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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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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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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3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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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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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몽마? 1

DUMMY

1


묘화부인과 현수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장 박사의 차가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섰다. 장 박사에게는 동행이 있었다. 회색빛 승복과 반들반들한 민머리로 보아 묘화부인이 말하던 명암이라는 법명의 승려인 듯했다.

명암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엔 근엄함과 함께 신비로운 기운마저 느껴졌다.

“이제 오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나무관세음보살. 보살님도 보기 좋군요. 반갑습니다.”

합장을 하며 묘화부인과 인사를 나눈 명암이 멀뚱히 서있는 현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명암의 눈빛은 강렬했다. 순간 현수는 마치 한줄기 성난 광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착각을 느꼈다. 현수는 절로 고개를 숙였다. 명암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주가 괴이한 일을 경험하고 계신 분이군요. 명암이라 합니다.”

강렬한 시선을 거둔 명암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합장했다. 겉으로 보기엔 장 박사나 묘화부인에 비해 어려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들보다 열 살 이상 더 나이가 많다고 했다. 현수로선 놀라울 뿐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강현수라고 합니다.”

현수는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들어가시죠.”

장 박사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었다. 벌써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는 하셨나요?”

묘화부인의 물음에 장 박사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묘화부인이 차를 준비하는 사이 장 박사와 명암, 현수는 거실 소파에 자리 잡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명암은 현수에게 눈길을 고정했다. 명암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현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후, 묘화부인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받쳐 들고 왔다.

“드셔보세요. 영지차입니다. 얼마 전 아시는 분이 좋은 영지를 보내주셔서 만들어 봤습니다. 피를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군요.”

“음······. 좋군요. 고맙습니다.”

명암이 맛을 음미하더니 감탄하며 감사를 표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장 박사가 명암에 대해 설명했다. 대부분 묘화부인에게 들은 내용이었다.

장 박사의 말에 의하면 명암은 퇴마사로서 명성이 높다고 했다. 법력이 높아 귀신들린 사람들을 여러 차례 치료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현수는 이전에 그런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귀신이니 악령이니 하는 것들과 그것들을 퇴치하는 무당이나 퇴마사, 또 신비로운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부적 등은 미신적 행위에 불과하며, 그 모든 행위는 순진한 사람들을 홀려 돈을 우려내기 위한 사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몽유증상이 생기고, 이상한 현상마저 목격하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들에 관심이 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그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겪은 사건들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이었다. ‘네가 몸이 허해져서 그런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들은 거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명암 법사님께서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워하셨네. 특히, 영상 속에 나타난 자네의 그, 그 괴이한 모습에 관해 들으시곤 혹시 악령이 씐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셨네. 뭐, 그 진위여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야.”

장 박사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낮에 영상을 통해 보았던 자신의 모습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충혈된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 그리고 마음속까지 쏘아보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엔 귀기마저 느껴졌던 것이다.

“그걸 좀 볼 수 있겠소?”

명암이 장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 박사는 현수에게 동의를 구했다.

“법사님께 보여드려도 되겠나?”

“예, 그러십시오.”

장 박사가 명암을 이끌어 방으로 안내했다. 현수는 다시 그 섬뜩한 영상을 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이 둘을 따랐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명암은 뚫어져라 영상을 쳐다보았다. 현수의 방에 설치되어 있던 네 개의 영상은 별 거 아니었다. 일반적인 몽유증상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의 다섯 번째 영상이 이어졌다. 다시 보았지만 역시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마음 깊은 곳의 공포감을 끄집어냈다.

현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명암의 느리면서도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군. 그거였군. 뭔지 알겠어.”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명암을 보며 장 박사가 밝아진 얼굴로 연거푸 물었다.

“알아내셨습니까? 저, 정말 알아내신 것입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진정하시게.”

명암이 장 박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척 보니 알겠네. 처음 의심대로 악령이 씐 것이구먼. 아주 지독한 놈이야. 몽마(夢魔)라고 들어보셨나?”

“몽마라면······. 잉큐버스(Incubus)?”

장 박사가 소리쳤다.

“그래, 서양에서는 그리 부른다고 하더군.”

명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동양에서 얘기하는 몽마는 서양에서 얘기하는 잉큐버스나 그것과 짝을 이룬다는······. 뭐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

“서큐버스(Succubus)입니다. 잉큐버스가 남성성을 띠고, 서큐버스는 여성성을 띠는 몽마죠.”

장 박사가 부연설명을 했다.

