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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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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작성
21.06.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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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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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글자
17쪽

9. 모자람 없는 고민 [5]

DUMMY

소문은 사람을 거치며 와전되고 왜곡된다.

일우가 꺼냈던 헛소리는 몇 단계의 왜곡을 거쳐 이제 기괴한 소문으로 변형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거 알아······?”

“뭔데.”

“용사의 머리털을 구해다 달여 먹으면 머리카락이 난대.”

“정신 차려. 그거 세뿔사슴 뿔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런 건 소용없어.”

“아! 어쩐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더라. 그런데 소용이 없어?”

“그래. 머리카락을 달여 먹으면 뭐해? 피를 먹어야지!”

“어우 그건 좀 과하다.”


그리고 헛소문에 편승한 사기꾼들이 여기저기에 일어났다.


“용사 감별봉! 이걸로 푹 쑤셔서 용사를 구별하세요! 용사는 찔리지 않지만, 용사가 아니면 찔리는 확실한 효과!”

“그래?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내가 전부 사지!”

“정말입니까요?”


잡상인은 이 광란의 도가니에서 한몫 단단히 챙길 작정이었고, 시작부터 꼬여드는 어리석은 대머리의 말에 속으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사겠다고 한 상대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일단 너로 시험을 해볼까 싶어.”

“예? 아, 저기······ 저는 용사가 아니니 당연히 찔······끄어어억!”


어느 새 잡상인의 손에서 ‘용사 감별봉’을 낚아챈 일우는 그대로 잡상인의 허벅지에 봉을 꽂아버렸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봉에 찔린 잡상인은 허벅지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고, 일우는 그 상인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끄, 끄어어어······.”

“안 가르쳐줄 거야. 그리고 그것보다 덜 싫어하는 건, 너같이 검증 안 된 상품을 과대포장해서 팔아먹으려는 놈이야.”

“끄악!”


봉을 허벅지에서 뽑아낸 일우는 뻥 뚫린 상처에 회복약을 쏟아 부었고,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너도 이걸로 사람을 해치라고 팔아먹은 건 아니잖아. 그치?”

“그, 그그······ 그렇습니다! 그냥 저는 사기를 치려는 거지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은 결코 없었습니다요!”

“좋아. 솔직하게 자신의 못난 점을 고백하는 건 좋았어. 그런 의미에서 상을 주지.”


일우는 히죽 웃으며 새로운 약병을 꺼낸 뒤 사기꾼 잡상인의 머리에 부었다.


“자라나지 마라 머리머리.”

“어······?”


그리고 쏟아지는 희멀건 액체에 마치 씻겨 내려가듯 머리털이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속설 중에 이런 말이 있지.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어······ 머리가······머리카락이······?”

“너도 공갈을 통해 수익 창출을 노렸고, 넓은 의미에서 공짜를 좋아하는 거니······ 중간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줬지.”


일우가 그 말을 하며 히죽 웃는 사이, 약병에 담긴 액체가 모조리 쏟아졌다.

그리고 풍성했던 잡상인의 머리는 오점 하나 없는 반짝이는 대머리가 되어버렸다.

기겁할 만한 광경에 거리의 다른 잡상인들은 어느 새 눈치를 보며 자신들의 상품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용사 어쩌고 하는 파생상품 팔려고 시도한 잡것들 주목. 내 발모제 계획에 포크 얹으려 했지? 내가 직접 참가시켜주지.”

“저, 저희는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깝쇼?”

“그건 안 돼. 너희들은 중요한 체험단이 될 거니까.”

“체험······단?”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기고, 탈모와 싸우려면 탈모를 알아야 하니······ 탈모제를 연구하는 것 역시 발모제 개발과 이어지는 법이지.”


그 말을 한 일우는 손가락을 튕겼고, 길드에서 파견된 치안 인력들이 잡상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잡았다 요놈!”

“아아악! 잘못했습니다요!”

“너도 이제 우리처럼 될 거다!”

“끄아아아악! 내 머리!”

“어떠냐 이놈아! 우리처럼 되니 기분이 어때? 어?!”


물론 그냥 잡아들이는 게 아니라 머리에 뭔가를 뿌려댔고, 잡상인들 모두의 머리가 훌러덩 벗겨졌다.


“친구들! 선량한 사람들 벗겨먹으려다 역으로 벗겨지게 된 기분 어때? 행복하지?”

“내 머리카락! 안돼!”

“진짜로 증명할 수 있는 상품, 대머리에 탁월한 효과가 있거나 용사 탐색에 확실히 도움 되는 물건이면 내가 진짜로 전량 구매를 할 거야!”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니 그것만은······ 아악!”

