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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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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67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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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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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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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시간이 되었어. 3

DUMMY

3


의사의 방을 나온 현수는 다시 한 번 묘화부인에게 장 박사를 부탁하고 연구소로 향했다. 지난밤 촬영된 화면을 살펴보고자 함이었다.

장 박사의 연구소로 향하는 현수의 가슴팍 단추 구멍엔 아직도 소형카메라가 달린 채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장 박사의 연구소로 돌아온 현수는 곧바로 장 박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화면은 아직 켜진 채 잡음과 함께 지지직거리는 상태였다. 녹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현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버튼을 조작해 지난밤 녹화된 영상을 틀었다.

먼저 거실에 설치된 카메라의 녹화된 영상을 살폈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현수는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홱 돌리며 섬뜩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어제완 달리 카메라 쪽을 향한 것이 아니라 현관문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어딜 보고 있는 거지? 설마······. 박사님을 보고 있는 것인가?”

현수는 뒷덜미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소형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틀었다.

방을 나선 현수는 거실의 카메라에 녹화된 것과 같이 거침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멈칫하더니 별안간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 장 박사가 있었다.

현수를 마주한 장 박사는 입을 쫙 벌린 채 공포에 젖은 모습으로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불과 1,2분 정도였지만 그 사이 장 박사의 눈은 붉게 충혈 되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나직한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경련이 이는지 전신이 미세하게 떨리며 눈의 검은자위가 사라졌다. 얼굴의 혈관들이 팽창하여 당장이라도 터져 시뻘건 핏물을 뿜어낼 것처럼 보였다.

“저, 저럴 수가······.”

현수는 장 박사의 기괴한 모습에 공포감을 느꼈다.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쉴 새 없이 뛰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장 박사의 고통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하지만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박사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지고 손발의 경련이 심해지며 고통에 찬 신음성이 점점 커져갔다. 그때 화면이 바뀌었다. 현수가 몸을 돌린 것이다. 화면은 다시 현관문을 비추고,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 박사가 쓰러진 모양이었다.

“박사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자신 때문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자신 때문에 장 박사가 이런 고통을 당한 것이다.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박사님이······.”

현수가 자책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나직한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다. 분명하진 않았지만 거칠고 탁한 기계음이 들려온 것이다. 현수는 영상을 재빨리 뒤로 돌리고 볼륨을 높였다. 귀를 기울여 소리에 집중했다.

“시···간···이···되···었···어······.”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걸 보니 현수가 한 말인 듯했다.

‘시간이 되었어.’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잡음이 섞여 명확하게 알아듣진 못했지만 분명 그것이었다. 현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시간이 되었어.’

이것은 분명 오늘 아침 S시의 공원에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피곤에 지쳐 잠들었을 때 꿈속에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시.간.이.되.었.어.”

현수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되뇌었다. 이 짧은 문장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되었다니? 도대체 어떤 시간이 되었단 말인가?

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시간이 되었다고? 무슨 시간? 윽!”

갑자기 두통이 일었다. 현수는 빠개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으으······.”

현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고통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알 수 없는 존재가 머리에 수백 개의 침을 박아 넣고 휘젓는 것만 같았다.

뚜뚜―!

순간 귀청을 찢어놓을 것처럼 거친 소음이 들려왔다.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덕분일까? 갑자기 머리를 깨트릴 것만 같았던 고통스런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현수는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았다. 화면은 까맣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그어진 선이 연이어 나타나며 뚜뚜―! 소리가 계속되었다.

일정하게 계속되는 소리는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잠시 뒤에 소리가 멈추고 화면상의 선도 사라지고 대신 지지직거리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현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현수는 영상을 뒤로 돌렸다. 현관을 나서는 순간까지는 정확하고 선명하게 촬영되어있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선 현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화면은 장 박사의 연구소주변 전원주택단지를 비추고 있었다. 현수도 익히 아는 낯익은 풍경이었다.

전원주택단지를 벗어나면서부터 화면이 고르지 못했다. 잠깐 끊기거나 지지직거리며 화면상에 나타나는 풍경들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팟! 소리와 함께 화면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까 들은 바와 같이 길고 높낮이가 일정한 뚜뚜―! 소리가 10초 정도 이어지더니 다시 화면이 바뀌어 지지직거렸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현수가 인내심을 가지고 화면을 응시했지만 화면에 다른 변화는 없었다.

