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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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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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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5.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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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DUMMY

엔셀 상단이 하루아침에 박살난 지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야 사람들은 좋아라 했다. 그 악랄한 상단이 해악을 끼쳤으니, 이제 모든 게 나아질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고, 그걸 뒤늦게 깨달은 이들의 얼굴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후우······.”


제록 또한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오늘도 수차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할 이야기를 듣고 왔다.


“좀 꺼져줬으면 싶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걸 원하진 않았는데······.”


그 말을 중얼거리며 제록은 마차를 끌고 한 작업장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팔려나갔지만 또다시 매입할 처지일 게 뻔한 곳이었다. 하지만 제록은 오늘 작업장 매입 상담만 세 건째였다. 더 이상 작업장을 매입할 여유도 없고, 처분을 맡기는 사람들은 하룻밤 지날 때마다 늘어나고 있다.


“좋아, 어차피 망해서 말라죽게 생겼는데 매입하진 못한다고 말을······.”

“어---이!”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재매입은 거부하려고 했지만, 저 멀리 보이는 ‘연금술사 우’를 본 순간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좋아, 금괴 절반만 돌려주는 거로 합의 보는 걸 목표로 삼자. 사정을 설명하면 아무리 저 분이라도 납득을 하겠지.”


그 나름의 각오를 한 채, 제록은 얼마 전에 팔아치웠지만 곧 다시 사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작업장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일우를 만난 뒤 들은 건, 어마어마하게 길고 지루한 일우의 불평불만이었다.


“첫 인상부터 그랬지만 이 망할 촌구석은 천재를 알아 모시질 못해.”

“어······.”

“심지어 알아본다는 놈은 대접 자체가 글러먹었고. 이게 뭐냐고!”


한참 제 풀에 떠들어 대던 일우는 자기 말에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며 벌떡 일어났다.


“이제 어떻게 돌아갈지 말해주랴? 악! 도시에 뭔가 수상쩍은 일이 터졌어요! 이번엔 당신이지?! 뭐 아냐? 악! 이번엔 분명 네 탓일 거야! 이번에도 아니야? 아악! 이번에야말로 너지!”

“저어······.”

“한 번 얻어걸릴 때까지 끝까아아아---지 물어뜯을게 뻔해. 그게 공식이고, 흐름이고, 무지렁이들의 한계니까.”

“그래서, 전액 환불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무래도 그건 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 시세로는 4분의 1, 혹은 그 미만의······.”

“뭔 소리야. 네 지능이 4분의 1이 됐다고?”

“작업장 매각 건 때문에 절 부르신 게······아니십니까?”

“내가 왜?”


일우는 말 같지도 않는 소릴 한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제록은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딱 봐도 이 지역에 불만 가득하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도 그렇고, 거래상인 자신을 부른 것만 보더라도 목적은 딱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걸 봐선 아무래도······.”

“이건 그냥 내 불평불만이고. 거 있잖아. 동네 아낙들이 수다떠는 거.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돼.”

“······.”


졸지에 수다 떠는 아낙네에게 붙들린 꼴이 된 제록은 떫은 표정을 짓고 싶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오늘은 어딜 가더라도 작업장을 사거나 물품 처분을 의뢰할 이들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미친 소리 하는 연금술사의 불평불만을 들어주는 게 속은 편할 것이다.


“도와드리기 어렵다고 말씀드리려 했지만, 그 건이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아무튼 간에, 이놈의 도시는 뼛속부터 글러먹었어. 재주 있고 능력 있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이렇게 개떡 같으면서 뭔 놈의 장인들이 모여? 하! 다들 그거 눈치 까고 튀는 거겠지.”

“그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저도 이제 사업을 정리하고 당분간······.”

“아, 물론 내가 너무 천재적이라서 평범한 놈들 머리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했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있지. 음, 역시 너무 앞서가는 것도 괴롭단 말이야.”

“······제 말씀을 안 듣고 계시는군요.”

“당연히 안 듣지. 내 일이 우선인데.”


