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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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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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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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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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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9. 모자람 없는 고민 [7]

DUMMY

‘글로리어스 온라인’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던 정영규는 다른 세상에서 용사가 되는 것을 망상해왔다.

그 망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했다.

소설에서 표현한 편의주의적 전개 대신 속칭 ‘고구마’로 정의되는 전개가 반복되었고, 기초적인 신분 증명도 되지 못해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수많은 대머리들 사이에서 쫓겨 다니고 있다.


“이봐요! 잠시만요! 말 좀 해요!”

“필요 없어.”

-콰앙---!

“아니, 저기요! 전 수상한 녀석이 아니라 그냥······.”

“모험가 길드 소속도 아니면서 사칭을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야. 네 정체가 범죄자가 아니라고 보장할 수 있어?”


조금 전부터 영규를 쫓던 대머리 중 한 명이 그 말을 하자, 영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말을 외쳐버렸다.


“난 용사라구요! 여신이 당신네들 세계를 구하려고 보낸 용사!”


여신 누아즈가 스탈리스로 보낸 이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 말.

사실이더라도 남의 입에서 나와야 그 가치가 있는 주장.

자기 입으로 했을 때 가장 싸구려로 보이는 발언.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영규가 몇 번이나 써먹었던 변명.

그리고 대부분 비웃거나 헛소리로 취급했던 농담.


“용사?”

“그래요! 여기에 온 건 다 나름의 사정이······ 우왁!”


그러나 이 장소에선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찾았다.”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 용사가 맞았어.”


스탈리스에 와서 처음으로 용사라는 말을 긍정한 사례에 영규는 환호하려 했다. 여태까진 아무도 믿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답례가 칼질이었기에 환호할 수가 없었고, 세상에 용사를 공격하려는 이들은 영규 기준에서 딱 한 종류밖에 없었다.


“젠장! 악당들이었잖아!”

“악당? 우린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제대로 등록된 멀쩡한 모험가야.”

“그리고 넌 모험가도 아닌데 사칭을 했지. 따지면 넌 범죄자고, 악당에 가깝지.”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진짜 용사에요!”

“그래, 그건 믿어.”

“그런데 왜 날 공격하나구요! 용사인데!”


영규는 상식적인 질문을 했지만, 그 상식은 다른 세계의 상식이지 스탈리스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마주한 두 대머리는 살짝 비뚤어진 목적으로 용사를 찾고 있었다.


“널 조지면 발모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네?”

“발모제를 내놔라.”


발모제라는 말에 영규는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용사랑 발모제가 무슨 상관······우왁!”


하지만 그럴 여유도 없이 수차례의 공격이 들어왔고, 영규는 그 공격을 받아치고 흘리는데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문에 증원군으로 보이는 대머리들이 우르르 나타나 포위하는 동안 발이 묶여버렸다.


“대머리가 늘어났잖아!”

“이봐! 그 녀석이야?”

“자기 입으로 용사라고 말했어! 이 놈 맞아!”

“그러면 잡아야지!”


영규 입장에선 대머리 악당들에게 포위당한 상황이지만, 현실은 무수한 모험가들이 ‘용사라고 주장하는 신분이 불명확한 모험가 사칭범’을 포위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걸 강조하듯, 페니카의 길드마스터가 나섰다.


“어이! 네가 용사다 그거지?”


가발 때문에 다른 대머리들과 다르게 보였고, 영규는 그나마 말이 통할 상대라고 여기고 대꾸했다.


“그래요! 여신이 보내서······.”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소식이랑 같네. 용사라고 주장하는 신원불명의 검은머리 남성이 모험가를 사칭하고 있음.”

“예?”


영규는 상대가 ‘공격을 멈춰라’나 ‘용사라면 싸울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자기편의적인 전개를 기대했지만, 길드마스터의 말은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어버렸다.


“길드 소속이 아니면 모험가라고 하면 안 되지. 그건 모험가 규약에 어긋난다고.”


스탈리스를 원형으로 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NDC게임 ‘글로리어스’에서는 없는 설정이었기에 영규는 당혹했지만, 만회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그러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을 테니······.”