“카메라가 잘못된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웃옷에 부착된 카메라를 떼어 살폈다. 외관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현수는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 보았다. 그러자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며 선명해졌다. 카메라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현수가 카메라를 살피고 있을 때, 뚜―뚜―! 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장 박사의 노트북에서 나는 소리였다.

현수는 노트북을 살폈다. 상세한 지도 위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것은 위치추적장치였다. 붉은 점이 가리키는 곳은 현재 현수가 있는 곳, 장 박사의 연구소였다.

현수는 노트북을 살폈다. 분명 지난밤의 위치추적기록도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프로그램은 간단했다. 잠깐 동안 이리저리 살피고 난 현수는 위치추적기록이 저장된 파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열어본 현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의 위치추적기록은 쓸모가 없어보였다. 이동경로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밤에 현수가 장 박사의 연구소를 나선 후, 잠시 동안 점멸하며 움직이던 붉은 점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다. 시간기록으로 보아 카메라가 꺼진 시간과 일치했다.

실망한 채 멍하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묘화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불안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현수 씨? 깨어나셨어요. 박사님이 깨어나셨다고요?”

묘화부인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예? 정말입니까?”

“그래요. 지금 회복실에 계세요.”

“박사님은 어떠십니까?”

“아주 좋아요.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정신도 맑고, 혈색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아요. 집에 가시겠다는 걸 말렸어요. 지금 링거를 맞으며 쉬고 계세요.”

“잘됐군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현수는 대단히 기뻤다. 녹화된 영상을 통해 장 박사의 중환자실행이 자신의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된 현수로선 마음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처럼 개운했다.

“잠깐만요. 박사님께서 현수 씨에게 할 말이 있다는 군요.”

“현수 군인가?”

장 박사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박사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현수는 목이 메었다. 몇 백번을 사죄해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괜찮네. 난 괜찮아. 마음 쓰지 말게. 그보다 촬영된 것은 보았는가?”

“예.”

“어떻든가? 녹화가 잘 되었든가?”

“그, 그게······.”

현수는 머뭇거렸다. 장 박사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며 힘들게 준비한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장 박사의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어서 말해보게. 어떻게 되었나?”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린가? 잘 되지 않다니. 녹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제, 제가 현관을 나서고 나서도 잠시 동안은 녹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로는 전혀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음······.”

장 박사의 장탄식이 들려왔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카메라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 박사가 물었다.

“아닙니다. 카메라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알 수 없는 일이군.”

“예,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알았네. 내 곧 가도록 하지.”

“아, 아닙니다. 좀 더 계십시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아니야.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난 아무렇지 않네. 아까 담당의사의 말을 들어봤네. 겉모습만 그랬을 뿐 다른 모든 신체기능은 완전했다고 하더군. 그러니 걱정 말게. 집에서 보세.”

“바, 박사님!”

장 박사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현수는 어찌해야하나 고민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갈까했지만 장 박사와의 통화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엇갈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 박사는 분명 병원을 나설 것이었다. 묘화부인이 매달리며 만류하겠지만 통화를 하며 들은 장 박사의 음성은 단호했다. 장 박사는 머잖아 연구소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현수는 그냥 기다리기로 결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뚜―뚜―! 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노트북을 응시했다. 붉은 점이 반짝이는 곳은 아침에 현수가 깨어났던 S시의 공원이었다. 지금 현수가 보고 있는 것은 지난밤의 현수의 이동을 기록한 저장된 화면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장 박사의 연구소에서 사라진 붉은 점이 S시에서 나타나다니.

현수는 재빨리 시간기록을 살폈다. 아침 7시18분이었다. 그렇다면 현수는 아침 7시18분에 S시의 공원에 도착해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현수가 장 박사의 연구실을 나선 시간은 새벽 00시18분이었다. 그렇다면 7시간의 터울이 생기는 것이다. 그 시간동안 현수는 30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S시까지 걸어간 것이란 말인가? 물론 시간상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먼 거리를 밤새 걸었다면 몸이 분명 피곤할 테니 다리가 퉁퉁 붓거나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거나 까졌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단 말인가.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장거리를 걸었다면 뭔가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의문 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었다. 정말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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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1 7 11쪽
11 몽마? 2 16.04.27 458 5 12쪽
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3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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