 묘한 숙연함이 회의실 안에 흘렀다. 하지만 한강진 국장은 여전히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소. 그러나 본인 의사가 다르다면 어떻게 할 거요? 그러면 단순히 전후처리 문제로 끝날 게 아니오. 의사에 반한다면 일종의 인신거래가 되어 버릴 테니까.}


배상금과 그릇을 받고 패전 처리를 ‘파는’ 모양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만큼 제일 중요한 건 미유키의 실제 망명 의사였다. 하지만 미사키는 한강진 국장 못지않게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이번 작전 전, 저와 약속했으니까요.}

{약속?!!}

{네. 그녀가 말하더군요. 만약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망명을 고려한다고요. 그리고 망명지는 저에게 판단해 달라고 했습니다.}

{!!!}


바로 들통 날 거짓말을 할 거 같지는 않았다. 당장 1층으로 가서 작전 전 미사키와 어떤 약속을 했는지 확인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뜻도 되었다. 더구나 망명지를 미리 정하지 않은 것은 예지망을 피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한강진 국장은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며 긴장감에 아랫입술을 적셨다.


하지만 대화는 점점 협상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망명을 신청하고 그걸 고민하는 자리에 가깝게 변하고 있었다. 한강진 국장은 거칠게 머리를 흔들며, 옆의 정은정 과장을 불렀다.


“정 과장.”

“네. 팀장님.”

“우리도 회의 좀 하지.”

“알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한강진 국장이 정은정 과장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와서 회의실 문을 닫자마자,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복도를 지나 중앙현관 반대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한강진 국장이 거칠게 의자에 앉았다.


“이거 골치 아파졌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문을 닫고 들어온 정은정 과장이 물었다. 한강진 국장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거절할 명분이 많지 않군.”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하지만 정말로 목숨을 위협당하는 수준일까요? 망명이 필요할 정도로?”

“일단 조직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어. 아마 치부가 있으니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것 같은데... 내가 정리한 바로는 이러하네.”


한강진 국장이 엉덩이를 등받이에 바싹 붙였다. 그는 생각이 많은 걸 넘어,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이럴 때 그는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곤 했다. 하지만 이건 정은정 과장 밖에 모르는 모습이었다.


“D, 그러니까 야마다가 실질적인 장(長)으로, 분명 조직의 자원 대부분을 끌어다 썼을 거야. 실력 좋은 볼리셔니스트에 그릇까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의도대로 이 자원 대부분을 대(對) 한국 작전에 활용해왔고.”


정은정 과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무리 지원을 빵빵하게 받는다고 해도, 국가에서 다수 발행한 위조신분과 그릇 하나만을 위한 초대규모 법칙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거기에 볼리셔니스트가 6명, 그릇까지 하면 7명의 대규모 편성이었다. 이는 2개조 편성이 아닌 한 개 팀이라고 하기에는 비대할 정도였다.


“분명 자기 팀 내에서는 대선배이자 리더로 존경받았겠지. F의 반응을 생각하면 말이야. 그러나 팀 밖에서 보면 그저 조직을 맘대로 좌지우지하는 독재자일 뿐, 결코 좋은 소리는 없었을 거라고 보네.”


F가 격한 반응을 했다는 건 정은정 과장 본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확실히 병실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미유키를 팀으로 활용한 건 그릇인 이유도 있겠지만, 혈육을 쥐고 미사키를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인질이 아니었나 싶어. 미사키 역시 그런 상황에서 제약을 가하기는 힘들었을 거고. 결국 폭주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진실이지 않을까...”


결과에 짜 맞춘 생각 같았지만, 전투 전이나 전투 후에 미유키가 보여준 표정은 침울 그 자체였다. 그럭저럭 생기를 유지했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살아남은 것이 전혀 기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정은정 과장은 풀죽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야마다 스스로가 조직의 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경력도 많고 실력도 좋고, 후배까지 따른다면 금상첨화 아닙니까?”

“아마 현장 활동을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책임은 지기 싫고 칼은 휘두르고 싶고. 전형적인 자기 중심형 인간이었던 거지.”

“음...”

“그런데 그 야마다의 팀이 패배함과 동시에 붕괴했고, 생존자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온 거야. 눈엣가시였던 호랑이가 죽고 그 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여우만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거지.”

“돌아가서 살아남기 쉽지 않겠군요.”

“맞아. 물론 볼리셔니스트들이야 실력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미사키의 말 대로 그릇이지.”


정은정 과장이 전투 당시를 회상했다. 운 좋게 선제공격은 큰 피해를 받지 않았지만, 이후 미사키가 보여준 전투실력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확실히 마법사로서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지. 볼리셔니스트로써의 효용이 없다면 그릇으로써의 효용은 있어야겠지. 하지만 이번 작전에서 그릇의 필요성은 보여주지도 못한 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돌아왔어. 그렇다고 다시 그릇으로써 활동하려면 의지의 합치(合致)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 언제가 될 지도 모르고 가능 여부도 불투명해.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기밀을 쥐고 있고.”


미사키의 말 대로 미유키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아닌 목적이 뚜렷한 조직에서, 역할이 없다는 건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퇴출이었다.


