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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룡 님의 서재입니다.

굿바이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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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중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6:30
최근연재일 :
2022.08.10 09:05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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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45
추천수 :
472
글자수 :
528,736

작성
22.05.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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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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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12쪽

1. 용꿈

DUMMY

세종 21년(1439년) 정삼품 참의를 지냈던 홍상익은 가족과 함께 가솔들을

데리고 낙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상익의 낙향은 실제 낙향이 아니었다.


일 년 전,

홍상익은 젊은 선비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고 갔다가 토론을 하는 도중

몇 순배 돌아온 술잔을 마신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취기가 오른 홍상익은 이성계의 북벌지계가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으로

인해 수포가 되었다고 성토하며 태종을 도와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해서

공신의 반열에 오른 이저, 이거이, 하륜, 이무, 이숙번,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 신극례등을 일일이 거론하여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러나 젊은 선비들 속에는 문관출신인 이거이를 비롯해 왕자의 난에

참여한 공신들의 동문사제들이 앉아있었다.

홍상익의 말은 바로 왕자의 난에 가담한 당사자나 공신 후손들의 귀에

들어갔고 며칠이 지나자 세종의 귀에도 들어갔다.

조정에 출사 이후 홍상익은 너무 깨끗하게 살아왔었다.

그래서 세종은 그런 홍상익을 차마 귀양은 보내지 못하고 함평현감으로

좌천을 시켜버린 것이다.


‘휴-우! 구화지문 설시참신도(口禍之門 舌是斬身刀:입은 화가 나오는

문이며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라고 하더니 출사 이후 오랜 세월을

청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말 몇 마디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말을 탄 홍상익은 뒤를 돌아보면서 아들 둘과 함께 마차를 타고 오는

자신의 부인 문씨를 보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

종육품 정읍현감 임상근은 한양을 오가는 관도로 나와 전주부(현:전주)쪽을

바라보며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할 때가 됐는데? 홍상익대감이 역모를 꾀한 것도 아니고 강상의 죄를

범한 것도 아니니 당분간 함평에 머물다 금방 궐로 들어가게 되겠지!’

동헌에서 가지고 온 의자에 앉은 임상근의 뒤로 아전들이 줄지어 서서

임상근과 마찬가지로 전주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함!

‘며칠 동안 객잔의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홍상익은 짙은 하품을 하더니 말 위에서 졸기 시작했다.


- ‘허허허! 임금의 용상보다 더 기분 좋은 높은 자리로다.

내 발아래 날 좌천시킨 주상이 있으니, 크-허허허!’


홍상익은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궁궐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높이 올라왔나? 그만 용(龍)의 등에서 내려야겠는데 용을 부린 적이

없어서 어떡한다?’


꿈속에서 용을 타고 하늘을 날던 홍상익은 용이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자 용의 등에서 내리고 싶어졌다.


“영감! 왜 이제야 오십니까?”


낯선 목소리에 홍상익은 번쩍 눈을 떴다.


“누구신데 날 기다린 것이오?”

“예, 영감! 소생은 정읍현감인 임상근이라 합니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영감!”

“공무에 바쁠 시간에 정읍현감이 왜 나를 기다린 것이오?”


홍상익은 종육품의 현감인 임상근과는 일면식도 없었고 정삼품

당상관이었던 자신과는 관직에 있어 큰 차이가 나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영감! 소생은 평소 대감을 흠모하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 조선에 영감을 흠모하지 않는 선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소생은

영감께서 삼봉(정도전)의 문하에 계실 때부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생은 영감의 글인 동한지경(冬寒之境)을 읽으면서 뵐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현감! 구하기 어려운 동한지경을 어떻게 구해서 읽은 것이오?”


말에서 내린 홍상익은 임상근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한양에 있는 오랜 지기에게 부탁해서 구했습니다.

그보다 영감! 이 의자에 앉아서 소생의 절부터 받으시지요.”


임상근은 홍상익을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앉게 한 다음,

어제 내린 눈이 얼고 녹기를 반복한 차가운 땅에 엎으려 홍상익에게

큰절을 올렸다.


“허-어! 나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임상근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홍상익은 자신의 부인 문씨를

바라보았다.

‘부인! 내가 취중에 한 말로 인해서 함평 땅으로 좌천되어 가고

있지만 이렇듯 나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조선 땅에는 많이 있소.’


