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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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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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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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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 그릇(Vessel) (6-2)

DUMMY

소리가 들려온 위치로 봐서는, 이면도로 더 안쪽의 골목 어딘가였다. 뒤이어 같은 여성의 소리가 단말마처럼 더 이어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저항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정 과장!”


하늘로 솟구친 한강진 국장의 시선처럼, 그녀는 순식간에 표막을 전개하여 건물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코올 기운에 아슬아슬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강진 국장은 그 장면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벌써 시야에서 멀어지는 정은정 과장을 보며, 그 역시 표막을 펴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발소리가 건물 벽에 반사되며 울리다가 점차 사라졌다.


정은정 과장의 몸이 어느덧 건물 높은 곳에 올랐다. 시야가 트이자 소리의 진원도 금방 드러났다. 처음 예상처럼 이면도로 안쪽의 좁은 골목 사이였다. 가로등에 흔들리는 몇 개의 그림자는 확실히 위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쭉 뻗어 그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찾았다-!”


어떤 건물 옥상의 안테나에 매달려 있는 것만 빼면, 완벽한 주취자의 모습이었다.


술기운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주저 없이 다음 발을 내딛었다. 건물 옥상을 징검다리처럼 밟아가며 아슬아슬하게 목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낮은 2층 건물들이 가득한, 골목 안쪽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이었다. 이제 골목으로 내려갈 차례였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발걸음을 헛딛고 말았다.


“!!”


골목 안쪽에 우당탕 소리가 크게 났다. 사람 몸 같은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그림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성 하나의 입을 막고 추행 중이던 남자 둘의 시선이, 가로등 불빛 경계에 쓰러진 정은정 과장을 향했다.


“누, 누구냐!”

“아야야...”


표막 덕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꼴이 우스웠다. 잔뜩 취한 상태에서 방방 뛰어다녔더니 머리까지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는, 범행 현장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남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때 둘 중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여자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또 뭐야...!”


그리고 그녀에게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정은정 과장은 반 쯤 풀린 눈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무심히 보더니, 왼손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덥석 잡았다.


“?!”


그리고 오른손을 뒤로 살짝 당겼다가 남자의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 순간 강렬한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 정은정 과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뺐다.


“아, 힘 조절...”


그 장면을 본 다른 남자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잡고 있던 여성을 놓고는 후다닥 도망갔다. 그 모습은 이내 어둠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발소리도 순식간에 멀어지며 멀리 흩어졌다.


“하아- 근성 없는 새끼들...”


정은정 과장은 모아두었던 알코올 기운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마치 고래가 물을 뿜듯, 하얀 입김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이때 한강진 국장이 그 골목 입구에 도착했다. 역시나 비슷하게 건물 옥상을 타고 왔지만, 정은정 과장처럼 빠르지는 못했다. 소리가 없어지면서 장소를 특정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 탓이었다.


그래도 상황은 대충 정리된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배를 잡고 쓰러져 있는 남자와, 급하게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한강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정은정 과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피해자의 상황을 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이상한 움직임이 한강진 국장의 눈에 잡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꿈틀거리며 일어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 과장! 뒤!”

“?!”


남자의 손에 뭔가가 쥐어있었다. 옅은 가로등 불빛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한강진 국장이 당혹감에 표정을 굳히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칼?!’


정은정 과장도 그의 외침에 상황은 파악했다. 하지만 표막도 풀었고 술에 취해 반응도 빠르지 않았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지나며, 마법사들이 평상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 일어났다.


차가운 잭나이프(jackknife)의 칼날이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불길과도 같은 통증이 옆구리에서부터 온몸을 관통했다.


“!!”


칼날이 그녀의 몸을 뚫고 들어온 순간, 이미 가속하고 있던 한강진 국장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골목 저쪽으로 현실감 없이 날아갔다.


“아악...”


짧은 신음소리가 이어지고, 곧바로 떨어진 금속이 포석에 부딪혔다. 몇 번의 챙그랑 소리가 골목 안에 울렸다. 동시에 빨간 액체가 그녀의 옷 색깔을 천천히 바꾸기 시작했다.


“정 과장, 정 과장!! 괜찮아?!”

“아야야...”


한강진 국장이 더듬거리며 환부를 찾기 시작했다. 손이 몇 번 오가지 않았음에도, 그의 왼손바닥은 이내 시뻘겋게 변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옆의 여성에게 말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여자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한강진 국장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쪽으로 뛰어요! 어서!”


그녀가 골목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면도로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니, 이내 인적이 있는 곳에 도착할 터. 여자가 사라지자 한강진 국장은 정은정 과장의 상체를 안아 들었다.


“정 과장! 정신 차려!”

“팀장님...”


한강진 국장은 양손에 의지도달공간을 집중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긴장 가득한 얼굴로 의료계열 법칙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목을 받치고, 왼손으로 상처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상처가 심했다. 상처 위치도 확실치 않아 지혈도 간당간당할 정도였다.


‘장소를 옮겨야겠는데...’


추운 날씨에 출혈까지 이어지자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일단 어느 정도 지혈이 된 걸 확인한 한강진 국장은, 코트를 벗어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양손으로 정은정 과장을 번쩍 안아 들었다.


