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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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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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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74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6.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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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
추천
88
글자
18쪽

10. 모난 놈이 맞는다 [2]

DUMMY

각 길드 지부는 자체적으로 감옥을 마련해두고 있다.

의뢰 중에는 지역을 넘나든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도 있고, 때로는 몬스터를 산 채로 포획하는 의뢰도 있고, 가끔은 길드 내부의 범죄자나 문제아를 가둬야 할 경우가 있다.

범죄자 겸 몬스터 겸 미쳐 날뛰는 모험가를 가둬두기 위한 감옥은 끔찍스러울 정도로 튼튼하고 철통 같은 구조를 자랑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런 수준의 감옥에 갇힌 영규는 주물로 만든 금속 의자에 앉아 구속구로 꽁꽁 봉인되어 있었다.

누가 본다면 국가 반역자나 지상 세계의 수많은 종족들을 배반한 역적을 다루는 수준으로 오해할 정도다.

여신 누아즈에게 선택된 네 명의 용사, 그 중 한 명인 영규는 자신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스탈리스에서 겪으리라 예상한 건 멋진 모험과 많은 이들의 찬양과 동경, 거기에 표현하기 뭣한 이런저런 것들이었다.

물론 고난이 아예 없진 않을 거라고도 생각은 했다.

허나 여태까지 그가 겪은 건 고난밖에 없었다.


“예상한 거랑 전부 다르잖아······.”

“그건, 이 세상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지!”


누가 대답하리라는 기대를 한 푸념은 아니었으나, 영규의 말에 대답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저 어둠 너머에서 나타난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와 영규를 내려다보며 손을 까딱였다.


“소개한다. 스탈리스 대륙에서 손꼽히는 연금술사 한둘이 아니었으나, 그 새끼들은 신경 꺼라. 여기 이 몸이 있으니까.”

“누, 누구세요?”

“네가 보고 들었던 연금술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라! 여기 진짜 연금술사가 있으니까!”

“연금술······사?”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면 한 반쯤 듣다 다들 까먹어서, 그냥 우라고 말하지.”

“······.”


정식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연금술사 우’를 바라보던 영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굴 표정을 봐선 뭔가 이것저것 드는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건 나타난 상대를 보고 일우임을 알아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작전의 첫 단추가 잘 끼워졌다는 걸 확인한 일우는 히죽 웃었다.


“반갑다구, 용사라고 주장하는 소년도 아니고 소녀도 아니고 용사는 더더욱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양반?”

“나, 나 용사 맞아요! 맞다······읍!”

“자, 격한 자기 정체성 주장시간은 뻔하니 생략.”


영규의 입이 접착제가 발린 천으로 봉인되었고, 영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읍읍대며 버둥거렸다.

말을 못 꺼내게 만들어 주도권을 뺏으려는 전략이지만, 그걸 대놓고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일우는 영규의 입을 틀어막은 그럴싸한 명분을 댔다.


“지금부터 왜 네가 여기에 잡혀서 무장해제 된 상태로 꽁꽁 묶였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겠다.”

“으으읍!”

“거 말하려고 하잖아. 남의 말 안 듣는 유형이구만?”


그 뒤 ‘연금술사 우’는 여태까지 페니카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고, 영규를 붙잡아 여기 가뒀다는 내용까지 말한 뒤 그의 입에서 접착제 묻힌 천을 떼어냈다.


“자, 설명 끝! 발언을 허락하지! 감상은?”

“아웁! 으으으······.”


영규가 일부러 아픔을 느끼라고 확 잡아당겼고, 그 기대에 응하듯 영규가 말을 꺼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일우는 히죽 웃었다.


“감상평이 아웁 으으으라니, 꽤나 독특한 평가로군.”

“그, 그게 아니라······ 아으 아퍼. 그런데 당신 말대로면······ 고작 발모제 때문에 절 이렇게 가둬뒀다는 거에요?”


