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공포·미스테리

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700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3 18:03
조회
548
추천
7
글자
11쪽

발단 그리고 전개 2

DUMMY

2


굿을 통해 마을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던 소문은 잠잠해지고, 현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많이 거두어지긴 했지만, 현수의 고민은 해결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깨어났고, 날이 갈수록 그 거리가 멀어졌다.

다행히 마을사람들과 약속한대로 잠옷이 아닌 체육복을 입고, 신발까지 챙겨 신고 잠드는 통에 현수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줄어든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현수는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잠들지 않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든 잠이 들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여러 편의 영화를 빌려다 밤을 새서 보거나, 이유 없이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으며 물대신 커피를 마시거나 하는 등 잠을 자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처음 이틀간은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회사에 가면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상사의 호된 꾸지람과 동료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현수는 어떻게든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틀을 버티고 난 다음부터는 아무리 갖은 노력을 해도 자정이 넘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어김없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는 것이었다.

현수로선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더욱 힘들고 괴로웠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매일매일 밤이 찾아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잠이 드는 것에 공포를 느끼며,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사는 삶이란 매우 두렵고 괴로운 것을 넘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밤 시간은 하루의 반이다. 길게 보면 앞으로 남은 인생의 반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된다. 현수로선 자신의 앞날이 두렵기만 했다.

밤은 휴식의 시간이고, 잠은 지친 몸의 기운을 보충하는 약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휴식과 안정을 주어야할 밤이 공포의 시간으로 바뀌고, 소비된 기운을 채워주어야 할 잠을 두려움하며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는 것은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현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기묘한 현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명을 알아야 하듯이 자신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몽유병이었다. 몽유병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던 현수는 인터넷을 검색해 몽유병에 관해, 그리고 몽유병을 앓는 사람들과 치료사례까지 섭렵했다. 일정부분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몽유병에 관한 설명이나 사례들 어디에도 현수처럼 날이 갈수록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통과 함께 깨어났다는 증상에 관해서 기록된 바가 없었다.

현수는 긴가민가하며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에 관해서도 조사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자료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현수는 인터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 서술하고 조언을 얻어 보고자 했다.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글을 남긴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온 것은 ‘소설 잘 읽었습니다.’라는 싸늘한 냉소와 조소뿐이었다.

현수에겐 실제로 벌어지는 절박한 고통이지만,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받고자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자신이 겪는 일과 유사한 일을 겪은 사람들, 혹은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그러한 현상에 관해 사소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싶어 글을 남겼다가 괜한 실망감만 떠안고 말았다.

현수는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현수는 인터넷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으려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책망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전문가와 상담하는 편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되리란 걸 알고 있으면서 인터넷이란 불특정다수가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부정확한 정보에 기대려한 것이 우습기까지 했다.

며칠 후, 현수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검사결과가 나왔다.

현수는 혹시 자신의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알 수 없는 희소병에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워했지만, 검사 결과는 깨끗했다.

“아무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계시군요. 모든 수치가 다 좋아요. 현수 씨 나이보다 훨씬 젊고 튼튼한 몸을 가졌어요. 나로선 부러울 정도군요.”

의사의 말에 따르면 지금 현수의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부러워할 정도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건강한 신체를 지녔다는 것이 기쁠 법도 하건만 현수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신체적 이상이 없는데도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지 의문이었다.

현수는 결국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에 대해 털어놓고 말았다. 차라리 진즉부터 몽유병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현수의 얘기를 듣고 난 의사는 한동안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더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현수가 들려준 말을 상세하게 상대방에게 설명했고, 잠시 동안 상대방의 말을 듣더니 알았다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는 현수를 향해 돌아앉았다.

“제가 잘 아는 정신과전문의가 계신데, 그분에게 한 번 찾아가 보시지요. 어쩌면 현수 씨가 겪고 있는 그것이 몽유병이든 아니든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여기 연락처와 약도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전화해 두었으니 아무 때고 편한 시간에 연락한 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찾아가 보는 것이 좋을 듯싶군요.”

의사는 휘갈겨 쓴 종이를 현수에게 건넸다. 현수는 그것을 받아들고 살폈다.

장지환 박사란 이름 아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간단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장지환 박사의 병원은 현수가 사는 K시와는 꽤 멀리 떨어진 D시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수는 의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당분간은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휴가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현수는 과장을 찾아 휴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과장은 무슨 일이 있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현수는 그저 집안일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자 과장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언제부터 얼마나 휴가가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현수는 넉넉하게 사흘이면 족하고, 날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과장은 알았다며 적당한 사유서와 함께 휴가신청을 하라고 했다. 현수는 재빨리 사유서와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고, 과장은 두말 않고 서명해주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현수는 다음 날부터 사흘 간, 주말까지 포함하여 닷새 동안의 휴가를 얻게 되었다.