“흔들릴 테니 조금만 참게.”

“네...”


몇 번 도움닫기를 한 한강진 국장이 도약했다. 다행히 원래 목적지였던 호텔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신중하게 건물 하나하나를 뛰어 넘으며, 최대한 짧은 경로를 택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안겨있는 정은정 과장의 정신은 몽롱했다. 추위에 통증에 출혈에 술까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법사가 칼에 찔렸다는 꼴불견의 상황은 부끄러움만 남겨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그에게 안겨있는 지금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 그녀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무중력에 가까운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도 미풍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는 잠자듯 멀어지는 의식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시야가 텔레비전 꺼지듯 날아갔다.


* * * *


1987년 12월 25일 금요일 0시 24분.

서울 시내, 서울역 인근 모 호텔.


5분도 되지 않아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프런트를 번개처럼 지난 한강진 국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급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먼저 침대 위에 그녀를 눕혔다. 그리고 전기주전자에 수건과 물을 쑤셔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그는 양복 상의를 벗으며 안주머니에서 작은 파우치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의료 계열 법칙을 보조할 각종 알약들이 들어 있었다.


주로 항생물질처럼 평소에는 구하기 힘든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최근 의료 계열 볼리셔니스트들에게 제식화를 추진 중인 패키지이기도 했다.


자신도 의료 계열 볼리셔니스트이니 가지고 다니는 건 당연했다.


‘이걸 지금 쓸 줄이야.’


그는 몇 개의 작은 플라스틱 통의 라벨을 확인하고는, 안쪽에 들어있던 알약 몇 개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이따 법칙을 통해 그녀의 몸으로 들어갈 물질들이었다.


양복을 외투까지 벗은 후에 셔츠를 올리고, 양 손을 비누로 깨끗하게 씻었다. 법칙을 이용해 양손의 수분을 날리고는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


물이 끓는 동안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정신을 거의 잃어서인지 반사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상처부위를 피해가며 하의를 모두 벗겼다. 거의 반 정도는 피에 절은 옷들이 하나 둘 바닥에 떨어졌다. 하얀 피부에 대비되어 피가 더욱 붉게 느껴졌다.


피는 상의에도 크게 번져 있었다. 특히 블라우스는 피가 마르며 상처에 붙어 있어, 조심스럽게 작업해야 했다. 피부에 달라붙은 면을 걷어내며 천천히 팔을 빼기 시작했다. 몸이 움직이면서 고통의 신음이 몇 번 올라왔다.


“심한데...”


임시방편으로 지혈을 하긴 했지만, 상처 자체는 되게 심한 편이었다. 피에 절은 블라우스가 떨어지며 막아뒀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찢어진 피부 사이로 피가 스며 나왔다.


이때 삐익 소리가 주전자에서 들려왔다. 한강진 국장은 주전자 속의 수건을 꺼내들고는 물을 짜냈다. 그리고 약간 온도가 떨어지길 기다린 그는, 곧바로 환부를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피를 닦아내자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날 폭 길이의 상처가 보였다. 문제는 깊이였다.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법칙을 침투 시켜봐야 알 수 있었다.


“......”


법칙을 전개했다. 먼저 안쪽부터 상처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도달공간 안에서 미세한 기계 같은 것들이 움직이며 몸 안쪽과 바깥쪽을 오가고 있었다. 분자단위로 작동하는 메스였다. 거기에 파이프 같은 것들도 물질들을 옮기고 있었다. 아까 먹었던 항생물질 등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안쪽의 상처는 아주 심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았다. 그가 속으로 안도할 때 이마가 간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땀방울이 맺히면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문득 샛별 작전이 끝나고 그녀의 대퇴부 골절 치료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왼손을 들어 소매에 땀을 닦았다.


거의 삼십분의 시간이 흘렀다. 안쪽과 바깥쪽 상처의 봉합도 거의 끝나갔다. 출혈이 멈추고 고통이 사라지자 그녀의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 이제 잠도 깊게 든 것 같았다. 한강진 국장은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한 그는, 프런트에서 거즈와 반창고 등을 얻어왔다. 그리고 약간의 흔적이 남은 상처 위를 감싸듯 봉했다.


“휴...”


끝났다고 생각한 탓일까. 갑자기 피로와 술기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채로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샤워가운을 입히고 이불을 턱까지 당겨 덮었다.


이후에는 있을지 모를 출혈이나, 발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상처 이후 그래도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지만, 혹시나 무언가가 잘못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손을 뻗어 이마를 향했다. 다행히 발열은 없었다. 이마와 맞닿은 손은 보통의 느낌과 같았다. 호흡이나 반응도 안정적이었다. 그걸 본 그는 마지막 긴장이 고무줄처럼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몰려온 엄청난 잠은, 그조차 버티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


몇 시간 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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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5화 : 추적(Pursuit) (2-1) 20.05.04 56 0 12쪽
77 5화 : 추적(Pursuit) (1-4) 20.05.03 61 0 12쪽
76 5화 : 추적(Pursuit) (1-3) 20.05.02 61 0 11쪽
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3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6 0 13쪽
»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2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1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7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6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60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2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1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8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70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2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4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2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2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2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2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9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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