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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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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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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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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DUMMY

반쯤 정신 나간 연금술사가 저택을 매입한 후, 도시 광장에서는 언제부턴가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에겐 아주 매혹적인,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가.


“어? 이게 무슨 냄새지?”

“······고기 굽는 냄새 아냐?”


남녀 한 쌍으로 이루어진 모험가들은 광장에서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이내 허기를 느끼고 냄새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삶는 거에 환장한 동네에서 이런 냄새가 난다고?”

“지들도 맨날 같은 방식은 질리겠지.”

“근데 왜 안 팔아? 식당에서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길드 집회소 식당에서도 안 판단 말이야.”

“지들만 몰래 먹는 거 아닐까? 서로 눈치 보이지만 사실 구운 고기를 원해서 이웃 몰래 먹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자신의 동료를 미친놈처럼 바라볼까 생각했지만, 원래 이상한 상황에선 개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법이다.


“······그럴싸한데?”


델린, 넓게는 이델린에서 고기라는 건 삶아낸 것 아니면 삶기 전의 것밖에 없다. 헌데 그런 도시에서 고기를 구워낸 게 확실한 냄새가 풍기니 현실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이 두 모험가가 델린에 온 것은 세 달 전이고, 그 뒤부터 구운 고기를 구경한 건 두 달 전 즈음에 이웃한 카이옌 공방에 장비를 구하러 갔을 때 뿐이다.

애석하게도 그 때 장비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고기구이는 실컷 먹고 왔다.


“······생각해보니 이 동네 이 지경 된 뒤에 카이옌에 갈 수가 없으니 고기구이는 꿈도 못 꿨네.”

“우리가 꿈을 꾸는 게 아니면, 여기서 고기 냄새가 나고 있고.”

“그리고 우린 빡세게 이델린을 위해 일하는 모험가답게, 한 끼 신세 지는 거지.”

“······우리 악당 같지 않아?”

“여기 놈들이 악당이지. 아니 식당에서 왜 고기구이를 안 팔아? 이 동네 인간들은 굽는 거 모르나?”

“와! 고기를 굽다니 대단해! 고기를 굽는 사람은 천재인가봐!”


냄새에 이끌리고 고기의 유혹에 판단력이 흐려진 두 사람의 말은 점점 개소리로 변했다.

그리고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흐르는 개 같은 몰골이 될 즈음, 그들을 이끌었던 향기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진정한 고기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야 저게?”

“여기 원래······ 영주 저택 아니었나?”

“맞을······걸? 우리 오기 전에 수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쫓겨나버려서 비어있긴 했지만······.”


그나마 세상 물정에 밝은 여성 모험가가 수도의 이야기를 언급하자, 남자 모험가는 지역의 풍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금괴로 탑 쌓는 연금술사가 여기 샀다고 듣긴 했어.”

“아, 맞다. 카이옌에서 온 미친 연금술사. 근데 고기?”

“모올라아. 가서 보면 알겠지.”

“······미쳤는데?”


여성 모험가가 그렇게 말했지만, 먼저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 몰라. 들어갈래. 저 냄새 맡고 그냥 갈 수가 없어.”

“그래, 까짓 거. 삶은 고기만 봐서 미칠 것 같은데.”


소문을 통한 두려움보단 욕구가 우선이고, 고기 굽는 냄새는 그들을 위험천만해 보이는 장소로 이끌었다.

허나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미친 연금술사가 만든 괴악한 광경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복이자 천국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으와아아아아아······.”

“고기가······ 구워지고 있어······.”


저택의 넓은 앞마당에 펼쳐진 건, 그야말로 고기 굽기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석적인 돼지 통구이, 켜켜이 쌓아 뭉친 고기더미를 세로로 세워 빙빙 돌리는 구이, 꼬치에 꿰어 비스듬하게 구워지는 고기, 갈고리에 매달린 고기가 모닥불 위에서 익어가는 구이, 철판이 뜨겁게 달궈지는 와중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고기.

세상의 모든 고기구이를 모아놓은 광경에 두 모험가는 저도 모르게 한가운데에 모인 군중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엔, 이 고기구이의 현장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미쳤다는 풍문이 나도는 사람, ‘연금술사 우’가 있었다.


“너희는 고기를 모른다! 나는 안다! 아니, 나만 안다!!”

