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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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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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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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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화 : 그릇(Vessel) (3-2)

DUMMY

[그래서, 각 공동체별 예지망 세부자료를 부탁드립니다. 사각(死角)을 파악하고 예지망 보강을 위함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곧바로 큰 소리가 한쪽에서 튀어나왔다.


[아니, 진위도 확인되지 않은 자료로 예지망을 까라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니오?]


예지라는 건 일종의 볼리셔니스트의 행동을 잡아내는 레이더와도 같았다. 그리고 레이더의 탐색 범위와 주파수 특성과도 같은 세부자료가 기밀이듯, 예지가의 정체, 예지의 주기, 범위와 관계성 등의 특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는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밀로써 보호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커뮤니티의 예지 특성을 알게 되면, 그 틈을 파고들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장이 그 자료로 다른 짓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소? 상어란 놈은 핑계고, 그냥 허점만 알아 볼라는 거 아니요?]


꽤 공격적인 말이었다.


[그르고 만약 상어란 놈 목적이 올림픽이 아니면 우짤끼요? 국내에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만 배 까뒤집은 거밖에 안되잖소?]

[신문 보셨잖아요. 올림픽 방해하려고 비행기까지 폭파시키는 놈들이죠. 더구나 이번 올림픽... 어느 정도의 의지가 모이게 될 지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걸 빤히 보고 있을 놈들이 아니죠.]


수장의 말이 이어졌다.


[더구나 안기부도 의기력자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올림픽이 의기력자 손에 망가진다면... 후폭풍은 우리들에게 닥칠 겁니다.]

[잠깐, 그럼 그 자료가 안기부에서 나왔단 말이오?]

[발신인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보면 자연스럽죠. 자료의 질이나 양을 보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따라서 그 말인 즉, 우리보고 제재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음...]

[만약 올림픽이 망가지고 그것이 우리 쪽 준비 부족이라면, 단순하게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제재하겠죠.]


이어폰으로 듣고만 있었지만, 수장의 미묘한 웃음이 보이는 듯 했다.


[국제그룹이 얼마 만에 날아갔는지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 있는 기업들이라면 일주일도 안 걸릴 거 같은데요.]

[......]


협박에 가까운 말, 아니, 그냥 협박이었다.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다음주중으로 공동체별 예지망 세부자료의 제출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 달 내로 최소 2인 이상의 사냥꾼도 준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알았소.]


제일 완강하게 저항했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수긍하자 다른 사람들도 별 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장, 하나 물어볼 게 있소.]

[?]

[요새 행적이 쪼매 알쏭달쏭 하던디... 제재건도 글코. 팍 까놓고 말 좀 해주소.]

[제재 건은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상대방이 꽤 강력했거든요.]

[제재야 글타믄 그렇겠지만스도... 뭐 찾으러 다닌다고 하는 건 무슨 일이요?]

[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음... 암튼 수장부(首長部)도 좀 허심탄회하게 까주야 우리도 뭔 말이라도 하지 않긋소?]

[물론 그렇게 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 알았소!!]


원하는 답변이 아닌 듯, 남자의 버럭 소리와 함께 의자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분위기는 험악해진 듯 했지만, 끝나는 분위기라 그런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어서 의자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다들 일어서는 듯 했다.


남자는 황급히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이어 시동 걸리는 소리와 함께 전조등의 불이 들어왔다.


엔진 회전소리가 높아지며 검은색 세단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가 시야를 잠식해가는 상황 속에서, 남자는 차량을 운전하면서 또 동시에 이어폰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검은 상자에 달린 스위치를 조작해가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이어폰에서는 잡음과 사람 목소리가 번갈아가면서 들리고 있었다.


멀리 거림산업 건물이 어른거렸다. 그곳에서는 여러 대의 차량이 출발하는 중이었다. 남자는 짐짓 표정을 굳히고 앞으로 출발하는 차량들을 앞질러갔다. 그는 그 와중에도 뭔가의 스위치를 조금씩 돌려가고 있었다.


“!!”


그러다 뭔가를 찾은 듯, 남자가 스위치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속도를 가속시키며 차량 한 대를 쫓기 시작했다. 이어폰에서는 아까 수장에게 따지고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의 시키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건방지기 짝이 없구만!]

[수장이 그렇게 어립니꺼?]