“당연히 아니겠지. 니들이 그랬으면 나보다 부자가 되었을 테니까. 거기 길드 친구들? 약병마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벗겨졌는지 다들 기억해둬야 해. 다 소중한 연구 기록이라는 거 명심해.”

“알겠습니다!”


사기꾼들의 머리카락을 날려버리는 길드 직원들을 뒤로 한 일우는 길드 사무소로 돌아왔다.


“의뢰 수고하셨습니다.”

“전부 가짜고, 전부 헛소리고, 전---부 공짜 좋아하는 자의 최후를 맛보게 해줬지. 좀 심했나?”

“상관없습니다. 페니카에서 마법물품 관련 위조 및 사기는 최대 즉결처형이니까요.”


페니카 전역이 발모제 광풍에 휩쓸렸어도 길드 접수원 아가씨는 늘 그렇듯 무덤덤한 태도였다.


“남들은 머리가 벗겨졌지만 아가씨는 마음이 휑하구만.”

“그런 표현 금지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나도 금지를 금지한다고 몇 번을 말했지.”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으며 집회소 쪽으로 향했고, 거기에서 막 술잔을 기울이던 길드마스터를 만났다.


“맡긴 일 해결하고 왔어. 생각보다 한 건 하려는 사기꾼이 득시글하더라구.”

“예에. 여기서 다 들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뭔가 세기말 황무지같은 상황같더라구. 가죽옷 입은 대머리들이 흉악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닐 것 같은······게 아니라 진짜로 여기선 그런 인간들 깔렸지. 게다가 페니카는 황무지에 가깝고.”


일우의 말에 길드마스터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팔짱을 꼈다.


“평상시같으면 얼씬도 못하는 그런 놈들이 최근 소문을 듣고 들끓으니 문제입니다. 당분간 우 님이 엄포를 놓으셨으니 잠잠하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대머리를 만들려는게 아니라 해결을 하러 왔는데······.”


일우가 그렇게 말하며 정체불명의 약병을 꺼내들었다.


“뭐, 결과를 위해서 거치는 과정은 원래 길고 복잡할 때도 있으니까.”


정체불명의 약품이 들은 약병을 든 일우는 히죽 웃었고, 길드마스터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하겠습니다.”

“난 확신은 못해줘. 일단 그 연구실과 최고의 샘플이 들어와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거든.”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페니카의 모든 모험가들이 눈에 불을 키고 찾으니 말입니다.”

“아주 만족스럽구만. 그래,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 정말 반짝여.”

“그 표현 쓰지 말아주세요.”


길드마스터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고, 일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접수원 아가씨는 무덤덤하게 일우의 어휘 선택을 지적했다.

그 와중, 문이 벌컥 열리며 랑키가 등장했다.


“······역시 여기 계셨습니까.”

“오늘도 고집스럽게 천을 덜 쓴 옷을 껴입고 다니는군.”

“말씀 드렸다시피 자존심입니다.”


일우의 말이 랑키는 수심이 깊은 얼굴로 일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길드마스터가 슬쩍 자리에서 물러나자, 랑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 님 덕에 최근 페니카에서만 느끼는 시선이 덜해진 건 고마운 일입니다. 다들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제 몸 훔쳐보는 일엔 관심이 없더군요.”

“원래 사람의 욕망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은 못하거든.”

“하지만! 그게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비율이 떨어져도 체류기간이 길면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고, 총량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옷을 입어.”

“페니카에서 보는 추파를 못 견뎌서 옷을 더 걸치는 건 제 자존심이 용납 못합니다!”

“뭔 소리야. 나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소릴 하고 앉았어.”


랑키가 이렇게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기 때문이다.

소문이 나지 않게 용사를 찾으려고 했던 랑키의 계획과 달리, ‘연금술사 우’의 계획은 용사를 찾아 온 지역을 들쑤시는 꼴이었다.


“그보다 용사를 찾으려면 돌아다녀야지 왜 허구한 날 나한테 찾아와서 따져?”

“그, 그건······ 우 님도 마찬가지잖습니까.”

“마찬가지? 아니지. 나는 연구소를 찾는 겸 용사라는 이름의 샘플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입장. 너는 용사라는 이름의 전략무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입장!”

“끄응······.”

“그래서 길드마스터도 내뺐잖아. 네 계획에 끼기는 싫으니까. 세상은 자기 일이 제일 소중한 거니까.”