일우의 뻔뻔한 대꾸에 제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그러시겠죠. 상인 한 명이 장사를 접겠다는 건 당신 같은 분이 신경 쓸 거라고 생각도 안했습니다.”

“왜? 은퇴하게? 돈 많니?”

“반댑니다. 이 분위기를 봐선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접으려는 겁니다. 엔셀 상회가 단숨에 무너진 덕에 그나마 그쪽을 통해서 입수하던 품목들 공급이 뚝 끊겨서, 대부분의 작업장······.

“뭐 그건 네 사정이고.”


일우는 손가락을 까딱인 뒤 지하로 내려갔고, 할 일이 없는 제록은 그를 따라갔다.


“마음에 들면 눌러앉을 수도 있겠지만 정나미 떨어져서 그렇겐 못하겠고, 사놓고 보니 이 콩알 만한 작업장 갖곤 제대로 뭘 못하겠더라고.”

“그러시군요.”

“내 연구실 정도는 되어야, 진짜 연금술사다운 일을 할 수 있지.”

“그럼 엔베리스 산맥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제록이 대외적으로 떠벌린 위장신분의 이력을 말하자, 일우는 손을 까딱거렸다.


“여기서 좀 노닥거리면서 생각해 본 건데, 내 연구는 근본적으로 글러먹었을지도 몰라.”

“어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틀린 건 아냐. 계산은 완벽해. 하지만 실패했지. 이게 뭐 때문일까?”


한창 지하로 내려가던 제록은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이 작업장에도 지하공간이 있긴 했지만 고작해야 저장식품이나 술 몇 동이 집어넣는 식료품 저장 공간 수준의, 그것도 마룻바닥 바로 아래에 있는 협소한 틈새 수준이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굴을 파고 내려간 위치에 뭔가가 있다는 건 매입하면서 확인해본 적도 없었다.

그 사실을 언급하려던 때, 그보다 먼저 일우가 입을 열었다.


“바로 땅이다!”

“······예?”

“터가 안 좋으니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 여기서 소박한 피크닉 활동을 하면서 부지런히 고민한 내 결과는 그래.”


뜬금없는 땅 탓 이야기에 제록이 떠올렸던 생각은 금방 파묻혔고, 일우는 거침없이 주먹을 허공에 내질렀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땅이 글러먹은 거지. 엔베리스가 글러먹었어. 백거룡의 힘이 잘못된 거야! 아무튼 용 때문이라고!”

“······.”

“너도 알 거 아냐. 이런 업종 하면 대충 눈치가 생겼을 거잖아. 땅이 힘에 오염되는 게 얼마나 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지,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아, 아아······ 그런 말씀이셨습니까?”

“그럼? 내가 뭔 말했니? 야, 집중해. 내가 말을 하면 거기에 주목을 하라고. 네 쓸데없는 상거래행위에 신경 꺼.”


그 뒤로 이어진 일우의 말은 수많은 이론의 범벅이었고, 당연히 제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 나는 지금부터 잘못되었을 리 없는 내 연구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좋은 터를 찾을 계획이지.”

“그거 여태까지 미쳐 날뛰었던 마법사들이 늘 하던 소리잖습니······.”

“어허! 걔들은 마법사! 미치는 게 최종 결말인 직업! 나는 연금술사! 미친 것처럼 오해받지만 진짜로 미치지는 않는 직업!”


자신만의 이론, 그것도 남들은 이해도 못 할 소리를 꺼내며 뭔가 하는 이는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다.

자신은 안 그럴 거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누가 보더라도 미쳐서 뭔가 사고 단단히 칠 것 같은 모습을 보인 일우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튼 내 완벽한 이론을 구현하기엔 이 땅은 너무······ 음, 뭔가 좀 아니야. 아무튼 아니야.”

“······.”

“게다가 설비도 너무 조잡해. 여기 설비 전부 네가 조달했다고 했지?”

“이전 구매자는 만족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만······.”

“걔는 덜떨어졌으니 이런 적당적당한 설비로도 만족을 했겠지만, 나는 아니야.”


그 말을 하던 일우는 걸음을 멈춰서서 수첩을 꺼내들어 뭔가를 적었다.


