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연재수 :
257 회
조회수 :
18,708
추천수 :
141
글자수 :
1,454,850

작성
20.04.12 20:01
조회
54
추천
0
글자
11쪽

4화 : 그릇(Vessel) (5-1)

DUMMY

* * * *


이틀 후, 1987년 12월 23일 수요일 11시 39분.

서울 시내, OO대학교 교수연구동.


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교수연구동 건물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청바지에 안경, 풍성한 곱슬머리를 한 청년은 팔에 두꺼운 책 몇 권인가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는 낑낑거리며 입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로비에 있던 몇몇의 학생들이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박준민!”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학생을 향해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다. 박준민은 흘러내리는 책을 고쳐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시 뒤 종소리가 들리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은색 금속 상자 안에서 그는 책을 엘리베이터 손잡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잠시 팔을 쉰 그는, 거의 끝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가 되자 다시 책을 안아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긴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준민은 허리를 뒤로 굽히고 책을 배로 받친 후,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복도 끝에 도착했다. 숨을 한 번 내쉰 박준민은 왼 팔로 책을 들고 오른팔로 문을 열었다.


“교수님-!”

“고생했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7~8명의 사람들과 ‘교수’라고 불린 남자가 한쪽 끝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이, 강(江)의 수장부(首長部)였다.


한국 재야 볼리셔니스트 커뮤니티 연합체인 강(江)의 머리가 되는 부분. 김지수를 필두로 한 몇 명의 사람들이 속한 이곳은 연합체를 관리, 지원하기 위한 기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관리 기능은 커뮤니티에 대한 간섭을 억제한다는 명분하에 형식만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기능은 지원에 맞춰져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지원은 쇠말뚝 제거 등 ‘커뮤니티 본질적 기능의 회복’이었다.


특히 여전히 강역에 꽂혀 있는 쇠말뚝의 제거와, 파괴되고 분실된 「열쇠」의 회수 및 보존은 수장부의 가장 큰 일 중 하나였다.


또한 각 커뮤니티 사이를 중재하고 의사소통 창구 등으로도 기능하는, 지금은 명실상부한 대표 기관으로 성장하여 있었다.


최근에는 9국의 판단처럼 「그릇」의 탐색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는 고공 측정기에서 훔쳐온(!)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지수의 판단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릇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져올 커뮤니티의 혼란을 우려, 비밀로 한 채 수장인 김지수가 직접 진행하는 중이었다.


“휴-”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박준민이 이마를 쓸었다. 책은 대부분 고고학 관련 서적이었다. 이렇듯 수장부는 인류학과 내에 고고학을 다루는 부분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또한 수장부는 커뮤니티 도움 없이 지수가 단독으로 대학의 지원을 끌어내 운영하고 있었는데, ‘커뮤니티를 지원하되 간섭받지 않는’ 이라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전화도 필요하면 수장부에서 하는 식으로만 연락을 유지했다. 커뮤니티는 수장부 전화번호를 알 수 없었다. 때때로 날아오는 우편 정도로 서울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들은 이러한 수장부의 비밀스러운 운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며칠 전 협의체 회의 당시 부산지역 커뮤니티인 절해(絶海)의 「박철수」가 그렇게 화를 낸 이유도, 이러한 수장부의 비밀주의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가 있긴 했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들이, 지수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협의체 구성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도장 깨기까지 불사한 지수의 행태는 강(江) 설립 당시 엄청난 발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사와 마법사의 힘을 동시에 가진 그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당시 내로라하던 강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워낙 현실성 없는 소문이라 실존하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퍼질 정도였다.


반면에 승부가 이루어지면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단 하나, 향후 협의체 구성 시 참여한다는 약속만 받고 아무런 간섭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서 도장을 깨버린 후 협의체 구성을 약속받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잘생긴 외모의 젊은 볼리셔니스트는, 전국을 재패했고 하나의 대표기관을 만들었다.


1987년은 강(江)이 출범한지 만 5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비밀스러운 운영에 불만이 있긴 했다. 하지만 큰 간섭 없이 커뮤니티의 근본을 위한 지원을 계속하는 모습에, 여론도 차차 돌아서고 있었다.


‘교수’라고 불린 사람은 60대 초로(初老)의 노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자잘하게 늘어선 얼굴 주름은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이조차도 멋있게 보일만큼, 잘생김을 간직한 얼굴이기도 했다.


그는 책상 위에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차르륵 소리가 여러 번 들리며 어딘가로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교수입니다.”

[네. 교수님. 반채림입니다.]

“엊그제 말씀하신 건의 진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보려 연락드렸습니다.”

[... 컨택은 되었어요. 하지만 성사 여부는 미정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쯤 다시 연락드리면 될까요?”

[네. 아마 오늘 중으로는 회신이 올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지수는 교수연구동 옥상 계단실 위에 누워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두꺼운 옷과, 불지 않는 바람에 내려쬐는 볕은 꽤 따뜻함을 선사했다. 누워서 구름을 바라보았다. 여름과는 달리 살찌지 않은 구름은 빠르게 끝을 흘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는 결정 나겠군...’


