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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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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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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7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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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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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7쪽

숨겨진 과거 2

DUMMY

2


현수가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목격한 장 박사가 입을 열었다.

“자, 현수 군. 무엇이 보이는가? 자넨 지금 편안해. 절대 누구도 자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어.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자넨 지금 어디에 있나? 말해보게. 어서!”

“수, 숲이에요. 나, 나무가 빽빽한 숲 속이에요.”

“숲? 숲이라고? 좋아. 다른 것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가?”

장 박사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약물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위험을 초래할 만큼 많은 양이었지만 다행히 현수의 몸이 견뎌낸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보여요. 하나, 둘, 셋······. 네 명이에요.”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나?”

“없어요. 보이지 않아요.”

“아이들이 뭘 하고 있지?”

“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그 애와 마주하고 서 있어요. 무릎 꿇은 아이의 눈엔 두려운 빛이 가득해요. 무서워하고 있어요. 무서워해요.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서 있는 아이들은 뭐하고 있지?”

“아이들이 그 애를 괴롭혀요. 때리고 꼬집고 욕해요. 그 애가······. 아, 아프다고 해요. 너무 아프다고······. 잘못했다고 빌어요. 그 애가 울어요. 엉엉 울어요. 아파요. 너무 아프데요. 하, 하지 말라고, 제발 그만 하라고······. 울고 있어요.”

현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현수는 울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자네도 거기 있나?”

“나, 나도 거기 있어요. 그 애가······. 아프다고 울어요. 계속해서 울고······. 비, 빌고 있어요. 그만하라고 빌어요.”

“자네는 무얼 하고 있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자네인가?”

“아, 아니에요. 내, 내가······. 그, 그 애를 괴롭혀요. 내, 내가······. 다른 애들에게 시켜요. 내, 내가 왜 그, 그 애를······.”

“그렇군. 좋아. 그럼 다른 세 아이는 누구인가? 친구들인가?”

“두 명은······. 친구에요. 하지만 무릎 꿇은 그 애는······. 친구가 아니에요. 그 애는······. 친구가 없어요.”

“좋아. 친구들이 누군지 알겠는가?”

“예, 알아요. 창···현, 영···배. 창현이와 영배. 기억나요. 걔들은 제일 친한 친구들이에요.”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해낸 현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군. 좋아. 그럼 다른 아이, 무릎 꿇고 있는 아이는 누군지 알겠는가?”

“모, 모르겠어요. 기억나지 않아요. 그 애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현수는 거칠게 도리질했다.

“그렇군. 알았네.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왜 그 애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그 애가 울어요. 눈물을 흘려요.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때리지 말라고 빌어요. 그런데 난, 우리는······. 믿지 않아요. 그 애는······. 그 애는 거짓말쟁이에요. 우, 우리는 그 애를 때려요. 아주 세게 때려요. 그 애가 아프데요. 너무 아파서 죽겠데요.”

현수는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양 볼을 씰룩거리며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왜 그 애를 때리는 것이지?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지?”

“그 애가······. 그 애가 고자질했어요. 서, 선생님께 일러바쳐서 우리가······. 혼났어요. 선생님께 불려가 맞았어요. 엄마가 불려왔어요. 엄마가······. 막 우, 울었어요. 어, 엄마가······. 우, 울었어요. 그 애 때문이에요. 그 애 때문에 엄마가······. 울었어요. 그 애가 나빠요. 난 그저······. 자, 장난이었는데······. 그냥 장난 친 것뿐이었는데······.”

현수는 화가 났는지 이를 악물고 인상을 구겼다. 현수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분노에 휩싸여있었다. 그 아이에 대한 미운 감정이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며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알겠네. 진정하게. 자, 이제 무얼 하고 있나?”

“벌을 받아야 해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해요. 벌을 받아야 해요. 벌을······.”

현수는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떤 벌을 주려고 하나? 어떤 벌을 주고 있나?”

“내가 말했어요. 창현이와 영배에게 말했어요. 그 애를 연못으로 데려가라고······. 그 애가······. 울면서 발버둥 쳐요. 안 가겠대요. 하지만 벌을 받아야 해요. 그 애가 울어요. 막 울면서······. 두 손을 비벼요. 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살려달라고 빌어요. 하지만 벌을 받아야 해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해요. 그래야 해요. 아,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아버지가 그랬어요.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 알겠네. 벌을 받아야지. 그래서 어떻게 했나? 그 애를 연못에 데려가서 어떻게 했나?”