“오오오오······!”

“봐라, 어리석은 놈들아! 동력배가장치로 탈것을 만들어? 꼴랑? 꼴라아앙?!”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고정된 자전거가 죽 늘어서 있었고, 거기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페달을 밟는 일꾼이 있었다.

정확히는 산적이고, 일우만 아는 진실은 세뇌된 주민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모인 힘은 동력배가장치와 전환기를 거쳐 응축되고 집약되고 분배되어 이곳의 모든 고기를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설계했지!”


그 말대로, 자전거에서 만들어낸 힘은 중앙 축에 집중되었고, 길고 복잡한 벨트와 파이프, 기어를 통해 각 화로에서 돌아가는 막대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자 봐라! 고기가 뱅글뱅글 불에서 고통 받는 광경을! 맛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보라고!”

“으어어어어······!”

“맛있겠다아아아······.”

“더불어 너희들을 괴롭힌 도적단의 저 고통스러운 노동도 봐라! 재미가 꿀같이 줄줄 흘러나오지? 고기도 꿀맛일걸?”


멀거니 서서 겨우 자신들이 서 있는 장소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게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모험가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때마침 완성된 구이를 빼내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썰어대는 메이드복 아가씨가 눈에 보였고, 두 사람은 슬금슬금 그쪽으로 향했다.


“이, 이거······ 파는 겁니까?”

“저기, 이거 한 접시에 얼마죠?”


동시에 말했지만 목적은 하나다.

살 수 있느냐. 가질 수 있느냐.

자신들의 입으로 갓 구워진 따끈따끈하면서 군침이 도는 향기가 도는 이 고기를 밀어 넣을 수 있느냐.


“팔아? 내가? 이걸? 여기서?”


하지만 그 때, 저기서 막 장치들에 대해 떠들어대던 ‘연금술사 우’가 성큼성큼 모험가들 쪽으로 걸어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험가들은 황급히 고기가 썰어지는 광경에서 벗어났다.


“어······ 예.”

“나는 안 팔아!”

“그, 그러시겠죠? 당연히······.”

“그냥 먹어! 왜 돈을 주고 사려고 해? 내가 돈을 안 받는데!”

“예······?”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두 남녀는 멀거니 서로를 돌아보았고, 일우는 막 접시에 담긴 고기구이를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먹어! 먹으라고 굽는데 먹어야지!”

“먹으······라구요?”

“왜? 싫어? 나만 먹을까?”

“아뇨오오오!”


황급히 접시를 받아든 두 사람은 서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일우를 돌아보았다.

일우는 느긋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등 뒤 저편을 가리켰다.


“식기류와 곁들임, 조미료 등은 저기 있다. 셀프 서비스.”

“와아아아아아!”


남녀가 행복에 겨운 외침을 지르며 소중한 고기를 들고 황급히 식탁으로 달려갔고, 구경꾼들은 부러움과 갈망이 섞인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우가 말 꺼내기 전까진 말이다.


“다들 뭐 해? 고기 굽는 거만 보러들 왔어? 먹을 줄 몰라?”

“우와아아아아아!!”

“고기다아아아!”

“지이이인짜 고기다아아아아!”


막 구워져서 썰어진 고기가 접시에 담기고, 그 접시들을 받아든 사람들은 원하는 식탁으로 들고 갔다.

거기에 양념을 치고, 곁들일 채소류를 올리고, 향긋한 냄새를 음미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거나 손으로 들고, 고기를 입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다들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진정한 고기를 깨닫는 즐거움. 음, 깨달음. 좋지.”


그게 목적인 듯, 혹은 그게 만족스러운 듯 천천히 박수를 친 ‘연금술사 우’는 입구 쪽을 향해 다가갔다.


“이봐, 호객 역할.”

“예, 예······ 주인님.”

“접객 문구에 ‘공짜’가 빠졌잖아. 사람들에겐 진정한 고기의 세계라는 단어보다는 공짜라는 단어를 훠어어어얼씬 좋아한다고. 기초도 모르고 앉았어. 쯧.”

“아니, 그거 가르쳐주신 적이 없······.”

“알아서 해야지! 일을 그렇게 하고도 몰라?”

“그야 모르죠······ 강제노역인데.”


호객 담당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일우는 히죽 웃었다.


