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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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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97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8 08:56
조회
474
추천
6
글자
12쪽

시간이 되었어. 2

DUMMY

2


택시가 도로를 빠르게 달려 나갔지만, 현수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몸을 끌어당겨 택시기사에게 바짝 다가앉아 전방을 주시하며 빨리 가달라고 재촉했다.

현수는 자신을 책망했던 것이다. 장 박사가 병원, 그것도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장 박사가 보기보다 노령이란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장 박사의 건강은 이상이 없어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데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하다니.

괜히 자신이 나타나 장 박사를 힘겹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두렵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장 박사가 입원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묘화부인이 이토록 마음 졸이며 슬퍼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빌며, 현수는 택시기사에게 빨리 가 달라고 여러 번 재촉했다. 하지만 S시에서 D시까지는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은 족히 걸렸다. 택시기사는 최대한 빨리 가고 있으니 제발 진정하라고 말했다.

택시에 올라 탄지 2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로선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현수가 하도 재촉하는 통에 몇 개의 신호도 위반하고, 불법 유턴이나 진입도 마다하지 않은 결과였다.

현수는 택시비를 던지듯 지불하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중환자실 앞에 다다랐을 때 문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묘화부인이 보였다.

“부인! 바, 박사님은 어떠신가요?”

“현수 씨······.”

현수를 발견한 묘화부인은 현수의 품에 안겨 눈물부터 쏟아냈다. 현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묘화부인의 몸이 이토록 왜소할 줄은 몰랐다. 현수는 가만히 묘화부인을 안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자신이 너무 흥분하여 호들갑을 떨면 연약한 묘화부인에겐 더 큰 짐을 안기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박사님이 없는 지금 묘화부인에게 의지가 될 사람은 자신뿐이란 걸 깨달았다.

묘화부인이 어느 정도 진정된 기미를 보이자 현수가 어찌된 일인지를 물었다. 묘화부인은 차근차근 가끔씩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저간의 일을 설명했다.

명암을 그가 거하고 있는 암자가 있는 산 아래까지 데려다 준 묘화부인은 그길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늦었으니 오늘은 암자의 본사에서 묵고 가라는 명암의 청도 거절한 채 어둔 새벽길을 달려 돌아왔다.

묘화부인이 장 박사의 연구소에 도착한 시간은 동쪽하늘이 뿌옇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아침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현관 바로 앞에 쓰러져있는 장 박사를 발견하고 말았다.

“바, 박사님!”

장 박사의 입가엔 한줄기 핏물이 새어나와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채였으나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묘화부인은 장 박사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운 마음에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장 박사에게 다가간 묘화부인은 미약하지만 장 박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러나 장 박사의 숨이 너무도 미약해서 위험해보였다.

묘화부인은 급히 구급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당도했다.

구급차가 오기까지 그 짧은 몇 분 동안 묘화부인은 두려움에 떨며 장 박사를 편안한 자세로 뉘이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장 박사의 몸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미약한 호흡과 가녀린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죽은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창백한 얼굴과 파리한 입술, 부릅뜬 두 눈, 그리고 경직된 신체는 시체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가끔씩 장 박사의 호흡이 끊어질 듯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묘화부인은 기억을 짜내어 인공호흡을 하고 가슴을 압박하여 장 박사의 숨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구급차가 제 시간에 도착해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묘화부인은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병원에 도착한 장 박사는 곧바로 응급실로 들어갔고, 간단한 처치를 한 후 중환자실에 옮겨갔다.

무겁게 닫히는 문 저편에서 염주를 굴리며 기도를 하는 묘화부인의 심정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묘화부인은 현수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묘화부인은 그제야 현수를 떠올리고 전화를 건 것이었다.

“박사님은 괜찮겠지요? 그렇지요?”

“예, 물론입니다. 괜찮으실 거예요.”

현수는 묘화부인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약 장 박사에게 어떤 안 좋은 일,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의사선생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몰라요. 무서워서, 어떤 나쁜 얘기를 들을지 몰라 물어보지 못했어요.”

묘화부인은 덜덜 떨며 힘겹게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식을 잃고 가족과도 헤어진 지금 묘화부인에게 장 박사는 남편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다. 묘화부인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담대할 수 있겠는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장한 일이었다.

