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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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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76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08 16:32
조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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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천도재 2

DUMMY

2


“영가시여! 저희들이 일심으로 염불하니 무명업장 소멸하고 반야지혜 드러나고 생사고해 벗어나서 해탈열반 성취하여 극락왕생 하오시며 성불 하옵소서. 사대육신 허망하여 결국에는 사라지니, 이 육신에 집착 말고 참된 도리 깨달으면 모든 고통 벗어나고 부처님을 친견하리니. 살아생전 애착하던 사대육신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 거두니 주인 없는 목석일세.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리.”

명암의 법문 외는 소리는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목탁소리 또한 질주하는 말발굽소리마냥 빨라지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명암의 가사자락을 날렸다.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계가 청정하니 모든 업장 참회하여 청정으로 돌아가면 영가님이 가시는 길 광명으로 가득하리. 가시는 길 천리 만길 극락정토 어디인가. 번뇌 망상 없어진 곳. 그자리가 극락이라.”

명암의 독경소리에 맞춰 현수의 마음속에 작은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하여 진심전력으로 영진의 극락왕생을 빌고,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

“······태어났다 죽는 것은 모든 생명 이치이니 임금으로 태어나서 온 천하를 호령해도 결국에는 죽는 것을 영가님은 모르는가. 영가시여!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신다니 가시는 곳 어디인줄 영가님은 아시는가. 이곳에서 가시면 저 세상에 태어나니 오는 듯이 가시옵고 가는 듯이 오신다면 이 육신의 마지막을 걱정할 것 없잖은가.”

현수의 눈앞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영진을 내버려둔 채로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던 자신의 초라하고 비겁한 모습이 떠올라 한 없이 부끄럽고, 두렵고, 미안했다.

“······미혹함을 벗어나야 반야지혜 드러나고 왕생극락 하시리라. 부처님이 관 밖으로 양쪽 발을 보이셨고 달마대사 총령으로 짚신 한 짝 갖고 갔네. 이와 같은 높은 도리 영가님이 깨달으면 생과 사를 넘었거늘 그 무엇을 슬퍼하리. 뜬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인연이듯 중생들의 생과 사도 인연 따라 나타나니 좋은 인연 간직하고 나쁜 인연 버리시면 이다음에 태어날 때 좋은 인연 만나리라. 탐욕을 버리시고 미움 또한 거두시며 사견마저 버리시어 청정해진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 안겨 왕생극락 하옵소서.”

현수의 눈앞에 창현의 미라 같은 모습과 창숙의 초췌한 얼굴, 영배의 초라한 무덤과 영배 아버지의 술에 전 모습, 영진의 창백했던 모습과 살려달라고 허우적대던 모습들이 교차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돌고 도는 생사윤회 자기 업을 따르오니 오고감도 슬퍼말고 환희로써 발심하여 무명업장 밝히시고 무거운 짐 모두 벗고 삼악도를 뛰어넘어 극락세계 가오리다. 지은 죄업 남김없이 부처님께 참회하고 일념으로 생각하면 가고 오는 곳곳마다 그대로가 극락이니 첩첩 쌓인 푸른 산은 부처님의 도량이요, 맑은 하늘 흰 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며, 뭇 생명의 노랫소리 부처님의 설법이요, 대자연의 고요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니, 불심으로 바라보면 온 세상이 불국토요, 범부들의 마음에는 불국토가 사바로다. 애착하던 사바 일생 하루 밤에 꿈과 같고 나다 너다 모든 분별 본래부터 공이거니, 빈손으로 오셨다가 빈손으로 가시거늘 그 무엇에 얽매여서 극락왕생 못하시나. 저희들이 일심으로 독송하는 진언 따라 지옥세계 무너지고 맺은 원결 풀어지며, 아미타불 극락세계 상품상생 하옵소서.”

‘영진아! 부디 고통스럽게 구천을 떠돌지 말고 극락으로 가길 바란다. 이승에서 네게 저지른 내 죄악은 저승에서, 아니, 후생에서라도 갚아줄게. 영진아, 그러니 제발······.’

현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쉬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다 차가운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옴 가라지아 사바하······.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 옴 마니다니 훔훔 바탁 사바하······. 저희들이 지성으로 합장하고 머리 숙여 부처님께 원하오니 대자비를 내리시어 금일영가 극락왕생 하시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명암의 독경소리가 잦아들고 목탁소리만이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순간 무덤에서 연기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현수는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 눈을 떴다.

안개는 이미 걷힌 뒤였다. 명암과 현수, 묘화부인은 갑작스런 현상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숨 죽여 무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명암의 목탁소리도 멈춘 상태였다.

무덤에서 서서히 피어오른 연기는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여의주를 입에 문 백룡이 승천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하늘로 오른 연기는 잠시 멈추는 것 같더니 흩어지지 않고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영진아!”