“신원을 증명할만한 뭐라도 있어?”

“여신님! 여신님이 보내서 왔어요! 진짜에요! 전 다른 세계에서 왔다구요!”

“그래? 그 여신님이 보내신 용사님이다 그거야?”

“예!”


드디어 자신을 우호적으로 대해줄 분위기가 흐르자 영규는 재빨리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길드마스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러면 신전이나 성직자들이랑 절대 접촉시키면 안되겠구만.”

“······뭐라구요?”

“뭐, 페니카에는 신전도 없고, 옆에 붙어있는 톨라에도 없지만 말이지.”


길드마스터를 비롯한 페니카의 대머리들은 발모제를 얻을 중요한 단서가 용사와 관계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그 용사로 추정되는 신원이 불분명한 자는 다른 길드 지부의 관할지역에서 모험가를 사칭했다는 죄를 지었고, 모험가를 사칭한 자는 길드 쪽에서 죄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만일 신전이나 성직자들과 만나 신원 보증을 해주거나, 사전에 톨라에서 그의 신원을 책임진다고 나서면 페니카 지부에서 그를 억류하고 있을 명분이 사라진다. 사정이 있어 모험가를 사칭했다고 변호하면 그냥 벌금 정도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잡아들여.”

“으윽!”

“톨라의 그 야한 옷 입은 언니야가 오기 전에 제압해서 길드 지부로 끌고 간다! 빨리 제압해!”


일단 생포해서 길드 지부의 감옥에 쳐 넣으면, 후일 톨라에서 풀어달라는 요청을 해도 무시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같이 완전히 붙잡기 전에 보호하겠다고 나서면 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페니카 길드 지부 사람들로선 이 용사가 다른 데 도망갈 여지를 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젠장! 더럽게 안 잡히네!”

“그러니까 용사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우리들이 발모제를 얻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야. 쉽게 나는 머리털은 없어!”

“그러니까 발모제랑 저랑은 아무 상관이······ 큭!”


영규는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대머리들의 눈에는 그저 살아 움직이는 발모제 교환권으로 보일 뿐이다.


“너만 잡으면 발모제를 얻을 수 있어.”

“소······ 속고 있는 거에요! 뭔가 사악한 악당이나, 마왕이나, 아무튼 그런 거한테······ 저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라구요!”

“그건 잡히고 나서 따지자구. 순순히 잡히라고.”


개중에 머리가 돌아가는 누군가가 순순히 투항할 것을 권했지만, 영규는 검을 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건 타협하지 않는 용사로서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두 눈에 불을 켠 수상쩍은 대머리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딱 봐도 악당들의 모양새니 말이다.


“싫어요. 누가 봐도 당신들은 악당같이 생겼고, 하는 짓도 악당이니까. 나 속이려고 하는건지 누가 알아요?”


인정받지 않았어도, 스탈리스 대륙에 내던지듯 왔어도, 그가 여기 온 이유를 까먹지 않았다.

다분히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그래도 일단 용사로서 온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악당같이 생겼고 악당같이 구는 대머리들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영규는 그렇게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그 말은 해선 안 될 소리였다.


“······바로 그거야!”

“뭐라구요?”

“항상 그랬어!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다들 그딴 소리들이였어!”


포위 중이던 누군가의 인상이 험악해지며 울분에 찬 외침을 내지르다, 영규는 순간 당황했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숱한 고초를 겪은 모험가인 누군가는 영규를 향해 으르렁댔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 머리카락 없으니 배로 험악해 보인다, 누가 봐도 대머리 악당이다, 너 같은 사람이랑 동료가 될 바엔 그냥 오크 같은 녀석들한테 붙잡히고 만다!”

“아, 저기······.”

“누가 빠지고 싶어 빠졌어? 어?! 대머리가 되고 싶어서 됐냐고오오오!!”


사람의 외모에서 머리카락이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적지 않고, 궂은 일을 일삼는 모험가들 중 험악한 인상을 가진 이는 상당히 많다.