[얼굴만 보믄 애기지 애기. 근디 실력은 어마무시하니까 할 말은 읍꼬... 시X!]

[그대로 사무실로 가실랍니까?]

[그라자! 난 좀 잘란다!]


이후에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남자는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다시 스위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채널에서 반채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사무실에 설치했던 도청기의 채널이었다.


[... 이번 건... 자료... 출처...]


왕복 6차로 도로에서 검은색 세단이 유턴을 했다. 중앙선을 넘는 과격한 운전에 주위 차량들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량이 다시 거림산업 건물에 가까워지자, 반채림의 목소리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수장의 목소리까지 같이 들려왔다. 아직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꽤나... 자료더군요... 사실...]


차량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신호도 점점 강해졌다. 남자가 차량을 돌려 건물 근처 골목 어귀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시동을 껐다. 이제 두 사람의 목소리는 꽤나 정확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수장의 목소리였다.


[그나마 세심한 자료 덕에 좋게 끝났군요.]

[네. 부산 쪽도 그나마 납득한 것 같아서 다행이죠.]

[헌데 이 자료, 안기부 누구에게 받으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저도 말씀드리기 쉽지 않네요.]

[사실 저도 얼마 전에 안기부와 만난 적이 있어서요. 혹시나 해서 말이죠.]

[네?]


남자가 이어폰을 귀에 고쳐 끼웠다. 동공이 커지면서 상체가 저절로 앞으로 향했다.


[혹시 자료... 정은정이라는 분께서 주신 거 아닌가요?]


남자가 수첩을 들었다. 그리고 마구 메모하기 시작했다. 안기부, 정은정, 수장 등등의 글씨가 휘날리듯 이어졌다. 하지만 수장의 물음에 반채림은 딱히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


침묵은 긍정이었다. 다시 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83 교류전 때의 우승자였더군요. 헌데 지금은 안기부라니...]

[출처가 문제가 될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저쪽은 공공 안전 관련 정보를 빠르게 공유했을 뿐입니다.]


남자는 대화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뿌려둔 도청기에 엄청난 대어가 낚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큰 물건이 잡혀 올라오는 중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딱히 문제 삼고자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신기해서 그랬죠.]

[......]

[... 유럽에서 귀국 후에 파문당한 따님께서 그곳에 있다니요.]

[지금 심문하시는 건가요? 가족사에 관여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유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이상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표정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언가에 강하게 집중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흡사 울렁거리듯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좀 말이 많았군요. 전 오히려 좋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강(江)도 안기부... 9국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9국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


갑자기 전화벨 소리에 수장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수화기 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마치 도청기가 고장 난 듯 했다. 침묵 속에서 잡음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불안감이 남자의 가슴에 흐르고 있었다. 이때 의자 밀리는 소리와 함께 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또 연락드릴게요. 수장.]


위화감이 더욱 커졌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


남자가 시동을 걸었다. 그는 이어폰을 귀에서 당겨 뽑고, 골목을 거칠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


공동체 대표 회의가 끝난 후, 1987년 12월 18일 금요일 16시 7분.

대전시 서구, 거림산업(주) 건물 인근.


의지봉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지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반채림이 받은 전화는 미림(美林)의 예지가인 ‘정우일’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거림산업 건물과는 좀 떨어진, 비밀리에 마련된 의기력자 공동체 HQ에 있었다.


정우일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주(門主)님. 「엿듣기와 분노」입니다. 근처인 거 같습니다.]

[...!!]


놀라는 자신의 표정에 뭔가 말하려는 지수를 제지시킨 그녀는, 입모양만으로 현재 상황을 그에게 알렸다.


‘도청, 의기력자, 상어.’


뜻을 알아들은 지수의 얼굴도 급격히 굳어갔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또 연락드릴게요. 수장.”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여 가며 조심스럽게 사장실을 나섰다. 반채림은 일어서는 비서를 다시 앉히며, 자신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양손 검지로 어떤 막대기 같은 것을 허공에 그렸다.


“!!”


비서는 그 뜻을 파악하고 책상 아래에서 하얀색 막대를 꺼냈다. 칼이었다. 칼을 받은 반채림은 쪽지에 무언가를 써서 비서에게 주었다.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시고 관심가져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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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5화 : 추적(Pursuit) (1-3) 20.05.02 61 0 11쪽
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3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5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1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0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6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5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59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1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1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7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70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1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3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1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2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2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2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8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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