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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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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95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07 13:59
조회
386
추천
4
글자
12쪽

죄와 벌 1

DUMMY

1


사건은 현수의 나이 14살 때 벌어졌다. 현수는 단짝인 창현, 영배와 함께 학교와 동네에서 알아주는 장난꾸러기이자 개구쟁이였다. 물론 좋게 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불량학생이자 문제아였다.

지금의 현수를 보면 도저히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 시절 아버지의 폭력이 하루도 그치지 않던 그때의 현수는 반항아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현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선생님이건 친구들이건 간에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에 불만을 표출했고, 이유 없는 반항이 극에 달해 있었다.

천성적으로 여리고 낙천적이었던 현수가 그렇게 변한 것은 전적으로 후천적 환경의 영향이었다.

기껏 14살짜리가 반항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현수는 선생님들은 물론 동네주민들에게 골칫거리였다. 단순히 장난이라면 웃고 넘길 수 있었지만, 현수의 장난은 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현수와 단짝을 이룬 창현, 영배가 특히나 자주 괴롭히던 친구가 하나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창백한 얼굴에 키도 작고 말라서 또래의 아이들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아이였다.

현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약한 그 친구를 몹시 괴롭혔는데, 그 친구가 한 번도 대들거나 하는 법 없이 현수와 친구들의 장난과 괴롭힘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이 더 밉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현수는 마음과는 달리 일부러 더 괴롭힌 적이 많았다.

그날도 현수는 그 친구를 때리고 괴롭혔는데, 전날 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머니와 현수를 구타한 뒤라 그 친구를 괴롭히는 강도가 여느 때보다 심했다.

그 친구는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집으로 돌아갔고, 그 친구의 부모는 누가 그랬냐며 추궁했다. 그 친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이미 부모는 현수와 그 패거리들의 짓이란 걸 감지하고 있었다. 그즈음 현수의 악명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였다.

다음 날 그 친구는 결석을 했고, 그 친구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왔다. 현수는 선생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고,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오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현수는 그 친구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고, 며칠 후 그 친구가 학교에 돌아오던 날, 방과 후에 그 친구를 마을입구의 작은 숲으로 불렀다.

그곳은 현수와 친구들이 자주 어울려 놀던 아지트로 곧게 자란 나무들이 빽빽한 침엽수림이었고, 그 안엔 꽤 널찍한 연못이 하나 있었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포탄이 떨어진 자리인데 인근에 흐르던 냇물이 그쪽으로 흘러들어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친구를 작은 숲으로 데려온 현수와 친구들은 그 친구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못으로 밀어버렸다. 연못은 넓이에 비해 그리 깊지 않았다. 가장 깊은 곳이라 해도 현수의 허리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연못에 빠진 그 친구에겐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에 수영장은 물론 심지어 욕조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물을 무서워하는 친구였다.

현수와 친구들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사건의 원인이었다. 아니,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그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그 친구를 보며 현수와 창현, 영배는 웃고 놀리기만 할뿐 그 친구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고자질한 것에 대해 벌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때마침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섬뜩하게 번쩍이는 벼락과 함께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엄청난 빗줄기가 시야를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번쩍이는 불빛과 귀를 찢을 듯 매섭게 울리는 천둥소리, 순식간에 쏟아져서 지면 곳곳에 작은 내를 만들어낸 폭우에 대한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그 바람에 현수와 친구들은 허우적대며 연못을 들락날락거리던 그 친구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연못에 빠져있는 친구를 떠올리지 못하고 천둥벼락과 폭우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려움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천둥과 벼락이 마치 자신들을 뒤쫓고 있는 듯 착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그 친구가 아직 연못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부리나케 도망을 쳐서 집안에 처박혔다.

어쩌면 그때라도 그 친구를 떠올려 어른들에게 이야기했다면 그 친구는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현수와 친구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직 공포 그 하나였다.

집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공포를 삭이던 현수는 그 후로 며칠을 앓았다.

현수의 부모는 그때 현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열로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내뱉으며 혈기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현수의 모습은 오늘내일하는 중병자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그 친구의 사체는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에 발견되었다.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로 홍수가 나서 연못 속에 있던 그 친구의 사체가 떠내려간 탓이었다.

그 친구의 사체를 발견한 날 현수는 건강을 회복하여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경찰의 수사가 이어졌지만 폭우에 실족하여 죽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사인은 익사였다. 그 친구의 몸에 난 멍 자국 등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 당시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불어난 물에 떠다니다 바위 등에 부딪쳐서 생긴 것이라 치부했던 것이다.