그는 지금 꽤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바로 9국과의 연합이었다.


「상어」에게 예지망을 통한 압박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지를 한다고 해도 그걸 노릴 화력이 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몇몇만이 상어를 상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각 공동체 별로 사냥꾼 준비를 부탁하긴 했지만, 아마 의미 있는 인원은 모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때 떠오른 것이 9국이었다. 야마다 어쩌고 하던 놈을 ‘제재’한 후였다. 새벽이 되자 그의 말처럼 일본 측 의기력자와 9국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멀리서 바라본 전투 진행은 충격에 가까웠다.


특히 그의 시선을 잡아끈 한 사람이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정은정 과장이었다. 대폭발이 일어났을 때는 직접 개입을 고려할 정도였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푸른 안개...’


마지막 일격에서 그녀가 보여준 푸른 안개를 떠올렸다. 심장부터 차고 넘치던 의지의 횃불이었다. 이는 의기력자로써는 한 꺼풀 벗어던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튼 전투는 인상적이었고 화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지금 국내 의기력자들 중 저 정도의 화력을 가진 집단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상어 1인만을 상대하는 거라면, 차고 넘칠 수준이었다.


지수의 생각은 이랬다. 이쪽이 예지망을 제공하고 화력을 9국이 맡는 것이었다. 밀도 있는 예지망은 제 아무리 안기부라고 해도 쉽게 구축하지 못했을 영역이었다. 9국이 자신의 행적을 알아낸 것이 금산사IC 방문 때임을 고려하면, 그들의 예지망은 그리 강력하지 못했다.


그리고 반채림이 자신의 예지가와 통화할 때 들었던 말도 떠올렸다. 「엿들음과 분노.」 엿들음은 그렇다 치고 분노는 주지할만한 단어였다.


물론 예지 세부 내용도 준다고 했으니 따로 설명이 달려 올 가능성이 많았지만, 분노란 단어는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의 나무, 유럽, 그리고 분노. 모두가 연결되었다고 보면 설명이 되었다.


분명 「상어」는 반채림을 닮은 누군가에게 분노가 있는 뜻이었다.


따라서 그 주인공인 정은정 과장을 끌어들인다면, 상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 상황에 따라서는 이 정보도 9국에 전할 필요는 있겠지.


생각을 마친 지수는 계단실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제 수장부로 돌아가, 다음 행동을 고민할 시간이었다.


지수가 수장부 문을 열고 들어간 건 5분쯤 지난 뒤였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장부의 사람들이 지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어요?”

“그래. 별 일 없지?”

“네.”


박준민의 인사에 지수가 그의 어깨에 몇 번 두드렸다. 공히 모두 의기력자로 구성된 수장부 구성원 중, 박준민은 유일한 보통사람이었다. 거기에 이곳 대학생도 아닌 옆 대학의 대학생이었다.


원래는 수장부의 문서수발, 자료정리 같은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측정기로부터 가져온 대량의 자료를 분석할 필요가 생겼는데, 마침 통계학과였던 박준민이 그 일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분석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자료분석관으로써 활동하고 있었다. 다만 최근에는 그릇의 위치 특정도 마무리되어 조금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자 친구는 계속 만나고 있어?”


지수의 말이었다. 박준민이 책을 읽다가 놀란 듯 대답했다.


“네, 네. 잘 만나고 있어요.”

“주말에만 보는 거지?”

“네. 부산 사람이라서...”

“좋을 때다... 하하.”


박준민은 지수의 말에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평상시에도 그다지 숫기 없는 남자였기에 이런 류의 대화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몇 개월 전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에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기뻤었다. 더구나 남들이 보기에도 미인에 직장까지 다니는 완벽한 여자 친구였다.


“관광 온 처자를 그렇게 꼬시다니... 생각 외로 능력 있는데?”

“아, 아닙니다.”


짓궂은 지수의 말처럼, 서울에 관광 왔다가 헤매는 것을 박준민이 도와준 게 계기였다. 여자 측의 요청으로 이틀 동안 가이드를 하고, 그 만남이 이어져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수요일이 반 쯤 지난 지금. 그는 금요일 밤에 내려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고 있었다.


‘다빈아...’


-5-


다음 날, 1987년 12월 24일 목요일 15시 57분.

서울 시내, 서울역 인근 모 호텔 앞.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Volition : 1988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0 5화 : 추적(Pursuit) (2-3) 20.05.10 49 0 10쪽
79 5화 : 추적(Pursuit) (2-2) 20.05.08 53 1 10쪽
78 5화 : 추적(Pursuit) (2-1) 20.05.04 55 0 12쪽
77 5화 : 추적(Pursuit) (1-4) 20.05.03 60 0 12쪽
76 5화 : 추적(Pursuit) (1-3) 20.05.02 61 0 11쪽
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2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3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5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1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0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6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4 1 11쪽
»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5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59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1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0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7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69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1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3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1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1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1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1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8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4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