요약하자면 그렇게 되지만, 일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류철을 꺼내들어 깃털 펜으로 뭔가를 쓱쓱 적어가며 중얼댔다.


“좋아, 감점.”

“감점?”

“뚜렷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기준에 의거한, 해석의 여지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도록 의도된 용사 감별분류기준표에 따르면, 용사 자격미달에 해당되는 상태야.”


일우는 재빠르게 서류철을 돌려 서류를 영규에게 보여준 뒤 다시 빙글 돌렸다.

물론 내용은 엉터리고 양식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 엉망인 서류 뭉치였지만, 영규에겐 그 서류가 진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용사라는 것을 의심받는 그 자체가 중요했다.


“아니 대체 왜요! 그리고 왜 제가 당신한테 용사인지 아닌지 감별을 받······.”

“시끄러워!!”

“윽!”


막 자신의 부당한 처우를 따지려던 영규를 향해 ‘연금술사 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이내 서류철로 머리를 연달아 내려치며 말을 쏟아 부었다.


“개인의, 한 사람의, 수많은 남성의, 수많은 인간형 종족의 절반 가량이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무의식적 공포를 ‘고작’이라고 표현했냐?!”

“으윽! 윽! 윽!”

“그래, 넌 용사다 싶으니 인구 절반이 가지는 두려움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싶지? 근데 그거 알아?”


서류철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영규는 무심결에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온몸이 포박되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포박을 한 장본인은 영규의 이마를 서류철로 꾸욱 누르며 으르렁댔다.


“현재까지의 기준 책정결과에 따르면 넌 용사로 보기 힘들어. 영웅보다는 암컷! 탈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를 적성보다는 본성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뭔 소리에요?! 설마 내가 여자애같이 생겼다고 그러는 거에요?”


영규의 모습은 여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의 미소년의 모습이었는데, 글로리어스에서 영규가 설정한 외형이었다.

실물은 당연히 이렇게 생기지 않았겠지만, 글로리어스에서만큼은 미소년으로 살고픈 모양이다.

하지만 ‘연금술사 우’는 영규가 단지 곱상한 여자애 같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너 여기까지 왔던 과정 중에 제일 강렬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렴?”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랑이 쪽을 가리켰고, 영규는 자신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에서 별다른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스카웃의 스캔 결과, 영규의 특정 부위는 해부학적 기능 상실 수준의 피해를 본 건 아니다. 허나 타박상이라는 표현이 애교라 불릴 수준의 상황이었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에, 원만한 대화를 위해 해당 부위에 국소마취제를 듬뿍 침투시켰기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일우는 그 결과에 약간의 왜곡을 첨가했다.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 거기에 가해지면 보통은 그렇게 되지.”

“그, 그렇게 되다니······ 대체 뭔데요? 예?”


불안한 표정을 한 채 영규가 질문했지만 상대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연금술사 우’는 감옥 안에 미리 가져다 둔 탁자에 보란 듯이 올려두었던 바구니에서 계란 하나를 꺼내 탁자 모서리에 내려쳤다.


-탁! 쩌저저적---!


누가 보더라도 손쉽게 연상할 수 있고, 영규에겐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비유가 담긴 동작이었다.


“······!”

“자세한 설명은 내 고상한 언어생활에 심한 지장이 가기에 생략하겠지만, 네 상상력이 그걸 보충해주리라 믿어. 자기가 용사라고 주장하는 상상력 풍부한······.”

“그, 설마······.”

“······소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소년이라고 부를 만한 조건에 결격사유가 생겼군. 음. 이를 어쩐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부위, 계란을 깨는 행동.

구체적으로 그렇다고 인정한 적은 없지만, 영규의 머리는 멋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렸다.


“말도 안 돼!!”

“네 주장만 하겠니.”

“내가······ 고자가 됐다구요?”

