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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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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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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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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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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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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끝나지 않았다. 2

DUMMY

2


현수는 이영진의 집 앞에 다다라 근처 공중전화에서 이영진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수업 중이라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묘화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의 전화를 받은 묘화부인은 놀랐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분명 잘됐다고 하지 않았어? 법사님이 분명 영진의 영가를 천도시켰다고 했는데······.”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여긴 너무, 너무 낯설어요.”

현수의 목소리는 어느새 울먹이고 있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현수는 이영진이 적어 준 메모지에 적힌 주소를 읽어주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연락받을 만한 전화번호 없을까?”

현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수의 눈에 아침에 식사를 했던 한국식당이 보였다. 한국식당의 전화번호를 묘화부인에게 불러주었다.

“알았어. 내 곧 연락을 줄게.”

전화를 끊은 현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주인은 현수를 기억하는지 반갑게 맞았다.

현수는 전화 좀 받을 것이 있는데, 여기서 기다려도 되냐고 물었다. 식당주인은 상관없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현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한쪽 구석에 앉았다. 되도록이면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자리였다.

현수는 멀뚱히 앉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되었고, 현수는 주머니를 뒤져 가진 돈이 얼마나 되는지 살폈다. 이영진에게 돈을 받았을 때는 세어보지 않았는데, 유학생 신분임을 감안할 때 꽤 큰돈을 준 것이었다. 어쩌면 한동안의 생활비 전체를 주었는지도 몰랐다.

현수는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만리타향에서 이토록 고마운 사람을 만날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신분도 불분명한 사람에게 단지 국적이 같다는 이유로 이렇게 큰 인심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현수는 점심을 시켜먹고 한없이 기다렸다. 식당주인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오후 5시쯤이 되었을 때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현수? 조금 있으면 그쪽으로 어떤 신사분이 갈 거야. 장 박사님 생전에 친분이 있던 분인데 마침 일본에 출장 중이시라더군. 그분이 도와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고맙습니다. 매번 폐만 끼치네요.”

“폐는 무슨······. 그분 오시면 연락 좀 줘.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그분 연락처 가르쳐 줄 테니 늦게까지 오지 않으시면 전화해봐. 알았지?”

“예, 정말 고마워요.”

현수는 울먹이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묘화부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현수는 메모지에 묘화부인이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적고,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중년신사가 식당에 들어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신사는 현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강현수 씨?”

“예, 제가 강현숩니다. 박세근 선생님이십니까?”

현수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박세근을 맞았다.

“전보다 좋아 보이네요.”

박세근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만난 적이 있나요? 죄송하게도 제겐 기억이 없네요.”

“그냥 잠깐 본 적이 있죠. 장 박사님의 지하실에서······.”

“아! 그때 저를 구해주신 분이군요. 죄송합니다. 진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했는데······. 그땐 정말 고마웠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어쩌다 이곳에······. 묘화부인께 대충 얘기는 들었지만, 궁금하군요. 사연을 물어보면 실례가 될까요?”

“아, 아닙니다.”

현수는 저간의 사정,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몽유증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진과 있었던 과거사건 등은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

“거 참. 놀라운 일이로군요.”

박세근은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믿지 못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현수는 박세근에게 믿음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스스로도 믿지 못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현수 씨는 현재 여권은커녕 비자도 없는 상태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물론 며칠 여유가 주어진다면 제가 어떻게든 손을 써 보겠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밀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밀항이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들어보던 단어를 막상 접하고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 너무 걱정 마세요. 묘화부인께 연락을 받고 수소문해 본 결과 아주 괜찮은 루트가 있더군요. 그쪽으로 한 해에 수십, 수백 명이 한국과 일본을 오간다고 하더군요. 아, 물론 제가 그쪽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전 그냥 박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국으로 돌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이왕이면 오늘 중으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그럴 줄 알고 이미 연락을 취해 놓았습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 출발하기로 얘기가 되었습니다.”

“예? 벌써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죠?”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시죠. 비록 수월하게 밀항을 하는 루트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밀항이다 보니 실패할 확률도 높습니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을 수도 있고요.”

박세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긴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아무리 안전하고, 수년 간 별 탈 없이 이어져왔다손 치더라도 어쨌거나 밀항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현수는 마치 자신이 탈북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접선지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낮이라 출입하는 차량도 많을 테니 오히려 밤보다 눈에 적게 뛸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전에 전화 좀 걸겠습니다. 묘화부인께서 박 선생님을 만나면 연락을 달라고 하셔서요.”

“그러세요.”

