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_3화 : 지랄도 정도껏 해야
■ 만득 포로가 되다
임시로 지은 장막에는 여진 두목과 부두목
박부사, 궁주, 만득만 있었다.
이태조는 부두목에게 느닷없이
단도 하나를 쥐여 주며
"나를 인질로 잡고
저 만득 장군을 잡아 가게!"
"이 생뚱맞게 무슨..."
황당해 하는 부두목에게 두목이
웃으며
"무슨은 무슨!
다 같이 살아 남자는 이야기지...
자네는 명나라 군사에게 돌아 가서
난 이 장막에서 난동을 피우다 죽었고
자네는 혼란한 틈을 타고
어르신을 위협하여
만득 장군을 인질로 잡았다고 해라
그러면 명나라 군사는
모든 인질들을 석방할게다...
그 다음은 가면서 이 아게(만득)의 말을
듣고..... 모두 살아서 만나자"
두목이 그말을 하니 부두목이
어찌 돌아 가는 지 대충 감을 잡고
"이 소평 읍성 안에 있는 민간인들을
위한 연극 같은 거로군요!"
즉시 그는, 이 태조 목에 칼을 대고
장막 밖으로 나서서
호기롭게 외친다.
만득이 뒤에서
"딴 짓하면 너 뿐만 아니라
애 포함해서 모두를....
찢어 죽일 수도 있다..."
"알고 있소!"
자신들이 가져온 군량과
약간의 무기등을 급히 챙기고는
이 작전에 투입된 여진인들이
말을 타거나
수레를 끌고 불이나케 소평 읍성을
나섰다.
만득은 수레에 순순히 올랐는데
복장은 갑옷을 입은 채였다.
부두목 이외의 모든 여진인들은
이 상황이 믿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믿을 이유도 없었다.
가는 곳 마다 조선 백성들이
쇠스랑이나 괭이를 들고
나섰지만 만득과 이상하게 섞여
들어온 사람(?)들의 만류로
무마되었다.
화주목 군사들이 뒤따르며
혹시 딴 짓은 안하는지 감시했고
화주목 부터는 조선군은
더 이상 그들을 감시 하지 않고
화주목으로 돌아 갔다.
올 때에도 그렇게 동북면 여진인들은
적이나 다름없는 서 여진인들 뒤에
1만이라는 명나라 군사가 있다는
소문만으로
협박 반 설득 반으로
왔으니 돌아가는 것도 쉬웠다.
이 태조를 협박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전이어서
다행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니 느려서
두만강을 건너려 할 때가 소평읍성을
떠난지 한달 지난 4월 쯤이 되었다.
그 사이 각 부족의 우두머리들끼리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것들을 알아 들었고
만득이 이 작전이 끝나고 일어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해서
모두 동의를 했다.
부두목이,
강을 건너기 20십리(8km)전에
"쿠나하(만득) 장군! 이제 두만 강을
건너면 명나라 놈들의 척후병들이
깔려 있소."
만득이
"지금 묶어라!"
"아게! 미안하오!"
몇 놈이서 밧줄로 묶으려는 것을
"제대로 좀 해라!
수갑과 차고(발 수갑)를 가져 와서
묶어야 저 놈들이 믿지 않겠는가?"
"죄송해서 그럽니다!"
"전장에서는 눈꼽만큼의 인정도 없다.
조금이라도 둔다면 누가 믿겠는가?"
보름전에,
겉의 옷감을 뜯어 애들 오줌을 부어
쇠비늘이 녹 슬게 해둔 낡아 빠진듯한
갑옷을 입었다.
만득은 상투를 풀고 난발을 한 다음
윗통을 벗고
채찍으로 치게하니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 져 나간다.
강변에 도착하여 야영을 하면서
만득과 여러 부족의 우두머리들과
많은 얘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
영락없는 패배한 장군 형상의
만득을 보고 여진인들이
혀를 내 두른다.
귀신도 속겠는데
명나라 군사 인들 오죽하겠는가?
명나라 영채 앞에 소가 끄는 수레에
봉두난발을 한, 낡은 갑옷의
덩치가 산 만한 만득을 태우고
나타났다.
쇠사슬로 묶고 차꼬를 찬 장군을
잡아 온다는 보고는 이미 두만강을
건너기 전에 알려 두었었고
척후들을 풀어 그 포로를
어찌 대우하는 가를 멀리서 보게했고
오는 도중 결정적으로
만득이 뭐라고 하자 여진인들이
수갑을 풀고 갑옷을 벗기고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등에다 인정사정 두지않고
채찍질을 하는 것을 보고했으니
안 믿을래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부두목이 명나라 정벌군 대장의
장막에 들어 가서
조선으로 들어간 경과를 보고하는데
"저희들이 두만강을 넘어서서
들어 가니 이미 많은 부족들이
명나라 군사 1만이 강너머에 있다는
소문이 퍼져
우리 서 여진 부족들과는
적대적이지만
아무런 마찰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중 한 부족을 지나갈 때
그 부족 우두머리가
'이 성계 장군이 근처를 다니는데
이 태조와 부딪히지 말라' 그리고
'만일 이 태조가 공격 받았다는
소문이 난다면 명나라 1만이 아니라
100만이 와도 항전하겠다'는
경고를 들었다한다.