“그래, 맞아. 기억나는군. 그 잉큐버스와 서큐버스가 잠자는 여성, 남성과 성교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또 악몽을 꾸게 만든다고 하지. 흔히들 말하는 가위눌림을 일으키는 악령으로 일컬어지는 것이지. 하지만 동양에서 얘기하는 몽마는 그것들과는 조금 다르다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현수가 물었다.

“잉큐버스나 서큐버스와 같은 몽마를 동양에서는 색귀(色鬼)라고 하지. 성에 탐닉하는 귀신으로 살아생전에 어떤 성적인 억압이나 불만에 쌓인 인간이 성적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색귀의 형태로 남아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몽마와는 다른 것이네. 몽마는 색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꿈, 좀 더 확장해서 말하면 인간의 정신, 즉 영혼을 탐하는 존재라네. 그것들은 색귀나 다른 여타 귀신들처럼 인간이나 동물, 심지어 식물로 존재했다가 죽은 후에 귀신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악귀의 형태로 태어난 족속들이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악마, 뭐 그런 존재지.”

명암은 목이 타는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동양에서는 몽마를 인간의 영혼, 특히 순수한 영혼을 갉아먹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네. 전설에 의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순수한 영혼과 깨끗한 마음을 없애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어 겉모습만 인간이고 속은 탐욕과 이기주의, 분노와 고통, 나아가 살육을 자행하는 인간이하의 인간들이 판치는 썩어버린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존재라네. 도덕과 윤리를 시궁창속에 처박아버린 악인들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그것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

명암의 얘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 그럼······. 제, 제가 그 몽마라는 것에게 홀린 것이란 말입니까?”

현수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자신이 몽마에게 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지금 내 생각으론 그렇다네.”

명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 박사가 측은한 눈빛으로 현수를 돌아봤다. 현수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시주 안에 있는 몽마를 불러내야겠지. 진짜 몽마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알아봐야겠지. 그리고 만약 내가 생각한 것처럼 몽마의 짓이 맞는다면, 그것을 쫓아낼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지.”

명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듣는 현수의 입장은 그렇지 못했다.

“몽마에게 영혼을 갉아 먹힌 사람은 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궁금했다. 과연 몽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말로가 어떨지,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일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더 무섭고 떨렸다.

“몽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사람은 정신적으로 혼란과 불안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종국에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해를 입히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만한 놀라운 사고를 저지르는 일도 종종 있곤 하지. 끝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결코 좋은 쪽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네.”

명암이 말을 들으니 두려움이 더해졌다. 현수는 결코 자살하고 싶지도,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도, 사고를 저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원했다. 사랑하는 연인 지은과 결혼을 하고, 자신과 지은을 닮은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다가 천천히 늙어가면서 옛 추억을 회상하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다가 다른 사람처럼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몽마라니······. 현수는 결코 그런 것이 자신의 영혼을 잠식하는 상황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갑작스레 나타나 삶을 깨트리고, 생활을 어그러트린 것도 모자라 영혼까지 지배하려드는 몽마라는 존재가 너무도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어떻게 하시겠는가?”

현수가 생각에 잠긴 사이 명암이 장 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글쎄요.”

장 박사로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명암이 명성이 자자한 뛰어난 퇴마사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고, 명암이 무수히 많은 퇴마의식을 통해 귀신들린 사람이라든가, 흉가, 흉당 등에 서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스린 것이지 어떤 특별한 기적이나 신비로운 능력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수를 찍은 다섯 번째 영상의 잔영이 너무도 강했고, 또 아침에 현수가 경험한 기이한 사건 때문에 명암을 찾았다가 함께 오기는 했지만, 퇴마의식을 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승려인 명암에게 어떤 감정적, 정서적, 정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싶어 연락해 본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명암이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극구 동행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장 박사로선 의사로서의 양심이나 의학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나서서 퇴마의식을 치르자고 제안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었다.

장 박사 아무리 신비로운 현상 등에 관대하다고는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과학자이며 의학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만을 강요할 수도 없었다. 지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닌 현수였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를 고통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라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최선을 다해 환자의 병환을 치료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장 박사였기에 다소 비과학적이고 비의학적인 치료방법도 심심치 않게 사용한 전력이 있었다. 그것이 비윤리적인 것만 아니라면. 그렇기 때문에 명암 등과 교류하며 여러모로 조언을 얻기도 했고, 민간에서 전해지는 처방 등에 관해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명암과의 교류는 종교적, 철학적 깊이가 있는 훌륭한 선사의 가르침이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신과의사로서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실제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고, 민간요법에 대한 연구는 그 효과나 부작용을 연구할 뿐 실제 치료에 적용한 사례는 극히 적었던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장 박사는 자신이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결국 선택의 몫을 현수에게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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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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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마? 1 16.04.27 542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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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1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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