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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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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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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글자수 :
1,454,850

작성
20.04.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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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 추적(Pursuit) (1-2)

DUMMY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흰색의 껍질은 주변 풍경을 하나로 합쳐놓고 있었다. 천천히 쌓이는 눈은 적막함과도 같았다.


“......”


「상어」는 차 안에서 명함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국고속선공사 예산부 부장 윤준석」이라고 적힌 명함이었다. 잠시 뒤 그는 차에서 내려 닫힌 정문을 향해 갔다.


경비원이 그의 이동 경로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출입 금지입니다.”

“뭔 일 있나요?”

“그건 저도 자세히 알지 못-”


갑자기 털썩 소리가 들리며 경비원이 쓰러졌다. 하얀색 눈 위로 빨간 핏자국이 길게 생겨났다. 칼을 털어낸 상어가 정면의 철문을 양 손으로 잡고 밀자, 커다란 쇳소리와 함께 길이 열렸다.


상어의 차가 정문을 통과했다. 그의 차량은 정비동과 본관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굉음을 내며 올라온 차는 본관 앞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멈춰 섰다. 차문이 거칠게 열리며 양복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떠나는 한 대의 차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중앙 현관으로 들어갔다.


복도 위쪽에 매달린 명판 글씨를 확인하던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복도를 울리는 구두소리가 박자를 올렸다. 그는 좁은 복도 끝 부분에 있던, 기획조정실 문패가 달린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이었다.


“이얏-!!”


부지불식간이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절칙이 빠르게 상어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상어는 아슬아슬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교차한 칼날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선공을 가한 윤민서 대리는 거칠게 상어를 밀어붙이며, 그를 복도 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큿...”


압박감에 상어가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 공간이 생겨나자 그녀는 뒤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빨리! 도망쳐요-!”


상어의 눈에 반대편 문으로 황급히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때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 윤민서 대리의 후속 공격이 날아들었다. 훈련 받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


공격은 칼이 아니었다. 절칙을 놓은 왼손에서 튀어나온 것은, 법칙으로 만든 뾰족한 바늘이었다. 상어는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해냈다. 바늘 끝이 닿은 표막에 구멍이 났다. 하지만 그 아래 신체까지는 닿지 못했다.


상어는 절칙 사거리 밖으로 물러섰다. 그는 틈을 메꿔가는 표막을 보며 광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의료계열 법칙에 독극물이라니. 준비가 확실하군...”

“......”


좁은 복도는 두 자루의 칼이 뿜어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이 불타듯 흩날렸다.


“!!”


윤민서 대리가 다시 돌진했다. 두 개의 칼날이 부딪히며 연속적인 파공음을 쏟아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9국에 연락했으니 지원이 오는 건 최소 30분 뒤가 될 터였다. 그때까지는 놈을 쓰러트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관련자를 피신시키고 이곳에 붙잡아 두어야만 했다.


윤준석 부장은 복도 반대편으로 도망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하게만 보였던 모습 뒤로 엄청난 박력이 숨어있었다. 그녀는 지금 노도와 같이 움직이며 포효를 토해내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춤과 같이 이어지던 칼과 칼의 합 사이에, 찰나의 시간이 났다. 상어는 몸을 뺌과 동시에 바닥으로 손바닥을 내질렀다. 순간 복도 바닥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다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창문이 깨지고 사무실 문도 박살났다. 상어는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었다. 윤민서 대리가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표정을 찡그렸다.


‘사무실을 통해 밖으로 나갈 셈인가!’


칼이 지나가는 곳에 서류와 비품, 책상이 썩둑썩둑 잘리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업무를 위한 고요한 장소는 이제 싸움터가 되어 들끓고 있었다. 상어는 쫓아오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쇠로 된 책상들이 삐걱거리더니,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


순식간에 책상이 하나로 뭉치며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윤민서 대리는 이빨을 깨물며 손을 뻗어 폭발을 일으켰다. 날아들던 책상들이 무게감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책상들은 천정과 벽에 부딪히며 커다란 깡통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사이, 상어는 사무실 창문을 넘어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감한 표정의 윤민서 대리가 속도를 내며 소리쳤다.


“멈춰-!”


상어는 정확하게 윤준석 부장을 노리고 있었다. 같이 탈출한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뿔뿔이 흩어지는 동안, 상어는 윤준석 부장의 목 뒤를 쳐 기절시켰다.


“크억!”


사람 하나가 눈 위에 힘없이 쓰러졌다.


‘젠장...!’


목표를 제압하자 상어의 행동에 여유가 생겨났다. 그는 자세를 낮춰 넘어진 윤준석 부장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다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


윤민서 대리는 윤준석 부장의 안전을 우려하여 멈춘 상태였다. 상어는 하늘하늘 떨어지는 함박눈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좋아... 좋아좋아. 꽤 애를 먹이는데...”

“상어!! 그를 놔 줘!”


윤민서 대리가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재촉하지 마. 이제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안기부의 마법사.”

“...!!”


상어가 칼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또 다른 칼날이 올라왔다. 쌍두(雙頭)를 가진 칼이었다. 윤민서 대리는 그걸 보고 이빨을 깨물었다.


‘쌍두날이라고?!’


