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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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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88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5.04 15:04
조회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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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제발! 재발? 몽유병? 1

DUMMY

1


기나긴 현수의 이야기를 들은 운전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천지에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도 그렇고, 그걸로 인해 겪은 일들은 누가 들어도 이상하고 기묘한 것이어서 도저히 믿기 힘든 것임엔 분명했다.

“믿지 못하시겠죠?”

현수는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요.”

운전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죠.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당신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기이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었죠.”

“예?”

운전자의 말에 현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제 말을 믿어주시는 겁니까?”

“글쎄요. 제가 당신의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중요한 건 지금 그 일이 다시 일어났다는 것이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운전자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얘기였다. 지금 와서 누가 믿든 안 믿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수 또한 믿어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속 시원히 털어놓은 것뿐이었다. 운전자의 말마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다시금 그 일이 재발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왜? 왜 다시 그 일이 일어났는지,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것이 문제였다.

현수가 다시 시작된 몽유증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차는 어느새 K시 들어서고 있었다.

“어디에 내려드리면 되나요?”

“아, 아무데나 편한 곳에 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터미널 쪽이나 택시 승강장 쪽이 좋겠지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택시 승강장이 있군요. 여기 내려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어차피 이쪽으로 오늘 길이었는데요 뭘. 그보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 그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모든 일엔 원인이 있는 법이니까, 원인을 찾으면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겠죠.”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아무쪼록 좋은 쪽으로 해결되길 바랍니다. 그럼.”

운전자는 진심으로 현수의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현수는 운전자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에게 대가없이 도움을 주고 위안의 말까지 건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현수는 멀어지는 자동차의 꽁무니에 대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고마움을 담아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 현수는 택시에 올랐다. 택시기사는 현수의 몰골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꺼리는 인상이었지만 승차거부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까요?”

현수는 목적지를 얘기하고 택시기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 돈이 없으니 집에 도착하는 대로 택시비를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현수를 훑어보더니 말없이 택시를 출발시켰다.

택시에서 내리는 현수를 본 마을주민 몇몇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현수는 별일 아니라고 둘러대고는 택시기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집으로 뛰어갔다. 발바닥이 부르터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택시비를 주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현수는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늦어도 보통 늦은 것이 아니었다. 오전시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것이었다. 현수는 전화를 걸어볼 생각도 못한 채 택시에 올라 회사로 갔다.

예상했던 대로 과장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걸복걸하여 재입사시켰더니 또 이렇게 무단으로 지각을 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냐며 호통을 쳤다. 현수는 몸을 움츠리고 죄송하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퇴근을 한 후 현수는 묘화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7개월 전 인연을 맺은 후론 친구처럼 때론 모자처럼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함께 하고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도 다니곤 해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는 모자로 보일 정도의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었다.

묘화부인은 장 박사를 잃은 슬픔을 현수로 대신하고 있었고, 비록 새어머니와의 소원했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져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묘화부인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 현수구나. 잘 지냈지? 그동안 바빠서 연락도 못했네. 미안해.”

어느새 호칭도 바뀐 상태였다. 묘화부인은 그동안 장 박사로부터 상속받은 토지와 부속건물을 팔아 작은 요양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 박사로부터 상속받은 토지는 개발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생각보다 고가에 팔 수 있었다. 상속받은 날로부터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수많은 부동산업자 및 투기꾼들이 몰려들어 남들보다 비싼 값을 지불할 테니 자신들에게 땅을 팔라고 재촉했다.

묘화부인은 처음에 장 박사로부터 상속받은 땅을 어떻게 팔 수 있냐며 버텼지만, 현수와 상의한 끝에 결국 상속받을 당시의 시가보다 몇 곱절 이상을 받고 팔았다.

현수는 ‘장 박사가 묘화부인도 모르게 그 땅을 산 이유는 단순히 투자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묘화부인에게 상속한 것은 묘화부인이 그 땅으로 뭔가 좋은 일을 해줄 수 있을 거라 여긴 때문이다. 그러니 이참에 그 땅을 팔아 묘화부인이 생각하고 있던 일, 어쩌면 장 박사가 바라고 있을 일을 하시라.’고 조언했다.