“거 안타깝게 됐다만, 너와 영영 이별했을 신체 부위보단 지금 네 자기소개를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게 더 중요해.”


그 말을 한 ‘연금술사 우’는 두 팔을 좍 벌리며 말을 쏟아냈다.


“남성성의 상징이 영구적 손상이 가해진다면, 그 누가 남성으로 여기겠니? 하지만 여성으로도 대우받지도 못하지!”

“안돼······ 이세계에서 고자가 되다니······ 내가 고자라니······.”

“그 적나라한 단어 직접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중요한 건 넌 수컷 구실 못 하는 꼴이 되었고, 세상에는 수컷 혹은 암컷만이 존재하지!”


자웅동체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소리지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 말을 꺼낼 영규는 자신의 중요부위가 손상을 입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고로 넌 용사보다는 암컷에 가깝기에, 탈모에서 자유롭다는 결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아니야!!”

“좋아, 그 점은 나도 원하는 결론은 아니야. 탈모 연구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용사 아니면 암컷.

이 비약으로 탄생한 엄청난 개소리에 영규는 거의 발악하듯 버둥댔다.


“이익! 익!”

“자, 내 말이 틀리거나 아니거나 잘못되었다면 네가 용사라는 걸 증명해봐.”

“진짜야!”

“역사에 수많은 용사들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게 뭔 줄 알아?”


버둥대는 영규에게 다가간 일우는 그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미친놈이야.”

“그건 당신이지!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돌려놔! 치료해달라고!”

“물론 네 눈엔 그렇겠지만, 내 눈엔 네가 미친 놈으로 보여.”


영규는 잃어버렸다 확신한 자신의 중요부위를 처절하게 부르짖었지만, 그 말 들을 유일한 상대는 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절규하는 영규의 요청을 들어주는 대신, 한껏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 나는 용사에요! 증명은 못하는데 아무튼 용사에요!”

“용사 맞아! 그리고 당신은 그 용사한테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구!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질 거야?”

“뒷감당?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 당신 가만히 안 놔둘 거야!”


악에 받친 듯 영규가 그렇게 외치자, ‘연금술사 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래! 이건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겠어!”

“좋아, 이걸로 감점 추가.”

“대체 왜!”

“감점 사유는 ‘제압 도중 일어난 불의의 일격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용사답지 못한 대처’ 정도로 해 두자구.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용사라고 치기엔 좀 쪼잔하단 말이야.”

“대체 어딜 봐서 쪼잔하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한테 물어보란 말이야! 자기 가랑이를 터뜨려놓은 상대한테······.”

“연금술사한테 걷어차였다고 가랑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쪼잔한 신체능력을 말하는 건데?”


그 말에 영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일단 사정이 있어서 자신의 힘을 모조리 쓸 수도 없는데다, 신체능력도 게임에서 도달한 엔드스펙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투능력도 없어 보이는 연금술사에게 이런 치명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건 매우 큰 문제다.

물론 그 연금술사의 정체가 스탈리스 대륙에서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건 일우의 이야기지 ‘연금술사 우’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역사나 기록에 ‘연금술사에게 가랑이가 걷어차여서 남자라는 정의를 충족하지 못하는 용사가 있었다.’라는 내용은 없잖니.”

“으윽······.”

“아, 맞다. 너한테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게 나라는 걸 깜빡하고 말 안했네.”


굳이 강조 안 해도 될 말을 반복하는 ‘연금술사 우’를 본 영규는 다시 한 번 화가 치솟는 것과 자신이 이런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에 대한 어이없는 감정이 서로 부딪치는 걸 느끼며 부르르 떨었다.


“으으으······.”

“아, 혹시 급해? 그래도 기둥은 남아 있다구. 그래도 다행이지?”

“아냐! 화장실 때문에 그런 게 아냐!”

“다행이구만. 급하다고 해도 풀어줄 생각은 없거든.”