그나마 머리카락으로 어떻게든 순한 인상이나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서 커버했지만, 그 역할을 해낼 털이 사라지고 남는건 험악한 대머리 칼잡이 뿐.

겉모습으로 보이는 선입견에 시달리고 그 의도마저 의심받게 되면 사람은 소외되고 위축되다, 결국 비뚤어진다.


“머리카락 빠졌다고 대접이 달라져? 어?! 그러고도 니들이 인간이냐!”

“······제기랄! 머리카락이 뭐가 어쨌다고 나쁜 놈까지 되어야 하냐고!”


대륙 어딘가에는 분명 대머리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장소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활동했던 장소는 아니었다.

괜히 페니카로 대머리들이 모이는 게 아니다.

사방에서 모인 대머리들이 많고 빠지는 이들도 많은 지역이니, 그나마 대머리라는 것 하나만으로 차별대우를 안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도 페니카 말고 다른데로 가고 싶어! 근데 페니카가 아니면 다들 날 나쁜놈이나 험악한 놈으로 본단 말이다! 내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데!”

“나도!”


어느새 용사를 포위하던 상황에서 대머리의 고충을 성토하는 장소가 되었고, 각자 억울하게 당한 사연들을 쏟아냈다.


“젠장, 가발이라도 써라? 나도 가발은 써봤어! 근데 움직이면 거슬려! 싸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그래! 거기에 가발 쓰고 다니다 벗겨지면 허구한 날 그거가지고 놀려대기나 하고!”

“동료 중에 마음에 든 아가씨가 있었어. 서로 마음도 있었고. 근데 내가 가발 쓰고 다닌다는 걸 알자마자 날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달라지는 기분을 알아? 어?!”

“······.”


포위 중에 이런 대머리들의 고충과 절규를 들으니 영규는 전의가 상실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도중, 과거의 울분을 토해내던 대머리 중 한 명이 영규의 튼실한 머리카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 새끼······ 저새끼는 분명 우리들 고충은 절대 모를거야.”

“그, 그야 잘 모르죠······.”

“모르는 거 뿐이겠어? 보나마나 대머리 차별하는 놈이겠지.”

“아뇨뇨뇨뇨,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거짓말 치지 마! 아까 보니까 우리들보고 악당이라고 했잖아!”

“아니 그건 여러분들이 절 붙잡으려고 하니까······.”

“다른 지역에선 그냥 자기가 잘못했겠다고 생각하고 도망쳤겠지! 그러니까 여기로 왔고! 근데 여기선 우리랑 죽어라 싸우고 있잖아! 그게 뭐겠어!”

“우리가 악당이다 생각하니까 싸우는 거잖아! 용사라는 놈이 순 편견 덩어리야!”

“······.”


엄연히 따지면 영규는 두 사람의 맹공에 발이 묶였다 포위가 된 것이고, 자신을 향해 퍼붓는 공격이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매서웠기에 영웅을 해치려는 악당으로 오해한 것이다.

허나 그런 세세한 해명을 하기에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영규는, 용사라 주장하는 저 남자는 지금 대머리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악당으로 몰아간다고.


“용서 못 해······ 이제 네놈이 용사인지 아닌지는 안 중요해. 너도 대머리 차별하는 놈일 뿐이니까.”

“저, 저기······ 전 그런 생각까지 한 적 없는데요.”

“아니라면 투항을 하던가! 봐, 안하지? 그럼 넌 대머리 차별주의자야!”

“그런 억지 논리가 어디있어요?!”

“알 게 뭐야! 넌 나쁜 놈이야! 용사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냥 나쁜 놈이라고! 대머리인 사람들의 적이야!”


아무런 논리도 없는 억지 주장이지만,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면 분위기는 기울어지는 법.

졸지에 영규는 대머리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아주 글러먹은 놈이 되어버렸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길드마스터는 자신의 가발을 내던지고 검을 뽑아들었다.


“좋아. 평상시엔 쓰고 다니는 게 신경 쓰여서 제 실력 발휘도 안되지만······ 어차피 우리밖에 없고, 우리 처지 비웃는 놈은 너 하나밖에 없어.”