칼이 현재의 형태로 고정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따라서 저런 변칙적인 형태의 칼을 운영하는 상대는,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예측 못하는 한 타로 승부를 보겠다는 하수이거나.

혹은 정말로 상식을 벗어난 고수이거나.


‘젠장...’


지금까지 상어가 보여준 걸로 판단하면, 그는 상식을 벗어난 고수임이 분명했다. 반응속도, 법칙 활용, 전술적 움직임까지. 책상에서 봤듯 전자기(電磁氣) 관련 법칙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달라붙지 않으면 상어는 중요한 정보를 쥔 - 9국의 현황과 그릇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고 있는 - 인질을 데리고 사라질 것이 뻔했다.


윤민서 대리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합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인질을 뒤에 두고 있는 이상 법칙 사용은 불가능했다. 승부는 칼로 내야만 했다.


‘한 번, 단 한 번이다...!’


선공하더라도 반격은 무조건 방어할 수밖에 없으리라. 쌍두날의 뒤쪽 칼날은 칼이 겹침과 동시에 반격해 올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 막아내면, 상대는 회전 방향을 바꿔야 할 터.


그녀는 그 타이밍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간다...!!”


자세를 낮추며 뻗은 왼발에 힘을 줬다. 쌓인 눈이 폭발하듯 날아갔다. 본래의 색을 드러낸 아스팔트 위로, 그녀의 몸이 고속으로 상어를 향했다. 하지만 느릿하게 흐르는 주변 풍경은 강한 이질감에 어그러지고 있었다.


“!!”


지근거리에 접근한 두 개의 칼이 충돌했다. 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 파공음이 발생했다. 그녀가 노린 대로 반대편 칼날의 반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상대의 반격을 방어하자마자, 그녀의 절칙이 각도를 틀어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목표는 상대의 왼쪽 겨드랑이였다. 윤민서 대리의 칼날은 최단거리로 목표를 향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상어의 반격이 이어졌다. 방어와 공격이 연속되었음에도, 상어의 칼놀림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섬뜩함을 둘러싼 칼날이 윤민서 대리의 표막에 닿았다.


“!!”


간발의 차였다. 그녀의 칼날도 상어의 표막에 닿았지만, 아주 약간 늦고 말았다. 상어의 공격이 윤민서 대리의 표막을 뚫고 오른쪽 어깻죽지를 깊게 파고들었다. 불타는 고통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자르는 것이 아닌 찢어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악--!!”


저항감 없이 쇄골을 지난 칼날은, 흉부 중심 언저리까지 다다라서야 멈췄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도 정지했다. 잠시 뒤 칼날을 잃은 절칙이 떨어지며 청아한 쇳소리를 냈다. 그녀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붉은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


갑자기 건물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층과 그 바깥 주차장에서 난 큰 소음에, 4층짜리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무실이 박살나고 이어진 칼부림은 영화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나 아스팔트 위 붉은 피는,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선명히 각인시키고 있었다.


“.......”


상어는 고개를 들어 경악에 빠진 사람들을 한 번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까 못 다한 작업을 하기 위해, 여전히 기절해 있는 윤준석 부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억을 마저 읽든 고문을 하던 정보를 뜯어낼 차례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발목 부근에서 뜨끔 하며 뜨거운 감각이 올라왔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린 느낌이었다.


“?!!”


고통의 근원을 찾고자 그가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반격을 한 윤민서 대리였다. 고통이 가시자 갑자기 시야가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독, 혹은 마취 계열의 물질이었다.


“자... 잘도...”


급하게 발을 뺐다. 그러나 이미 물질이 일정량 몸에 들어온 후였다. 손발 끝에 힘이 급격히 떨어졌다. 칼을 쥐고 있는 것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이 상태라면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 빨리 후퇴해야 했다. 상대의 증원이 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그나마 남자의 기억에서 「강원도 해안」이라는 단어까지는 떠냈으니, 목적은 일정 수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제...기랄...”


상어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차를 향해 움직였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심해지지 않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며, 가까스로 차에 올라탄 상어가 시동을 걸었다. 비틀거리듯 차량이 출발했다.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충돌 없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일단... 됐나...’


윤민서 대리는 멀어지는 차 소리를 들으며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저 따뜻함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만 있을 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절망적이었던 저번 전투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생각 외로 허무했다. 그나마 고공 사람들은 지켰다. 일시적이지만 상어를 후퇴시킨 것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준비한 독을 다 쏴주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고 있었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과 맞닿은 얼굴을 통해, 다급한 발소리의 진동이 느껴졌다.


“민서씨! 민서씨!!”


저 목소리는... 이제 좀 친하게 지내나 싶었던 김강문 대리였다.


아아.

조금만 더 친하게 지낼 걸 그랬나.


* * * *


상어의 고공 습격 다음날, 1987년 12월 31일 목요일 07시 25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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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5화 : 추적(Pursuit) (2-2) 20.05.08 5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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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5화 : 추적(Pursuit) (1-4) 20.05.03 61 0 12쪽
76 5화 : 추적(Pursuit) (1-3) 20.05.02 61 0 11쪽
»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3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5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1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0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6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5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59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1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0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7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70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1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3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1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2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2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2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8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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