“여기 잠시만 계세요. 제가 의사선생님을 만나 뵙고 오겠습니다.”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묘화부인은 현수의 소매 깃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은 되었지만, 아직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예, 그럼 잠시 이대로 있을게요. 박사님은 괜찮아지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현수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전부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묘화부인은 현수의 품에 안긴 채 잠이 들었다. 밤을 새며 운전을 하고 갑작스레 놀랍고 두려운 일을 맞닥트렸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했다.

새근새근 잠든 묘화부인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해보였다. 이런 묘화부인이 얼마나 놀랐을까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미어졌다.

현수와 묘화부인이 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을 때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한 사람이 다가왔다.

“혹시 장지환 환자 보호자 분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잠시 저 좀 보실까요?”

이렇게 말한 의사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현수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의사를 만나 장 박사의 상태를 듣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잠든 묘화부인을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었다.

“같이 가요.”

묘화부인의 음성이 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깨어나 머리를 매만지며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젠 완전히 진정되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있었다.

“괜찮으세요?”

“예, 제가 너무 추한 모습을 보였네요. 이젠 괜찮아요. 고마워요.”

다행이었다. 장 박사가 저리된 마당에 묘화부인까지 심적 충격으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현수와 묘화부인은 나란히 의사의 뒤를 따랐다.

“장 박사님 상태는 어떻습니까? 위험한 상탠가요? 원인이 뭡니까?”

의사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현수가 다급하게 물었다.

“일단 앉으시죠.”

의사는 냉정을 잃지 않으며 자리를 권했다. 현수와 묘화부인은 의사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의사가 장 박사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을 꺼내 벽에 붙이며 설명했다. 여러 의학적인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현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의사가 쉬운 말로 바꾸어 다시 설명했다.

“일종의 쇼크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쇼크 상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보호자 분들께서 아실지 몰라 이렇게 청했습니다.”

“쇼크 상태라면······.”

“예, 어떤 외부의 자극에 의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혹시 짐작가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분명 어제 보았던 다섯 번째 영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현수가 생각하기에 아침에 일어난 장 박사가 전처럼 지난밤에 촬영된 화면을 보다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촬영된 화면이 아닌 실제상황을 목격했을 수도 있었다.

“예,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뭐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박사님은 언제 깨어나실까요?”

현수는 대답을 회피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글쎄요. 지금으로선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환자의 상태는 일반적인 쇼크 상태와는 다릅니다. 비록 혼수상태에 빠져있긴 하지만 여러 검사 결과나 현재 환자의 상태로 보아 정신만 차리지 못할 뿐 모든 것은 정상상태입니다. 심전도는 물론 신체의 활동 상태는 깨어있는 정상인의 그것과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지금 환자는 편안한 상태로 산책을 즐기는 것과 같은 신체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의사생활 15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고, 이와 같은 임상보고서나 논문을 본 적도 없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모든 검사기록과 시시각각 보여 지는 의학적 데이터는 장 박사의 상태가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 그것도 아주 안정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처음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자위 하나 보이지 않는 부릅뜬 눈과 창백한 얼굴, 경직된 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장 박사의 눈을 감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경직되어 뻣뻣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역시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담당의사로서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태의 환자는 이제껏 겪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위급한 환자 같지만 실제 데이터는 아무 이상 없는 정상이라고 나오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밖에는.”

의사는 자신이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호기심이 치미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짐작가시는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의사가 물어왔다. 그러나 현수나 묘화부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짐작일 뿐입니다.”

현수의 대답에 의사가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의사의 시선엔 의혹이 담겨있었다. 쇼크의 원인을 알면서도 담당의사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현수의 행동이 수상쩍었던 것이다.

“그러지 말고 말씀해주시죠. 현재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의사가 목청을 살짝 높였다. 그러나 현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현수로서는 말할 수 없었다. 그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의사에게 짐작하는 바를 설명하자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수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기묘한 현상, 몽유증세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십시오.”

현수는 대답대신 묘화부인에게 말하고 담당의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는 현수를 붙잡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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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퇴마의식 1 16.05.05 40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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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발! 재발? 몽유병? 1 +1 16.05.04 51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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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숨겨진 과거 1 16.04.30 3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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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박사의 변화 1 16.04.29 41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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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몽마? 1 16.04.27 542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4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1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3 발단 그리고 전개 2 +1 16.04.23 548 7 11쪽
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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