물론 일우도 용사를 찾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론 용사는 부차적인 목표였다.

허나 랑키는 아니었고, 현 페니카 지역의 분위기는 그녀의 계획을 완전히 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입장이 다른 나는 원하는 걸 찾을 때까지 편하게 앉아서 여태까지의 검증과 실험을 반복하는 거지.”

“끄응······.”


일우는 품속에서 새로운 약병을 꺼내 흔들어보였고, 용사에 대해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 행동에 랑키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쌌다.


-콰앙!


때마침 일우가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나타났다.

꼬박꼬박 일우가 찾아야 할 인물을 대신 수색해주는 이들이 포획한 누군가를 데려왔고, 일우는 적당히 그 인물을 처리하고 ‘실험하는 척’ 행동만 하면 된다.

계속 헛물만 켜는 것 같지만, 포획한 대상을 잡은 장소와 은신처 위치도 꼬박꼬박 제보받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숨어있을 영역은 줄어들 것이고,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할 땐 딱 그 장소들만 찾으면 될 것이다.


“한 놈 추가!”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대머리만은······ 대머리만은 제발······ 난 용사가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우의 계획을 알 리 없는 모험가는 오늘도 페니카 구석에 숨어 있던 범죄자로 보이는 남자를 질질 끌고 모험가 길드로 들어섰다.


“필요 없어.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네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 난 용사가 아니라고 말을 했잖아. 응? 그냥 셀라에서 좀 크게 한 탕 해먹고 여기서 숨어살던 사기꾼 나부랭이라구. 응?”

“알 게 뭐야.”


붙잡힌 상대는 이미 소문을 들은 모양인지 자신의 머리를 감싼 채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다.

허나 모험가는 일말의 자비도 보일 생각이 없었고, 곧바로 일우에게 붙잡은 자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기! 한 놈 확인 부탁드립니다.”

“마침 잘 됐어. 새로운 샘플을 검증할 실험체······ 아니, 자원봉사자가 필요했거든. 간다!”

“안돼애애애애애!”


조금 전 일우가 꺼냈던 약병의 뚜껑이 열리며 내용물이 붙잡힌 이의 머리로 부어졌다.

당연하게도, 용액이 닿은 부분의 머리카락이 힘없이 두피에서 떨어져나갔다.


“역시, 이 조합의 역반응은 발모제라기보단 탈모를 수십 배로 가속하는 거였어. 꽝.”

“내, 내 머리가······머리가아아아······!”

“······아무리 봐도 발모제 연구가 아니라 탈모인구 증가를 노린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군요. 정상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대머리 광풍이라 할 수 있는 광경에 랑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대머리 광풍에 모두가 동조한 건 아니고, 개중에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은 이가 분명 존재했다.

빠진 머리카락을 멍하니 쥔 사기꾼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한 모험가는 작게 속삭였다.


“한 가지 알려줄까?”

“뭐야!”

“난 사실 당첨엔 관심이 없어. 발모제에 대한 기대는 진작 버렸어. 어차피 내 탈모는 유전이거든.”

“그럼 대체 왜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나, 난······ 난 그냥 사기 친 죄밖에 없는데······!”

“그냥? 난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벗겨지는 걸 보고 싶을 뿐이라구······으헤헤헤헤헤.”

“미쳤어. 다들 미쳤어······ 제기랄.”


광풍에 휩쓸린 게 아니라는 말에 사기꾼은 멍하니 중얼거렸고, 랑키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썩같이 믿으며 이 광풍에 몸을 던지거나, 혹은 믿지는 않지만 이미 돌아버렸거나.

이 두 종류의 대머리들의 절대적인 지지 때문에, ‘발모제 복권 광란’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광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점점 벗겨진 면적이 늘어나는 상대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중요한 건 말이다, 과거엔 단순한 사기꾼이었지만 이제 넌 대머리 사기꾼이 되었다는 거란다. 데려가.”

“옙! 어르신! 오늘도 한 명 늘었어······ 으히히히히히히.”

“제기라아아알······.”

“······암만 보더라도 이건 악의적인 인체실험의 참상입니다. 톨라 국경 내에서 벌어지면 광란의 실험을 벌였다는 죄로 체포당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만.”

“하지만 여긴 톨라 국경 밖이지.”

“······.”


떳떳하지 않은 인체실험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도 당당한 ‘연금술사 우’를 바라보는 랑키의 시선이 점점 곱지 않게 변하자, 일우는 히죽 웃으며 주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 과정에 다소 소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결과를 보라구.”

“무슨 결과 말씀이십니까.”