장 박사는 현수의 과거, 현수가 기억하지 못하는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애를 연못으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그 애를 연못에 빠뜨렸어요. 그 애의 옷이 진흙탕에 흠뻑 젖었어요. 그, 그걸 보고 우리는 웃어요. 그 애가 연못을 빠져나와요. 다시 그 애를 밀쳤어요. 그 애는 울면서 막 팔을 휘저어요. 소리를 질러요. 연못은 얕아요.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아요. 그 애가 허우적대며 연못 밖으로 나오면 다시 밀쳐요. 그러면 그 애는 다시 나오려고 허우적대고, 우리는 다시 밀쳐요. 그 애가 소리쳐요. 제발 그만하라고 빌어요. 장난하지 말라고······. 무섭다고······.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쳐요. 하지만 벌을 받아야 해요. 벌을 받아야 해요······.”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이 섬뜩했다.

“자네와 자네 친구들은 뭐하고 있나?”

“그 애를······. 울며 소리치는 그 애를 보고 웃고 놀려요. 창현이가 웃으며 막 손가락질하고 놀려요. 영배도 배꼽을 잡으며 웃어요. 나, 나는······. 나는 웃지 않아요. 나는, 나는 말해요. 넌 벌을 받아야 해.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해. 벌을 받아야해······.”

조금 전과 같이 현수의 얼굴에 섬뜩하고 잔인한 미소가 서렸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그러니 계속 얘기해보게.”

장 박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비, 비가 와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막 쏟아져요. 벼락이 쳐요. 천둥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요. 무서워요. 번쩍번쩍하는 벼락과 천둥소리가 무서워요. 빗방울이 거세요. 비가 많이 와요.”

“그렇군. 비가 오는 군. 그 애는, 그 애는 뭐하고 있나? 아직도 연못에 빠져 소리치고 있나? 살려달라고?”

장 박사의 물음에 현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애가······. 보이지 않아요. 그 애가······. 사,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말해보게.”

“그 애가 살려달라고 막 울면서 허우적대다가 사라졌어요.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 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그 애가······. 사라졌어요.”

현수의 목소리가 잦아지면서 덜덜 떨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낯빛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사라져? 어떻게 된 일인가? 말해보게. 현수 군.”

“그 애가······.”

현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창백해진 얼굴과 파리한 입술, 얼굴의 경련이 심해지며 신호음이 점점 빨라지면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현수 군! 진정하고 말해보게. 그 애가 어떻게 되었나?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현수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경련이 심해지고,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악다문 입술 사이에서 핏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거칠게 뒤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이보게. 현수 군. 진정하게. 진정해!”

장 박사는 현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쳤다. 하지만 현수의 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창백해진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파리한 입술사이로 쏟아내는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호음도 무섭게 빨라지며 높아지고 있었다.

장 박사는 고심했다. 이대로 두면 현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멈추고 싶지 않았다. 현수의 숨겨진 과거, 어쩌면 현수에게 일어난 병증의 원인일지도 모를 사건의 중심에 깊숙이 다가간 지금,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물을 더 투입하는 것은 위험했다.

장 박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현수의 몸에 강한 경련이 일더니 갑자기 비명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으악!”

그 바람에 장 박사는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질 뻔했다.

현수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최면상태에서 깬 듯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면 중에 깨어나는 것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최면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현수 군. 괜찮은가?”

“무, 물 좀 주세요. 무, 물 좀······.”

현수가 애원했다. 장 박사는 작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뚜껑을 따고 현수의 입에 물려주었다. 현수는 순식간에 물병을 비웠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장 박사에게 물을 더 달라고 말했다. 장 박사는 다시 한 병을 따서 현수에게 물려주었다.

현수는 그것마저 순식간에 비우더니 이제야 갈증이 해소되었는지 장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박사님. 저 좀 풀어주세요. 전 지금 가야한다고요. 지은이의 오해를 풀어줘야 해요.”

장 박사는 현수의 말을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현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가?”

“예? 기억이요? 전 갑자기 뭔가에 맞고 쓰러진 후, 이렇게 여기 묶인 것 밖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박사님! 절 풀어주세요.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전 지금 지은에게 가봐야 해요. 지은의 오해를 풀고 꼭 돌아올 테니 제발 좀 풀어주세요.”

“자네 정말 최면상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최면이요? 그건 제가 박사님을 뵌 첫날 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지금······.”

현수는 장 박사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 박사는 현수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면밀히 살펴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현수는 정말 최면을 걸었다는 것 자체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군. 자네가 기억하는 사실을 말해보게.”

“아까 박사님이 제게 무슨 약을 주사한 것 같았는데, 그게 뭐죠? 그걸 맞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마음이 편안하고 몸에 힘이 빠졌어요. 그게 뭐였죠?”

