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백룡어복 6화 엇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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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엇갈림
자신의 카이아 행을 걱정하는 메이샤드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굳이 여왕이 자신을 지명하여 광산 노역 인부의 도착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드프레드는 직접 채석장에 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복부와 허벅지의 부상도 많이 나아서 승마에도 별 불편을 못 느끼고 있는 데다가, 또 아체프렌의 행방도 어느 정도는 단서가 잡혔으니 그의 귀환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해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으로서는 아체프렌이 언제 돌아올지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그때가 언제가 되든 자신이 미리 미리 광산을 시찰해서 그곳에서 산출되는 철광석과 초석들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아체프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명령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딱 부러지게 답하는 메이샤드와 하겔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준 미드프레드는 그 옆에 서있는 부관 페르겐드에게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미드프레드는 페르겐드와 함께 곧장 노틸라드 관사 밖으로 나섰다. 휘몰아치는 찬 바람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해도 아직도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복부에 바람이 들면서 상처 부위가 쑤셔온다. 미드프레드는 그런 느낌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평소보다 더 힘차게 말 위에 올라탔다.
"아직 바람이 차군요. "
미드프레드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 완치되지 않은 상관의 몸을 걱정해서인지 페르겐드가 근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긴요.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인지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걸요."
코네세타의 대장군이었던 라콘과의 일대일 승부 후 거의 넝마가 되다시피 하여 돌아온 자신을 보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 곁을 줄곧 지키고 서 있던 페르겐드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미드프레드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눈빛에 그 때와 마찬가지의 걱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미드프레드는 부러 활기찬 어조를 만들어내며 빙긋 미소지었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용 선전 같습니다만, 그 말씀 들으니 저 역시 힘이 솟는군요. 역시 사령관님이십니다. "
"칭찬까지 받으니 기분이 더 유쾌해지는데요."
어디까지나 가벼운 느낌의 농담이 그친 것은 그들이 카이아 광산에 거의 다 이르러서였다.
노틸라드까지 인부들을 인솔해온 책임자가, 휘하 부하들과 함께 이쪽으로 말을 달려오고 있는 미드프레드를 보고 앞으로 뛰어나왔다. 미드프레드 역시 말에서 내려와 광산 책임자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간에 간단한 소개말이 오간 후, 그를 따라 광산을 쓱 훑어보던 미드프레드가 물었다.
"여기에 임시 막사를 세운 후 작업을 개시하는 건가?"
"예, 각하. 그런데 그것은 왜 물으십니까? "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막사에서 생활하게 되더라도, 가건물이라도 세우는 편이 낫지 않겠나? 노역이라는 것이 한두 달 안에 끝날 것도 아닐 텐데. "
"하지만 폐하께서 도착 즉시 작업을 시작하라 하셨기 때문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
그건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듯, 상대는 여왕의 지시를 앞세워 미드프레드의 말을 딱 잘라 버린다. 언뜻 정중해 보이는 어조와 달리, 자신을 향한 그 책임자의 두 눈에 묘한 조소와 무시의 감정이 일렁이는 것을 느낀 미드프레드는 얼굴을 굳히며 돌아섰다.
"본관은 첫 부임이라 광산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
그저 무심결에 와닿는 순간적인 느낌만으로 상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 해도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빙글빙글 말을 돌려 가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상대에게까지 한결 같이 정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리해 봤자 상대에게 얕보일 뿐이다. 미드프레드는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차갑게 굳혀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구 사령관의 임무에 한해서는 충실한 작정이니 귀관은 수시로 관사로 연락을 취하도록. 본관 역시 광산 시찰을 주기적으로 할 계획이다. 적극적인 협조 바란다. "
상대는 입술만 살짝 틀어 웃음 아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지고 조처하지요."
