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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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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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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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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추적(Pursuit) (1-4)

DUMMY

* * * *


이틀 뒤, 1988년 1월 2일 토요일 20시 25분.

강원도 양구군, 파로호 인근.


승합차 한 대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차량이라고는 한 대 없는 적막한 도로였다. 차창에는 차량 안의 사람들이 내뱉는 습기로 김이 잔뜩 서려있었다.


차 안에는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타고 있었다. 조명이 없었기에 얼굴은 가려있었다. 그러나 긴장된 분위기는 차량 계기판의 불빛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이번에 강(江)에서 모은 ‘사냥꾼’들이었다. 다만 모두 다 전문 사냥꾼들은 아니었다. 그저 각 커뮤니티의 실력자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수 밑에서 기본적인 훈련과 팀워크를 맞춰본, 사냥꾼들로서는 초보자들이었다.


사실 지역별 커뮤니티 중 전문 사냥꾼을 유지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것은 국가의 특성에서 기인했다. 일단 영토가 좁고 삼면이 바다다 보니 제재 대상 볼리셔니스트들이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결국 전문 사냥꾼 보다는 임무가 생기면 맡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그간 모(母)기업 위주로 커뮤니티 운영이 돌아간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볼리셔니스트들의 질적 하락은 전국적인 추세였다. 정은정 과장이 커뮤니티를 버리고 나간 것도, 이러한 정체성 문제가 큰 작용을 했던 터였다.


하지만 어디든 이단아는 있기 마련이었다. 남들이 말리는 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 모인 이들 역시 커뮤니티에서는 이단아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름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이 선발된 것이었다.


물론 실전경험은 없기에 이 작전 - 강(江) 내부에서는 「노인과 바다」라고 부르는 - 을 지휘하는 지수는, 자신이 합류할 때까지는 교전을 피하라고 명령한 상태였다.


이때 어둠 속에서 걸쭉한 경북 사투리의 여성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그런데 진짜 파로호에 있다는 건 맞나?”


잠시 대답 없는 시간 후에, 부드러운 서울 억양의 남자가 대답했다.


“수장이 거기 있다고 하시니 맞겠지.”

“몇 명이라 카데?”

“많으면 세 명?”

“많네...”


이때 다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강원도 억양이 강하게 묻어났다. 흡사 북한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 다 좀 하는 놈들 모인 거 아니래요? 열심히 해줘봐요.”


뒤이어 같은 서울 억양이지만 훨씬 더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 명? 나 혼자 해치울 수 있어. 배부른 국가의 개가 실력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다고...”


말투처럼 날카로운 내용에 대화가 멈췄다.


잠시 뒤 달리던 차량이 서서히 속도를 낮췄다. 그들이 멈춘 곳은 파로호 동쪽, 양구군 인근이었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자 엄청난 혹한이 그들을 맞이했다. 건조하면서도 지독하게 강렬한 바람이었다.


차에서 내린 다섯 명의 볼리셔니스트들이 길옆의 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를 밟고 사뿐사뿐 뛰던 그들은 이내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중 서울말을 쓰던 남자가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뒤쪽 사람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후, 나무 사이사이로 호수를 관찰했다. 은빛이 무심하게 깔린 호수는 완전히 얼어 있었다. 모래를 뿌려놓은 것 같은 반짝임이 눈을 자극했다.


위치를 옮겨가며 호수 인근을 살펴보던 남자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찾았다.”


한숨 섞인 말이었다. 바람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역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남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호수 한 방향을 가리키며 쌍안경을 옆의 여자에게 넘겼다. 받아든 그녀의 동그란 시야에 이내 무언가가 잡혔다.


이질적이었다. 있어야 될 곳이 아닌 곳에 있는 사람 그림자였다. 세 개의 그림자는 은색 달빛이 연하게 깔린 호수 위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수 중간에서 널찍하게 떨어진 모습은 흡사 얼음낚시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세 명이가.”

“마치 싸우자고 하는 거 같은데...”

“수장께서 기다리라고 하셨으니, 일단 여기서 몸을 숨기고 기다립시다.”


부드러운 서울 억양의 말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쌍안경을 그에게 넘겼다.


그녀는 호수를 바라보며 출발하기 전 수장과의 회의를 떠올렸다. 원주에 적을 둔 강원도 볼리셔니스트 커뮤니티인, 「명악(名岳)」의 사무실에서 있었던 작전회의였다.


“강원도 명악(名岳)의 정하진, 영남 명호(鳴湖)의 박지연, 서울 강북 대천(大天)의 최지훈, 서울 강남 호산(虎山)의 서준호, 충청 미림(美林)의 박상훈이라...”


종이에 적힌 명단을 쭉 읽던 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은 강(江)의 수장, 김지수라고 한다. 아마 본 사람도 있을 거고 처음 본 사람도 있겠지. 먼저 말해 둘 것이 있다. 다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걸로 듣긴 했는데... 절대 적과 싸우지 말도록.“


이때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손을 들었다. 최지훈이었다.


“예지대로라면 이쪽이 세 명, 경기도에도 세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찌르는 것 같이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지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경기도는 안기부가 맡는다.”

“안기부요? 국가의 개들에게 지역 방위를 맡기는 겁니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최지훈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럼 강원도로 온 세 명을 빨리 해치우면, 경기도도 맡아도 됩니까?”


자신감을 넘어서, 뭔가의 적대감까지 느껴지는 말이었다.


