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휘몰아치는 바람 6화 대관식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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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타미젤의 대관식 소식
“예? 안타미젤 왕자의 대관식이 확정되었다고 하셨습니까?”
미드프레드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메이샤드가 튕겨지듯 일어나며 반문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드프레드를 향한 그의 연녹빛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그럼 아까 도성에서 도착한 파발의 내용이 바로 그 소식이었단 말입니까.”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공기 사이로 페르겐드의 목소리 역시도 빠르게 흩어졌다. 미드프레드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부관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역시 하크스에서 장계가···?”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메이샤드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어미를 흐리고 마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미드프레드는 한숨을 깨물었다. 분명히 올라갔을 것이다. 로엘 대공이 아체프렌의 귀환 소식을 담은 장계를 도성으로 올리지 않았다면, 사태가 이리 빨리 진전될 리가 없었다. 미드프레드는 아까보다도 좀더 깊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일단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알고 있는 겁니다, 세느비엔느도.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 갑작스러운 소식이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 하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도로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망연히 서있는 메이샤드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페르겐드를 거쳐 미간을 확 찌푸린 채 못마땅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하겔 쪽으로 눈길을 옮기며, 미드프레드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예정된 날짜는 시월 하순입니다만.”
뜬금없이 전해진 안타미젤의 대관식 소식이 아연하기는 자기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아체프렌이 세레즈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넉 달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아무리 하크스에서 태자의 귀환 소식에 대한 장계가 올라갔다 해도 그렇지, 이런 방법으로 맞받아쳐 오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대관식이라니, 그것은 일국의 국왕을 바꾸는 일 아닌가. 농담으로라도 결코 간단히 결정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비록 세느비엔느의 그 결단이 정치적인 심사숙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충동적인 생각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해도, 자기 자신의 결심을 이리 빨리 전국 각지로 알린 행동력과 추진력만으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미드프레드였다.
“하지만 상황이 진행되는 것에 따라 더 앞당겨질 지도 모르죠.”
아체프렌의 귀환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이렇게 자신들의 뒤통수를 내리친 여왕이다. 준비 절차다 뭐다 해서 두어 달 정도의 여유를 둔 듯하지만, 태자에 관한 풍문이 세레즈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면 일을 더 서두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직까지 도성을 비롯한 상류 사회가 잠잠한 것으로 보건대 여왕이 태자의 생환 소식에 대해서 입막음을 철저히 시킨 것 같지만, 그것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그녀 역시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때다. 내가 여기 있어선 안돼.'
미드프레드는 눈앞에 놓인 공문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세느비엔느가 태자의 무사 귀환이라는 국가 대사를 비공식적으로 처리한 이상, 이제 아체프렌과 안타미젤 사이의 전쟁은 필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세레즈에서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내란이 벌어질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해진 이상, 이제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절차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까지 전해져 온 안타미젤 왕자의 즉위식 소식이 비록 세레즈 조정 대신들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세느비엔느의 단독 결정 사항이라 해도, 또 그녀가 예정된 시일에 그 형식이야 약식(略式)으로든 뭐든 간에 즉위식을 급박하게 해치운다 해도, 일단 대관식이 거행된 이후 공공연히 국왕위에 오른 사람에게는 일종의 정당성 비슷한 힘이 부여된다. 세느비엔느는 영악하게도 그 정당성이라는 세레즈 백성들에게, 그리고 주변국에게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귀관들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세느비엔느가 이리 나온 이상 이제 이쪽에서도 머뭇거리며 마냥 여유를 부리고 있을 순 없었다. 그녀의 다음 행동이라는 것은 굳이 보이지 않아도 훤했으니 말이다. 태자의 신변이 위험하다. 여기 있을 수는 없었다. 내려가야만 한다. 자신은 남부 영지로, 하크스로, 아체프렌의 곁으로 가야만 했다.
미드프레드는 엄숙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틸라드 지구 사령관인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의 이름으로, 지금 이 시각부터 노틸라드는 전시 체제에 들어갈 것을 선포합니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은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 장군들을 미드프레드는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숨을 들이키고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내 이 자리에 부사령관과 하겔 장군을 부른 것은 바로 사령관인 나를 대신하여 영내의 전권을 담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내 지시한 바대로 노틸라드는 이 시각부터 전시 특별 계엄 상태로 임할 것입니다. 본관은 지금 곧 부관과 함께, 따로 준비해 놓은 배로 태자 전하께서 계신 하크스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그러니 두 장군은 그리 알고 영내의 지휘권을 대리하주길 바랍니다. 부사령관, 이 서한을,”
미드프레드는 도성에서 파발을 받은 즉시 뮤켄에게 보내기 위해 써 놓은 서한을, 부사령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메이샤드는 그것을 받아들 생각은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소장은 사령관 각하를 모시고 싶습니다. 데리고 가주십시오.”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동시에 영지를 비울 수는 없다고 내 저번에도 일렀던 것 같은데. 그새 잊은 겁니까.”
더할 수 없이 냉정한 목소리가 집무실 안에 울려 퍼졌지만, 메이샤드의 단호한 얼굴에는 동요의 흔적조차 없어 보였다.
“아니오. 소장이 영내에 남아있는 것보다 각하를 따르는 편이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그리 말씀올린 겁니다. 남부 영지로 내려가게 해주십시오.”
“납득할 만큼 설명했다고 생각한 건 본관의 착각인 겁니까.”
미드프레드의 그 음성에는 충분히 상대방을 질식케 할 정도의 울림이 담겨 있었지만, 아니 바로 그 때문인지 메이샤드는 더더욱 물러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사령관의 청을 수락해 주십시오.”
소름이 돋을 만큼 매서운 시선으로 메이샤드를 노려보고 있는 미드프레드에게 하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겔 장군!”
똑바로 시선을 맞춰오는 하겔의 곧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주저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언제나와 같이 억센 억양으로 말을 이어갔다.
“실례되는 말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사령관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영내에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급박한 시기이니, 단 한 사람의 힘이라도 아쉬운 실정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들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부사령관과 함께 하크스로 내려가시는 편이, 각하께서 지시하신 명령을 수행하는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제 생각 역시 하겔 장군과 같습니다. 상황이 급할수록 인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봐도 부사령관께서 노틸라드에 남아 계시는 것보다 하크스로 내려가는 편이 효율적인 일이 될 듯 같습니다. 그 대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이곳에 남겠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도 같으니까요. 그러니 재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본인인 메이샤드는 물론 하겔과 페르겐드마저도 그 의견에 동조하고 나서니, 무어라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확실히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있을 시간이 없다. 그 말대로 페르겐드가 영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한다면, 굳이 자신이 고집을 부려 메이샤드를 여기 남기고 갈 필요는 없을 테지. 미드프레드는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세 장군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면 부관이 책임지고 이 서한을 맡아두었다가 내가 떠나면 콜드베폰 영주님께 전해 드리도록 하십시오.”
미드프레드의 서한을 받아들며 페르겐드가 짧게 대답했다.
“예, 각하. 분명히 전해 올리겠습니다.”
미드프레드는 심호흡을 하는 기분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이대로 남부로 내려간다면, 당분간 노틸라드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서로 무사하기를 바라며 미드프레드는 두 장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겔 장군과 부관을 믿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노틸라드를 잘 부탁합니다.”
- 작가의말
29장 끝, 30장 흐르는 별로 이어집니다.
개인사정으로 집을 비울 예정이라 내일은 새벽 6시 예약 업로드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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