“쾅?”

“······어서오세요! 진정한 고기의 세계를 공짜로 즐기세요!”


재빠르게 바뀐 외침에 일우는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 할 수 있잖아. 고기의 세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이 곳에서 제대로 된 고기를 즐겨보세요오오! 전부 무료입니다!”

“그래, 그거야. 아주 잘 하고 있어. 폭탄에서 벗어날 날이 머지 않아 보여. 힘내.”


다시 한 번 자신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모습을 본 일우는 다시 박수를 천천히 치며 걸음을 옮겨 나갔다.


“명심들 해라! 내가 여기 머물 동안은! 내가 여기서 고기의 진정한 세계를 모두에게 전파하는 그 날까지! 아무튼 내가 원하는 그 날까지는! 전부! 공짜다아아앗!!”

“와아아아아아!”

“그럼 불에 고문당한 고기들 즐겨. 아직 모르는 친구들한테도 알려들 주고. 물에 적신 고기 따위나 먹어야 하는 불운한 녀석들을 구제하라고.”


***


하루가 지날수록 ‘연금술사 우’의 호칭은 바뀌었다.

도착한 첫 날엔 그냥 ‘미친 연금술사’나 ‘정신 나간 연금술사’였지만, 점점 ‘이상한 짓을 하는 연금술사’, ‘고기 공짜로 주는 남자’, ‘고기구이 전도사’, ‘고기의 구원자’, ‘우리에게 진정한 맛을 깨닫게 해주신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허나 장본인은 지금 저택의 개인 공간에서 과일만 씹어대고 있었다.

고기에 환장한 건 ‘연금술사 우’지 일우가 아니고, 일우의 목적은 이 물에 빠뜨린 고기의 도시를 깨우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잘 쌓이고 있나?”


일우의 목적은 확보된 자신의 영역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유인책을 썼고, 상당히 과장된 위장 전술을 채택했다.

효과는 확실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제 발로 찾아온 이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여가고 있었다.


[출입자 종합 감시망 정상 작동 중. 작동 효율, 65.3%]

“효율이 왜 이리 낮아?”

[원인, 화구에서 발생하는 연기로 인한 관측포인트 시야 확보 실패, 인파로 인한 대조검색 및 데이터베이스 정립에 지연 발생.]


스카웃은 만능 연산장치긴 했지만, 몇 명에서 수십 명의 데이터를 갱신하고 최면 모니터링 분석을 하는 건 가능해도 수백 단위의 인파는 불가능하다.

최면 관련 분석은 생각보다 고도의 연산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세 배로 늘려. 용량은 프로세스센터를 여기다 깔아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방법은 있다. 저택 내부에 고정형 스캔 포인트를 추가로 설치하고, 스카웃의 계산을 보조하는 외부 처리장치 운영 시설을 구축하면 된다.

원래 CIS의 설정 상 스카웃은 국가 연산망의 단말기기였고, ‘국가 연산망’이라고 불리는 프로세싱 네트워크를 통해 돌아간다. 게임 스토리에 따라 스카웃의 처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 스킬도 증가하고, 개인 거주지를 통해 기능을 증가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긴 CIS에서 쓰이는 CPU나 그래픽카드, 램같은 걸 구할 순 없지만, 마법의 세계인 만큼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권장하지 않음. 현지 조달 가능 부품 기반의 체계, 마도학적 기반 시스템. 해당 부품 확보 시 잠재적 목표대상의 경계율 상승 가능성, 존재함.]

“괜찮아. 그건 둘러댈 여지가 있으니까.”


스카웃의 계산 결과, 그런 마도학적 연산장치는 이래저래 눈에 띄는 부품이기에 노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허나 일우에겐 다 방법이 있었다.


“행복은 고기고 고기가 곧 행복이다!”


다음 날.

마법도구 가게로 들이닥친 일우는 가장 먼저 그렇게 외쳤고, 이 지역 토박이인 주인의 기분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문 들었습니다만 저희는 그런 ‘야만스러운 방식’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고기를 왜 사람들이 원하는가! 그것이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지!”


일우의 행적을 모두가 환영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 도시의 주민들 중에서도 나이 먹은 이들에게 고기구이판을 펼치는 일우는 참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이 지역 대대로 이어진 ‘전통’을 깔보며 조롱하는 행위로 여겼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시선에선 그들이 오히려 더한 작자들이지만, 토박이들이 그런 걸 깨달을 리는 없다.


