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31장 풍운재자風雲才子
2. 이이공이의 계책
“하지만 성채도시인 다이레비드이기에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피해가 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수도 관문 항구 역할을 하던 대공 전하의 콜드베폰 영지와 재상 각하의 그레안 영지 모두가 태자께 가세한다면요. 왕국에서 제일가는 재력가이시기도 한 그윈 재상과 그레안의 유통망은 태자 전하께서 안고 있는 자금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줄 수도 있을 테고요. ”
“재상 각하께서는 지독한 타산가로도 유명하신데 지금 같은 정황에서 섣불리 전하의 편에 서겠습니까?”
이미 수년 전에 자신 역시 지나시안과 같은 생각에서 미드프레드에게 그윈과 손을 잡을 것을 조언해준 바 있으면서도, 뮤켄은 짐짓 회의적인 태도로 반문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재상님을 흔들 수 있는 패는 하늘 아래 스와닐다 한 명뿐이죠.”
지나시안의 오라비인 리카르트 라 오센부르흐는 제법 괜찮은 지휘관이었으나, 그에게는 누이동생과 같은 혜안이 없었다. 아직 어리다 할 만한 연치의 소녀가 일의 전후를 살펴보는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다.
“스와닐다는 누구에게나 예의 바른 선하고 어여쁜 아이지만, 태자 전하에 대한 집착만큼은 장난이 아니랍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그 아이를 더 잘 자극할 수 있을지 알아요.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온 벗인 데다 가문의 정치색도 보수적인지라, 재상께서 정황을 재고 있는 이 시점에 스와닐다에게 접근할 자로 저보다 더 적격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누구도 제가 스와닐다에게 태자 전하의 귀환 소식을 알리며 그 아이를 충동질할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윈과 그레안의 세력을 포섭하려면 재상의 무남독녀인 스와닐다를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한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뮤켄에게 지나시안의 제안은 제법 솔깃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레안과 스와닐다에게 태자 전하의 소식을 전할 연락책이 되는 것으로 아체프렌 전하에 대한 저 개인의 충정은 증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리지 않은 소리였으나, 아직 그것만으로 그녀를 신뢰하고 한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했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헤스바는 어떠한 방식으로 전하께 바치실 요량이신가요?”
“제가 아직 어리고 여인의 몸이라, 군사부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
언뜻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무책임한 언사였으나, 뮤켄은 섣불리 대응하지 않았다. 지나시안은 어리지만, 상당히 영민했다. 그런 그녀가 어떠한 방책도 고민해보지 아니한 채 헤스바를 들어 바치겠다고 단언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헤스바가 태자 전하의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하여도, 여왕 폐하의 군사가 되지도 않는다면 태자 전하와 대공 전하께서는 어느 정도는 만족하시지 않겠습니까?”
태자와 자신에게 있어서는 계륵과도 같은 헤스바 영지와 후작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언사였다.
“그럴 만한 방도는 있겠습니까?”
“이이공이以夷攻夷의 방법은 어떨까요?”
그것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공녀치고는 사태 파악이 빠르고 제법 영리하다 여긴 뮤켄의 시각을 단번에 바꿔놓은 한 마디였다.
“이이공이라면, 혹 유목민족을 이용하자는 말씀입니까?”
본래 정치 외교판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의 적이라면 상호간의 이해만 맞다면 얼마든지 한편이 될 수 있었다. 이이제이의 계책으로 한순간에 지나시안은 뮤켄에게 있어 더 나은 세레즈를 위해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었다.
“네, 전하. 최근 서북부에 놓인 노틸라드에서 주둔군 사령관인 미드프레드 그론레이가 행한 군사행동으로 일부 유목민족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헤스바를 포함한 왕국 동북면 국경 지대의 치안이 엉망이라고 어른들께 들은 바 있습니다. 그들을 조금 더 자극할 수 있다면 군사들을 충분히 영내에 묶어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투에 대하여서는 문외한인 어린 소녀의 의견인지라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하고 단기적으로는 영토의 일부를 유목민족에게 잃을 수도 있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지라 전술적으로 조악하다고 평할 만했지만, 거시적인 전략 측면에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계책이었다.