“아니 그러니까 전 그럴 생각······.”

“모험가 길드 페니카 지부의 길드마스터이자, 한 사람의 모험가, 그리고 불치병에 가까운 저주에 걸린 한 사람으로서······.”


비장한 목소리로 점점 격 떨어지는 표현을 언급하던 길드마스터는 매섭게 눈을 뜨며 영규에게 달려들었다.


“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으윽!”


-콰아앙---!


황급히 검을 들어 길드마스터의 일격을 막아선 영규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밀린다는 걸 깨달았다.

NDC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도 실시간으로 수치가 나오는 대신 몇 가지 징후를 통해 자신에게 벅찬 상대를 가늠할 수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힘과 힘이 부딪칠 경우 주변에 발생하는 이펙트의 색상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영규에게서 비롯된 청색 파장은 길드마스터의 황갈색 파장에 확실히 밀리고 있었고, 스탈리스 식 표현으로는 ‘오라’의 위력과 규모가 밀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달라! 절대 못 이겨!’


각 지부의 길드마스터는 모험가로서의 경력도 경력이지만, 무엇보다 강한 자를 우선적으로 뽑는다. 그래야 모험가들을 통솔할 수 있고, 유사시 최고전력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영규를 상대했던 모험가들도 각지에서 나름 잘나갔던 시절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럭저럭 상대할 수는 있었다.

허나 길드마스터는 무기를 부딪치자마자 패배를 직감할 수 밖에 없었다.


“크윽!”


거리를 벌린 영규가 자신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걸 확인하자, 길드마스터는 여유롭게 검을 허공에 휘저으며 으르렁댔다.


“용사라는 것치곤 별 볼일 없는데. 거짓말 아냐?”

“형님! 쟤가 용사가 아니면 우린 뭐가 됩니까?”

“저 갑옷이나 무기를 봐요! 우리들이랑 급이 다르잖수!”


다른 모험가들의 말대로 영규가 입은 갑옷이나 무기는 모험가들의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일단 글로리어스에서 최고급 등급의 아이템들을 그대로 착용한 상태니 말이다.


“그런것 치곤 너무 약해. 심지어 저런 장비를 껴입었는데도 나한테 밀렸어. 그러면 본판부터 영 아니라는 뜻이잖냐.”

“우리들 상대로 안 밀렸던 거 보면 저놈 용사 같은게 맞긴 할 겁니다. 다른 세상에서 오는 사이 힘이 약해졌을 수도 있고, 뭐 데려온 신이 제약을 걸었을 수도 있지요.”

“아니면 악당이나 마족한테만 끝장나게 셀 수도 있겠지. 알겠냐? 우린 네놈쉬끼가 때려잡을 악당이 아니라고! 겉모습만으로 막 평가하지 말란 말이다! 망할 용사놈아!”


개중에 머리가 돌아가는 모험가들이 길드마스터의 의문에 나름 답을 내어놓았고, 그 중 한명은 자기 대답에 울분이 터진 듯 영규를 향해 악을 썼다.


“뭐 아무튼 간에, 더 이상 두들겨 패서 제압해버리기 전에 항복을 하라고.”

“······싫어요.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요.”

“좋아, 그렇게 나섰다 그거지? 그러면······.”

“잠깐 기다리십시오!”


막 길드마스터가 공격을 날리려던 찰나, 하늘 위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비행마법으로 단숨에 이곳으로 날아온 랑키였다.


“쳇.”

“그 사람이 용사라면, 톨라에서 그의 신원을 보증하겠습니다.”

“언니? 미안한데 여긴 톨라가 아니라 페니카야. 권력을 휘두르거나 누군가를 비호하고 싶으면 댁네 땅에서 하라고.”


길드마스터는 그렇게 대꾸했지만, 랑키가 등장했을때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가발을 꺼내 썼다.

길드마스터가 전투태세를 접었다는 걸 확인한 랑키는 바닥에 착지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톨라에서 그의 보증인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페니카 측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건 월권행위도 아니고 여러분들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호 합의 하에 맺어진 협정 하의 일이니 말입니다.”