이곳까지 오는 내내 차갑고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문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영감! 현청근처의 기루에 조촐하나마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곳으로

가셔서 객고를 풀기 바랍니다.”

“......,”


임상근의 말에 홍상익은 대답 대신 부인문씨와 가솔들을 바라보았다.


“영감! 정읍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객잔을 통째로 빌렸으니 마님과

도령들을 그곳으로 모시면 될 것입니다.”

“임현령! 고맙소이다!”


홍상익의 대답에 임상근이 아전들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아전 한 명이 홍상익이 타고 온 말의 고삐를 잡았다.

홍상익이 말에 오르자 말은 천천히 정읍현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 본관의 귀한 손님이 오시니 모두 천향루로 가서 단단히

준비하고 있거라!”

“예, 나리!”


임상근의 엄명에 관기들의 우두머리인 행수는 천향루로 온 관기들에게

임상근의 명을 전했다.


****

정읍현청의 관기인 옥월향은 행수의 말을 듣고 단장을 마친 뒤

잠깐 졸고 있었다.


- “네가 호남기(湖南妓)중에서 가장 단가를 잘한다는 월향인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옥월향은 낮고 맑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예? 예, 전하! 단가를 가장 잘하는 것은 아니옵고 소인의 이름이

월향이 맞사옵니다.”


옥월향에게 말을 한 사내는 핏빛 왕관을 쓴 임금이었다.

임금의 용안을 본 옥월향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휴-우! 다행히 꿈이구나!’


“나리의 손님이 도착하셨으니 다들 나오너라.”


밖에서 표독스러운 행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옥월향은 동경을 들어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진 뒤 밖으로 나갔다.

천향루의 밖은 현청의 포졸들과 아전들이 모여 있었다.


‘아! 저 사람은 꿈속에서 본 사내가 아닌가?’


말 위에 앉아 서서히 천향루로 들어서는 홍상익의 얼굴을 본 옥월향은

너무 놀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낮은 비명을 지른 옥월향은 몸을 바로 잡기 위해 사람 키 높이의 석등을

한 손으로 짚고 시선은 홍상익에게 향했다.

‘호남기들이 아름답다고 하더니 저 여인의 외모는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시구나!’

석등을 짚고 있는 옥월향의 모습을 본 홍상익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옳지! 영감이 저 계집에게 관심이 있구나!’

홍상익이 탄 말 옆에서 홍상익의 표정을 살피던 임상근은 홍상익이

옥월향을 본 순간 변한 홍상익의 표정을 보았다.

홍상익이 말에서 내리자 행수 홍화는 관기들을 한 줄로 세워 홍상익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했다.


“영감, 어서 오시옵소서!”


관기들이 고개를 숙이자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선 홍화가 고개를 숙이며

홍상익에게 말했다.


“나를 반겨주어서 고맙네.”


홍상익이 들어선 기방은 사향 향과 분향으로 가득해서 얼었던 홍상익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홍상익의 뒤를 따르던 임상근은 발걸음을 멈추고 홍화를 불렀다.


“이보게 홍화! 저기 저고리에 도화(桃花)가 있는 계집을 대감의 곁에

앉히게, 자네는 내 곁에 앉고,”


“예, 나리!”


임상근의 말에 홍화가 곱게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홍상익이 자리에 앉자 홍화가 옥월향에게 눈짓을 했다.

옥월향은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홍상익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홍상익의 옆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꿈속에 본 사람이라고 가슴이 너무 떨리는구나.’


풍성하게 퍼진 치맛자락 밑으로 손을 숨긴 옥월향은 힘껏 주먹을

쥐고 긴장을 풀었다.

요리상이 들어오고 방안을 진동하는 국화주가 들어왔다.

술잔에 술이 따라지고 임상근의 명으로 맞은편 기방에서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영감! 천녀가 한 잔 더 올리겠사옵니다.”


주병을 든 옥월향이 홍상익에게 말했다.


“하하하! 영감! 곁에 앉은 옥월향은 매창불매음(노래는 팔되 몸은

팔지 않는다.)하는 기생으로 우리 정읍현청의 최고의 일패기생입니다.”


임상근이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그럼 내가 먼저 마시고 한잔을 권해야겠어.”