“... 나도 자네 실력이 좋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북한 쪽 의기력자 실력을 얕보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이번에 안기부 쪽 의기력자가 중상을 입었다고 했거든.”

“하! 국가의 개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알 만 하군요.”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을 얕보는 것도 좋지는 않지.”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작전은 간단하다. 파로호 근처에 있을 적들을 관찰하는 것. 교전은 절대 피하고 감시만 해. 또 가급적이면...”


여기서 지수가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뭉쳐 있도록. 무전기는 챙겨가고. 그리고 적들이 이동하면, 이곳으로 돌아와.”

“언제까지입니까?”

“3일 오전까지. 오후에는 내가 돌아올 테니 여기서 만나지.”

“... 그러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쌍두(雙頭)의 날을 가진 녀석을 만나면 흩어져서 도망쳐. 상대의 숫자와는 관계없이.”

“쌍두(雙頭)의 날?”

“「상어」야. 안기부 의기력자와 교전하고 큰 부상을 입힌 놈이지. 어제부터 개편된 예지망이 돌아가니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보면 반드시 도망치도록.”

“놈에 대한 예지는 없습니까?”


상어의 의지봉인을 알고 있는 지수였다. 따라서 그는 공동체의 예지가들을 최대한 고민하여 재배치했다. 그리고 예지가별로 지역과의 관계성을 정리하고 재가동을 시작한 것은, 어제인 1월 1일부터였다.


사실 지수는 기대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의지봉인이 가능하더라도, 이중 삼중으로 매핑(mapping - 추상적인 예지 내용과 각 지역을 대응시키는 작업)한 예지망을 아무런 흔적 없이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교전을 통해 얻은 정보도 있었기에 곧 행적이 걸려 올라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제부터 올라오는 예지 자료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부수고 말았다. 그저 북한에서 내려온 여섯 명의 의기력자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이는 상어가 완전히 자신의 행적을 지우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면 아무런 목적 없이 있거나... 혹은 이 나라를 벗어났거나.


“없어.”

“......”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박지연은 몸을 소스라치게 떨면서도, 여전히 시선은 호수를 향했다. 신기루처럼 보이는 사람 그림자는 달빛 아래에서 끓어오르듯 흔들리고 있었다.


“......”


이때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호수 위의 그림자들이, 천천히 호수 바깥쪽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지금 강(江)의 사냥꾼들이 머무르고 있는 야산 앞으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들 표정이 굳어갔다. 보란 듯 칼을 들고 움직이는 적들의 모습은, 겨울의 추위와 맞물려 스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최지훈은 적들의 접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치자.”


그의 말에 놀란 듯 모두의 고개가 그를 향했다. 여기에 최지훈이 작게 소리쳤다.


“미쳤어?”

“뭘 그리 고민해? 상대는 셋이야. 상어도 없다는 뜻이지. 거기에 우리는 다섯이고.”

“수가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거리라면 기습할 수 있어. 하나라도 먼저 꺾을 수 있으면 5대 2라고. 이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어?”

“아무리 그래도...!!”


최지훈이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어갔다.


“숲에서 튀어나가 기습하면 다들 정신 못 차릴걸?”

“기습을 대비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저 모습이 기습을 대비하는 거라고? 다들 호수 쪽만 신경 쓰고 있는데?”


그의 말처럼 적들은 모두 숲 보다는 뒤를 힐끔거리며, 호수를 관찰하고 있었다. 거기에 최지훈이 아픈 곳을 찔렀다.


“만약 우리끼리 해치우면, 단번에 주가가 튀어오를 거라고! 다들 천덕꾸러기 주제에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이런 거 때문에 수련한 거 아니었어?”

“......”


딱히 부정하지 못하는 나머지 네 명이었다. 최근의 공동체 분위기에서 칼과 법칙에 매진한다는 말은, 반쯤은 잉여로 남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장도 없이 쳐들어온 적들을 해결했다... 이만큼 좋은 결과가 어디 있어? 그리고 만약 실패해도 적들의 실력을 확인하고 묶어둘 수는 있겠지. 명령에서 그렇게 벗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대답이 없는 것이 은근히 최지훈의 말에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지훈은 급했다.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적의 그림자를 보며 낮게 소리쳤다.


“어떻게 할 거야! 할 거야 말 거야!”


다들 결정을 강요하는 그에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기회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기에, 나머지 네 명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박상훈이 손을 들었다.


“난 찬성.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닌겨?”


그를 기점으로 여론이 급하게 기울어졌다. 나머지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습을 결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지훈이 긴장서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한 번 해 보자고.”


기습은 적들이 야산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면에서 세 명이, 좌우에서 두 명이 달라붙어 포위하기로 결정했다.


“준비해.”


그렇게 예상하지 않았던 실전이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칼을 꺼내들 상황이 오자 모두들 바싹 얼어 버렸다. 기습 얘기를 꺼낸 최지훈 역시 한 번도 실전을 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는, 항상 상상해왔던 일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세 개의 그림자는 호수를 나와 야산 인근까지 도달했다.


최지훈을 비롯한 사냥꾼들 역시 천천히 야산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소리를 죽이고,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채로.


이제 기습 할 만 한 거리가 갖춰졌다. 아직 상대방은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들 숲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2-


북한 볼리셔니스트에 대한 기습 직전, 1988년 1월 2일 토요일 20시 42분.

강원도 양구군, 파로호 인근.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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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2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5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1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0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6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5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59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59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1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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