현수는 박세근에게 양해를 구하고 묘화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묘화부인은 걱정하지 말라고, 박세근은 믿을만한 사람이니 그 사람 말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묘화부인과 통화를 끝낸 현수는 이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완 달리 전화벨이 두어 번 울리고 난 뒤 전화를 받았다. 현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금 떠난다고 알렸다.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영진은 일이 잘되어 다행이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했다.

통화를 마친 현수는 식당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박세근을 따라 그의 차에 올랐다.

박세근의 차는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려 어느 항구에 닿았다.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바다향기가 현수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일단 방을 하나 잡죠. 자정이 될 때까지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수도 동의했다. 괜히 돌아다녀봐야 좋을 것이 없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방을 하나 구해 현수를 머물게 한 뒤 박세근은 밀항을 책임지는 사람과 연락을 취하겠다며 나갔다.

현수는 박세근에게 약 좀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지난밤 복용했던 잠을 쫓는 약이었다. 자정이 넘어 밀항을 하는 동안 혹시라도 몽유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박세근은 어렵겠지만 최대한 구해보겠다고 했고, 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 현수는 두통약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두통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박세근은 알았다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다시 당부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박세근이 나간 후 현수는 홀로 창가에 기대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와 그 위를 나는 갈매기 떼, 바쁘게 드나드는 어선들과 그물을 손질하고 하역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보았다. 한국의 바닷가 항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박세근이 다시 나타난 것은 황혼녘의 태양빛이 푸른 바다를 붉게 염색시킬 무렵이었다. 박세근은 낯선 남자와 함께였는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중년인이었다.

박세근은 그를 배를 운행할 선장이라고 소개했다. 교포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어는 서툴지만 그런대로 대화는 가능했다.

“현수 씨, 난 이만 가봐야 해요. 떠나는 모습까지 보면 좋겠지만, 오늘밤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귀한 시간을 낭비하셨어요.”

“아니에요. 이 사람은 보기완 달리 믿음직해요. 비록 밀항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한국에 친척들도 여럿 살고 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감정도 호의적입니다. 그리고 이거······.”

박세근은 선장 모르게 현수의 손에 봉투 하나를 쥐어주었다. 꽤 묵직했다.

“이게 뭡니까?”

“돈이에요. 숨겨두세요. 절대 먼저 주지 말고, 한국에 도착하면 주세요. 한국에 도착하면 묘화부인께서 나와 계실 겁니다. 그리고 이건 옷가지에요. 바닷바람이 꽤 추울 거예요. 단단히 입으세요.”

“너무 많은 신세를 집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그리고 이 돈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고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말씀마시고, 부디 안전한 여행이 되길 바랄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아, 참. 여기 약이요. 운이 좋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럼, 한국에서 봅시다.”

박세근은 현수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고는 떠났다. 현수는 박세근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선장은 현수에게 자정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고는 휘적휘적 걸어 모습을 감췄다.

현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외롭고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견뎌내야 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맛없는 음식을 몇 숟갈 뜨고 난 후, 박세근이 구해다 준 두통약과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긴장을 달래기 위해 알아듣지도 못하는 텔레비전프로그램에 무의미한 시선을 고정한 채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선장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갑시다.”

선장은 무뚝뚝한 말 한마디를 내뱉고는 몸을 돌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현수는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그의 뒤를 따랐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매서웠다.

“신호가 있기 전까진 절대 나오지 마시오.”

선장은 선실 한구석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현수를 밀어 넣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좁은 공간에 몸을 뉘였다. 간신히 다리를 뻗고 몸을 눕힐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현수가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사이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서 그런지 배의 출렁임이 심했다.

현수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선장이 준 비닐봉지를 입가에 가져갔지만 토사물은 나오지는 않았다.

얼마 쯤 갔을까? 현수는 문득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물며 버텼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낼 수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들려는 찰라 시끄러운 소리가 귓전을 자극했다. 현수는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확성기를 통한 빠른 일본어가 들려왔다. 현수는 긴장이 되었다. 들키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배는 서서히 출발했고, 현수는 긴장이 풀어지며 몸이 나른해졌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넘는 배의 율동에 현수의 몸과 마음도 저절로 따라갔다.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견뎌내려 애를 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현수는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서히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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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3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8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3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6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2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10 4 14쪽
20 악몽 2 16.05.01 525 4 11쪽
19 악몽 1 16.05.01 438 4 11쪽
18 숨겨진 과거 2 16.04.30 298 5 17쪽
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16 장 박사의 변화 2 16.04.29 494 4 12쪽
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14 시간이 되었어. 3 +1 16.04.28 399 9 11쪽
13 시간이 되었어. 2 16.04.28 474 6 12쪽
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2 7 11쪽
11 몽마? 2 16.04.27 459 5 12쪽
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1 기이한 청년 +3 16.04.23 71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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