“음······.”

장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수에게 일어난 일, 그 바로 앞까지 다가갔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현수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거부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현수는 분명 말했다. 그 애가, 현수와 친구들이 괴롭히던 아이가 사라져버렸다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고······.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박사님! 제발 절 풀어주세요.”

장 박사가 고심하고 있을 때 현수의 외침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장 박사는 못들은 척 외면했다.

“오늘은 다른 방식으로 자네의 병증을 관찰해 볼 걸세. 두려워하진 말게. 모든 게 잘될 테니까.”

그러면서 장 박사는 사방 벽에 설치된 카메라 전원을 켰다. 카메라의 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전에 현수의 방에 설치되었던 것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박사님! 전 가야한다고요. 제발······.”

현수는 다시 한 번 호소했다. 하지만 박사는 여전히 모른 척 듣지 않고 작은 컵을 현수의 입가로 가져왔다.

“이, 이게 뭡니까?”

“약일세. 수면제지. 자네에게 편안한 잠을 줄 거야. 자, 마시게.”

작은 컵에 든 것은 흰빛이 감도는 액체였다. 장 박사는 현수의 입에 컵을 가져갔다. 현수는 거칠게 도리질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바람에 컵에 든 액체가 쏟아져 현수의 얼굴을 적셨다.

“현수 군. 이러면 안 되네. 자넨 환자야. 의사의 말을 잘 따라야지.”

장 박사의 얼굴엔 화난 빛이 역력했다. 장 박사는 현수의 얼굴에 묻은 액체를 닦아내고, 컵에 다시 액체를 담았다.

“자, 마시게. 두려워하지 말게. 절대 자넬 해하지 않아.”

오늘만 수차례 반복해서 듣는 말이었다.

‘자넬 절대 해하지 않아. 해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두려워하지 말게.’

현수는 슬슬 짜증이 치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장 박사가 왜 이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 박사가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현수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장 박사를 몰아세우고 싶진 않았다. 뭐랄까, 장 박사의 이런 모습이 측은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좋습니다. 마시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내일은 절 보내주십시오. 지은이의 오해를 풀어주고,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박사님보다 제가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리고 이것 좀 벗겨주세요. 갑갑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현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대로 아무리 소리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장 박사는 지금 뭔가에 단단히 홀린 것이 분명해보였다. 차라리 장 박사의 말을 따라주는 편이 나을 듯 보였다. 어차피 내일 깨어나면 자신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 빤하기 때문에 그때 지은이에게 가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잘 생각했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내일 자네를 보내주겠네. 대신 내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말이야. 어떤가?”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것 좀 벗겨주세요. 절대 딴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아네. 자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 건 알고 있네. 하지만 풀어주진 않을 거네.”

“왜요? 저를 믿으신다면서 왜 풀어주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건 실험을 위해서야. 이렇게 묶인 상태에서, 절대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상태에서도 자네의 병증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네. 절대 자네를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믿어주게.”

장 박사는 현수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눈빛도 맑고 깊었고, 말투도 부드럽고 정감이 서려있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약은 필요 없습니다. 자정이 지나면 곧 잠들 테니까요.”

현수는 장 박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장 박사가 실험하려는 것은 자신도 생각해 보았던 것이었다. 묶인 상태, 혹은 방문을 외부에서 잠근 상태에서도 그런 몽유증상이 나타나는지, 나타난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다. 한 번쯤은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약은 먹기 싫었다. 자지 않으려 그렇게 노력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정이 넘으면 잠에 빠져든 현수였다. 약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고맙네. 이해해줘서. 하지만 약은 마시게. 이것도 실험의 일종이야. 약, 그러니까 수면제에 의한 강제적 취침에서도 자네의 병증이 발생하는지 알고 싶은 거네. 그러니······.”

“알겠습니다. 주세요.”

현수는 장 박사의 말을 끊었다. 장 박사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현수의 입에 작은 컵을 가져가 액체를 흘려주었다. 액체의 맛은 약간 썼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약을 마신 현수는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차 하품하는 간격이 빨라지더니 곧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현수가 잠든 것을 확인한 장 박사는 카메라를 점검하더니 현수의 머리에 가죽으로 된 머리띠를 씌웠다. 이마에 걸쳐진 머리띠 중간엔 소형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소형카메라의 작동상태를 확인한 장 박사는 잠시 현수의 잠든 모습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문 앞에 선 장 박사는 다시 한 번 현수를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불을 끄고 나갔다.

덜컹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실에서 밖으로 통하는 문은 그곳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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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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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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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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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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