그 친구의 부모가 믿지 못하겠다며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당시엔 갑작스런 물난리로 정신없던 터라 거기에 묻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미, 미안해. 나, 난······. 정말 그, 그럴 의도는 없었어. 믿어줘. 난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모든 것을 기억해낸 현수는 오열했다.

“여, 영진아······. 저, 정말······. 미, 미안해······. 미안해······.”

이제야 이름이 기억났다. 그때 죽은 친구의 이름은 영진이었다.

이영진.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현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영진아······.”

목 놓아 부르는 현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숲을 떠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며 가슴을 쥐어뜯던 현수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꿈속에 나타났던, 환각 속에 나타났던 그 아이, 그 아이는 분명 영진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영진이가, 한을 품고 죽은 영진이가 현수를 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현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꿈과 환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갑작스레 자신에게 나타난 기이한 몽유증상의 원인은 분명 어릴 적 현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끝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영진이의 짓이 분명했다.

“영진아. 정말 미안해. 하, 하지만······.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 난, 난 정말 몰랐어. 정말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이야. 정말 난 그럴 줄 몰랐어. 미, 미안해. 영진아. 날······. 요, 용서해 줄 수 없겠니?”

현수는 영진이 빠져죽은 연못을 향해 뇌까렸다. 서글픈 얼굴로 연못을 바라보는 현수의 눈엔 미안함과 두려움, 삶에 대한 욕구가 교차했다.

연못은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연못 한 가운데 어렴풋한 달빛이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가 너울너울 날아와 연못위에 떨어지며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현수는 몸을 일으켰다. 현수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있었고, 뺨은 창백했다. 마른 눈물자국이 길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영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게 행한 잘못을 생각하면 어떤 벌이라도 받아야겠지. 그동안 널, 널 잊고 있었던 것. 네가 그렇게 되었던 것. 그 모든 걸 잊고 있었던 건 정말 미안해. 모든 것이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네 고통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할 수도 없어. 앞으로도 절대 모르겠지. 아마 그럴 거야. 정말, 정말 미안해. 난······.”

목이 메어왔다. 영진이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사건에 대한 공포가 뒤엉켜 현수의 마음을 찢을 듯 아프게 했다.

“하, 하지만······. 네 뜻대로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아. 복수를 원하면······. 차라리 날······. 죽여줘.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줘. 그러지 않을 거라면······. 날 그만 놔줘. 영진아, 제발······. 제발, 날 좀 놔줘. 나 혼자 그런 것도 아니잖아. 창현이도, 영배도 같이 있었잖아. 내 인생을 망치고 싶겠지만······. 난······. 제발, 이제 그만 날 놔줘. 아니면 차라리 날 죽여줘. 제발, 영진아.”

현수는 울면서 애원했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아니,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는 지극히 당연한 욕구였다.

현수는 한동안 연못 앞에 엎드려 오열하다가 비틀비틀 위태로운 걸음으로 숲을 벗어났다. 불현듯 고향집이 보고 싶었다. 영진이의 집도.

시간은 어느덧 자정에 이르러있었다. 슬슬 잠이 올 시간이었다. 현수는 눈꺼풀이 감기는 것을 억지스레 참아내며 차를 몰았다.

어둠을 가르며 도착한 곳은 현수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이었다. 홍수가 난 후에 마을사람 반 이상이 떠났지만, 지금은 인근 지역의 개발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도시가 되어있었다.

현수는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살던 고향집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곳엔 다른 건물이 들어 서 있었다. 현수는 다시 영진이 살던 집으로 향했다.

영진의 집은 당시에도 마을 외곽의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역시 영진의 옛집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아담한 전원주택들이 오밀조밀하게 세워져있었다.

실망감을 뒤로하고 현수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창현과 영배를 만나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의 사건이후 현수는 창현과 영배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했다. 세 사람 사이에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현수, 창현, 영배는 연락을 끊은 채 살아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세 친구는 그날 이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 얼굴조차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의 마음속에 커다랗고 무거운 짐을 지고, 높다란 벽을 쌓아둔 채로.

현수와 연락이 되는 옛 친구들 모두 창현과 영배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연락처를 아는 친구도 하나 없었다. 현수는 둘의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운전석에 앉은 현수는 졸음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참아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듯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이 쏟아졌다.

‘안 돼! 잠들면 안 돼!’라고 이를 악물며 버텨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인 듯 무겁게만 느껴졌고, 의식은 서서히 깊은 곳으로 함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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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천도재 1 16.05.08 390 4 11쪽
31 죄와 벌 3 16.05.07 417 4 12쪽
30 죄와 벌 2 16.05.07 403 4 13쪽
» 죄와 벌 1 16.05.07 387 4 12쪽
28 퇴마의식 2 16.05.05 482 3 16쪽
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3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8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3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7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2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1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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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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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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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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