한번 더 영규를 놀려먹은 일우는 두 팔을 좍 벌렸다.


“아무튼 간에, 네가 용사라는 실물증거는 단 하나도 없는데 아니라는 증거는 속속들이 나타나는군.”

“대체 어떻게 하면 날 믿어줄 건데?”

“그야 네가 용사라는 증거지. 하다못해 네가 다른 세계에 왔다는 증거라던가. 그러면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고 간접증거라고 해도, 대충 하나로 쳐 줄게.”


뭔 소리인지 영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을 증명할 물적 증거가 있다면 자신이 용사라는 걸 믿어준다는 뜻으로 여겼다.


“내 장비! 그러고 보니 장비들은 다 어디로 갔······ 저거!”


그리고 영규는 다른 세계에서 올 때 자기 장비들도 고스란히 지참하고 왔고, 감옥 구석에 대충 쌓아둔 장비들을 확인하고 일우에게 말했다.


“확인해 봐! 저 장비도 나랑 같이 왔어! 당신 연금술사지? 그러면 여기서 없는 뭔가라는 건 확인할 수 있잖아!”

“흐음.”


일우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갑옷과 무기를 들고 테이블에 내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어서 막대기를 꺼내 이리저리 조사하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스탈리스의 것이 아냐. 정말 의외야.”

“맞지? 내 말 맞지? 의외라고 말하는 거 봐선 내 말 믿지? 다른 세계에서 여신님이 용사로 불러······.”

“내가 의외라고 말한 게 무슨 뜻이—게?”


자신의 주장을 믿는 듯한 반응에 영규가 황급히 말을 쏟아내자, 일우는 히죽 웃으며 그 쪽을 돌아보았다.


“무, 무슨 뜻이야? 내 말 믿는다는 게 아냐?”

“다른 세상 물건은 좀 튼튼하고 유용할 것 같았는데······.”

-빠각!

“쓰으으으읍.”

-콰작!


일우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두 쪽으로 쪼개버렸고, 이어서 갑옷의 흉갑 부분을 들고 있는 막대로 꿰뚫어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영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생각보다 약하고 별 볼일 없네.”


조금 전에 일우가 조사를 한 건 사실이지만, 이게 다른 세계에서 온 물건인지를 검증하는 게 아니었다.

영규가 가지고 있는 장비의 내구도와 취약점을 조사해서, 박살낼 생각이었다.

상상 밖의 전개에 멍하니 지켜보던 영규는 뒤늦게 자신의 장비가 박살이 났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소리쳤다.


“그······그게 얼마짜린지는 알아?!”

“얼마인지는 안 중요하고, 이쪽에선 별로 가치 있는 물건도 아냐.”


물론 거짓말이다. 영규가 가지고 있는 장비의 소재는 스탈리움과 콜라니움 합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글로리어스’는 물론이고 이 곳 스탈리스에서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모험가들 모두가 이 장비가 엄청난 것이라는 걸 눈치 챌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우의 힘은 이 장비를 가볍게 박살내버릴 수 있었기에, 대놓고 사기를 치는 게 가능했다.


“중요한건 내 손에 박살이 났고, 박살이 났으면 생각보다 안 튼튼하고······ 용사가 쓸 수준의 무구가 아니라는 소리지. 이걸로 3개째.”

“자, 잠깐. 잠깐마아아안.”


뒤늦게 자신이 용사와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영규는 황급히 일우를 불러 세웠다.


“대체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믿은 건데?”

“물질적인 증거도 그렇고 정황 증거도 아니라고 하는데? 대체 뭘 보고 널 용사라고 믿어줘야겠니? 그냥 지나가는 예쁘장한 애라서 믿을까? 미안한데 난 그런 취미는 없어.”

“진짜야. 믿어줘. 거짓말이 아니야.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건 알 수 있잖아.”

“흐음······.”


일우는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며 자신의 계획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가늠했다.

