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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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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98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9 11:56
조회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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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장 박사의 변화 1

DUMMY

1


한 시간 후, 장 박사와 묘화부인이 연구소로 돌아왔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현수는 나는 듯이 달려 나와 장 박사를 맞이했다. 장 박사의 혈색은 방금 전까지 중환자실에 누워 혼수상태에 빠졌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보였다.

“괜찮네. 걱정 끼쳐서 미안하네.”

“무슨 말씀을요. 저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되신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현수는 자신의 잘못으로 장 박사가 사경을 헤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장 박사가 사과를 하니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아닐세. 그런 생각하지 말게. 자, 들어가세.”

장 박사는 현수의 죄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선 장 박사는 곧바로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이미 현수에게 들었던 것이지만 촬영이 실패로 끝난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장 박사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안타깝군.”

“박사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장 박사와는 달리 현수는 영상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장 박사의 안위만 생각했다.

“괜찮네. 걱정하지 말게. 머리가 아주 개운해. 그보다 어제는 비록 실패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해보도록 하세.”

유난히 밝아 보이는 장 박사의 행동이 현수에겐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현수가 본 바로는 지난밤 장 박사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장 박사는 마치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소와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아니,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밝고 혈기왕성해 보였다면 착각일까?

현수로선 그런 장 박사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은 같은데,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현수는 재차 물었다.

“그렇다네. 신경 쓰지 말게. 그보다 오늘은 어디에서 깨어났나? 그 얘기를 해보게.”

장 박사는 손사래 치며 넉넉한 웃음마저 지어보였다. 방금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계속해서 물고 늘어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현수는 잠시 의아한 눈초리로 장 박사를 살피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S시의 어느 공원에서 깨어났다는 사실과 벤치에 앉아 있다가 어제와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 작은 숲으로 들어갔고, 숲 속에서 들리는, 어쩌면 숲이 말하는 것처럼도 느껴지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말했다. 또한, 전처럼 숲속에 들어서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는 것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렇지만 묘화부인에게 전화가 와서 정신을 차렸을 땐, 작은 숲은 물론 소리도 사라지고, 자신은 공원 분수대속에 멀건이 서 있었다는 사실까지 이야기했다.

장 박사는 미소 띤 얼굴로 현수의 얘기를 들으며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얘기가 끝나자 장 박사가 입을 열었다.

“숲에서 들은 소리가 ‘시간이 되었어.’라는 한 문장뿐이라고 했나?”

“예.”

“목소리는 예전에 혹시 들어본 적 있던 소리던가?”

“아니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합창하듯 외치는 것도 같았습니다.”

장 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것 참 이상하군. 또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예, 어제 오후에 꿈을 꿨는데, 그때도 그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꿈? 꿈속에서도 들었단 말이지? 꿈속에서도 단지 그 말 뿐이던가?”

장 박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닙니다. 뭔가 다른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난밤 촬영된 영상 속에서 제가 그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인지 모르지만요.”

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자네도 그런 말을 했다고? 어디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지. 어디쯤에서 그런 말을 하던가?”

“제가 현관문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현수의 말에 장 박사가 녹화된 영상을 다시 틀었다. 현수는 조마조마했다. 장 박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장 박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마치 재미도 없고 무섭지도 않은 시시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무덤덤하기만 했다.

장 박사가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장면이 지나가고 현수가 현관문을 향해 돌아서는 장면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시간이 되었어.”

몇 번이고 그 부분을 반복해서 돌려본 장 박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 자네 말이 사실이었어. ‘시간이 되었어.’라······.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일까? 혹시 전에, 그러니까 자네에게 몽유증세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나?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말이야.”

“아니요. 절대로,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주위 친구들이나, 여자친구, 회사동료, 마을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현수는 강하게 도리질하며 부정했다.

