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백룡어복 3화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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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동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기 때문일까. 환한 바깥과 대비되어, 선실 안은 지독하게 어두워 보였다. 슈레디안은, 병사들이 문을 거칠게 여는 것과 동시에 후다닥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문가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엇비슷한 농도의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들어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서서 안쪽에 눈길을 주고 있는 슈레디안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모양인지, 그를 끌고 온 두 명의 병사가 억센 주먹으로 그의 등을 거칠게 안쪽으로 떠밀었다. 미처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던 슈레디안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휘청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목이 묶인 채로 쓰러졌기 때문일까. 손바닥으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한 채 거친 선실 바닥에 그대로 쓸린 무릎이 양쪽 다 깨진 모양인지 몹시도 쓰라렸다. 슈레디안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저절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신음을 눌러 참았다. 그리고 더러운 선실 바닥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험악한 기세로 그 광경을 노려보고 있는 병사들 때문인지,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그를 도우려 들지 않았다.
엷은 공포심이 어려 있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슈레디안은 어떻게 해서든 묶여 있는 팔에 체중을 실어 보려 했다. 밧줄로 묶여 있는 손목도 손목이거니와 양 발을 구속하고 있는 묵직한 쇠고랑 때문에, 무릎으로 바닥을 디디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도 절로 식은땀이 배어들 지경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려 흘러 겨우겨우 일어선 그는 그나마 한적해 보이는 선실 구석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족쇄라는 게 이런 것이었나. 걸음을 옮겨 놓으려 할 때마다 발등을 무겁게 짓누르는 쇠추 때문에 벌써부터 진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움직이기 힘든 발을 억지로 놀려 구석에 이른 슈레디안은 이내 흘러내리듯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바닷가의 특유의 눅눅한 공기. 주저앉은 뱃바닥에서 쾨쾨한 냄새가 올라온다. 슈레디안은 코끝을 찌르는 듯한 역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둡긴 해도 그리 작다고 할 수 없는 크기의 선실이었지만, 꾸 꾸역 들어차는 사람들로 인하여 편히 드러눕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 되 버리고 말았다. 슈레디안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신의 다리를 안쪽으로 구부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선실 안의 공기는 점점 희박해져 갔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 바닥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은 냄새에 사람들의 체취와 땀 냄새까지 섞여들면서, 급기야는 숨이 막히는 듯한 착각마저 일 지경이었다.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역겨운 이 냄새에서 헤어날 수 있는 것은, 손바닥만하게 난 창문가에 자리 잡은 이들뿐이었다. 운좋게 그곳에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은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을 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슈레디안은 저절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그제야 비로소 코네세타에서 세레즈로 건너오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편안하게 이동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비단 슈레디안뿐이 아닌 듯, 다닥다닥 몰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이전보다도 더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덜컹 하는 흔들림과 함께 배가 출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병사들이 커다란 자루를 몇 개 들고 들어선다.
"알아서 찾아 먹어라. 도착할 때까지의 식량이니까."
더러운 것이라도 대하는 양 내던지는 듯한 말투로 말한 뒤 황급히 몸을 돌리는 그들의 모습에 기가 차다 못해 웃음이 스며 나온다.
이렇게 냄새나고 불결한 공간에 답답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을 가둬놓고 식량마저 부족하게 주겠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수가 얼만데 겨우 저걸로 해결하라니. 한 개씩만 집어도 모자랄 판인데. 노예도 이런 식으로 취급당하진 않으리라.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의 부조리함에 슈레디안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오르는 듯했다.
외려 코네세타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지 못하였던 적의와 혐오가 조국인 세레즈에 와서야 비로소 선명하게 다가왔다. 같은 피가 흐르는 동족에 의해서. 그가 한사코 지키고자 하였던 백성들에 의해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제 나라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 같은 계급 안에도 자신보다 힘없는 이들을 얼마나 핍박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조국을 아름다운 곳으로만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는 충격적일 만큼 통렬한 깨달음이었다.
벌레처럼 자루에 달라붙어 허겁지겁 마른 빵을 집어 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슈레디안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냘프고 앳된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무심코 돌린 시선 안에 들어온 상대의 얼굴 역시도 그 목소리만큼이나 어려 보였다. 이제 막 열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어, 이거···."
소년이 자신이 들고 있던 마른 빵을 이리저리 비틀어 절반 정도를 떼어낸 다음 슈레디안 앞으로 내민다.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얼핏 시야에 들어온 그 빵은 딱딱하게 굳어 씹어 넘기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자신 앞으로 쭉 내밀어진 빵을 잠시 쳐다보던 슈레디안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에 익은 어둠 사이로 소년의 둥그런 턱선과 보들보들한 뺨이 선명히 보인다. 슈레디안은 소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히 생각에 잠겼다. 여기에, 이리 어린애까지도 보내졌던가. 저렇게 어린 아이가 험한 광산 노역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손하고 발이,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난, "
아무 말 없이 그저 올려다보고만 있자, 소년이 변명하듯 낮게 웅얼거린다. 그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묶여 있는 슈레디안의 손가락 사이로 빵을 쥐여주려 했다.
"됐어. 너도 모자랄 텐데."
"하지만, 안 먹으면 배고프잖아요. 다들 도착한 다음엔 뭐 하나 못 먹었고···. 또, 자루에 아직 조금은 더 남아 있는데요."
"아직 남아 있다면 조금이나마 더 챙겨두는 게 좋을걸.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데. 그 사이 식량이 다 떨어질 지도 모르잖아?"
슈레디안은 어조를 조금 부드럽게 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손발이 풀려 있었다 해도 저런 빵은 먹지 않았을 게 분명했지만, 어쨌거나 그 마음에는 성의를 표해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안 가는 거지?"
"내가 가지면, 다른 사람이 못 먹잖아요."
망설임 없이 흘러나오는 대답에 슈레디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같이 굶주리겠다?"
멋진 생각이로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배가 고파지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인간이란 원래 자기 본위의 동물이니까 말이야.
"우스운가요? 하지만 나, 굶는 거 처음 있는 일도 아닌 걸요. 좀 참아서 딴 사람들의 허기가 메워진다면 그래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린, 다 같은 형제잖아요. 같은 땅에서 온."
그리 말한 뒤 소년은 쑥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슈레디안은 이유 모를 짜증이 솟구치는 기분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태연히 내뱉을 수 있는 거지? 너는 네게 닥칠 일들이 무섭지 않아? 상황이 또 얼마나 나빠질지 모르는데. 어려서 그런가. 아둔하기 이를 데 없군.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 역시, 소년의 천진난만함에 더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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