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공포·미스테리

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80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08 16:31
조회
389
추천
4
글자
11쪽

천도재 1

DUMMY

1


현수는 영배 아버지와 작별을 하고 무덤가를 내려왔다. 같이 내려가자는 말에 영배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영배의 무덤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는 그 뒷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산을 내려오면서 현수는 창현과 영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했다. 창현의 정신이상과 영배의 죽음을 확인한 현수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괴이한 사건의 원인이 영진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기이한 몽유증상과 창현과 영배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영진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자신들의 잘못이 십 수 년의 세월을 거슬러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은 그 어떤 벌을 받아도 속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고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죄책감이 현수를 옥좼다. 그러나 한편으론 생존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현수는 창현처럼 제정신을 잃고 목석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고, 영배처럼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싶지도 않았다.

“지지 않을 거야. 절대로······.”

현수는 고개를 돌려 멀리 점으로 화한 무덤과 영배 아버지의 아련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졌다.

영배의 무덤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와 차에 오른 현수는 묘화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구나. 걱정했어. 어디야?”

“명암 법사님 계신가요? 아니면 벌써 떠나셨나요?”

묘화부인의 걱정스런 말을 뒤로한 채 현수는 다짜고짜 명암을 찾았다.

“아니, 아직 계셔. 바꿔드릴까?”

“예.”

“현수 시주? 좀 어떤가. 설마 오늘도 몽유증상이 나타난 것인가?”

명암은 불안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빠르게 말했다.

“법사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뭐? 원인을?”

“예.”

현수는 창현과 영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그리고 자신과 창현, 영배가 영진을 괴롭히고,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목이 메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가슴이 답답해져서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창현과 영배에게 일어난 괴이한 사건들, 그리고 지금 창현의 상태와 영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까지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신은 창현이나 영배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가슴이 저리고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런 것들보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샘솟았다.

영배처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창현처럼 현실을 저버리고 숨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게 이겨내고 고통을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 아니, 애써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나무관세음보살.”

현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명암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법사님, 도와주세요. 법사님은 분명 방법이 있으시겠죠?”

“알았네. 일단 이쪽으로 오게.”

명암과 통화를 마친 현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영진은 현수, 창현, 영배에게 크나큰 원한이 있다. 큰 원한을 가진 사람이 죽으면 명계에 들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떠돌면서 생전에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고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공포영화나 공포소설 등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원한을 풀어주거나 영혼을 구원해줌으로 해서 행복한 결말을 도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명암이었다. 비록 현수가 그런 쪽에 지식이 부족하지만 명암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현수의 생각으론 자신들에게 원한을 가진 영진의 영혼을 달래고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괴이한 증상이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을까 여긴 것이다.

현수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서쪽하늘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묘화부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있었다.

현수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묘화부인이 뛰쳐나오며 현수의 안위를 물었다. 현수는 괜찮다고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 현수는 명암과 묘화부인에게 어젯밤부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묘화부인은 현수에게 다시금 몽유증상이 나타난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명암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명암이 입을 열었다.

“알겠네. 시주 말대로라면 영진이란 친구가 시주와 시주의 친구들에 대한 원한으로 원귀가 되어 세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로군.”

“법사님. 잘은 모르지만 원한이 깊은 영혼을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떤 의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그렇다네. 천도재란 것이지. 여기선 영가천도재가 되겠구먼.”

“천도재요? 법사님, 그걸 해주실 수 있나요?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영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두렵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알겠네. 불가에서 행하는 천도재란 것은 본래 사람이 죽은 후 일정한 기일에 치르는 것이지만 시주처럼 나중에 원귀가 된 것을 알고 치르는 경우도 있네. 하지만 절차도 복잡하고, 재를 지내는 기간도 길고, 규모도 큰데다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마치 일종의 거대한 행사처럼 변했지. 비용도 많이 들고 말이야.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네. 천도를 시키려는 영혼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정성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천도재를 치를 수 있고,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네. 시주를 보아하니 잘될 거라고 확신하네.”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일단 정성을 담아 제물을 준비해야지. 그리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천도재를 치러주면 되네. 장소는 보통 사찰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도 많이 들고, 형식적이고 난잡하기만 할뿐 제대로 된 천도재를 치를 수 없을 것이네. 시주가 영진이란 친구의 무덤을 알고 있다하니 그곳에서 직접 영혼을 접하여 천도재를 올리는 것이 좋을 듯싶네.”

명암의 말을 들은 현수는 묘화부인의 도움으로 천도재에 쓸 제물을 준비했다.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

현수는 두려워졌다. 밤이 된다는 것이, 자정이 지나면 잠이 든다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그래서 현수는 묘화부인에게 장 박사가 소유하고 있던 약품 중 잠을 쫓게 만드는 약이 있는지 물었다. 묘화부인은 오랫동안 장 박사를 모셨기 때문에 비록 간호사는 아니었지만 웬만한 의료계종사자보다 약품이나 다른 의학적 지식이 풍부했다.

