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날선 바람 6화 설왕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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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설왕설래
"카리에른 장군의 지적이 옳습니다. 총사령관이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 된 평민 출신이라 하면, 적군이 우리 세레즈 군부를 어찌 보겠습니까? 평민이 요행으로 출세하는 것도 그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전하 혼자만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세레즈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기실 요량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결정은 대대로 아군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능력도 실적도 경험도 제대로 증빙된 바 없는 총사령관을 병사들이 어찌 믿고 따르겠습니까. 예로부터 기강이 문란한 군대는 어디에서도 이길 수 없다 하였습니다. 전하의 그 말씀은 군의 기강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니, 부대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르윈 장군의 발언을 끝으로 안타미젤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지원군 사령관이 이제 막 열아홉이 되었고, 첫 출전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총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저 역시 첫 출전이고, 또 나이라면 제가 더 어립니다."
미드프레드의 나이를 어리다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장군들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인 평가이리라. 이 상황에서 자신이 더 어리다고 주장하는 것은 장군들의 의도를 벗어난 발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미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왕자이십니다. 비록 연소한 나이라고는 하나 선왕 폐하의 직계 혈연이라는 점만으로도 전하께는 군 지휘의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왕족이신 전하와 일개 평민을 어떻게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있겠습니까."
"파르젤 장군, 대체 세레즈 군법 어디에 평민이 총사령관에 오를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요? 군대에서 능력이 존중되지 않으면 어디에서 실력을 중시한단 말입니까. 여러분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왕가의 혈통이라는 명분 아래 능력도 없이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물론 나 자신의 부족함이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울 하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는지 아십니까. 아무리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하여도, 그런 것을 백성들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원군 사령관의 능력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군요. 말씀대로라면 전하께서는 그에게 이십 만에 가까운 세레즈 군을 지휘할 능력이 있다는 전제 아래 이러한 단안을 내리셨다는 것인데, 그 실적이라는 것이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원군 사령관으로 출전한 이후 지금까지 그가 참여한 전투 수를 다 합친다 해도 다섯 번이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 상당수가 출전군 몇천 단위의 소규모 전투였지요. 천 단위의 병사를 지휘하는 것과 몇십만 단위의 대군을 운용하는 것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설혹 그가 얻어낸 실적이란 것들이 요행이 아니라 하여도, 그 능력이 전면전에서도 통용되리라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효율성을 무시한 임기응변식의 전투 방식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틀 전의 전투에서 그는 적에 의해 중앙 돌파된 부대를 반전시켜 양쪽에서 적의 후미를 강타하는 전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술은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위험한 시도였습니다. 첫째 양쪽으로 분리된 아군의 부대가 적절한 시점에 일제히 합류하지 못할 경우, 둘째 적장이 압도적인 병력 차를 무기로 배후의 피해를 감수하고 그대로 돌진할 경우, 이 전술은 무효한 시도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그 당시 적군은 결국 소모전을 피해 퇴각했지만, 전장에서 매번 그때와 같은 운이 따르길 바랄 수는 없지요. 성공의 가능성만큼이나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즉흥적인 계책에 의존하는 자에게 군권을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한 모험이라고 봅니다만."
"하우저 장군과 그레인 장군, 그리고 콘스피엘 장군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계책이 임기응변적이건 아니건 그것을 따질 만큼의 여유가 지금의 우리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전하!"
안타미젤은 자신을 향한 그 음성이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해버렸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코네세타군을 상대해 확실히 승리를 얻어 본 적이 있습니까? 코네세타의 대장군, 아니 그 휘하 어떤 장수에게라도 말입니다. 바로 이틀 전 중앙군이 적의 공격을 받던 시점에서도 여러분은 아군을 위해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론레이 장군은 달라요. 그는 폐하께 공식 출전 명령을 받은 이후, 여섯 배가 넘는 코네세타 군을 상대로 하크스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또 적의 후방기지 카르테를 무력화시켰으며, 도처에 깔린 적의 해군을 교란시켜 마침내 적의 해상 보급선을 끊기도 했습니다. 또한 본진에 합류한 이후 적의 야습을 차단했고, 퇴각 부대를 병력 피해 없이 엄호했으며, 어제도 프델로드 장군의 부상으로 괴멸 직전에 있었던 아군을 수습하여 본진을 수비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매달려야 합니다. 제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현 여왕 폐하의 사촌이자 왕실 외척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결정을 하극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타미젤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대 의견을 제기하고 나온 것은 파르젤 장군으로, 그는 현 여왕 줄리에트, 즉 세느비엔느 Ⅰ세의 이종사촌이었다. 여왕의 이종사촌이라는 뒷배경이 그의 발언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었다.
"군권을 넘기시겠다는 것은 전하의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한 부대에 총사령관이 둘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전하께서 그에게 군권을 내주겠다는 말씀은 그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태자 전하께서 실종된 현 상황에서는 왕위 계승서열 1위인 안타미젤 전하께서 일개 평민 밑에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까? 작위도 없는 반역노예 출신의 평민에 불과한 미드프레드 그론레이가 폐하의 친아드님이신 안타미젤 전하보다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씀입니까?"
"제가 장군께 한가지 묻지요. 그럼 장군께서는 내 위에 올라설 수 있을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여왕 폐하와······."
"행방불명이신 태자 전하. 그래요. 내게 정당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는 이 두 분뿐입니다. 내 장군께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참여의 당위성이 있는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미드프레드에 대한 아체프렌의 총애는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그의 출전은 여왕 스스로 내세웠듯이 미드프레드가 아체프렌을 시해한 코네세타에 대해 누구보다도 복수심이 강할 것이라는 명제 아래에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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