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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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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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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1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30 09:56
조회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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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숨겨진 과거 1

DUMMY

1


현수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병원에서 쓰는 환자용 재킷이 현수의 몸에 입혀져 있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병원용 침대에 가죽 끈을 이용해 단단하게 묶여있었다. 간신히 고개만 돌릴 수 있었다.

현수의 양쪽 관자놀이엔 하얀 선으로 연결된 무언가가 달라붙어있었다. 현수의 몸에 연결된 하얀 선은 전자기계에 연결되어있었고, 기계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신호음을 보내오고 있었다.

현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낯선 풍경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수는 직감적으로 지하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현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현수가 기억하는 마지막은 뭔가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던 것과 그때 그의 희미한 시야에 들어온 장 박사의 음산한 얼굴과 중얼거림, 괴기스런 웃음소리, 그리고 묘화부인의 창백해진 모습뿐이었다.

“바, 박사님이 왜 나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고, 이렇게 가둬놓았는지 어떤 식으로든 유추할 수 없었다.

그보다 지은이 걱정이었다. 지은에게 가야하는데, 가서 지은에게 사정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마음 착한 지은은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나직하게 말할 텐데, “괜찮아 오빠. 내가 있잖아.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우리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라고.

분명 그럴 텐데. 진즉에 지은에게 얘기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지은이라면 분명 자신을 이해해줬을 거란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후회와 슬픔이 교차되었다.

철커덩!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제약되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것이 분명했다.

“깨어났군.”

“바, 박사님? 왜 저를······.”

“미안하네. 현수 군. 나도 어쩔 수가 없었네. 자네를 붙잡아두고 연구를 계속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네. 날 용서해주게. 다 자네를 위한 일이야.”

장 박사의 음성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정감 어렸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섬뜩한 눈빛을 뿜어내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박사님, 절 풀어주세요. 전 지금 가봐야 합니다. 지은이를 만나야 한다고요. 지은이를 만나서 이야기할 겁니다. 그리고 돌아올게요. 박사님 절 풀어주세요. 예?”

현수는 애절하게 장 박사를 부르며 호소했다.

“아니야. 자넨 돌아오지 않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이 방법밖엔 없었어. 정말이야. 날 이해해줘야 하네. 모든 게 자네를 위한 거야.”

장 박사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뭐라고 꼭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불안함이 서려있었다.

“아닙니다. 전 돌아올 겁니다. 박사님! 제발, 제발 절 풀어주세요.”

현수의 애원이 계속되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장 박사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자넨 돌아오지 않아. 그럴 거라고 했어. 자네가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어. 자넨 돌아오지 않아.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어. 영원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난 분명 들었어. 분명 그렇게 말했어. 현수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 박사는 계속 중얼거렸다. 그것을 듣는 현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현수는 장 박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장 박사의 말로 미루어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환청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현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럴 때 묘화부인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묘화부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묘화부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박사님이 그녀를 해치진 않았겠지?’

현수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아무리 장 박사가 이상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가 묘화부인에게 위해를 가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현수의 귀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 박사가 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볼 수 없어서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들려오는 소리가 현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지금 현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장 박사를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장 박사의 정신을 온전한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계속해서 장 박사에 말을 걸었다.

하지만 장 박사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혼자서 아까와 같은 말을 중얼거릴 뿐 현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장 박사는 무언가에 단단히 홀려있는 것 같았다.

“현수는 돌아오지 않아, 현수는 돌아오지 않아. 절대 돌아오지 않아······.”

“박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발, 저 좀 풀어주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박사님, 박사님 제발!”

현수의 애절한 외침은 칙칙한 벽에 반사되어 현수에게 되돌아왔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울림이 음산하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장 박사가 현수에게 다가왔다. 현수의 눈에 장 박사의 손에 들린 주사기가 보였다.

“바, 박사님. 그, 그게 뭡니까? 도, 도대체 제, 제게 무슨 짓을 하려고······.”

현수는 두려운 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현수 군. 걱정하지 말게. 자넬 해칠 생각은 없네. 이걸 맞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안정된 상태가 되지. 난 절대 자네에게 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네. 날 믿게.”

장 박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현수를 달랬다. 하지만 현수로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게 뭔가요? 예? 제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박사님. 이러지 마세요. 제발 절 풀어주세요. 제발······.”

현수의 절규 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 장 박사는 ‘괜찮다.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다. 이걸 맞으면 긴장된 마음이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며 현수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순간적인 따끔함이 느껴지고 주사약이 현수의 혈관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잠시 뒤 장 박사의 말대로 현수의 몸이 노곤해졌다. 긴장이 풀어지고 근육이 이완되었다. 전신의 힘이 쏙 빠졌다. 현수는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눈만 껌뻑거렸다.

“기분이 어떤가?”

장 박사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얼굴은 나른한 오후햇살아래에서 잠들기 전의 모습과 같이 편안하고 느긋해보였다.