불미스러운 일? 그 말에서 끼쳐오는 잔인한 여운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제하며 미드프레드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수고하라. "
만약 그 책임자가 자기 휘하의 사람이었다면, 뭐라고 더 지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스스로 은근슬쩍 내비쳤듯이 그는 도성에서 파견한 자이니만큼 모든 이들이 납득할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자신이 먼저 나서 가타부타 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미드프레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그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도 없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서로를 위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미드프레드는 몸을 돌렸다. 돌아선 다음에야 비로소, 말도 안 통하는 코네세타인들을 너무 몰아치지 말라는 지시를 하는 걸 잊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상대를 다시 부르는 것도 내키지 않아 미드프레드는 그냥 자신의 말 위에 올라탔다.
"왜 한숨을 쉬십니까? "
말고삐를 주시하며 뭔가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미드프레드의 얼굴이 들려지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듯한 눈길이 페르겐드에게 향한다. 잠시 후 한숨 같은 어조가 단정한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저 광산 노역자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부들에 대해서 말입니까? "
페르겐드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미드프레드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처우 개선을 지시할 걸 그랬단 생각이 들어서요. "
페르겐드는 정말 의외라는 표정으로 미드프레드를 돌아봤다. 노틸라드 내정 업무와 치안 유지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업무량인데, 내심 그런 데까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페르겐드로서는 그저 놀랍기만 했던 것이다.
"물론 코네세타에서 온 사람들의 고생은 심하겠지만, 정해져 있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쯤은 각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
"분명 그것 이상으로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없겠지요. "
미드프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히 대답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 차를 두고 다시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울림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쥐어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
솔직히 지금 미드프레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코네세타인들의 권리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지적한 것처럼 강제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드프레드는 겉보기에는 좀 더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처우 개선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이런 말씀 드리는 뭣하지만, 관용 정책은 아까의 그 책임자에게 유능한 분야는 아닌 것 같던데요. "
페르겐드 역시 아까의 그 자에게 자신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미드프레드는 쓴웃음으로 페르겐드의 말에 수긍을 표했다.
오늘따라 유능하기 그지없는 이 젊은 상관의 모습이 평상시에는 절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아 있어 페르겐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군요. "
미드프레드의 주위를 감돌고 있는 그 무거운 분위기에 자기 자신마저 휩쓸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페르겐드는 어색하게 잠긴 분위기를 깨뜨려 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리 말을 꺼냈다.
"그렇···."
무심히 인부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던 미드프레드가 순간적으로 말을 멈춰 세웠다. 의아한 마음으로 상관을 돌아본 페르겐드의 시야에 일순 핏기가 가시는 듯하더니 흥분한 듯 홍조를 띤 미드프레드의 옆얼굴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내린 시선 속으로 말고삐를 쥐고 있던 어린 사령관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전에 미드프레드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급히 말에서 뛰어 내려 코네세타인들이 늘어서 있는 대열로 뛰어갔다. 그를 부르는 자신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은 양 미드프레드는 몇 줄로 늘어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미친 듯 파고 들었다. 카르테에서 포로로 잡혀 그의 휘하로 들어온 이래로 지금껏 근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지만, 미드프레드가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적잖이 당황해 버린 페르겐드가 뒤늦게 정신을 수습하여 그리로 다가갔을 때에는, 이미 미드프레드는 허탈한 표정으로 대열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그의 아름다운 황옥빛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있는 것을 본 페르겐드는 더이상 어떻게 묻지도 못하고 그 다음 말을 삼켜 버렸다.
"태자 전하신 줄 알고···."
잔뜩 잠겨있는 음성으로 대답한 미드프레드는 끝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약간 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페르겐드는 그런 그를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위를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지려는 눈물을 말리려 하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세레즈의 왕자인 아체프렌이 있을 턱이 없다. 그건 굳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상처도 잊은 채 말 위에서 그대로 뛰어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다급했던 미드프레드의 심정을 페르겐드는 어림짐작해 볼뿐이었다.
자신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던 코네세타의 왕족들. 왕위 계승자라는 면에서 본다면, 그는 코네세타의 에스피아 공주와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미드프레드가 말하는 그에게서는 왕자라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긴 세레즈인들 역시 아체프렌을 세레즈 자체인 양 받아들인다 했지. 왕가의 적장자이자 선왕의 후계자라는 이유가 아닌, 아체프렌 그 자체에게 흥미를 느끼며 페르겐드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듯 서 있는 미드프레드에게 눈길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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