“그래? 거참 이상하군. 어쩌면 자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어느 한 순간, 그러니까 저번에 최면요법을 시행했을 때 자네가 고통스러워했던 어떤 기억 속의 사건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확신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네. 자네만 좋다면 최면요법을 다시 한 번 시도하고 싶네. 자네가 그리도 고통스러워하던 기억, 자네가 가장 무서워했던 순간의 기억 말일세. 어쩌면 그 기억을 되살리게 되면 이 말의 의미와 자네에게 일어나는 몽유증세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저는 아무 때고 좋습니다. 지금이라도 박사님이 원하신다면 최면요법을 받고 싶습니다.”

현수는 반색했다. 현수에겐 최면 중에 일어난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장 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생애에 가장 무서웠던 순간의 기억과 마주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통에 몸부림쳤다고는 하지만 현수에겐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저 최면에서 깨었을 때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좋네. 자네가 좋다면 이따 다시 한 번 최면요법을 시도해 보겠네.”

“최면요법을 하면 정말 제게 일어난 몽유증세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확신할 수 없네. 지금으로선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는 거네. 특히, 최면요법을 시행했을 때 자네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공포의 근원을 밝혀내지 못했네. 난 그 안에 자네의 몽유증세가 발생한 원인이 있다고 보네.”

“알겠습니다. 박사님, 부탁드립니다.”

“좋네. 저번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좀 해야겠네. 저녁식사 후에 시작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장 박사와 이야기를 나눈 현수는 장 박사의 사무실을 나섰다. 장 박사는 사무실에 남아 최면요법과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겠다고했다.

“박사님은 좀 어떠세요?”

거실에서 마주친 묘화부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괜찮으신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지난밤 뵈었을 때보다 혈색도 좋아지신 것 같고 전보다 훨씬 밝아지신 것 같습니다. 계속 웃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별 탈이 없는 듯 보이네요.”

“그래요? 다행이군요. 현수 씨와 통화하자마자 연구소로 돌아가자고 어찌나 재촉하시는지 혼났어요. 다행히 담당의사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퇴원하긴 했지만 좀 불안했어요.”

묘화부인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 저도 그랬습니다. 박사님 모습으로 보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 박사를 걱정하는 묘화부인의 마음엔 지극함이 실려 있었다. 문득 현수는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며 고통스러워할 때 아버지도 과연 그랬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통곡하는 아버지를 보면 분명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일까? 현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러세요. 하지만 너무 늦진 마세요. 곧 저녁시간이랍니다.”

“예, 그럴게요.”

현수는 연구소를 나와 전원주택단지 주변을 거닐었다. 오후 햇살이 싫지 않았다. 현수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서쪽하늘 너머로 힘을 잃은 태양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태양은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가며 다가오는 어둠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현수는 지난밤 묘화부인과 함께 걸었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원에는 마을주민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가족단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현수는 작은 벤치에 앉아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와 함께 공놀이를 즐기는 어린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심해.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아이의 엄마인 삼십대 초반의 단발머리여자가 사랑스런 눈길로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곁에는 또래의 여성이 채 백일이 지났을까 말까한 아기를 품에 안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엄마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지극한 관심이 현수에게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아이는 제 몸보다 더 커 보이는 공을 튕기며 까르르 웃었다. 강아지는 무엇에 그리 신이 났는지 폴짝폴짝 뛰며 컹컹거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현수가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긴 사이 아이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울고 있었고, 강아지가 큰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공놀이를 하던 아이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외상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사랑이 지나친 엄마는 호들갑을 떨며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 올리고 달랬다.

요즘 들어 그렇다고들 한다. 대가족시대가 저물고 핵가족시대가 된 지금, 특히 자식을 하나밖에 낳지 않다보니 자식사랑이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머니도 자신이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저랬을까 싶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요즘 엄마들처럼 호들갑을 떨진 않았겠지만 현수의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어머니는 지금 저 아이의 엄마처럼 울고 있는 현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달래줬을 것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어머니의 품에 안겨 듣던 자장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

현수는 나직하게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지금쯤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현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현수가 겪는 이 기이한 경험과 고통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괜찮다. 아가. 괜찮을 거야. 사랑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 착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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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4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1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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