“좋군. 이제부터 자네에게 최면을 걸겠네. 저번에 실패했던 자네의 무서운 기억 속으로 들어갈 거야. 아, 걱정하지 말게. 절대 자네에게 해가 되진 않을 거야. 난 오로지 자네의 이상한 병증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장 박사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현수가 알고 있던 장 박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전의 장 박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네는 이제 자네의 무의식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걸세. 천천히 눈을 감고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을 느껴보게. 자네의 지나간 생애 속에 숨겨진 이면, 자네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어둡고 절망적인 과거 속으로 나와 함께 떠나세. 자네의 비참하고 우울한 두려움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숨어있는 자네의 공포와 마주하게. 자네는 안전하네. 두려워할 것 없어. 내가 곁에 있을 거네. 난 자네의 수호천사가 될 거야. 자, 이제 시작하네. 눈을 감게.”

장 박사의 말에 현수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자, 이제 자네의 아득한 어둠 속, 두려움이 판치는 과거의 우울한 악몽 속으로 가는 거네. 절대 두려워 말게. 뒤돌아보지도 말고. 내가 곁에 있네. 이렇게 자네의 손을 잡고 있어. 들어가게. 천천히 두려움 없이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가게. 자네 앞에 닥친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말고, 자네의 온몸을 맡기도록 하게.”

장 박사의 말을 들으며 현수는 몽롱한 상태에서 무의식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다.

현수는 빛 속을 헤매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눈부신 빛에 갇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현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망설이는 빛이 역력했다.

“현수 군. 멈추지 말고 나아가게.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게. 어서.”

장 박사가 재촉했다. 장 박사의 얼굴엔 초조한 빛이 드러나 있었다. 현수의 몸에 연결된 기계장치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의 간격이 조금 빨라져있었다.

“현수 군. 두려워 말게. 절대 자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어. 자넨 안전하네. 내가 장담하지. 절대 자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장 박사의 의도가 전해졌는지 현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현수는 빛을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전해지고 현수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기계장치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이 속도를 더해 갔다.

“뭐가 보이는가? 무엇이 자네를 괴롭히고 두렵게 만드는가? 말해보게 현수 군. 그건 과거의 일일 뿐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야. 현실이 아니네. 그러니 절대 두려워 말게. 무엇이 보이는가. 말해 보게.”

장 박사가 현수를 재촉했다. 기계장치의 신호음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현수의 얼굴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현수의 몸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살짝 벌려진 입에선 나직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콧구멍이 커지고 볼이 씰룩거렸다.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으으으······.”

현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신호음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었다. 현수의 신음소리가 더해졌다. 현수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땀이 흘러내렸다. 호흡은 거칠었다.

“으으으······. 제, 제발······. 이, 이러지마······. 제발. 나, 난······. 으으······.”

악다문 잇새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뒤이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불명확했다. 입술을 깨물었는지 핏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현수 군. 무엇인가? 무엇이 자네를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말해보게. 두려워말고 말하게. 어서!”

장 박사가 현수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서 소리쳤다. 장 박사의 얼굴은 초조함과 설렘이 뒤엉켜 일그러져 있었다.

“으으······. 난······. 무, 무서······. 으으······.”

현수는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부딪치며 떨었다. 두려움이 극에 달한 현수의 얼굴엔 핏기하나 보이지 않았다. 붉은 핏물이 흘러내린 입술은 파리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거칠어진 호흡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졌다.

장 박사는 계속 현수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현수는 계속해서 ‘무섭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신음소리를 쏟아낼 뿐이었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장 박사가 다시 주사기를 채웠다. 양이 많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장 박사지만 그에겐 지금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장 박사의 머릿속엔 오로지 현수의 공포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다.

“현수 군. 내가 자네의 고통을 덜어주겠네. 이것을 맞으면 편안해질 거야. 고통의 중심에서 벗어나 밖에서 고통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걸 나에게 말해주게. 자네가 느끼는 공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네. 그래야 자네의 병증을 치유할 수 있어. 두려워 말게. 자네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거야.”

장 박사는 현수의 목에 주사기를 꽂고 약물을 밀어 넣었다.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현수의 경련이 잦아들고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호흡도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신음소리도 잦아들었다. 기계장치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들려오던 신호음도 간격이 현저히 줄어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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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죄와 벌 1 16.05.07 386 4 12쪽
28 퇴마의식 2 16.05.05 481 3 16쪽
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2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7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2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6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1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09 4 14쪽
20 악몽 2 16.05.01 525 4 11쪽
19 악몽 1 16.05.01 43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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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과거 1 16.04.30 355 4 12쪽
16 장 박사의 변화 2 16.04.29 493 4 12쪽
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14 시간이 되었어. 3 +1 16.04.28 399 9 11쪽
13 시간이 되었어. 2 16.04.28 474 6 12쪽
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1 7 11쪽
11 몽마? 2 16.04.27 459 5 12쪽
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3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6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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