“그러면 원하시는 분들과 즐기시지요. 여긴 마법도구상······윽!”

“내말, 이해를 못하나 본데.”


하지만 일우는 자신을 꺼리는 마법도구상 주인을 향해 다가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행복이 곧 고기면 좋은 고기는 좋은 행복! 그걸 어떻게 위장에 쑤셔 넣는지를 떠나서, 좋은 고기를 위한 좋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고기를 만드는 지름길!”

“······.”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선 고기 자체가 좋아야 해!”


늘 그렇듯 자기 할 말을 쏟아낸 ‘연금술사 우’는 반 바퀴 몸을 돌리고 두 팔을 쫙 벌렸고, 주인장은 불쾌한 행동을 일삼는 이 연금술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뭘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고기의 행복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연! 구! 개! 발!”


그 말을 외친 일우는 반 바퀴 돌아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팔짱을 낀 채 오른손 검지를 까딱였다.


“넌 고기의 결이 혀를 어떻게 즐겁게 하는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그러니 삶은 고기가 좋다고 하니까!”

“거 계속······.”

“지방질과 단백질의 구성비가 어떤지, 분포도가 어떤지, 가열과 변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 리가 있나. 나도 모르는데!”

“······.”


이 연금술사, 소문보다 더 답이 없다.

마법도구상 주인은 그 생각을 했지만 이어서 등장한 금괴들 덕에 생각이 멈춰버렸다.


“내 고기를 행복하게 만들 것들을 다 내놔. 행복을 늘려야겠어. 행복한 세상, 고기의 즐거움. 난 연기 너머로 그 미래를 봤지.”

“뭐······ 알아서 하시오. 난 당신네들 일에 관심 없소.”

“그래 그 눈빛. 그 반응. 예전에 본 놈들이랑 똑같아. 하지만 미래가 증명할 것이다. 나는 행복의 전도사가 될 테니까!”


곧 일우의 손에 수많은 마법연산도구들이 쌓여갔고, 그것들을 한아름 든 일우는 히죽 웃었다.


“아직 모자라.”

“그 정도면 어지간한 마법 연구실의······.”

“어지간한? 넌 어지간한 수준에 머물고 싶니? 난 아냐. 끝을 봐야겠어.”


그 말과 함께 일우의 팔에 안긴 물건들이 사라졌고, 또 다른 금괴가 튀어나왔다. 주인장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적당히 내쫓을 심산으로 다시 연산도구를 내어주었다.


“내 말을 이해 못했나본데.”

“추가 주문을 하지 않으셨소?”

“내 말 뜻은, 이 가게에 있는 모든 걸 내놓으라는 뜻이야. 다 내놔.”

“······.”


잠시 후, 모든 마법연산도구를 사들인 일우는 당당하게 도구점을 나서며 말했다.


“세상아! 고기를 기다려라! 내가 진짜 고기의, 그 끝을 밝혀내주마! 하하하하하하! 고---기이이이이!”

“······소문보다 더 한 자로군.”


주인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체 저 많은 연산도구를 어디다 쓰려고 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려다, 이내 포기했다.

저 자는 정신 나간 자고, 정산나간 자는 이상한 연구에 모든 걸 쏟아부을 때가 많다.

자기 입으로 고기라고 노래를 불러댔으니, 보나마나 고기 연구에 쓸데없이 과한 연산력을 퍼부을 것이다.


“뭐······ 저 자 말대로 정말 질 좋은 고기라면 손해볼 것도 없지.”


고기구이가 아니라 고기 자체의 끝을 보겠다고 선언한 만큼, 그 결과로 나온 건 결국 굽든 삶든 손에 들린 자의 결정에 좌우된다.

주인장을 그렇게 여기며 더 이상 ‘연금술사 우’의 목적에 대해 신경 쓰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저택으로 돌아온 일우는 저택 상층부 폐쇄를 선언하기 위해 이제 도적 기운이 쏙 빠진 일꾼들을 끌어모았다.


“자, 여기 계단 앞에 출입제한용 장벽이랑 보안문 보이지? 이제 여기서부터는 고기첩자 출입 금지 구역이다.”