“범죄자는 벌을 받고, 추가로 벌을 받고, 누군가 괴로웠던 사람은 이걸로 위안을 얻고. 동시에 경우의 수를 줄여서 내 발품도 줄이고! 실험은 그냥 소소한 거라구. 누가 아프기라도 해?”

“······범죄자 체포 효과는 확실하더군요. 톨라에서 도망쳤던 범죄자들의 절반 가량이 이 소동으로 잡아들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랑키가 대놓고 일우의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

실험 자체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빼면 인체에 무해하고, 거기다 페니카는 톨라의 영토가 아니다.

그리고 모험가들이 찾아대는 수상쩍은 인간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톨라에서 도망친 범죄자들이다. 여태까지 잡힌 톨라의 범죄자들은 죄다 본국으로 끌려가 죄값을 치를 것이다.


“보라고. 긍정적인 면이 많잖아? 근데 왜 이렇게 이 동네에 범죄자가 많이 숨어 들었나 몰라.”

“숨어있기 좋은 지역이니 말입니다. 그놈의 자치권만 아니었으면 이미 톨라에게 잡아먹혔을 지역이지만, 그러지 않았죠.”


캐피탈 마법의회에서 항상 페니카로 도망친 범죄자를 대대적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러다가 침략행위로 오해받으면 어쩌냐고 반박하고.

의회에서 심심하면 벌어지는 언쟁 중 하나를 떠올린 랑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치외법권에 본격적인 체포는 불가능하고. 그 반면 접근성은 너무나도 좋고. 그나마 잡아들일 모험가들 대부분은 의욕이 없었지요.”

“잘 됐네! 너 거기 의회 나부랭이라면서?”

“저어어어언혀 좋을 거 없습니다. 제 분야는 범죄자 척결이 아니라 군사 및 국방 분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제 분야는 성과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만.”

“쓸래? 너도 용사찾기 포션 효과 좀 볼래?”

“사양하겠습니다.”


일우가 내민 ‘용사찾기 포션’을 거절한 랑키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이대로라면 협력관계가 무색해질 것 같군요. 용사는 진작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테니 말입니다.”

“대머리들 피해 다른 데로 도망쳐봤자 소문 다 나는데, 용사놈이 잘도 도망을 갔겠다.”


일우는 그렇게 이죽거렸다.


***


그 시간, 페니카 지역 내의 한 마을.

이 지역까지 찾아온 모험가들은 마을 주민으로부터 특별한 제보를 들게 되었다.


“여기 수상쩍은 모험가가 왔었다고?”

“예에······ 분명 모험가라고 했는데 신분증은 잃어버렸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두 모험가는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모험가들은 신분증이 없으면 활동하지 않고, 만에 하나 신분증이 분실되거나 망가지는 일이 생기면 고립되지 않는 이상 길드 지부로 돌아가 재발급을 받는다.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는 건, 모험가 사칭범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리고 지금 모험가들은 수상쩍은 이들을 찾는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놈은 어디 있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까진 마을 시장에 종종 얼굴을 비췄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험가들은 서로 몇 마디를 나누다, 이내 마을 근처에 있는 거대한 산맥 쪽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저기 어딘가에 숨어있을 게 뻔하네.”

“어떤 사람이 비밀 연구소 같은 거 세우기 딱 적당해 보이는 지형이야. 인적 드물고, 이것저것 재료 채취해서 조달하기 쉽고.”

“그리고 딱 그 녀석이 거기에 숨어있으면 모든 게 완벽해. 발모제가 숨어잇는 장소에, 발모제 만들어낼 수 있는 녀석이 있는 거니까.”

“그러게.”


모험가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이 정답에 가장 가까이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당첨을 눈앞에 두고 살짝 눈이 멀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일단 우리들끼리 먼저 들어갈까? 연락은 하지말고?”

“벗겨졌더라도 양심까지 벗겨지진 말자.”

“그, 그래······ 길드에 연락할게.”


하지만 다른 이의 말대로, 그들은 머리가 벗겨졌을지언정 양심까지 휑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발모제의 단서가 정말 거기 있고 용사가 거기 있다면, 그것들을 기반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참으로 공리주의를 만족시키는 사상이지만, 일우가 정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작가의말

전형적인 혼란 상황의 풍경입니다. 


위기를 이용해 남을 등쳐먹으려는 사기꾼과 그저 누군가가 파멸하는 것만이 목표인 것.


....그럴싸하게 표현했지만 그냥 대머리 이야기입니다. 세계의 파멸이 아니라 남의 두피의 파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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