하지만 묘화부인은 선뜻 약을 주려하지 않았다. 약물에 힘으로 몽유증상을 막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독한 약물로 인해 현수의 몸에 무리가 갈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수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두렵기 만한 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수는 끝내 묘화부인에게서 약을 건네받았다. 약을 먹을 것으로도 모자라서 묘화부인에게 주사도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묘화부인은 그것만은 안 된다며, 지금 먹은 약의 양도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고, 거기에 주사까지 맞으면 어떤 부작용을 유발할지 모른다고 극구 거절했다.

하지만 현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늘밤 잠이 들면, 내일 아침 어디에서 깨어날지 모른다. 바다 한가운데서 퉁퉁 불은 시체가 되어 떠오를지도 모른다며 주사를 놔달라고 애원하였다.

묘화부인은 죽어도 그것만은 못하겠다며 정말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하라고 말하고는 현수를 외면했다.

결국 현수는 직접 주사기를 들었다. 그로서도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약 때문에 몽유증상으로 인해 겪은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얻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이렇게라도 해서 잠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과연 주사약이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자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짜릿한 전율에 전신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약간의 두통도 느껴졌다.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고 미열이 일어났지만 견딜만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명암은 천도재에 쓰일 번을 만들고 있었다.

현수는 그것을 도우며 쏟아지는 잠을 쫓았다. 약물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그럭저럭 참을 만했지만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현수는 찬물에 얼굴을 담그기도 하고 어둠과 고요로 둘러싸인 뜰로 나가 걷기도 했다.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있었고, 가끔씩 하품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는, 다시는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정 무렵이 되었을 때 천도재를 치를 모든 준비가 끝났다. 현수는 명암과 묘화부인과 함께 천도재에 쓰일 번과 제물 등을 차에 싣고 영진의 무덤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으로 나무며 수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름날이 가까웠지만 온통 짙은 먹구름이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달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영진의 무덤가에 다다랐을 때 바람은 어느새 잔잔해져있었다. 대신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올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반쯤 허물어진 공동묘지엔 스산한 기운이 서려있었다.

굳이 이 야심한 시각에 천도재를 올려야 하느냐는 묘화부인의 볼멘소리가 있었지만, 명암은 영혼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새벽이 오히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찰에서 그것도 대낮에 성대하게 천도재를 올리며 마치 무슨 축제라도 벌이는 것처럼 형식에 빠져 천도재의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지만, 진정한 천도재는 구천을 떠돌며 고통스러워하는 영혼과의 교감, 그것을 통한 교화, 그리고 부처님이 계신 극락정토로 성불시켜 왕생을 비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자면 영혼들의 활동이 가장 성행하는 자정 무렵이 좋다는 것이었다.

현수는 영진의 무덤 앞에 정성스레 제상을 차리고 무덤 주위에 번을 늘어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무덤을 마주하고 꿇어앉았다. 싸늘한 땅의 기운이 무릎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명암이 목탁을 들고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현수에게 염주를 내어줬다. 염주 알을 굴리며 진실하고 경건하게 영진에 대한 속죄의 마음과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라고 했다.

현수는 그러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묘화부인은 현수의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선 채 염주를 손에 쥐고 걱정스런 얼굴로 서 있었다.

명암이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는 것으로 천도재가 시작되었다.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펴지는 청량한 목탁소리와 청아한 명암의 독경소리가 스산한 풍경과 어우러져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라지는 남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자유여행가 +2 16.05.14 466 4 13쪽
35 끝나지 않았다. 2 16.05.14 395 2 12쪽
34 끝나지 않았다. 1 +1 16.05.14 479 4 11쪽
33 천도재 2 16.05.08 422 4 11쪽
» 천도재 1 16.05.08 390 4 11쪽
31 죄와 벌 3 16.05.07 416 4 12쪽
30 죄와 벌 2 16.05.07 402 4 13쪽
29 죄와 벌 1 16.05.07 386 4 12쪽
28 퇴마의식 2 16.05.05 481 3 16쪽
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3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7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2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6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2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10 4 14쪽
20 악몽 2 16.05.01 525 4 11쪽
19 악몽 1 16.05.01 438 4 11쪽
18 숨겨진 과거 2 16.04.30 297 5 17쪽
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16 장 박사의 변화 2 16.04.29 493 4 12쪽
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14 시간이 되었어. 3 +1 16.04.28 399 9 11쪽
13 시간이 되었어. 2 16.04.28 474 6 12쪽
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1 7 11쪽
11 몽마? 2 16.04.27 459 5 12쪽
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1 기이한 청년 +3 16.04.23 710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