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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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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6
추천수 :
141
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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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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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 그릇(Vessel) (3-3)

DUMMY

「사장실 안에 도청장치 있음. 10분 뒤에 찾을 것」


두 사람은 비서실 바깥쪽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반채림은 지수의 빈손을 보면서 말했다.


“수장께서도 칼 필요하신가요? 원하시면 준비해 드릴 수 있어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알겠어요. 일단 옥상으로 가시죠.”


그녀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계단실의 문을 열자 여전히 쏟아지는 비가 눈에 들어왔다. 반채림은 아무런 주저 없이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칼을 내려놓은 후, 입고 있던 정장 치마 양쪽을 찢어 슬릿(slit)을 냈다. 쫘악 소리가 나면서 치마가 펄럭거렸다.


반채림은 발을 앞뒤로 한 번 움직여 가동범위를 확인했다. 원활한 움직임을 확인한 그녀는 손목에서 고무줄을 빼 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긴 머리가 순식간에 동그랗게 말려 올라갔다.


지수는 마치 계획된 것 같이 거침없는 반채림의 행동에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잘 말렸는지 두어 번 흔들어보더니, 빗속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검은색 세단입니다. 도청 중이었을 테니 멀리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곧바로 칼날을 뽑고 표막을 펼쳤다. 솟구친 칼날과 빗물이 만나면서 작은 수증기가 연속적으로 올라왔다.


반채림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도약을 거쳐, 거림산업 옆 10층 높이 건물의 옥상 위로 올라갔다. 지수는 반채림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는 주변 건물 옥상을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움직이고 있었다.


“찾았다...!”


빗소리가 확실히 거칠긴 했다. 그러나 혼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검은색 차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방울이 만드는 배경음악 너머로, 다급함이 느껴지는 엔진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반채림은 10층 건물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차량의 이동 궤적을 따라 건물 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지수 역시 급해진 그녀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동시에 목표를 특정한 지수도 차량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나간 반채림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건물이 만드는 골목은 차량 두 대가 교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차량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고속 회전하는 엔진소리가 골목 벽에 반향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용할 정도였다.


“......”


입술을 굳게 다문 그녀가 차량 도주 경로 앞으로 나섰다. 건물을 넘나들며 차량과 평행하게 달리며 차량을 앞질러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앞서 나가자 궤도를 일변, 차량을 향해 뛰어 내렸다.


“이야-!”


폭탄이 터진 듯 했다. 뭔가 크게 폭발하는 소리에 주변 빗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확히 차량의 보닛 위에 착지한 반채림이 만들어낸 충격파 때문이었다. 보닛이 크게 찌그러지면서 방열판이 박살난 듯, 들끓는 수증기가 굴곡진 틈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


내려찍은 공격과 전진하던 관성 탓이었을까. 검은색 차량 뒷부분은 허공에 크게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허용범위를 넘어선 서스펜션이 마구 흔들리며 차량이 요동쳤다. 그렇게 중량물이 흔들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는 동안, 반채림은 칼을 휘둘러 양쪽 A필러를 사정없이 잘라냈다.


두 번의 칼부림에 앞유리와 지붕이 내려앉았다. 사탕조각 같은 유리알이 보석처럼 굴러가며 바닥과 허공에서 반짝거렸다. 마치 쇠 쟁반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이때 내려앉던 지붕이 세로로 쫙 쪼개졌다. 동시에 차량 안쪽에서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내려앉던 지붕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강렬한 폭발력을 느낀 반채림이 차량 보닛 위에서 뒤로 뛰어 내렸다. 뒤이어 지붕 아래쪽에서 감색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쇄도해왔다.


자세를 잡은 반채림이 날아드는 칼날을 침착히 쳐냈다. 파공음이 빗소리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의 큰 소리와 함께, 두 그림자 사이에 거리가 만들어졌다. 양복의 남자 - 브랜든 리 - 는 반채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이거... 젖은 스타킹에 옆트임이라요. 너무 과감하신 거 아닙니까?”

“고마워요. 그런데 머리가 생명이라더니, 모처럼의 잘생긴 얼굴도 아쉬운걸요.”

“괜찮죠... 원래 불행한 사람이니까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무서운 웃음을 날렸다. 비는 여전히 거칠었고 빗소리가 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칼날에 떨어진 빗방울이 작은 연기를 내면서 빠르게 증발했다. 투명한 표막 위로는 여러 개의 물줄기가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인 빗방울은 큰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하나 둘 떨어졌다.


건물의 숲과 그 이면의 일은 비가 만든 장막 속에 묻힌 상태였다. 나온 사람들도 없었고 차량도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핫!”


반채림이 급격히 거리를 좁혔다. 중년을 넘어선 나이였음에도 그녀의 칼솜씨는 여전했다. 거기에 딸에게 패해한 이후 나름 수련 시간을 늘렸던 그녀였다. 물론 완전히 전성기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계룡산 호랑이’라 불리었던 그 압박감만은 회복할 수 있었다.


칼날 하나 정도의 틈을 파고드는 공격이 이어졌다. 남자는 유려하면서도 정밀한 검술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페이스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한 반채림의 파상공세가 이어질 때였다. 사방으로 눈동자를 돌리며 칼을 쳐내던 남자가 연속공격 사이의 틈을 노렸다.