“참, 한 가지 더. 이건 내 생각이지만... 보스의 동생이 전투에서 패하고 살아서 돌아왔지. 이것도 큰 문제일 걸세. 결국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면, 남는 건 지옥밖에 없을 거야.”

“어떤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박하게 대할까요? 목숨을 빼앗아가면서까지 그러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만...”


정은정 과장이 갸웃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여기에 한강진 국장이 무거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죽는 것과 지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죽는 걸 선택하는 민족이야. 아니, 죽기를 선택하게 만드는 민족이지. 목숨과 비행기만 가지고 적의 배에 뛰어들던 놈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코드명도 야마다가 붙였겠지만, 전부 2차 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고. 그렇게 본다면 아마 조직 분위기 자체도 군대랑 비슷할 걸세."

“아...”

“아마 저들도 볼리셔니스트가 아니었다면 다들 일찌감치 배를 갈랐을 지도 몰라.”


정은정 과장이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진 국장은 피곤한 듯 양손으로 눈을 꾹꾹 눌렀다. 이제는 망명의 수용 여부를 고민해야할 차례였다.


“망명 요청, 수용해야 할까?”

“... 어렵습니다. 저희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걸까요?”

“윗선에서 거부할 이유는 없을 거야. 그렇기에 우리만 더 힘들지...”


눈을 누르던 손이 관자놀이로 옮겨갔다.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플 때, 한강진 국장이 곧잘 하는 행동이었다. 역시나 다른 국(局)원들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 행동이기도 했다.


잠시 뒤, 한강진 국장이 관자놀이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물론 수용하는 게 낫다고는 생각하는데... 이 일은 공식적으로 발표 하지는 못할 거야.”

“음...”

“아까 미사키가 죽음으로 위장해서 망명시킨다고 했지? 그녀는 비밀리에 이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한다고 봐야지.”

“어느 정도까지 비밀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이편이 우리에게는 좋네.”

“네?”

“망명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야. 따라서 협상은 협상대로 따로 할 수 있다는 거지.”

“아...”

“일단 돌아가세.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알겠습니다.”


회의실로 돌아간 한강진 국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 분위기는 나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한강진 국장이 말을 시작했다.


{오늘 말씀하신 건 저희도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해서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만...}

{좋습니다.}

{다음 회의는 언제 할까요.}

{내일이라도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두 시에 다시 보죠.}


이렇게 1차 협상은 큰 합의 없이 끝났다. 망명 요청 등 흐름이 완전히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면서, 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일 협상의 준비가 남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했다. 바로 미유키의 망명 의사였다. 미사키가 떠난 직후, 한강진 국장이 망명 의사 확인을 위해 그녀를 불러 올렸다. 윤민서 대리의 호송 하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온 그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 안에는 한강진 국장과 에이단, 염하린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까 미사키의 자리에 미유키가 앉았다. 그렇게 에이단의 입회한 상태로, 두 대의 테이프 레코더가 차례차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회의실 안에 낮게 깔렸다. 한강진 국장이 여전히 침울한 표정의 미유키를 향해 말했다.


{이번 작전 시작 전, 카츠노 미사키와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


흠칫 하는 표정과 함께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타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할 거라고 했습니다.}

{...!!}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이 끝났다. 하지만 한강진 국장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망명할 의사가 있습니까?}


짧은 대답이 나왔다.


{네. 그렇습니다.}


한강진 국장이 버튼을 눌러 테이프 레코더를 멈췄다. 그리고 두 대 다 녹음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했다.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그는 한 개의 테이프를 뺀 후, 「87.12.3 카츠노 미유키 망명 의사 확인 2/2」이라는 내용을 영어로 레이블에 썼다.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제목을 다 쓴 한강진 국장이 테이프를 에이단에게 넘겼다. 에이단은 가방 안쪽 깊숙히 테이프를 넣었다. 곧바로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돌려 윤민서 대리에게 말했다.


“좋아. 윤 대리. 데리고 나가게.”

“네. 팀장님.”


윤민서 대리의 인도로 미유키와 염하린이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이내 문 움직이는 소리가 멈추면서 상황이 끝났다.


“휴.”


한강진 국장이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머리는 매우 피곤했다. 의사까지 확인한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때 가방을 다 챙긴 에이단이 한강진 국장에게 물었다.


“받아들이실 건가요?”

“그래야 되지 않겠나.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받지 않으면 SOSS에서 받겠지?”

“물론 그럴 겁니다.”


에이단이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한강진 국장도 피곤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 협상 끝날 때 까지는 비밀유지 부탁하겠네. 망명 얘기가 퍼지면 꽤 곤란해질 거 같군.”

“물론입니다.”

“그래. 오늘 고맙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에이단이 나가 혼자가 된 한강진 국장이 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건은 갖춰졌으니 이제 결정권을 받을 차례였다. 다행히 오늘 오후 차장과 부장에게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지금 빨리 예장동으로 가서 보고하면 될 터였다.


한강진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 * * *


다음날, 1987년 12월 4일 금요일 14시 8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2층 회의실.


작가의말

재미없는 파트가 계속되네요. 죄송합니다.ㅜㅜ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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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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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1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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