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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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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66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01 13:01
조회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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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악몽 2

DUMMY

2


현수가 양편에서 손짓해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손끝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현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으악!”

현수의 얼굴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등줄기에도 땀이 흥건했다. 호흡이 거칠고 심장박동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가위에 눌렸다가 깨어났지만, 여전히 꿈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현수는 숨을 깊고 길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느 정도 몸을 진정시킨 현수가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빛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가 꿈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에 어느덧 밤이 된 듯했다.

현수는 무엇이 자신을 깨웠는지 알아보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현수를 깨운 것은 쥐였다. 늘 혐오스럽게 생각하던 쥐가 자신을 악몽 속에서 꺼내 준 것이다.

꽤 심하게 깨물었는지 왼손 엄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엄지는 집게로 물려 기계장치에 연결되어있었다. 때문에 재킷 밖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쥐가 근처를 배회하다 물은 것 같았다.

상처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현수는 문득 아직까지 장 박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과 함께 걱정,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슬금슬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 박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솟구쳤다. 어쩌면 어제와 같이 혼절하여 병원에 실려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장 박사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라면 자신이 이곳에 갇혔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벌써 만 이틀을 이곳에 갇힌 채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는 현수로서는 이곳에 갇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악몽보다 더한 공포가 찾아왔다.

“바, 박사님! 박사님······.”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벽에 부딪쳐 돌아오는 메아리뿐이었다. 어둠과 적막, 이 두 가지는 사지가 구속되어 움직일 수 없는 현수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이전처럼 몽유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랬다면 최소한 어딘지도 모르는 이 칙칙한 지하공간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계속되던 몽유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현수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장 박사가 철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고대했다. 그것만이 현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단단하게 닫힌 철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수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갈증과 배고픔과 두려움에 지친 현수는 절규하듯 소리치고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구속된 상태를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죄다 허사였다. 너무도 단단히 조여진 구속복은 현수에게 작은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울다가 소리치다가 몸부림치다가 지쳐버린 현수는 기력을 잃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현수는 여전히 지하공간에 갇힌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도 장 박사는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위는 고요했고, 절망은 깊어지고 있었다.

철문 틈으로 가녀린 햇빛이 스며들어와 조금이나마 어둠이 가신 것이 작은 위안거리였지만, 갈증과 배고픔, 무엇보다 혼자라는 두려움과 여기서 이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수를 옥죄어왔다.

현수는 이제 소리치고 몸을 뒤틀 기력마저 상실한 상태였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혈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장 박사에 대한 원망과 미움, 묘화부인에 대한 서운한 감정 따위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절망뿐이었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장 박사는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희미한 태양빛만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뿐이었다.

장 박사는 어떻게 된 것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장 박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현수로선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현수는 타는 갈증과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꼬르륵 소리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만 간신히 움직여지는 현수로선 손을 내밀면 닿을 곳에 놓여있는 물병과의 거리는 수천만 광년 떨어진 별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나고, 현수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간이 물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던가를 기억하려 노력했지만 머릿속은 텅 비어 버린 채 오직 물, 물이라는 단어만 떠오를 뿐이었다.

장 박사는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사람은커녕 동물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있다면 현수의 손가락을 깨물어 악몽에서 깨어나도록 해 준 작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

쥐는 이제 현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이 음습한 곳에서 저리도 괴상한 모습으로 누워있는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싶더니 어느새 현수의 몸 위를 제멋대로 서슴없이 돌아다니며 자신의 놀이터로 삼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현수는 외로움과 공포심을 벗어나고자 쥐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라고 해봐야 혼자 묻고 답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외로움과 공포심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말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눈만 멀거니 뜬 채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다 빛이 스며들어오면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흘렀다. 말라서 굳어버린 눈물자국이 현수의 뺨에 오래전 사라진 고대수로의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났다. 현수가 이곳에 갇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낸 시간이 나흘째가 되었다. 이제 현수는 죽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사람은 삼일 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현수가 지금까지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적인지도 몰랐다.

현수의 입안은 바싹 말랐고, 입술은 논바닥 갈라지듯 부르텄고, 창백한 얼굴엔 핏기 하나 없었다. 퀭한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등창이 날 지경이었다. 호흡도 고르지 못했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했고, 땀과 오물로 범벅이 된 몸에선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이렇게 죽는구나. 이런 식으로 죽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후우!’

공포와 분노로 뒤덮였던 머릿속엔 어느새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수는 자신의 기다면 길었던 삼십년 생이 곧 끝나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현수는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수용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현수는 지나온 생을 돌아봤다. 비록 짧은 생에 불과했지만 제법 다사다난했던 삶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 혼신을 다해 살았던 삶이었다.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럭저럭 재미있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부터 지금 이렇게 지하실에 묶인 채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의 삼십년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현수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 홀로 앉아 오래된 흑백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몸 안의 수분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 번 쏟아진 눈물을 쉬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무도 갑작스런 어머니의 병환과 뒤이어진 죽음, 현수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었다. 이제 곧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만나면 제일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현수는 서럽게 울며 눈물을 쏟았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걱정을 지웠다. 자신이 비록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속엔 좋은 추억은 별로 없었다. 현수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무 때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어머니를 때리던 모습뿐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을 때, 현수는 비겁하게도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는 것을 고마워했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원망스럽고 떠올리기조차 싫은 아버지였지만, 지금 이 순간 현수의 뇌리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록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새어머니와 서먹서먹하고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며, 때로는 차갑고 매몰차게 대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새어머니는 누구보다, 심지어 아버지나 다른 가족들보다 현수를 더 아끼고 정성을 쏟았었다. 그런데 철없는 현수는 그런 새어머니를 미워하고만 있었다. 새어머니 때문에 어머니가 죽기라도 한 듯이 냉정하게만 대했던 것이다.

언제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어머니와 화해하고, 새어머니께 용서를 빌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자존심만 세웠던 어리석은 자신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현수는 동생 진수의 맑은 눈망울이 떠올랐다. 진수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 한 구석이 아렸다. 다시는 그 맑고 깊은 순진무구한 눈을 마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울적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나마 남은 가족에 대한 정은 오로지 진수를 향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마저도 날려버려야 한다는 것이 슬프고 가슴 아팠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지은이.

지은이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기댔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오해를 풀었어야 했는데······. 지은이와 만나서 사실대로 말하고 오해를 풀었어야 했다. 이렇게 죽으면 지은이는 영원히 자신에 대한 오해와 불신, 배신감에 가슴 아파할 것이 분명했다. 지은이를 생각하니 현수는 수많은 개미 떼가 동시에 물어뜯고 있는 것과 같은 아픔과 후회가 남았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떠올랐다. 왜 죽음이 임박해서야 자신이 행한 잘못에 대해 떠올리고 참회하게 되는지······.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그날 밤, 현수는 과거에 대한 참회와 고통, 슬픔과 아픔에 젖은 상태로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운명은 현수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었다. 현수로선 저항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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