묘화부인도 현수의 말에 수긍하고 동의했다.

묘화부인은 땅을 판 돈으로 연구소와 가까운 곳에 노인들을 위한 특히, 노인성치매환자들을 위한 전문요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처음엔 전원주택단지주민들이나 인근지역주민들의 반대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묘화부인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설득을 했고, 묘화부인의 정성과 뜻에 감화된 사람들은 설립찬성은 물론 스스로 두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이제 터 잡이 공사는 물론 건물의 기본골격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앞으로 6개월 정도만 더 지나면 건물이 완성되고, 1년 후쯤이면 개원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묘화부인은 매일같이 공사장에 나가 공사 진척상황을 살피는 것을 시작으로 요양원설립에 필요한 서류작업과 후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요즘 같아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장 박사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 현수의 구출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묘화부인의 뜻에 동참하여 힘을 보태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늙고 연약한 묘화부인 혼자서는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수로선 가끔 찾아가 일손을 돕기는 하지만 묘화부인에게 너무 큰 짐을 지어드린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묘화부인에게 넌지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너무 신경 쓸 것 없다고, 현수 너는 네 삶에 충실하라고, 그것이 더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더 미안하죠. 그보다 건강은 어떠세요?”

“나야 뭐 항상 그렇지. 좋아. 아픈데 하나 없이 아주 좋아.”

“다행이네요. 일은 좀 어떠세요?”

“응, 그것도 걱정하지 마.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어. 이제 건물만 완성되면 끝나.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

“잘됐네요.”

“그런데 웬일이야?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아프긴요. 아니에요. 그, 그냥······.”

현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묘화부인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짐까지 덧댈 수는 없었다.

“안부인사차 전화 드린 거예요. 아무 일 없으시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주말에 시간되면 놀러오고. 알았지?”

“예, 그럴게요.”

전화를 끊은 현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7개월 만에 다시 시작된 몽유증상,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라졌던 그것이 왜 지금에 와서 다시 나타났는지, 무엇보다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7개월 전에도 갑작스레 자신에게 나타난 몽유증상의 원인을 밝히려 노력했지만, 장 박사의 안타까운 죽음과 현수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했던 비참한 기억이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몽유증상이 사라져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었다. 그 일은 이제 과거의 아픈 추억쯤으로 묻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로 겪은 아픔이나 고통을 잊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왜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나는지, 그것도 전보다 더 멀리 떨어진 거리의 낯선 도시에서 깨어나야 했는지, 현수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고민을 하던 현수는 문득 자신의 몽유증상이 사라졌던 때를 기억해냈다. 그때 지하실에 갇혀 침대에 꽁꽁 묶여 있던 현수는 다음날에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묶여 있던 자신을 기억해냈다.

“바로 그거야.”

현수는 무릎을 탁 치고 버스에서 내려 시내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침대에 묶어둘 수 있는 튼튼한 가죽 끈과 편리하게 풀고 묶을 수 있는 도구들을 샀다.

사람을 침대에 묶을 수 있는 도구가 없냐는 현수의 물음에 상점 주인들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농담이라며 객쩍게 웃는 현수의 너스레에 별 이상한 놈 다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개목걸이나 여러 가죽 띠 및 쇠사슬 등을 내주었다.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한 현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침대에 묶고 움직여보았다. 그때 지하실에 갇혔을 때의 정신병자용 재킷이나 환자용 침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단단히 조인 쇠사슬과 가죽 띠 덕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고, 몸 곳곳에 시뻘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도 쉽게 풀려날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하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그리고 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침대에 누었다.

가죽 띠와 쇠사슬을 몸에 두르던 현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일어나서 옷을 차려 입었다. 불편하긴 하겠지만, 오늘 아침과 같은 고생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주머니에 지갑과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간단한 복장으로 누워 가죽 띠와 쇠사슬로 몸을 칭칭 감고 힘껏 조였다. 가슴과 팔다리에 느껴지는 압력이 거셌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아니, 이 정도 고통은 견뎌야했다. 어설프게 묶었다가 풀리기라도 하는 날엔 이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결박한 현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상태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자신의 침대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수의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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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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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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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악몽 1 16.05.01 43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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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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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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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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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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