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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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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23 17:58
최근연재일 :
2016.05.14 17: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689
추천수 :
172
글자수 :
202,332

작성
16.04.28 08:55
조회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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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시간이 되었어. 1

DUMMY

1


따사로운 햇살이 잠든 현수의 뺨을 달구고,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 뺨을 간질였다. 현수는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있었다.

“엄마, 저 아저씨 죽었나봐.”

대여섯 살 정도 먹어 보이는 꼬마가 현수를 발견하고 말했다.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냐.”

꼬마의 엄마인 것으로 보이는 삼십대 초반의 여자가 꼬마를 나무랐다.

“봐. 꼼짝도 하지 않는 걸.”

하지만 꼬마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확신했다. 지금 현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죽은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아주 미세한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는 모습은 죽은 자의 그것과 같았다.

그것에 놀랐을까? 꼬마의 엄마는 창백해진 얼굴로 꼬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자.”

그때 꼬마 곁에 있던 누렁이가 현수에게 달려갔다. 갑작스런 행동에 꼬마는 잡고 있던 줄을 놓치고 말았다.

“메리! 메리야, 어서 돌아와.”

꼬마가 애타게 불렀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누렁이는 현수에게 다가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현수의 뺨을 거칠게 핥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현수의 얼굴이 마치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양 침을 잔뜩 발라가며 핥았다. 그 바람에 현수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뭐, 뭐야.”

끈적끈적하며 축축하고 부드러운 물체가 자신의 뺨에 닿자 화들짝 놀란 현수가 손을 내저으며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현수에겐 어김없이 망치로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은 두통이 뒤따랐다.

그때 누렁이가 짖었다.

컹컹!

갑작스런 소음에 현수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현수의 눈과 누렁이의 눈이 마주쳤다. 누렁이의 입에선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저, 저리가.”

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메리! 이리와. 어서. 가자.”

마침 꼬마가 다가와 누렁이의 목에 연결된 줄을 잡아끌었다. 그러면서 현수를 이리저리 살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기라도 한 표정이었다.

“아저씨, 안 죽었네? 정말 살아있는 거 맞아요?”

현수는 당돌한 꼬맹이라고 생각하며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팔팔한 사람이 죽은 거 봤니?”

현수는 보란 듯이 팔을 휘휘 돌렸다.

“민철아, 어서 가자.”

꼬마의 엄마가 다가와 꼬마의 손을 잡아채고 멀어져갔다. 꼬마가 현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 죽지 마요. 안녕.”

“그래 안녕.”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꼬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멀리서 꼬마의 엄마가 꼬마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꼬마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언제 보아도 미소 짓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현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문득 어린 동생이 생각났다. 비록 새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동생에게만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현수는 어린 동생 진수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진수 녀석은 뭐하고 있으려나?”

꼬마 때문인지, 누렁이 때문인지, 현수는 깨었을 때 느꼈던 두통이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동안 현수에게 몽유증세가 생긴 후로 시작된 두통은 참을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지속되는 시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10분 가까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잠깐 동안의 두통을 경험하고는 그만이었다. 현수는 꼬마 덕분이라 여기면서 고마운 마음을 품었다.

꼬마 모자가 떠나고 난 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현수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자신이 어느 이름 모를 공원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은 아침 9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공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현수는 마침 그의 옆을 지나쳐가는 중년여성에게 공원의 이름과 위치를 물었다. 중년여성은 현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긴 F공원이에요. S시 S동에 소재해 있어요. 그런데 왜 그래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온 거예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현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S시, S시라······.”

현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S시라면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M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는 소도시였다. 도시의 크기도 작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새로 조성된 도시라 도시전체가 깨끗하고 도로망이나 기간시설이 잘 정비된 계획도시로 어떤 설문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뽑힌 바 있는 곳이었다.

S시는 장 박사의 거처가 있는 D시와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시였다. 어제 깨어났던 B리에 비해 조금 더 먼 곳이었다. D시와 S시 사이에 B리가 위치해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된 현수는 벤치를 발견하고 걸음을 떼어놓았다.

벤치에 앉아 장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계속 갔지만 받지 않았다. 아직 자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장 박사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문득 어젯밤 장 박사가 달아주었던 소형카메라가 생각났다.

