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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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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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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화 : 상어(Agent Shark) (6-4)

DUMMY

* * * *


다음날, 1987년 12월 4일 금요일 14시 8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2층 회의실.


9국은 미유키의 망명을 받기로 결정했다.


물론 한강진 국장은 현 상황을 상부에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빠르게 결재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향후 협상 결과에 있어서도 예상한 결과치 안이면 그대로 마무리 할 수 있는 권한도 받아 냈다.


어제와 같은 포지션에서 협상이 시작되었다. 먼저 말을 시작한 건 한강진 국장이었다.


{우리는 카츠노 미유키의 망명을 수용할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미사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도적인 판단을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빠른 결정에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강진 국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일단 망명 건은 협상과는 별개로 처리할 거요. SOSS도 망명은 증인으로써의 역할을 할 뿐, 옵서버로써 내용 검증에 협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망명을 죽음으로 위장하는 것은 저도 찬성합니다. 하지만 기밀 유지가 가능할지 의문이군요. 만약 살아있다는 얘기가 퍼지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 조직이 될 거니까요. 망명한 미유키의 안전에도 위협이 될 겁니다.}

{... 그 점은 조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볼리셔니스트들의 생사 현황은 아직 보고 하지 않았습니다. 상부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데려갈 볼리셔니스트들은 어떻게 입막음 할 생각이죠? 그게 제일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순간 미사키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번갈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워낙 짧게 지나간 터라, 그걸 본 정은정 과장도 약간 의아해 하고 말 수준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던 미사키가 입을 열었다. 크지 않게 절제된 목소리였다.


{... 아마 사실대로 얘기하고 설득하면 될 겁니다. 같은 팀이었으니, 모두들 이해할 겁니다.}

{사실상 배반인 망명을 이해할 정도라... 꽤 가까운 팀이었나 보군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특히 제 동생 상황은 잘 알고 있으니, 입을 다물어 줄 겁니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는 한강진 국장도 그냥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기밀 유지에는 9국뿐만 아니라 미사키 자신의 목숨도 걸려있었기에, 그냥 하는 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나머지 협상을 계속하시죠.]

{알겠습니다.}


어제 오갔던 얘기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강진 국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여러 조건들을 내밀었다. 그러나 미사키는 난감함을 표했다. 야마다의 폭주로 일어난 일이고 그가 이미 죽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가급적 배상금 규모를 조정하는 안으로 응수했다.


미사키의 거부는 의외로 완강했다. 여기에 한강진 국장도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그렇게 계속 같은 말이 반복된 끝에, 한강진 국장이 툭 던지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한 100억 원 정도 줄 수 있소?} (주 : 화폐가치 환산시 2019년 기준으로 대략 320억원 수준입니다)


아예 큰 금액을 부르면 협상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놀랍게도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그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물론 저희에게도 큰돈이긴 합니다만...}


아차 싶은 한강진 국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볼리셔니스트 한 명당 30억 원은 거부할 줄 알았는데, 이걸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물어버렸다.


{... 더 큰 금액을 부를 걸 그랬군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

{최대치로 준비한 금액이 이천만 불 정도입니다. 대략 한화로... 160억 원 정도 되겠군요.} (주 : 당시 환율 800원/달러)

{이천만 불...}


이번만큼은 한강진 국장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재발 방지가 목적이었지만, 이 정도의 돈 앞에서는 다른 조건들이 무의미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회의실 안의 다른 사람들 역시 술렁이긴 마찬가지였다. 천문학적인 액수가 뻥튀기 되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미사키 스스로가 협상 한계를 밝힌 점이었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한강진 국장은 그녀에게서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서 더 부르면 어떡합니까?}

{그러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미사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걸 보는 한강진 국장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좀 전에 완강히 저항할 때는 뭔가 전략이 있어 보였건만, 지금은 한계를 드러내며 감정에 읍소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완전히 정 반대의 접근법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었다.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자는 미사키의 의도에 말려버린 현 상황이었다. 석을 죽이고자 던진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상부에 보고할 때도 돈 외의 다른 조건들은 쉽지 않을 거라는 운을 띄어놓긴 했지만,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돈으로 마무리된다는 현실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래저래 생각해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최대치라고 생각한 30억 원을 훌쩍 뛰어넘어, 근 5배에 가까운 돈을 얻게 되는 거니까. 만약 돈으로 하는 경고라면 충분한 수준이리라.


이때 그의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미사키의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향후 해외 활동은 거의 힘들어질 겁니다. 단 한 번 작전 실패의 대가치고는 너무 큰 금액이니까요.}

{......}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강진 국장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뭔가의 아쉬움을 담아 대답했다.


{...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합의가 끝났다.


후속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합의문을 만들었다. 배상금은 협력기금 조성을 위한 출연이란 내용으로 들어갔다. 출연금의 사용은 일본 측에서 관여하지 않으며, 한국 측에서 전적으로 관리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형식적이지만 향후 건설적인 협력을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교류를 위한 방문을 하기로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자신들의 이름에 서명했다. 물론 조직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사인을 끝내고 합의문을 교환함으로써, 사실상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이후의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해졌다. 서로 크게 얼굴 붉힐 일 없이 끝났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충돌은 크고 험악했고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마무리는 잘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이때 미사키가 한강진 국장 옆으로 다가왔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염하린은 잠깐 기지개를 펴다가, 그 장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강진 국장 옆으로 갔다.