회사를 나오면서 현수는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현수의 귓속에 편안하게 들려왔다.

“오빠! 웬일이야! 이 시간에?”

지은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은은 아직 현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은이 현재 현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수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괴상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지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 뭐하고 있었어? 바빠?”

“아니, 안 그래도 일하다가 지쳐서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나온 참이었어. 그런데 왜? 무슨 일이야.”

“어, 나 며칠 동안 어디 좀 가게 돼서.”

“어디? 또 출장이야?”

“어? 응. 그래, 출장이야.”

현수는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지은이 먼저 말을 꺼내는 바람에 쉬워졌다.

“어휴! 매번 오빠만 출장이래. 너무 부려먹는 것 아냐?”

“내가 능력이 좋으니까 그렇지 뭐.”

“피! 얼마나 걸리는데?”

“한 사흘? 아니, 닷새 정도.”

“그렇게나 오래 걸려? 어디로 가는데? 외국이야?”

“어? 응, 뭐 그래. 그동안 연락 못할지도 몰라서······.”

“그래? 요즘 이상해? 혹시 바람피우는 거 아냐? 근래 들어 연락도 뜸하고, 우리 만난 지도 꽤 됐잖아.”

다분히 놀리는 것이 분명한 말투였다. 그런데도 현수는 마치 지은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며 부정했다.

“아, 아냐. 절대 그런 거 아냐. 믿어줘.”

“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정말 그런 거야?”

“아냐, 날 못 믿어? 절대 그런 거 아니야. 쓸데없는 의심은 하지 마.”

현수는 거칠게 도리질을 하며 지은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알아. 오빤 그럴 주제도 못 되잖아. 오빠한텐 나뿐이란 걸 알고 있어.”

“그, 그래. 나한텐 너뿐이야.”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오고, 바쁘더라도 시간 내서 전화해줘. 안 그러면 바람피우는 줄 알 테니까. 알았지?”

“그래, 알았어.”

“돌아오면 전화하고. 내가 맛있는 음식점 하나 알아놨어. 거기 가자.”

“그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응. 나 지금 들어가 봐야해. 사랑해.”

“나도······. 사랑해.”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현수는 지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쾌활한 음성으로 자신을 반겨주는 지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두고두고 짐이 될 것만 같았다.

비록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물론 주위 친구들도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라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부, 굳이 부부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주고 정을 나누는 연인사이라면 무엇도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현수의 평소 지론에 비추어 보아도 지은을 속이는 것은 가슴 아프고 미안한 일이었다.

가만히 불 꺼진 휴대전화를 응시하던 현수가 마음을 담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지은아 미안해.”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절대 알려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현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라지는 남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자유여행가 +2 16.05.14 466 4 13쪽
35 끝나지 않았다. 2 16.05.14 396 2 12쪽
34 끝나지 않았다. 1 +1 16.05.14 479 4 11쪽
33 천도재 2 16.05.08 422 4 11쪽
32 천도재 1 16.05.08 390 4 11쪽
31 죄와 벌 3 16.05.07 417 4 12쪽
30 죄와 벌 2 16.05.07 403 4 13쪽
29 죄와 벌 1 16.05.07 387 4 12쪽
28 퇴마의식 2 16.05.05 482 3 16쪽
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26 제발! 재발? 몽유병? 2 16.05.04 443 4 13쪽
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8 5 11쪽
24 다시 일상으로 16.05.03 653 4 13쪽
23 장 박사의 죽음 3 16.05.02 417 4 14쪽
22 장 박사의 죽음 2 16.05.02 372 4 13쪽
21 장 박사의 죽음 1 16.05.02 410 4 14쪽
20 악몽 2 16.05.01 525 4 11쪽
19 악몽 1 16.05.01 438 4 11쪽
18 숨겨진 과거 2 16.04.30 298 5 17쪽
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16 장 박사의 변화 2 16.04.29 494 4 12쪽
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6 4 12쪽
14 시간이 되었어. 3 +1 16.04.28 399 9 11쪽
13 시간이 되었어. 2 16.04.28 475 6 12쪽
12 시간이 되었어. 1 16.04.28 402 7 11쪽
11 몽마? 2 16.04.27 459 5 12쪽
10 몽마? 1 16.04.27 542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4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4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1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9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1 기이한 청년 +3 16.04.23 711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