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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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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77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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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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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기이한 경험 1

DUMMY

1


다음날 아침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현수가 깨어난 곳은 역시 낯선 동네였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시원한 바람이 뺨을 부비고 지나는 어느 낯선 냇가 풀밭 위였다.

현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경지정리가 된 넓게 펼쳐진 논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현수는 발 앞에 흐르는 냇물에 얼굴을 씻었다. 시원한 물이 현수의 뺨에 부딪치자 몽롱하던 정신이 선명하게 맑아졌다.

현수는 인기척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 경운기를 몰고 가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수는 손을 들어 경운기를 세웠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뭐라고?”

경운기 소리 탓인지 노인은 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현수는 큰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노인은 그래도 들리지 않는지 경운기 엔진소음을 줄이고 경운기에서 내려 현수에게 다가왔다.

“뭐라는 겨?”

“여기가 어디냐고요?”

“여기? 여긴 B리 인디, 그건 왜 묻는 겨?”

노인은 현수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의심쩍은 눈으로 살폈다.

“B리요? D시와 먼가요?”

“D시? 거긴 여기서 반시간은 더 가야 하는디?”

“반시간이요?”

“근디 그건 왜 묻는 겨? 당신 혹시 간첩아녀?”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간첩 아니에요. 요즘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보다 가까운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나요?”

노인의 의심에 웃음 띤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현수가 물었다.

“버스정류장은 저쪽에 있어.”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버스정류장은커녕 인가하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푸른빛으로 일렁거리는 논과 밭뿐이었다.

“얼마나 가면 있나요?”

“한 십분 걸어가야지.”

“이쪽으로 쭉 가면 되나요?”

“그려, 이 길만 쭉 따라가면 돼. 그런디 정말 간첩아녀?”

“예? 아, 아니에요. 이 길만 따라가면 된다고요? 고맙습니다.”

현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간첩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인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노인은 아직도 음울했던 과거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이 가리킨 시멘트 길을 따라 걷는 내내 현수의 머릿속엔 기대감과 함께 설렘이 넘실댔다. 비록 어제보다 더 먼 곳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장 박사가 카메라로 촬영을 했고 자신을 살폈으니 곧 원인을 알게 될 터이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십여 분을 걸었지만 버스정류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이 잘못 가르쳐준 것 같았다. 현수는 혹시 사람이 없나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쩌면 노랫소리인지도 몰랐다. 현수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느낌에 젖었다.

현수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시멘트가 깔린 농로를 벗어나 좁은 수로를 지나 숲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진 않았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린지, 우는 소린지, 웃는 소린지, 아니면 노래하는 것인지,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소리의 근원을 찾아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현수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여느 시골마을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숲이 아니었다. 그것은 뭐랄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뭔가 기이한 느낌을 주는, 음산하면서도 모호하고 신비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켰다.

현수는 그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에 나뭇가지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따라서 빽빽한 관목을 헤치고 나아갔다.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명확했다.

현수가 숲 한가운데에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짙게 내리깔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다란 나무들 틈새로 먹구름 자욱한 음울한 하늘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매섭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의문의 소리를 삼켜버려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현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숲을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장 박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막 숲을 빠져나오는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숲의 입구에서 바라본 숲 밖의 풍경은 현수가 숲에 들어서기 전과 마찬가지로 화창한 날씨였다. 비가 왔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놀라 몸을 돌렸다. 숲에는 아직도 매섭게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현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숲 안과 밖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전히 숲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짧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들어본 적 없었다. 기후의 변화로 국지적인 지역에 국한되어 비가 내리거나 돌풍이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보도를 접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좁은 구역에 한정되어 비가 내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숲은 기껏해야 지름이 1백 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원형이었기 때문이다. 농로에 인접한 숲을 가운데 두고 드넓은 논밭이 감싸고 있었다.

숲은 마치 광활한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작은 섬과 같았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숲을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비가 내린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숲에만 먹장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비를 뿌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결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현수의 몸도 어느새 흠뻑 젖어있었다. 현수는 이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럴 수도 있는 건가?’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장 박사의 전화였다.

“현수 군? 나 장 박사네. 자네 지금 어디 있나?”

“예, 박사님. 전 지금 B리라는 곳에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어떤 노인이 B리라고 했습니다. D시와는 반시간 거리에 있답니다.”

“그래? B리라. 이거 골치 아프군. 좀 더 자세한 위치를 알아보게.”

“예, 그러겠습니다. 곧 연락드리지요.”

전화를 끊고 숲을 돌아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먹구름이 걷혀있었다. 의문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현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묘한 소리에 이끌려 숲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근처에 인가하나 보이지 않는 이 넓은 땅에 갑작스레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나타났다는 말은 적절치 않았다. 본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논의 반 정도가 모내기를 마친 상태였다. 아무리 이앙기를 사용한 것이라곤 해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저렇게 넓은 공간에 걸쳐 모내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어제 끝내지 못한 것을 오늘 이어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아까는 물만 가득했던 것이었다. 현수는 분명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현수는 모내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현수의 물음에 모판을 들고 옮기던 중년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요?”

흠뻑 젖은 추레한 모습의 현수를 본 중년여인의 표정은 묘했다. 웬 이상한 녀석이 갑자기 나타났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예, 여기가 어딥니까? D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D시? 저기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요. 삼십분 마다 차가 올 거요.”

중년여인이 가리키는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현수가 서 있는 바로 옆, 열 걸음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까는 분명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현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저기······. 아까 비가 내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비? 그게 뭔 소리요? 술 마셨소? 이 화창한 날에 비라니, 젊은 사람이 왜 그래요?”

질책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못 보셨습니까? 아까 분명 저 숲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는데요.”

“숲이라니 그건 또 뭔 소리요? 여기 숲이 어디 있단 말이요?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중년여인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숲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버스정류장 뒤로 몇 그루의 소나무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현수는 망연자실하여 숲이 있던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모내기가 완료된 논이 전부였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중년여인과 곁에 있던 다른 여인이 현수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관자놀이 쪽으로 가져가 돌렸다. 그들의 눈엔 현수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리지도 않은 비에 관해 묻고, 있지도 않은 숲을 말하는 사람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현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이럴 수는 없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야. 내, 내가 미친 것인가? 진정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들은 것이란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현수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건 꿈일 거야.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렇게 자위해 보았지만 꿈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수의 흠뻑 젖은 몸이 그 증거였다. 숲의 존재유무는 차치하더라도 비가 내린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지금의 상태를 성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을 대어 놓은 논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 만약 논에 빠졌다면 옷이 젖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진흙이라도 묻어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현수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버스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멈췄다.

“탈거요?”

기사의 말에 현수가 몸을 일으켰다. 주머니를 뒤져 차비를 꺼내고 올라타려는데 기사가 한 마디 했다.

“어디 빠지셨소? 옷이 왜 그 모양이오?”

현수는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랐다.

“물기나 좀 짜지 그러셨소.”

기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약간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였다. 버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농번기라 그런지 버스를 이용하는 손님이 없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눈을 찡그리며 생각에 고민하고 있는데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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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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