{한강진 국장님.}

{네. 미사키 부장님.}

{지금 저희 쪽 볼리셔니스트들은 어디에 있나요? 아직 병원인가요?}

{일단 건강상태는 다들 좋아져서, 현재는 퇴원하여 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아...}

{송환은 내일 정도에도 가능할 겁니다. 준비가 끝나면 알려주십시오.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죠.}


말이 에스코트지 비행기 뜨는 것까지 보겠다는 말이었다. 미사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괜찮다면 오늘 잠깐 만나 봐도 될까요? 송환은 이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까지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송환도 결정되었기에 못 만나게 할 이유는 없었다. 건강상태 확인 같은 것도 직접 봐야 될 테니까. 한강진 국장은 옆의 정은정 과장을 불렀다.


“정 과장.”

“네. 팀장님.”

“미사키 부장 모시고 1층에 좀 내려가 주게. 볼리셔니스트들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는군.”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잠시 뒤 정은정 과장과 염하린, 미사키 세 명이 회의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정은정 과장의 인도로 계단을 내려간 후, 복도를 지나 건물 구석으로 갔다. 두 개의 문 앞에는 각각 함성필 대리와 박찬율 대리가 경비 중이었다.


{남자 세 명은 이쪽 방에, 미유키는 여자라서 따로 방을 두었습니다.}


미사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미유키의 방 앞으로 움직였다. 그걸 본 정은정 과장이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나무문 열리는 소리가 느릿하게 복도 안쪽으로 울려 퍼졌다. 방 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미유키와, 그 옆 의자에 앉은 윤민서 대리가 있었다.


{!!}

{!!}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미사키와 미유키의 시선이 연결되었다. 나이 차가 나는 자매였음에도, 쌍둥이에 가까울 정도로 둘은 닮아 있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확인하자마자 뛰어나가 뜨겁게 포옹했다.


정은정 과장은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저렇게 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곧 헤어지고 만나기 쉽지 않을 상황이 올 것이라니. 서글픔에 가슴 언저리가 뻐근해졌다.


“......”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빛만을 교환할 뿐이었다. 결의에 찬 언니의 눈과, 희망이 보이는 동생의 눈. 그렇게 둘은 한참을 안고 있다가 서서히 떨어졌다.


미사키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곧 괜찮아질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을 뒤로하고, 미사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손짓으로 동생을 진정시키며 방에서 나왔다. 이윽고 방문이 닫혔고 그녀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입니다.}


순서상 나머지 3명을 볼 차례였다. 역시 정은정 과장의 인도 하에 그녀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에도 문은 천천히 열렸다.


그렇게 문이 활짝 열리고, 방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이 시선을 마주할 때가 되었다.


* * * *


카츠노 미사키가 카츠노 미유키를 만난 직후, 1987년 12월 4일 금요일 16시 12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1층 복도.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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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5화 : 추적(Pursuit) (1-2) 20.04.27 53 0 12쪽
74 5화 : 추적(Pursuit) (1-1) 20.04.26 54 0 10쪽
73 4화 : 그릇(Vessel) (6-3) 20.04.25 66 0 13쪽
72 4화 : 그릇(Vessel) (6-2) 20.04.24 52 0 12쪽
71 4화 : 그릇(Vessel) (6-1) 20.04.21 61 0 13쪽
70 4화 : 그릇(Vessel) (5-4) 20.04.20 55 0 8쪽
69 4화 : 그릇(Vessel) (5-3) 20.04.16 57 0 15쪽
68 4화 : 그릇(Vessel) (5-2) 20.04.13 55 1 11쪽
67 4화 : 그릇(Vessel) (5-1) 20.04.12 55 0 11쪽
66 4화 : 그릇(Vessel) (4-3) 20.04.11 56 0 9쪽
65 4화 : 그릇(Vessel) (4-2) 20.04.10 60 0 10쪽
64 4화 : 그릇(Vessel) (4-1) 20.04.09 60 0 17쪽
63 4화 : 그릇(Vessel) (3-4) 20.04.08 52 0 15쪽
62 4화 : 그릇(Vessel) (3-3) 20.04.06 58 0 11쪽
61 4화 : 그릇(Vessel) (3-2) 20.04.05 61 0 10쪽
60 4화 : 그릇(Vessel) (3-1) 20.04.04 68 0 12쪽
59 4화 : 그릇(Vessel) (2-3) 20.04.03 70 0 14쪽
58 4화 : 그릇(Vessel) (2-2) 20.04.02 72 0 14쪽
57 4화 : 그릇(Vessel) (2-1) 20.04.01 74 0 13쪽
56 4화 : 그릇(Vessel) (1-4) 20.03.30 72 0 9쪽
55 4화 : 그릇(Vessel) (1-3) 20.03.29 82 0 13쪽
54 4화 : 그릇(Vessel) (1-2) 20.03.28 72 0 16쪽
53 4화 : 그릇(Vessel) (1-1) 20.03.27 72 0 13쪽
52 3화 : 상어(Agent Shark) (6-5) 20.03.25 69 0 18쪽
» 3화 : 상어(Agent Shark) (6-4) 20.03.24 6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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