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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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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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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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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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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4화 : 그릇(Vessel) (5-4)

DUMMY

* * * *


그날 밤, 1987년 12월 24일 목요일 22시 5분.

서울 시내, 모(某) 여관.


시간에 쫓기는 건 「상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릇」에 관한 정보를 얻고, 급하게 유럽에서 빠져나와 남한으로 들어온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곳 볼리셔니스트들의 대응이 생각 외로 너무 빨랐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반채림의 얼굴이 가져다 준 나비효과였다. 정확히는 반채림과 닮은 한 여자에 관한 기억이었다.


바이어로 접근했을 때는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의지봉인을 약화시키는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여자가 여전히 현역이며 안기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의지봉인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았다. 자신의 장기 하나가 사라졌다. 거기에 작전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만 했다.


‘하얀 마녀...’


그는 반채림의 얼굴에서 꼭 닮은 한 여자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6년 전 「마법사의 나무」 활동 당시, 「벌목꾼」 중 가장 강했고 어려웠던 상대. 또한 자신에게 처절한 패배를 줬던 상대이기도 했다. 특히 하얀 피부 때문에 붙은 이 이명(異名)은 나무와 벌목꾼 모두에게 통했던 별명이었다.


별명 들어간 마법사나 마녀의 이름은 특별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볼리셔니스트들 사이에서는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볼리셔니스트들은 암묵적으로 별명에 마법사나 마녀를 붙이지 않았다. 이는 자신들을 감추기 위한 폐쇄성에서 비롯된 버릇이었다.


그러나 별명에 마법사나 마녀가 들어갔다는 건 폐쇄성조차 이겨낸, 위대함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었다. 일종의 같은 마법사가 주는 훈장과도 같았다.


“......”


상어는 가슴에 남아있는 커다란 흉터를 떠올렸다. 자신을 거의 죽음에 다다르게 만들었던 상처였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날 때, 자신을 바라보던 하얀 마녀의 눈빛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처럼 냉정한 눈을 하고 있을까.


「하얀 마녀」가 관여했다는 사실은 상어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고민 끝에 작전 진행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지금 이 방에는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상어」인 자신과, 정보원인 「김다빈」과, 한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김다빈의 대학생 남자친구인 「박준민」이었다. 그는 기절한 채로 의자에 앉혀 있었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걱정 가득한 김다빈의 물음이었다. 박준민과의 술자리가 끝난 후, 그녀는 그를 이곳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방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어의 일격에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걱정 마. 고문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 기억을 떠낼 거야.”

“뭐라고요?”

“떨어져 있어.”


상어의 양 손에 의지도달공간이 올라왔다. 그는 그것을 박준민의 머리에 가져갔다. 복잡한 법칙이 마구 작동하면서, 무언가가 박준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어의 표정에 긴장이 더해지고 있었다.


「기억을 떠내는 법칙」은 거의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수였다. 원래라면 수장부도 김다빈을 통해 시간을 들여서 찾고, 강(江)의 예지망이 정리되는 다다음주 정도에 침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뀐 상황은 그를 불확실한 방법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이 법칙은 표층에 있는 기억 일부를 탁본처럼 ‘떠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용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시험용 법칙이기도 했다. 일단 읽어내는 대상이 표층에 한정되기에 기억의 양과 질이 좋지 않았다. 멀지 않는 단기기억에 한정되었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피시전자의 기억에도 혼란을 줄 수 있었다.


“......”


상어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박준민의 표층 기억을 ‘떠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갖 언어와 형상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주된 것은 ‘김다빈’과의 기억이었다. 역시 오늘 저녁을 같이 있었던 만큼, 그녀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제기랄.’


수장부와 관련된 기억을 찾던 상어는, 예상 외로 어려움을 겪자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나 계속 나오는 건 이놈의 박준민이 김다빈에게 엄청나게 빠져있다는 증거들뿐이었다. 수장부와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을 넘게 기억을 헤치고 있던 차였다. 갑자기 기억이 보여주는 풍경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여러 개의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곳이었다. 어딘가의 학교 같은 풍경이었다. 풍경의 사진이 시시각각 바뀌며, 그가 그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기억이 끊어졌다.


‘...!!’


표층의 기억은 거의 다 떠왔다. 이 이상 했다가는 상대의 기억구조 자체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상황. 만약 상대에게 문제가 생기면 김다빈과의 루트가 역추적 당할 것도 뻔했다. 따라서 더 이상 기억을 떠내는 건 위험성이 너무 컸다.


법칙을 중단시킨 상어가 김다빈을 불렀다.


“종이, 펜. 빨리.”

“네, 여기 있어요.”


그녀가 수첩과 펜을 내밀자 그는 정신없이 어딘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준수한 그림 실력이었다. 몇 개의 건물을 그리던 상어는 마지막에 어떤 건물을 따로 하나 그렸다.


“여기가 어디인지 봐줘.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어.”

“알겠어요.”

“이거 애 먹이는군...”


한숨과 함께 나온 상어의 말처럼, 박준민의 방어는 의외로 강력했다.


김다빈은 그간의 만남을 이용하여 그에게서 수장부의 정보를 얻어내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냥 들어서는 아무도 모를 ‘그릇’과 ‘북동쪽’이라는 단어만을 알아냈을 뿐이었다.


주말까지 아르바이트에 바빠서 보지 못했던 몇 주가 지나고, 그와 다시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였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그러시던데... 북동쪽에 커다란 그릇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거 찾으러 간다고 했어. 나는 좀 쉬고.’

“...!!”


물론 김다빈은 그 단어의 위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볼리셔니스트는 아니었지만 업계 지식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넘길 만 한 정보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 경우 그 뒷감당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녀는 워딩 그대로 일본 조총련을 통해 북한으로 넘겼다. 남한 내 의기력자 조직이 ‘그릇’을 ‘북동쪽’에서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확실하지 않다는 단서를 달아서.


그리고 부산 쪽 의기력자 공동체의 「박철수」에게는, ‘수장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다’라는 내용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 외에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았다. 알아낸 건 그저 그가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라는 것과, 주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때 김다빈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학교 같은데요?”

“이놈이 □□대학생이라고 했나?”

“맞아요. 하지만 그림만 보면 □□대학교는 아닌 거 같은데... 아.”

“어딘지 알겠나?”


그녀는 그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건물을 배경으로 길과 그 옆의 나무, 그리고 물이었다.


“이거... 호숫가 길이죠?”

“맞아. 왼쪽에 물 같은 게 보였어.”

“바로 옆의 OO대학교인 거 같아요.”


구체적인 장소가 나오자 상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박준민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장비를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김다빈이 말했다.


“최소한 건물 하나를 뒤져야 할 텐데...”

“엘리베이터에서 끝 층을 눌렀어. 거기만 알아보면 되겠지.”

“그런데 이 사람, 괜찮아요?”

“별 영향은 없을 거야. 잘 재워서 보내.”

“알겠어요.”


상어는 비장한 표정으로 여관 문을 나섰다. 오늘은 수장부의 위치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침투까지 할 생각이었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6-


상어가 박준민을 납치하기 4시간 전, 1987년 12월 24일 목요일 18시 35분.

서울 시내, 모(某) 레스토랑.


작가의말

일이 생겨 한 주 결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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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3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5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1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0 0 13쪽
»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6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4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4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5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59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1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0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7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69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1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3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1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1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1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1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8 0 18쪽
51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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