“고기······첩자?”

“주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

“궁극의 고기를 위한, 고기에 고기를 위한 나의 공간이다. 고로 너희들이 여길 청소하겠답시고 발 들이미는 놈은······.”

-삑! 삑! 삑!


일우의 손아귀에 삑삑대는 폭탄 목걸이가 등장하자, 모두들 기겁했다.


“고기의 적으로 간주하고 말살하겠다.”

“히익······!”

“주, 주인님. 저희들은 며칠 사이 주인님의 진심을 깨달았습니다. 저희도 그 뜻에 동차······.”

“시꺼어어어어어엇! 너희들은 아직 고기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어! 이건 내 고기야! 나만의 고기! 내가 먼저 볼 거다! 내가 먼저 완성하고, 맛볼 거다!”


도적물이 쏙 빠지는 사이, 일꾼들은 눈앞에 있는 자신들의 ‘임시 주인’이 정말 고기에 미쳐 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고기 중에서도 중요한 고기가 걸린 일이다.

그러니 저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기니까. 그것도 자기 말에 따르면, 궁극의 고기.


“알아들었으면 해산! 내가 궁극의 고기에 도달할 동안은, 너희들은 그 직전에 직전에 직전까지 도달한 고기를 모두에게 베푼다! 알겠냐?!”

“네!!”

“자, 출발! 고기를 원하는 자들이 기다린다! 오늘도 고기는 진리다!”


일꾼들이 일제히 일하러 내려가자, 혼자 남은 일우는 히죽 웃었다.


“미친놈이 미친 짓 좀 더하자는데 이상하다 생각할 사람은 없어. 애초에 이상한 놈인데 의심을 할 리가 있나.”

[해당 공작을 통한 공작 은폐, 매우 높은 수준. 지역 평판 하락 예상치, 극히 높음.]

“하지만 고기는 모든 걸 해결하지.”

[답변 보류.]


스카웃은 판단 보류 결정을 내렸지만, 사람들은 일우의 말대로 흘러갔다.

저택 상층부에 수상쩍은 연구실을 차렸지만, 저택 앞마당에 펼쳐진 광경을 본 이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와, 정말 끝내주는 고기를 만드려나 보다!’


이제 전부였고, 다들 일우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고기구이를 무한정 제공하면서 고기를 연구하겠다는데,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데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델린 시, 그리고 이델린 지방 전체, 심지어 다른 지역까지 일우의 소문이 퍼져나갈 뿐이다.

그렇게 일우가 저택을 고기구이 박람회장으로 만들고 고기 연구에 빠졌다는 소문은 정설이 되었다.

막 델린 시에 복귀한 모험가를 향해 이미 경험한 모험가가 이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낼 정도로.


“내가 가봤는데 진짜 미친다니까?”

“근데 미친놈 말하는 거 치곤 꽤 호의적이지 않아?”

“아니 그 미쳤다는 의미 말고. 미칠정도로 좋다고. 구운 고기는 진리지. 암.”


길드 집회소 식당에선 수많은 모험가들이 아직 그 저택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설명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었다.

막 다른 모험가에게 경험담을 말하는 이의 접시에는 풀과 빵, 거기에 곡물만이 가득했다.

고기는 단 한 점도 포함되지 않은 건강식단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맛을 우선시한 선택이다.

구운 고기의 맛이 혀에 각인되었고, 그 맛의 기억은 누군가의 평가를 끌어올렸다.


“이런 동네에서 못 먹던 고기를, 그것도 공짜로, 심지어 무한정, 게다가 엄청나게 맛있는 걸 주는데······ 그런 쪽으로 미친 사람이면 그게 미친 거냐? 천재지.”

“허어······ 난 카이옌 쪽 소문만 알고 있어서 좀 꺼렸는데, 가볼 걸 그랬나.”

“너도 가 봐. 진짜 좋다니까? 직원도 교육이 잘 되어있어.”

“직원? 도적이 아니라? 내가 알기론 공주님이 허락도······.”

“모올라아. 거기 주인인 연금술사가 직원으로 급을 올렸대. 서비스가 어쩌니 하면서. 뭐, 우리야 상관없지만. 아무튼 난 내일 거기 아침부터 줄 서서 기다릴 거야.”


