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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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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68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7 09:36
조회
458
추천
5
글자
12쪽

몽마? 2

DUMMY

2


“자네가 결정하게.”

“뭘 말입니까?”

“명암 법사께선 지금 퇴마의식을 행하자고 하시네.”

“퇴마의식이요?”

현수가 놀란 눈으로 장 박사와 명암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명암에게 물었다.

“퇴마의식이란 것이 정확히 뭘 말하는 것입니까?”

“이름이 거창해서 그렇지 사실 별 거 아니라네. 기도를 통해 영적능력을 배양시키고, 영적능력을 기의 형태로 바꾸어 시주 안에 웅크리고 숨어서 시주를 조종하려 드는 령, 보통 귀신이나 악령이라 하지. 여기선 몽마가 될 수 있겠군.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아무튼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고, 시주가 그것들에게 어느 정도 제압당해있는지를 판단하고, 나아가 그것들을 쫓아내는 일련의 의식을 말함이네.”

명암이 담담한 어조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현수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차린 명암이 덧붙여 말했다.

“시주! 무당들이 하는 굿이나, 강신의식을 본 적이 있으신가?”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당연이 본 적이 있었다. 현수 자신이 실제 굿판의 중심에 서 본 적도 있었다. 모두 다 이것, 몽유증상 때문이었다. 어쩌면 몽마의 탓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해하기 쉽겠군. 퇴마의식을 무당들이 행하는 굿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걸세. 물론 무당들처럼 요란을 떤다든가 하는 일은 없지만 말이야.”

“그럼 엑소시즘(Exorcism)과 비슷한 것입니까?”

“아, 그렇군. 그것과 같은 말일세. 서양에선, 특히 가톨릭교회의 사제가 행하는 퇴마의식을 엑소시즘이라고 하더군. 뭐, 형식면에서는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행위의 목적이 같은 말이네. 귀신을 쫓는 일련의 행위를 퇴마의식, 또는 엑소시즘이라고 하지. 우리말로는 액막이, 혹은 액풀이라고 한다네. 이왕이면 우리말을 썼으면 좋겠네. 좋은 우리말을 두고 외국어를 무차별적으로 쓸 필요 없지 않은가.”

“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제야 퇴마의식이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과연 어떤 식으로 행해지는 것인지. 굿과 유사하지만 다르다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단 말인가. 신부가 성경구절을 외우며 성수를 뿌리고 십자가를 들이밀어 악령을 쫓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현수는 영화에서 악령에 씐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괴이한 음성을 토해내며 괴로워하고, 생김새도 본래의 모습을 잃은 채 흉측하게 변한 상태에서 발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겉으로 보기엔 여느 평범한 젊은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박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현수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장 박사의 의견을 구했다.

“글쎄, 난 명색이 의학자네. 과학적인 사고를 정신적 기저에 두고 있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장 박사는 에둘러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선택은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결국 본인 몫일세.”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방안을 감싸고돌았다. 현수는 미간을 찡그린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명암과 장 박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초조해 보이는 장 박사와는 달리 명암의 얼굴엔 여유로움이 넘쳐났다. 이윽고 결심이 섰는지 현수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우선 박사님께 저를 맡기고 싶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현수는 장 박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현수의 말에 장 박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법사님께 퇴마의식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 본인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겠네.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도록 하게. 장 박사에게 말하면 될 거야.”

아쉬운 표정 하나 없이 명암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가야지. 아직은 때가 아니니······.”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장 박사가 명암을 만류했다.

“아닐세. 내일 아침 일찍 가봐야 할 곳이 있네.”

그러면서 현수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쏘는 눈빛이었다.

“부디 시주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네. 너무 늦지 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명암은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불호를 외웠다. 그러자 불호가 마치 하나의 물리적 실체라도 된 듯 현수의 가슴에 와 닿으면서 작은 충격을 안겼다. 현수는 그것이 착각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명암은 당황스러워하는 현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현관을 나서는 장 박사가 말했다. 이렇게 보내기에는 미안했다.

“아닐세. 자넨 현수 시주를 돌봐야 하지 않는가.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네.”

명암의 말에 장 박사와 현수의 시선에 벽에 걸린 괘종시계로 향했다. 시계바늘은 11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오랜만에 스님에게 좋은 말씀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장 박사가 머뭇거리자 묘화부인이 나섰다.

“그러면 되겠군요. 부인, 부탁합니다.”

명암도 만족한 듯싶었다.

“그렇게 합시다. 그럼, 난 이만 물러가겠소. 부처님의 가호로 시주에게 더 이상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빌겠소. 나무관세음보살.”

다시 한 번 불호를 외며 명암은 집을 나섰다. 장 박사와 현수는 합장을 하며 명암을 전송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묘화부인이 인사를 하고, 현수는 정이 듬뿍 담긴 음성으로 묘화부인의 안전을 빌었다.