자신의 곁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옥월향의 얼굴을 본

홍상익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홍상익의 술잔이 홍상익과 옥월향 사이를 오고 갔다.

외모는 떨어지나 단가에 능한 기생이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단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방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추위에 떨면서 먼 길을 온 홍상익은 옥월향과 연거푸 마신 술에

금방 취하고 말았다.

그러자 임상근은 홍상익과 옥월향을 가마에 태워 현청으로 데리고 왔다.


“홍화! 저 사람은 정삼품 당상관이야, 쉽게 말하면 나와 자네를

한양으로 불러줄 사람이란 말이지. 저 계집, 옥월향에게 최선을 다해

모시라고 하게.”


임상근은 꿀물을 가지고 가던 홍화를 손짓으로 불러 말했다.


“예, 나리! 영감께서 한양으로 가시게 되면 천첩도 꼭 데리고 가야 합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어진 홍화가 더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알았네! 자네를 이곳에 두고 내가 무슨 낙이 있다고 혼자 한양으로

올라가겠나? 걱정말게,”


똑-똑!

말을 끝낸 임상근이 자리를 뜨자 홍화는 홍상익과 옥월향이 들어간

정심루의 객방 입구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정심루는 정읍현청의 부속건물인 객사로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의 숙소였다.


“형님! 어쩐......,?”

“쉬-잇! 영감마님 깨실라, 잠깐 나와.”


홍화는 옥월향을 데리고 마루 끝으로 갔다.


“월향아! 홍상익영감은 내가 임상근나리와 깊은 관계만 아니라면 내가

갖고 싶은 사내더구나! 오늘 밤 잘 모셔야 한다.”

“예,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옥월향은 홍화에게 받은 주전자를 받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홍상익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얼었던 몸이 술기운과 함께 풀리자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 누운 홍상익은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크-아-아-아!


- “이놈, 홍상익! 왜 내 등에 오르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냐?”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홍상익은 눈을 부릅떴다.


“허-억! 여기는 어디인가?”


놀라 상체를 세운 홍상익이 옷을 벗으려는 옥월향에게 물었다.


“예, 영감! 여기는 정읍현청이옵니다.”


옥월향의 대답에 홍상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월향아! 내가 어떻게 이곳으로 온 것이냐?”

“정읍현령 임상근나리가 영감을 이곳으로 모셨사옵니다.

대감! 꿀물이라도 한잔 드시지요.”


일어나 도포를 입으려던 홍상익은 다시 자리에 앉아 옥월향이 내민

꿀물 그릇을 받았다.


벌컥-벌컥!


“휴-우! 취기가 순식간에 달아날 정도로 시원하고 맛있구나!”


옥월향에게 빈 그릇을 내민 홍상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사로운 꿈이 아닌데 부인과 애들이 있는 객잔으로 가야 하나?’

불을 뿜는 듯한 용의 눈빛과 비늘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생각나는

꿈이었다.


- “영감!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아랫것들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습니까?”


며칠 전,

일찍 퇴궐한 홍상익이 부인 문씨를 안으려 하자 문씨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홍상익의 손길을 거부하며 한 말이었다.


‘괜히 꿈 때문에 부인에게 핀잔을 듣느니 차라리 이 아이와....,!’


홍상익은 머리를 돌려 곁에 앉아있는 옥월향을 보았다.

옥월향은 몸의 굴곡이 그대로 보이는 얇은 나삼 차림이었다.


“월향아! 나가서 술상이라도 가져오너라! 네가 준 꿀물이

뱃속으로 들어가서 또 술을 부르는구나.”


“예, 영감! 금방 대령하겠사옵니다.”


사-락 사-락!

홍상익은 다시 옷을 입는 옥월향을 겉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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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 복탕과 테트로도톡신 22.07.23 147 1 12쪽
77 77. 바로 잡다 22.07.22 153 2 12쪽
76 76. 알바와 희토류 22.07.21 157 2 12쪽
75 75. 백천승의 손자 백남정 22.07.21 152 2 12쪽
74 74. 재도의 보물을 가져오다 22.07.19 154 2 12쪽
73 73. 비단꽃향무와 진실 22.07.19 153 2 13쪽
72 72. 미군레이더로 바뀐 잡동사니 22.07.17 16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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