일우가 저택을 고기 구이의 전당으로 뜯어고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 사정을 알지 못하는 모험가들도 꽤 많았다.

그만큼 많은 수의 모험가들이 이델린 곳곳에서 도적 사태와 실종자 수색 등으로 장기간 바깥에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아, 모르겠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찬양할거야. 이놈의 수색 진척도 없어서 지쳐가는데······ 나한텐 위안이 필요해.”

“그러면 내일 같이 가요. 내일부터 주류도 제공한대요.”

“진짜? 얼마에?”

“공짜라니까요?”


다른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같은 화제로 대화중이었고, 그 곁의 다른 탁자에 앉은 이들 역시 같은 장소를 언급하고 있었다.

설명을 해주는 모험가의 입에선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줄줄 흘렀고, 상대가 손으로 지적하자 그제야 입을 닦았다.


“습.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확 도네. 이런 거 이 도시에 머물면서 완전 잊었는데.”

“그래서 풀만 씹어대고 있던 거구만. 내일을 위해서.”

“당연하지!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미쳤다고 여기서 삶은 거 씹겠냐!”

“······아, 몰라. 나도 내일 같이 가자. 2주 넘게 삽질해서 진이 다 빠졌으니까. 나한텐 휴식이 필요해.”

“끝내줘. 너 지금 먹는 건 그냥 덩어리라니까? 거기 가면 진짜 피로가 싸악 풀리고 근심걱정이 확 날아간다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다. 이 도시나 지역 전체가 안 좋은 일만 겹쳐서 일어났잖아.”


그리고 또 다른 탁자 위에선, 간단한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이도 있었다.


“확실한 건 말입니다, 그 양반이 오고 나서부터 도시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광인이고 그가 천재일지도 모르는 법이지요. 후······ 마법사로서 별다른 결과를 내어놓지 않았음에도 그런 휴식을 즐기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만.”

“신경 쓰지 마시죠, 선생. 우리도 열심히 해왔잖습니까? 모르지요, 그 분이 말은 하지 않았지 우리 같은 이들의 노고를 위해 꾸민 큰 그림일지도 모르잖습니까?”

“뭐······ 카이옌에서 해온 행적들 소식 들어보니 그런 의도는 딱히······.”

“하핫, 뭐 그렇지요. 아무튼, 내일만큼은 즐깁시다. 내일은 즐기고, 힘을 얻어 더 좋은 소식을 가져오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도록 하시죠.”

-챙!


홀로 미쳐 날뛰듯 시작한 고기 굽기는 어느새 도시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치료제가 되었다.

델린 시의 주민들 중 고집불통이 많다 하더라도 질리는 건 질리는 거고, 그동안 강행군에 시달린 모험가들에겐 이만한 위안과 휴식이 없었다.

최소한 모험가 집회소에 들르는 대부분의 사람은, ‘연금술사 우’가 벌인 일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쯧.”


구석에서 홀로 앉아 술을 들이키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말이다.


작가의말

다들 좋다고 하는데 불만 가진 사람은 딱 두 종류죠. 

고기를 삶는걸 찬양하는 쪽이거나, 진범.


이 지역 사람들이 왜 고기를 물에 빠뜨렸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다 설명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 때, 이 글은 잠시 ‘요리왕 우’로 변할 예정입니다.

예? 지금도 안 그러냐구요? 어.... 그런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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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하고는 못 살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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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10. 모난 놈이 맞는다 [2] +3 21.06.17 2,548 88 18쪽
46 10. 모난 놈이 맞는다 [1] +4 21.06.16 2,588 90 15쪽
45 9. 모자람 없는 고민 [7] +5 21.06.15 2,589 96 19쪽
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42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41 9. 모자람 없는 고민 [3] +8 21.06.11 2,873 95 18쪽
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39 9. 모자람 없는 고민 [1] +7 21.06.09 2,993 95 14쪽
38 ?. 건드리지 마시오 +7 21.06.08 3,023 83 13쪽
37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7 21.06.07 3,057 99 17쪽
36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4] +7 21.06.06 3,053 91 18쪽
35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6 21.06.05 3,052 82 21쪽
3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2 89 19쪽
33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1] +2 21.06.04 3,268 74 18쪽
32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10 21.06.04 3,466 96 19쪽
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6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60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5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9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1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8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1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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