묘화부인과 명암이 탄 차가 떠나자 장 박사와 현수는 집으로 들어와 취침준비를 했다. 장 박사는 어제의 교훈을 되새기며 새로운 장비를 준비한 상태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현수는 장 박사의 손에 들린 단추모양의 자그마한 물체를 보고 물었다.

“카메라네. 소형카메라지. 주로 몰래카메라로 쓰이는 것이지. 참 기술이 대단해. 이렇게 작은 카메라도 만들 수 있다니 말이야.”

“그럼······.”

“그렇다네. 이걸 자네 몸에 장착할 거야. 그러면 자네가 밤새 어디를, 어떻게 다니는지 알 수 있겠지. 이리 오게. 자네 옷에 이걸 부착해야겠네.”

현수는 장 박사를 따라 사무실로 갔다. 상세한 설명이 적힌 종이를 보며 장 박사는 현수의 외투 단추 구멍에 카메라를 장착했다. 자세한 설명서 탓인지 장착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촬영된 화면을 임시로 저장하고 전송하는 장치 때문에 조금은 불편할 듯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번 시험해 봐야겠네.”

장 박사는 단추 구멍에 단 소형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촬영된 화면을 출력할 수 있는 기계장치의 전원을 켜고 주파수를 맞췄다. 잠시 지지직거리던 화면이 밝아지더니 현수가 바라보고 있는 방의 전경이 화면에 나타났다. 화질은 깨끗했다. 흑백인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정도 화질이라면 사물을 분간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제 움직여보게.”

장 박사의 말을 따라 현수가 이리저리 걸어보았다. 걸음을 옮길 때 화면에 약간의 잡음과 함께 지지직거림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만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소리도 내 보게.”

“안녕하세요. 강현수입니다.”

화면에 딸린 스피커에서 현수의 음성이 명확하게 들려왔다. 움직이면서 말을 할 때 잡음이 살짝 섞여 가끔씩 불명확해지긴 했지만, 역시 큰 문제는 없었다.

“됐군. 아주 좋아. 현수 군, 불편하겠지만 이걸 착용하고 자도록 하게. 이건 위치추적도 되니까 자네가 밤새 어딜 가든 자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걸세. 자네가 밤새 돌아다는 동안 지나치는 이동경로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네. 이걸 구하느라 참 고생했네. 카메라는 많은데 위치추적과 소리까지 되는 것을 찾기 쉽지 않더군.”

“박사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시다니······.”

현수는 목이 메었다. 일면식도 없고, 어떤 친분이나 관계도 없는 자신을 위해 여러모로 고생하는 장 박사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별 말을 다하는군. 이건 의사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세. 자넨 아무 생각 말고 자네의 병증을 치료하는데 온 힘을 쏟게. 어떤 병이든 그렇지만,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환자가 병을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되고 만다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병을 극복하겠다는 굳은 결심과 강인한 정신력만 키우고 있게.”

“예, 박사님.”

“자, 이제 시간이 되었군. 잠자리에 들게. 난 이곳에서 살피도록 하겠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현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현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명암이 들려준 몽마라는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명암의 말대로 정말 그것이 자신의 몸속에 숨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 어떤 고통이 닥친다 하더라도 떨쳐버리고 말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는 사이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시간은 자정을 살짝 넘어서고 있었다.

잠이 들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현수의 몸이 약간의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현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 박사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현수가 방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장 박사는 방문을 살짝 열고 현수의 움직임을 살폈다.

계단을 내려온 현수가 현관문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경직된 움직임이었지만 능숙한 걸음이었다. 장 박사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현관문에 다다른 현수가 불현듯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현수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친 장 박사는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뒷덜미가 싸늘하게 저려왔다. 심장이 오그라들기라도 하는 듯 숨이 콱 막히고 미세한 경련이 온몸을 휘감았다. 붉게 충혈 된 현수의 눈앞에 선 장 박사는 마치 발가벗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공포가 휘몰아쳐왔다. 장 박사는 입을 쫙 벌린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으으······.”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뿐이었다.

장 박사가 두려움에 떨며 못 박힌 듯 서있을 때 현수의 입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것은 악마의 미소였다.

장 박사의 공포감은 극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심장이 멎고 피가 거꾸로 솟을 것만 같았다. 장 박사의 혈관이 팽창되어 부풀어 올랐다.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 억지로 눈꺼풀을 치켜 올린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섰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장 박사의 입에선 고통과 두려움이 뒤섞인 신음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이윽고 현수가 눈빛과 미소를 거두고 몸을 돌려 현관을 나섰다. 그제야 장 박사는 고통에서 벗어나며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장 박사의 입가엔 한줄기 핏물이 흘러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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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퇴마의식 1 16.05.05 407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2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7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2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6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1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09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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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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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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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3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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