"그리고 화주목 쯤 오니
소문이 나서인지 성문을 잠그고
공격태세를..."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소평읍성에 조선말을 하는
가족들과 여진사람들을
함께 들여 보내 그 작은 성을
함락하였고
공략 목적지 쇠미골이 가까이
다가갔는데, 철령이 문제인지라
철령을 치기위해 그 읍성에서
준비를 하는데
이 태조가 읍성 앞으로
와 있다는 척후의 보고를 듣고 놀라
이 태조를 만나러 갔었다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 동안 겪은 일을 낱낱이 고하고
전투 상황과 경과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패전해서 모두가 항복한
상태에서 장막안에서
자기들의 대장이 적의 칼을 빼앗아
싸우다가 죽고 그 혼돈의 상황에서
우연한 기회에
자신은 이 태조를 인질로 삼아
모든 여진 사람들을 무사히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그 증거로 그 읍성에서
주장(장군중의 대장)을
인질로 삼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조선군이 그리도 쎈가?"
"쎄다기 보다는
호랑이가 말들을 겁박하여
우리의 기동력을 무너뜨렸고
그 성의 숨겨진 뒷문을 몰라서
우리 군사들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
패착이라 생각합니다."
명 나라 장수는 조선군의 전력이
별 것 없다는 그의 말에 안도하며
"그래! 잡아온 그 장수를 데려 오라!"
꽤재재한 얼굴에 봉두난발!
오줌 지린내에,
누런 코가 흐르며,
갑옷은 둘렀으나 곳곳에 뜯어져
녹슨 갑옷 비늘이 보이고..
손에는 검은 쇠로 된 수갑을 차고
막 차꼬를 풀어 놓으니
비틀비틀 걷는 것을
여진 병사 대 여섯이 그 거인을
부축하여
겨우 장막 안으로 데려 왔다.
"너는 누구이고 소속이 어디냐?"
명나라 병사들 중엔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없어
여진 사람중에 하나가 조선말로
통역을 했다.
"나는 철령위 병마사 철산장군이자
회령부사이다!"
정벌군 장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째, 현역장군이자 현직 부사라면
조.명 사이에 외교 문제가
심각 아니 복잡해 진다는 이야기이고
둘째, 쇠미골에서 조장군을 실력으로
꺽었다는 정말 막강한 장군이
잡혔다는 ...
개코나!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자신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판단한 그 장수는
즉시 보고서를 황궁으로
보냈다.
이런 말이 있다.
왜(일본)놈들의 대장이 죽으면
모든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되(여진/만주)놈들의 대장이 죽으면
그 다음놈이 대장이 되어
끝까지 항거하고
중국놈들의 대장이 죽으면
상부에 보고하러 간다...
조선은 어떨까?
아마 대장이 죽으면,
같은 계급의 다음 놈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다가 막상 적이 처들어 오면
하나가 되어 싸운다.
어쨋든, 모든 상황 보고와 단동으로
들어 가겠다는 파발을 띄우고 나서
그 정벌군 대장은 만득에게 와서
손수 수갑을 풀고
의자에 앉힌 다음 술을 가져다 주어
위로 했다.
"장군!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소!
이 난감한 상황을 이해해주시오"
만득은 포로지만 조선군 장군으로,
애매한 대접을 받아 가며
서쪽으로 이동했다.
말이 5천이지 실질적인 군사들은
기마병 500 이며 500은 보병인
서쪽 여진인들은 보병 500은
노인, 여자, 아이들과 천천히
따르게하고
명나라 군사들과 동행해서
급히 단동(압록강을 건너면 있는
중국의 첫번째 마을)으로
10일 만에 왔다.
주둔하고 있던 5천의 명나라 군사와
합세했다.
■ 봐 주는 것도 정도란게 있는 법
그럼, 만득 장군이 잡혀 간 후의
조선의 상황을 보자면
이태조는 쇠미골 병사들과 함께 한양으로
와서 상황과 대책을 논의했다.
"아바마마!
이건 전쟁을 하자는 수작이 아닙니까?
처음, 건문제를 잡겠다고
아무런 협의 없이 국경을 넘은 것을
부드럽게 넘어 가줬고
두번째에는 최정예 군사를
보낸 것도 처음에 봐 주었으니...
두번째도 문제 삼지 않았고..
그런데 이전 서쪽 여진을 동원해서
국경을 넘어?
이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것!"
"주상! 잠시만 내말을 들으시오.
원래 홍건적의 잔당들이니 무도하고
예의를 모르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바르게 꾸짖지 않아
생긴일...
주상이 결심하시오.
내 아직 활을 들고 칼을 잡을 힘이
있으니..."
태종이 주위를 둘러 보니
눈에 별을 두개씩이나 단 사관(사초쓰는 직)
두명이 열심히 붓대를 놀리고
있다.
"어이 사관들 자리 좀 비켜 주게"
"전하!
어찌 이런 망극 분부를 하시나이까?
역사에 길이 남길 대사들을
치고 계시온대...!"
상석에 앉아 있던 태조가
"여봐라! 내 칼 아직 덜 갈았던가?"
그 한마디에
"전하! 하오면 어찌 기록하고
물러 나오리까?"
"과인이 요즘 사냥하는 재미에 빠져
북쪽으로 사냥을 가려하는데
이는 대 조선 군주의 지극히 사사로운 바라..
기록하지 않는 것이 아름다우리라!"
"일체?"
"일체!"
"다 갈았으면 가져오너라!"
- 작가의말
*여진 : 되놈이라 불리던 우리 민족의 일파
과거 숙신, 주선, 쥬션, 말갈, 물길등으로
불렸고 나중에 후금 그리고 명나라 말기에
청이 되어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여진을 가르키는 ‘되’는 북쪽이라는
순 우리말이며 된바람, 되놈, 된장등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쿠나하(큰아) - 첫째 아들이라는 뜻이고
만득의 본명이다.만주어 사전에
있는 사람 이름이다.
*차꼬 - 발에 차는 널빤지, 죄수는
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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