현수는 단번에 형상의 정체를 알아봤다. 그것은 그 옛날, 14살 무렵의 영진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진은 웃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엔 홍조가 드리웠고,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입술이 움직였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녕, 영진아. 안녕······.”

씩 웃음을 보인 영진의 형상은 다시 흩어지더니 짙은 먹구름 장막을 뚫고 올라갔다. 장막이 열리며 한 줄기 빛이 번쩍하고 쏟아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온 세상을 빛으로 휘감았다. 그리고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영진으로 분했던 하얀 연기 또한 빛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현수는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영진은 현수를, 창현을, 영배를 용서한 것이 분명했다. 그 미소, 그 아름다운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를 용서할게.’

현수는 그렇게 느꼈다.

“영진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승에서 너한테 지은 죄는 저승에서, 아니 다음 생에서라도 갚아줄게. 영진아······.”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로 영진의 환영이 사라진 어둔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차가운 무엇이 현수의 뺨에 닿았다. 하나둘 날리기 시작한 새하얀 눈송이가 온 하늘을 가득 메우고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지상으로 살랑거리며 내려앉았다.

현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눈을 맞았다. 이 눈은 분명 영진이 내려주는 눈이었다. 현수는 그렇게 믿었다. 영진이의 용서를 담은 눈이 소록소록 쏟아지고 있었다. 현수의 눈엔 눈물인지, 눈이 녹은 물인지 모를 물기가 고였다가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영진아. 부디,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이제는 편히 쉬길 바랄게. 고통 없는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길 바랄게.”

현수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의 어깨에 새하얀 눈인 소담하게 쌓여갔다.

어느덧 동녘하늘에서 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현수는 감격스런 마음을 뒤로 한 채, 명암, 묘화부인과 함께 무덤가를 내려왔다.

어느새 눈은 그치고 흰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현수는 영진의 무덤을 돌아보며, 영진의 가족을 찾아서 영진의 제사를 함께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찾지 못해도 상관없이 그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영진을 위해 기도하고 제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영진의 무덤 앞에 놓인 순백의 국화꽃잎이 살랑대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무덤 위에 영진의 환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영진아! 고마워.”

묘화부인의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피곤함을 느꼈다. 밤을 꼬박 지새운 탓에 피로했지만 기분만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개운했다. 다만, 자신의 일로 인해 고생한 묘화부인과 명암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맙고 죄송합니다.”

현수는 묘화부인과 명암에게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니야. 이렇게 현수의 밝은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기뻐.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아침 차려줄게.”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아니야. 법사님도 식사하셔야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묘화부인은 피곤한 기색 없이 밝은 얼굴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명암과 마주앉은 현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진의 영혼에 대해 물었다.

“법사님, 영진이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갔겠죠? 이승에서의 고통을 떨쳐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갔겠죠?”

“그럴 것이네. 현수 시주의 바람대로 영진 시주의 영가는 극락정토에 들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품에 안겨 안식을 찾았을 것이네. 그리고 태초부터 정해져 있던 윤회의 수레바퀴를 따라 다음 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네. 나무관세음보살.”

“이 모든 게 법사님 덕택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닐세. 모든 것은 현수 시주의 지극한 마음과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일세. 나무관세음보살.”

명암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불호를 외웠다. 현수는 절로 숙연해졌다.

아침밥은 어느 때보다 맛있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버리고 나니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창밖으론 다시금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맥주를 마시며 마음 편하게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운 현수는 내일부터는 다시 본래의 자신으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또한 영진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영진의 성불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야. 난 다시 태어난 거야.”

현수는 벅찬 가슴을 뒤로 한 채 깊고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하고 기분 좋은 밤이었다.

현수는 꿈을 꾸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향기를 뿜어내고, 각양각색의 새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지저귀고, 시리도록 파란 냇물이 졸졸 흐르고, 초록빛 넓은 들엔 사슴, 토끼, 양, 개, 돼지, 고양이, 늑대, 여우, 사자, 호랑이, 곰, 닭, 뱀 등의 동물들이 뒤섞여 놀고 있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 속에 영진이가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새하얀 옷을 입은 영진이 현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영진은 행복해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현수도 행복감을 느꼈다.

꽃향기를 맡으며 동물들과 한데 어우러져 즐겁게 웃고 있는 영진에게선 그 어떤 미움, 원망, 슬픔, 아픔,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영진에겐 기쁨, 행복, 즐거움, 사랑, 평화가 넘실거렸다.

영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현수도 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었다.

‘영진아, 행복해야해. 꼭 그러길 바랄게.’

현수는 영진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현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듯함이 솟구쳤다.

이제까지의 악몽과는 달리 너무도 행복한, 그래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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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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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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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3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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