“!!”


방어와 공격이 일체화된 움직임이었다. 부딪힌 칼을 비틀어 내리며, 정확히 반채림의 손을 노리고 칼날을 미끄러트렸다.


“흥!”


미간을 좁힌 반채림이 아슬아슬하게 손목을 빼냈다. 동시에 튀어나온 그의 오른손목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팔을 꺾어 밀며, 남자를 좌측 벽을 향해 강하게 던졌다.


“으랴-!”


육중한 사람 몸이 마치 돌멩이처럼 날아가 벽과 충돌했다.


“!!”


벽돌로 된 벽이 무너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 빗소리 중간에 울려 퍼진 붕괴음은 마치 천둥소리와도 비슷했다. 쓰러지는 벽을 보던 반채림은 곧바로 왼손에 의지도달공간을 모아 법칙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물방울이 기관총같이 사출되기 시작했다. 부서져 쌓인 벽돌에 순두부처럼 구멍이 났다. 파먹은 치즈처럼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관통되는 소리는 으스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베기 위해 칼을 뒤로 젖힌 상태로, 수탄(水彈)을 발사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벽돌조각이 물방울처럼 튀어 올랐다. 송곳으로 정을 찍듯, 물먹은 가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칼의 간격까지 들어간 반채림이 칼을 크게 휘둘렀다. 칼날이 움직이며 만든 초음속의 충격파가 벽돌 무더기를 가볍게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때, 감색의 그림자는 하늘 위로 솟구쳤다.


“!!”

“이런... 이런이런.”


두 번의 도약을 뒤로하고 남자가 다시 길 위로 돌아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 위로는 회백색 벽돌 조각이 가득했다. 감색의 양복도 물과 흙먼지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이때 뒤를 좇아온 지수가 반채림의 뒤에 착지했다. 그는 박살난 차와 무너진 벽을 보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신 앞의 반채림과 김지수를 바라보았다. 어깨 위의 흙먼지는 빗물을 머금어서인지 잘 털어지지 않았다. 표정을 구기던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을 상대하기는 오늘 날이 좋지 않군요. 행운이 좀 따른다 싶었더니 역시나 불행이라...”


반채림은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서슴없이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공격을 이어나갈 기세였다.


“도망칠 순 없을 걸요.”

“... 오늘은 도망쳐 드리죠.”


이빨을 깨문 남자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표막이 반짝거리나 싶더니, 주변 풍경과 녹아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본 반채림과 지수가 경악했다.


“뭣...!”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일렁이는 그림자와도 비슷했다. 남자의 표막은 몸 위에 풍경을 새로 그리며 완전히 거리와 일체화했다. 거리가 가까운 지금은 울렁거리는 외곽선 정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천천히 그림자가 뒤로 물러서자, 눈이 목표를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걸 본 지수가 토해내듯 말했다.


“광학위장Optical Camouflage...!!”

“기다려!!”


반채림의 외침을 뒤로하고 투명한 그림자가 뒤쪽으로 도약했다. 발소리는 들렸지만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소리마저 멀어질 즈음, 갑자기 허공에서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


순간 두 사람이 방어를 위해 표막을 펼쳤다. 그러나 화염구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부서진 차량이었다. 빗물이 만들어낸 증기를 가득 두른 채로, 화염구가 차량에 부딪혔다.


“큿!”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 차량이 이내 폭발했다. 두 사람의 표막에 폭발 잔해들이 부딪히며 금속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폭발에 시야를 뺏긴 사이, 남자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당분간 찾기 힘들겠군요...”


황망한 표정의 반채림 뒤로, 지수 역시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잠시 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가 긴 한숨을 뽑아냈다. 이때 신고가 들어갔는지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 칼날을 접은 반채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시죠.”

“알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가 다시 하늘로 뛰어 올랐다. 건물 벽을 길처럼 사용하며 금방 옥상에 다다른 반채림은, 역시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가며 거림산업 옥상에 도착했다.


그녀는 계단실 안으로 들어와서야 젖은 머리를 사정없이 털었다. 씁쓸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행동이었다. 지수 역시 젖은 옷을 털어내며 오늘의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장실 앞에 다다랐다. 비에 젖어 후줄근해진 차림을 본 비서가 놀람에 입을 쩍 벌렸다. 그녀가 허둥지둥 수건을 찾으면서 외쳤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갈아입을 옷이랑 수건 좀 갔다 줘. 수장께 드릴만한 옷도.”


역시 비슷하게 젖은 지수를 향한 말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일단 돌아가 보려 합니다.”

“몸이라도 녹이셔야죠. 감기 걸려요.”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 반채림은 이제야 한기를 느꼈다. 사장실 안은 따뜻했지만 겨울비에 젖은 옷이 체온을 급격하게 낮추고 있었다. 그녀는 절로 흔들리는 아래턱을 붙잡으며,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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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5화 : 추적(Pursuit) (2-1) 20.05.04 56 0 12쪽
77 5화 : 추적(Pursuit) (1-4) 20.05.03 61 0 12쪽
76 5화 : 추적(Pursuit) (1-3) 20.05.02 61 0 11쪽
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3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6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2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1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7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6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60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60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2 0 15쪽
»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9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1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8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70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2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4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2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2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2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2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9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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