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삼년불비우불명 5화 기습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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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습실패
사방이 펠트 천으로 둘러싸인 코네세타 군 총사령관의 천막 안에서, 야습을 위해 출전한 부하 장수들이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군 일번대 사령관 아르카디 제크로웰은 초조한 기색으로 입구를 쳐다보고 있던 눈길을 떼어냈다.
이상하다. 아무리 늦어져도 지금쯤이라면 이미 돌아와야 되는데. 부하들이 나간 시간을 대강 어림해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기습이란 치고 빠지는 것,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끌 이유가 없는 작전이다. 왜 이리 안 오는 거지. 제크로웰의 가슴 한구석에 불길한 기운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 라콘 대장군의 격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다가와 꽂혔다.
"후방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왜 죄다 이 모양 이 꼴이야!"
대장군은 후방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탁자 위를 거세게 내리친 외숙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제크로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주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문서들을 주워 올리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안 좋은 보고입니까."
"아군의 보급 선단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군."
대장군의 어이없는 대답에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집어 올리던 제크로웰의 손길도 멈칫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전진 배치해 두었던 해군은 대체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 게야?"
라콘은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클리어트가 하크스 따위에서 어물거리고 있으니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병사들을 이끌고 내려간 게 언젠데 그 얼간이는 아직껏 그깟 성 하나 함락 못 시킨단 말이냐. "
어지간히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인지, 라콘은 막사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몇 차례 고함을 쳤다. 그런 외숙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제크로웰은 묵묵히 주워든 문서를 정리해 탁자 한 끝에 올려 두었다.
작전 회의 때야 무슨 말을 해도 개의치 않은 라콘이지만, 지금처럼 역정을 낼 때는 대장군이 친아들보다도 더 총애한다는 제크로웰으로서도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저 뒤로 물러나 총사령관의 분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이럴 때 함부로 나대다가는 대장군 주변에 있는 무언가로 얻어맞기 십상이다. 실제로 그가 격분하고 있을 때 나서서 이런저런 변명 비슷한 것을 주워섬기다가 라콘이 집어 던진 술잔이나 잉크병 같은 것으로 맞아서 머리가 깨진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갈수록 가관이로군. 해안에 주류중인 해군의 머릿수가 얼만데 그 따위 세레즈 잔류병 몇 놈을 당하지 못해 고스란히 보급품을 날려버려?"
라콘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상체를 등받이에 기댔다.
"각하의 말씀대로 부사령관이 하크스로 옮겨간 이후 해군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공성 중인 클리어트 장군의 주의가 해군까지 미치길 바란 것 자체가 과한 기대였는지도 모르죠. 차라리 각하께서 해군을 본진 쪽으로 불러들이심이 어떠할까요. 그리하면 클리어트 장군도 부담이 줄어들 테고···"
제크로웰의 의견에 대해 대장군이 가타부타하기도 전에, 입구를 가로막은 펠트 천을 제치고 보초병 하나가 굳은 얼굴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
그는 대장군의 격한 목소리에 움찔하는 듯 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라이든 장군이 귀환했기에 보고 드립니다. "
깊게 잠긴 보초병의 발언에 제크로웰은 순간적으로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크라이든 장군이 귀환했다고? 같이 야습을 감행하러 간 포테 장군은? 당연히 따라붙어야 할 이름이 생략되었다. 가슴 깊숙이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은 제크로웰의 귓가에 내던지는 듯한 대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라."
들어오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병사가 나간 입구를 통해 어두운 표정을 한 크라이든 장군이 곧바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부서진 갑옷은 물론, 그의 축 늘어진 어깨만으로도 그간의 경과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핏기란 핏기는 모조리 빠져 나간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들어선 그는 변명 한 마디 없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포테는 어디 있나. "
차가운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라콘이 무뚝뚝한 어조로 내쏘았다. 규탄 어린 대장군의 음성에 크라이든 장군의 고개가 한층 더 깊숙이 숙여진다.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그에게서 마치 쥐어 짜내는 듯한 대답이 흘러나오던 순간, 제크로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전사했습니다. "
“허! 전사?! 내 평생 이런 수치는 처음이로군. ”
반문하는 그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가라앉았다 느낀 것도 잠시,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크로웰은 경악한 눈빛으로,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날아가 크라이든의 이마를 강타한 후 아래로 떨어지는 잉크병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기습 작전에서 지휘관이 전사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
크라이든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낼 생각도 없이, 그저 고개를 한층 더 깊숙이 숙였다.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를 내몬 당장 죽어 마땅한 몸이 무슨 낯으로 변명을 아뢸 수 있겠습니까. 참형이라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처벌해주십시오. "
전쟁이 끊기질 않는 상황에서야 으레 그런 법이지만, 코네세타의 대장군 크리스토퍼 라콘이 이끄는 부대의 군율 역시 엄하기로 유명했다. 병장기와 말들은 언제든 출전이 가능하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병사들과 장수들 사이의 군기도 엄정했다.
제크로웰은 불안한 눈빛으로 라콘과 크라이든을 번갈아 보았다. 일단 라콘의 입에서 판결이 떨어지면, 그 다음에는 어느 누구도 번복할 수 없다.
"패전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 당장··· "
"각하! 장군이 전장에 나와 싸우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간의 공훈을 감안하셔서라도···"
"자고로 승리에는 우연이 있다지만 패배에는 우연이 없다 했다. 군법이 엄정해야 군기가 살아나는 법. 네가 패전의 책임을 지휘관에게 묻는 군대의 불문율을 잊었더냐. "
대장군의 일갈이 막사 안에 울려 퍼진다. 대장군의 격노로부터 크라이든 장군을 보호하려는 듯,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선 제크로웰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에게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어 달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코네세타 군의 일원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실추된 명예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만한 기회를 내려 달라고 부탁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완강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대장군을 향해 제크로웰은 계속 호소했다.
"크라이든 장군은 제 부하이기도 합니다. 그의 잘못은 직속 상관인 제가 책임지겠으니, 부디 그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
"귀관이 책임을 지겠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
반문하는 라콘의 음성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제가 그를 대신하여 세레즈 군을 밟아주고 오겠습니다. 그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라콘은 팔짱을 끼며, 조금 누그러진 음성으로 잡아채듯 물었다.
"아르카디 제크로웰, 그대 지금 한 말에 대해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내게 자신하나? "
제크로웰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사령관의 굳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냉담하게 빛나고 있다. 노여움을 억제하고 있는 눈빛, 이건 부하를 응시하는 상관의 시선이다. 제크로웰은 심호흡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하지만 더할 수 없이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각하.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만 하시면, 부대를 이끌고 가서 이 설욕을 갚아주고 오겠습니다. "
"그 말은 기억해 두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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