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소생하는 빛 3화 태자와의 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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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자와의 대면
콜드베폰 영지의 본성, 위클리암의 최고 접견실 앞에서 멈춰선 뮤켄은 하얀 문 위에 파여 있는 고풍스러운 모양의 음각 조각들을 쳐다보았다.
오전 중에 내린 엄중한 지시 때문일까. 출입이 완전히 통제된 접견실 근처 복도는 지독하리만큼 조용하여 문 앞에 멈춰서 있는 자기 자신의 심장 소리마저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인기척 하나 없이 차갑게 내려앉은 고요 속에서 뮤켄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십수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던 이 문이, 오늘따라 새삼스러울 만큼 이채로운 감정을 던져주는 것은 이 너머 안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때문이리라.
자신 안의 두근거림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뮤켄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몇 년 만이지, 이게? 그때 태자 전하의 약혼 피로연 때 멀리서 뵌 것이 마지막이었으까······. 근 4년만인가.'
정신없이 지나간 몇 년간의 세월을 가늠하고 있는 뮤켄의 귓가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대공 전하, 어서."
뮤켄은 살짝 고개를 돌려 케니하크를 돌아봤다. 그의 재촉을 받은 지금도 이상할 정도로 상기된 기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태자 전하께서는 어떻게 성장하셨을까. 기억 상실이라면 아직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 어디 미령하신 데는 없으신지. '
뮤켄은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손을 가져갔다. 세차게 박동치는 심장 소리가 마주 댄 손가락 사이로 만져질 듯 생생하다. 이 미칠 듯한 두근거림이 눈앞으로 다가온 아체프렌과의 만남에서 대면에서 오는 기대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그는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가볍게 심호흡을 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약간 돌려 이제 문을 열어도 좋다는 눈짓을 보냈다.
마치 커튼이 젖혀지는 것처럼 육중한 접견실의 문이 희미한 소리조차 없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가구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고, 마침내 그 가운데 서 있던 한 청년의 모습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활짝 열린 창안으로 곧게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햇살 아래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금발의 청년이 천천히 자신 쪽으로 돌아서던 순간, 뮤켄은 숨이 막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가라앉을 생각 없이 점점 더 거세어지기 시작해 급기야 터져 나갈 듯 격하게 박동 치는 심장 때문에 가슴께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4년 전,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던 소년기의 아체프렌과는 확연히 달라진 한 사람의 청년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정해져 있던 약속대로라면, 보름 전 그의 열여덟 살 생일에 맞춰 성인식을 치르고 이미 세레즈의 왕좌에 올랐어야 할 바로 그 청년이.
이 나라의 태자인 바로 그 아체프렌이 흔들림 없는 곧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뮤켄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바로 지존의 왕관을 머리 위에 쓰는 사람에게만 올리는 예를 취했다.
"왕실의 정통한 승계자께 신, 마세르·라·뮤켄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
아체프렌 주위를 감싸고 있는 위엄이 기묘한 압박으로 변해 뮤켄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의 모습이 자신의 시야를 송두리째 빼앗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쩐지 그를 대한 순간 뮤켄은 아체프렌이 기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상태라는 것과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 등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왕국에 오직 4명 밖에 없는 대공의 지위까지 올라선 자신이 신하라고 칭할 수 없을 정도로, 왕자(王者)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이 이 청년의 전신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그만 일어서시오, 대공."
아체프렌이 한 걸음 걸어와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 역시 이렇듯 그대를 만나게 되어 흔열하기 그지없소."
그 음성은 이미 왕의 것이라 해도 좋을 만큼 묵직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뮤켄은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예의를 표했다.
"태자 전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불민한 이 몸, 머리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친히 신의 영지에 왕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예를 갖춰 맞지 못한 신의 불충을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그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며 미소짓는 아체프렌의 모습에서도, 뮤켄이 종전까지 느꼈던 어려움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표정 자체는 무척이나 부드러웠지만, 그 얼굴에는 여전히 근접하기 어려운 기품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저 피부에 와 닿는 느낌만으로는 여왕 쪽보다 아체프렌 쪽이 갑절은 더 대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대공의 뒤에 서 있는 자는···?"
"예. 소개가 늦었습니다, 태자 전하. 이쪽은 콜드베폰 영지의 수호를 맡고있는 수비대장 라펠·라·케니하크 장군입니다. "
간단한 인사와 함께 고개를 숙여 보이는 케니하크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아체프렌은 천천히 운을 떼어냈다.
"그대가 케니하크인가? 내 노틸라드에서도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여유로운 만남을 갖고 싶군. "
미소 띤 얼굴로 그리 말한 뒤, 아체프렌은 다시 뮤켄 쪽으로 다시 시선을 되돌렸다.
"대공. 내 그대와 따로 의논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자리를 물려주실 수 있겠소? "
뮤켄과 아체프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접견실을 나서자, 아체프렌은 빙긋 웃으며 먼저 운을 떼어냈다. 그저 농담인 듯 가볍기만 한 어조로.
"듣자 하니 대공께서 내게 하크스행을 권하셨다던데."
"분명히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농담을 건네듯 가볍기만 한 어조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의 충고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뮤켄은 아체프렌이 무슨 심경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물린 이 순간 별로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그 이야기를 새삼 화두로 꺼내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데, 들려주실 수 있겠소?"
어조나 분위기로 보아서는 정말 몰라서 묻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뮤켄은 자신의 우려를 숨김없이 털어놓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자리가 아니라면,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에 대한 자신의 염려를 아체프렌에게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잡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런 문제는 아체프렌 본인의 행실과 연관되는 사안이니만큼 그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신하인 자신 쪽에서는 먼저 꺼내기는 확실히 껄끄러운 내용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체프렌이 이유를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 권했으니, 자기의 충고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는 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의 맹목적인 충성심이라. "
- 작가의말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앞으론 가능하면 아침 출근 (7시 이전)에 업로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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