일우의 계획은 영규가 가지고 있는 여신에 대한 정보, 특히 자신이 쫓겨난 직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네가 꺼낼 증거는 그거군.”


그 정보를 알아야 앞으로 만날 다른 세 명의 용사를 상대하는 기반을 다지고, 나아가 여신 누아즈에게 한 방 먹일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섬세함이 필요하다.

일우가 영규에게서 직접 캐묻는 건 가장 덜떨어지고 망칠 가능성이 높은 계획이다.


“뭔데? 할 수 있다면 당장 할 테니까!”


그렇기에 상황을 몰아가며 영규가 자기 입으로 술술 모든 걸 불게끔 유도한 것이다.

일우는 겉으로는 영 내키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심 쓴다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영규가 가진 정보를 토해낼 것을 주문했다.


“미친 사람의 조작된 기억은 세세하게 살펴보면 앞뒤가 안 맞거나 공백이 존재하지. 물론 인간의 기억은 온전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지. 하지만 멀쩡하다면, 최소한 앞뒤는 맞아.”

“그, 그렇지. 그런데?”

“자, 반론의 시간. 너 자신을 변명해 봐.”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 하나를 끌고 와 걸터앉은 뒤, 서류철을 깃펜으로 툭툭 쳤다.


“뭐든 좋아. 네가 어떻게 용사라는 망상질을 시작했는지도 좋고, 너 데려온 쪽이 뭐 하라고 시켰는지를 말하던가, 그게 아니면 참된 용사관에 대해 날 설득시키거나······.”

“설득시키거나?”

“영 안 되겠다 싶으면 전형적인 미소년 용사론에 입각해서 그냥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던가.”

“그, 그러면 지금 날 풀어줘! 딱 보면 용사같이 생겼잖아!”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도 교묘하게 그 쪽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하는 건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


“그 소리 할 줄 알았다. 감점. 징징대서 용사 시켜달라고 하면 세상이 용사를 시켜주냐? 머저리야? 이런 쉬운 함정에 낚이는 게 용사라고? 강에서 낚는 대송어도 너보단 용사 같겠다.”

“으윽.”

“지능 떨어지는 모질이 취급 받기 싫으면 성실하게 생각을 해보라고. 저지능 용사 같은 건 세상에 나온 적이 없으니, 계속 헛소리하다 지능이 기준치 미만이다 싶으면 기회는 끝이야.”


몇 번의 반복을 거치면 마치 영규가 원해서 말한 것처럼 일우가 기대했던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너 같은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 분간도 못할 나이 꼬맹이한테 반말 들을 나이인 것 같아? 어디서 반말질이야?!”

“어, 그게······.”

“좋아,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없는 걸 봐선 기초 예의범절 결여. 용사로서의 교양이 부족하니 감점.”

“잘못했어요오오오!”


물론 그 의도를 숨기기 위한 작업도 부지런히 끼워넣었다.


작가의말

이번 화에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은 일종의 심문입니다. 심리적 중압감과 신체에 가해진 치명적인 부상, 그 외 기타 요소들을 통해 상대방에게 정보를 쥐어짜는거죠.


이 글에서 주인공은 말 그대로 되갚아주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이 모자라보이는 미소년 아바타를 가진 ‘용사’의 경우, 만에 하나 이세계에서 미소년 외모로 온갖 여자를 꼬시려고 할 작정이었다면....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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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42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41 9. 모자람 없는 고민 [3] +8 21.06.11 2,874 95 18쪽
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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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건드리지 마시오 +7 21.06.08 3,023 83 13쪽
37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7 21.06.07 3,057 99 17쪽
36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4] +7 21.06.06 3,053 91 18쪽
35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6 21.06.05 3,052 82 21쪽
3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2 89 19쪽
33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1] +2 21.06.04 3,268 74 18쪽
32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10 21.06.04 3,466 96 19쪽
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7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60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6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9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1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8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1 11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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