“아, 말한 김에 이것도 할 일에 추가해야지. 스탈리스 대륙에서 손꼽히는 장비 제작. 음, 할 일이 늘겠어.”

“하시는 일에 신의 뜻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곳······ 뭔가 바뀐 것 같군요.”

“내 말 안 들었구만. 터가 안 좋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니? 손대보니까 영 안 된다고 견적이 나오니 그런 거지.”


수첩을 집어넣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제록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어딘가 단단히 봉인된 문 앞에 도달했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였다.


“제 사업만 하겠습니까.”

“왜? 악당이 사라지니 평화롭고 해피한 결말이 왔잖니? 뭐가 문제야?”

“그 덕에 엔셀 상회가 그나마 공급하던 원자재들이 끊겼습니다. 덕분에 남아있는 장인들의 공급선도 단절되었다고들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래?”

“여기 오기 전에도 몇 군데에서 폐업 상담이나 처분 의뢰 문의를 해주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을 정리하려고 했던 겁니다.”

“아 그래? 일 접어?”


일우는 그렇게 되물으며 벽 위에 있던 반질반질한 금속 판 에 손을 가져갔다.

더 이상 일우가 뭔 소리를 하더라도 흘려넘기자고 마음 먹은 제록은 이번에도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넘기려 했다.


-끼리리리릭— 철컥! 철커덕! 끼이익----!

“그런데 여긴 무슨······ 허억!”


그의 눈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 두터운 금속 문 너머에는 그야말로 마법사나 연금술사, 혹은 그런 직종들의 꿈과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금속봉, 시약, 원료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모습을 본 제록은 저도 모르는 사이 몸을 움직여 정리된 원자재들에 다가서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세, 세상에······ 서, 설마 이거 창고 아래에 있던 겁니······ 윽!”

“내 말을 들으라니까 그러네?”


일우는 어느 새 집어든 희소 결정체 봉으로 제록의 머리를 두들긴 뒤, 허공에 연주하듯 휘휘 내저었다.


“터가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이것저것 시험하다 나온 건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망했다는 결과만 나왔고, 이런 잡동사니만 나왔지.”

“자, 잡동사니라니······ 이건, 이것들은······.”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야. 난 연금술사고, 재활용업자가 아냐. 이런 폐품놀이 따윈 질색이야.”


아무렇게나 봉을 집어던지자 딱 그 봉과 똑같은 것들이 잔뜩 쌓인 공간에 정확히 들어갔다.

그 와중에 제록은 일우가 한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보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이곳의 적합성을 시험하시고······ 지형이나 여러 조건을 수정하기 위해서 불순물 정제 같은 걸······ 시도하셨다 그겁니까?”

“그래 뭐, 네 수준에 그 정도로 이해하렴. 아무튼, 나한텐 쓰레기지만 남들에게는 아닐 수 있잖아? 버리면 쓰레기, 방치하면 고물. 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원. 음, 간만에 베푸는 것도 괜찮겠지? 거 욕이나 안쳐먹으면 몰라.”


자신의 업적을 한낱 잡질로 격하하는 인물 답게, ‘연금술사 우’는 이 어마어마한 가치의 자원 더미마저 폐품으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제록은 정제된 자원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순도를 살펴보며 끊임없이 탄성을 내질렀고, 그 반응을 느긋하게 지켜보던 일우는 뒤늦게 뭔가를 떠올린 척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아 맞다! 너 사업 접는다고 했지? 이거 괜히 보여줬네. 장사 때려치우는 놈한테 이게 무슨 소용이겠니.”

“아닙니다! 제가 전량 구매를 하겠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제록이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말하자, 일우는 히죽 웃었다.


“아깐 안한다며?”


작가의말

저는 이 글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주인공에게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안겨주려고 구상했습니다만, 이거 하나만큼은 절대 안 넣으려고 합니다.


가난이요. 현실에서 나만 돈 없으면 됐죠. 꺼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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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42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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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3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6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59 11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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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8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0 9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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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7 114 12쪽
»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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