“맞다. 카메라를 달았었지? 참! 위치추적기도 부착되어 있다고 했던가? 그럼, 걱정 없군. 장 박사님께서 깨어나시면 연락하시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형카메라를 달았던 곳을 살폈다. 카메라는 깨지거나 흠집 난 곳 없이 그 자리에 제대로 장착되어있었다. 현수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순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뭐라도 먹어야겠군.”

현수는 주머니 속의 지갑을 확인했다. 돈과 신분증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벤치에서 일어난 현수는 공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어제도 들은 바 있는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수가 서 있는 바로 옆 작은 숲에서 나는 소리였다. 현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다른 사람도 그 소리를 듣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현수 주위에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현수를 제외하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두런두런 들리던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았다.

현수는 아까와 달라진 점이 없는지 생각했다.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주변을 살폈지만 분명 조금 전 지나쳐온 길과 잔디밭, 화단,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이 작은 숲이 아까도 있었냐는 것이다. 확신할 수 없었다. 현수가 깨어난 곳에서 지금 서 있는 벤치까지는 100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주의를 기울여 살핀 것은 아니지만 여느 공원이 그렇듯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현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샛길이 보였다. 현수가 발을 들여놓자 소리가 더욱 커졌다. 마치 바로 옆에서 떠드는 소리 같았다.

몇 발자국 걸어 완전히 숲 속으로 들어섰을 때, 의미가 불분명하던 소리가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현수는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간···이···되···었···어······. 시···간···이···되···었···어······.’

“시간이 되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귓속에 윙윙거리는 소리를 되뇌어보았다.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시간이 되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노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 아니 어쩌면 그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합창하듯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되었어.’

무슨 시간이 되었단 말인가?

현수는 앞뒤 자르고 들려온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니. 도대체 무슨 시간을 말하는 것인가?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지난번처럼 현수가 서 있는 작은 숲에만 내리고 있었다. 숲은 벗어난 지역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빗소리에 묻혀 ‘시간이 되었어.’라고 반복적으로 들리던 소리가 사라졌다.

현수가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을 때 현수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여는 동시에 비가 그치고, 현수를 둘러싸고 있던 숲이 사라져버렸다.

현수가 서 있는 곳은 공원 한구석에 위치한 분수대였다. 투명하고 차가운 물이 찰랑거리는 분수대 한복판에 현수가 서 있었다. 현수의 무릎 아래는 물속에 잠겨있었다. 현수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재잘재잘 떠들썩한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거기서 뭐하는 거요?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삼십대 남자가 현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현수를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이 현수에게 꽂히자 현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현수는 부끄럽고 황망하여 서둘러 물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가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그때 귓전에서 무슨 말소리인가가 급박하게 들려왔다. 현수는 그것이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소리란 것을 알아차렸다.

“여, 여보세요?”

“현수 씨? 저 묘화에요? 지금 어디세요?”

묘화부인은 다급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왜 그러시죠? 무슨 일 있나요?”

“바, 박사님이······.”

묘화부인은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 무슨 일입니까? 바, 박사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요? 예? 말씀 좀 해보세요.”

현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사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선 묘화부인이 저토록 당황하며 울먹이지는 않을 것이다. 현수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부인! 말씀 좀······.”

현수의 말을 끊으며 묘화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먹이긴 했지만 조금은 진정된 목소리였다.

“지금 병원이에요. 박사님은 중환자실에 계세요.”

“벼, 병원이요? 박사님께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니, 거기가 어딥니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묘화부인이 병원위치를 설명했다. 현수는 바로 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숨을 헐떡일 만큼 빠르게 달려 공원을 빠져나왔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5,6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급한 탓인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현수는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기다렸다. 자신이 간다고 장 박사의 병세가 나아지진 않겠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심란했다.

이윽고 한 대의 택시가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멈췄다. 현수는 급히 택시에 올라탔다.

“D시의 대학병원이요. 최대한 빨리 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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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몽마? 1 16.04.27 541 8 12쪽
9 묘화부인 16.04.26 493 4 14쪽
8 기이한 경험 2 +3 16.04.25 613 5 14쪽
7 기이한 경험 1 +1 16.04.25 504 7 11쪽
6 장 박사와 최면요법 3 +1 16.04.24 460 6 14쪽
5 장 박사와 최면요법 2 +1 16.04.24 416 4 10쪽
4 장 박사와 최면요법 1 +1 16.04.24 50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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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단 그리고 전개 1 +1 16.04.23 5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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