지나시안의 말처럼 국경지대를 어지럽히는 유목민족의 난립을 잘만 이용한다면 친여왕파가 대다수인 북부 영주들의 상당수를 영내에 묶어둘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란의 여파가 일파만파 퍼져 전선이 길어지면 피해를 입는 것은 비단 여왕만이 아니다. 자국 안에서 발생한 소요가 길어지면 코네세타와 커런스 같은 제3국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가 되기에. 백성을 지키고 왕국을 보호하려면 반드시 이 전쟁은 짧아야 했다. 아군의 희생없이 여왕의 주요 전력을 영내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태자에게 그보다 더 커다란 도움은 없으리라.
영지로 돌아가면 수비대장인 케니하크와 자리를 비운 미드프레드를 대신하여 노틸라드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페르겐드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 보아야 할 듯싶었다.
“물론 제 생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대공 전하의 도움이 절실하겠지만요.”
만인 앞에서 연상의 사내에게 먼저 입맞춤을 할 만큼 말괄량이인 지나시안도 제 손바닥을 완전히 펼쳐 자신이 가진 패를 다 꺼내 보이자 제법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굳어진 표정을 한 채 뮤켄의 반응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헤스바보다 공녀와 같은 인재를 얻으신 것이 태자 전하께는 홍복이군요. 하여, 이 일이 모든 일이 무사히 실현되어 주군께서 정당한 자리를 되찾으시면 공녀께서 구하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뮤켄은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훗날 소녀의 부모와 오라비가 망명할 길을 도모해주시길 바라나이다.”
“공녀께서는 제3국으로의 영구망명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나라를 등지고 떠나고 싶다는 의사에 뮤켄의 음성이 다소 굳어졌다. 지나시안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청남빛 눈동자가 단호한 의지를 품고 아름답게 빛났다.
“아니오. 저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가문과 함께 세레즈에서 생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 부모님과 오라비 부처면 됩니다. 영지와 작위도, 재산도 다 필요 없습니다. 신왕께서 등극하셨는데 반역의 길을 택한 자가 어찌 부귀와 영화를 바라겠습니까? 저는 혼자 몸인지라 가문의 이름 아래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만, 부모님께서는 연로하셨고, 오라비 부처에게는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조카가 있습니다. 소녀, 혈족의 살길만 열어주시면 달리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부디 소녀의 무도한 청을 들어주시겠나이까.”
“주군께서는 인재를 아끼시고 도량이 무척 넓으신 분이시니, 공녀의 진의를 크게 헤아려주시고 후작가에 관대한 처분을 내리실 것입니다. 부족2한 몸이나마 콜드베폰의 명예를 걸고 공녀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훗날 제가 폐하와 오센부르흐 가문을 위한 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
- 작가의말
제가 지난 화에 코멘트 달아서 선작이 줄어든 걸까요. 어차피 줄어든 김에 조금 더 징징거려보자면, 저도 피드백 좋아합니다.
오타 신고, 비문 지적, 맞춤법 띄어쓰기 실수 지적도 좋고요
설정상의 오류 지적이나, 문제제기도 좋고
즐겁게 보고 있다는 짤막한 코멘트도 좋아요.
물론 좋아요 꾸욱 눌러주시거나 감평이나 추천글도 감사하고요.
완결 전에 저도 댓글창이 한 번 시끄러워봤으면 좋겠어요. ^^
황제의 길은 전체 분량의 5분의 2가량 진행된 까닭에 아마도 500편 내외에서 완결이 날 거 같습니다. 그 전에 조회수가 제가 쓴 글자수를 초과하고, 댓글창이 북적북적해지고,
추천수가 지금의 열배쯤으로 늘어나는 기적이 생기길 바라며, 힘내보겠습니다!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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