“빌어먹을. 그 소리 할게 뻔하니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길드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집어넣었다.

랑키의 말을 무시하며 그대로 저 ‘용사’를 제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길드마스터는 랑키가 마법의회의 의원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게 얼마나 엄청난 권력자인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톨라의 권력자 앞에서 협정을 무시해버리면 뒤끝이 안 좋아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마스터!”

“시끄러워. 모험가 길드 때문에 페니카랑 톨라 사이가 악화되면 우리들한테도 좋을 거 없어.”

“우리 발모제는 어쩌구요!”

“물 건너간 거지. 제기랄, 니들이 빨리 못 끝내서 이런 거 아냐.”


모험가들이 항의했지만 길드마스터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다들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길드의 모험가라면 그게 당연한 것이고, 길드마스터의 지시는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길드마스터의 지시를 고깝게 여겨 한번 제대로 엿먹인 전력이 있는 사람도 있다.


“대머리동네 길드마스터라서 그런지 대머리들 통솔은 확실하게 하는구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친구들도 지금 정치적 상황을 이해 못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닙니다. 알고 있으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겠죠.”

“그래? 정치적 문제가 무서우니까 물러선다?”

“무서운게 아니라 귀찮아지는 겁니다. 대충 그렇게 이해해주십쇼.”

“뭐 그래. 니들이야 여기 사는 애들이거나,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를 애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어느 새 등장한 ‘연금술사 우’는 길드마스터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이어서 랑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의 말로 봐선 용사의 신병을 톨라에 넘겨주는 데 협조할 분위기였기에, 랑키는 그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려 했다.


“협력에 감······.”

“하지만 나는 아니거든. 난 여기 살지도 않고, 정치적 상황은 관심 없으니 내 알 바 아니고, 페니카랑 톨라랑 서로 싸우던지 말던지 나랑 상관없어.”


물론 그건 랑키만의 생각이었고, 일우는 그녀의 기대를 산산히 박살내는 말을 한 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용사’의 등 뒤로 움직였다.


“엇······?”

“하지만 내가 지금 어디 소속이라는 건 잘 알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연금술사 우’에 대해 파악할 순간도 없이 영규는 그에게 등을 내어주고 말았다.

하지만 그걸 자각한 건 그의 움직임을 쫒아간 게 아니라 그가 벌인 행위로 생긴 고통 때문이었다.


“꺼헉!!”

“그런고로, 가입할 때 들었던 모험가 길드의 지엄한 규칙에 따라, 이 사칭범 놈을 잡는 게 최고 우선순위야.”


가랑이를 걷어찬 일우는 그 말을 하며 가볍게 영규의 등을 밀었고, 영규는 걷어차인 그 상태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눈을 까뒤집은걸 봐선 기절은 확실하고, 가격 부위를 고려하면 쇼크로 심장마비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


[‘머저리 1호’, 국부에 치명적 타격. 치명적인 고통으로 인해 기절함. 생명 징후에 이상은 없음.]

“소속 집단의 규칙을 존중하는 건 기본 소양이거든.”


스카웃을 통해 영규가 기절한 걸 제외하면 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일우는 히죽 웃으며 그의 등을 밟았다.


“뭐, 우리 볼일 다 보고 나서 댁한테 양보할지 말지 결정할게.”

“······.”

“그러니 얌전히 기다리라고.”


드디어 목표로 하던 녀석들 중 한 명이 일우의 발 아래에 짓밟혔지만, 그가 이걸로 만족할 리 없었다.

그의 계획은 아직 도입부에 불과하니까.


작가의말

이들이 비뚤어진 건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모자람 없는 이들에게 따스한 온정의 손길을 내밉시다.


공모전이 끝나기 전에 저 가랑이 걷어차인 용사님아가 어떻게 될지까지는 진도가 나갈 거라고 봅니다.

거기까지 못 갈 것 같다구요? 그러면 분량을 더 올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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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8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8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0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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