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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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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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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DUMMY

구운 고기와 술의 향연에서 일어난 소란은 모조리 감시망을 통해 저장되고 분석되었다.

고기가 들어가고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풀리는 건 당연한 것이고, 아로엔은 오랜만에 마시는 술기운에 저도 모르게 괴로운 심정을 토해냈고, 둘러앉은 기사들은 말벗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내버려둘 수가 없는 것이다.]

[공주······ 아니, 아로엔. 그 일은 지나간 데다 넌 거기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잖아.]

[맞는 말씀입니다. 왕자님네들 손에서 일어난 일이잖습니까?]

[오라버니들의 행동에 내 의무의 면책사항이 될 수는······.]

[하지만 그 때 공주님은 어렸죠. 어린 것도 아니지. 애기죠. 응애!]

[그 일 때문에 나랑 아로엔이 딱 달라붙었긴 했지. 양아치 말대로 애기 때 일어난 일이니까. 응애.]

[······]

[······근데 우리 왜 자꾸 응애거리지. 취했나? 아, 일 잘 하고 있니?]

[응애애애애······ 날 노동에서 구해줘······ 기사님 도와주세요. 망국의 공녀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어요오오오······.]


공주님 일행이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당사자나 일행 빼면 모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최면으로 인한 미약한 격리 효과로 분석됨.]

“거기에 자기네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면서 스트레스 푸는데 정신 팔리기도 하고.”


그 무관심 사이에서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왕자들 파벌싸움에 중립 지키고 있었는데, 휴전한 파벌들이 중립 지킨 게 아니꼽다고 양쪽에서 다굴을 쳤다 그거네.”

[현 올베린 국왕, ‘콜러 4세’. 혈연관계 상 아로엔 공주의 남매.]

“결국 나이 차이가 20살은 넘게 나는 큰오빠가 국왕이 되었다 그건가.”

[스탈리스 대륙 정치 자료 검색 결과, 현 국왕은 공주에게 이델린 지방의 관리자 직책 및 토지 이양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추정됨.]

“그러니까, 원래 주인이었던 금수저 아들이 빡쳤겠지.”


일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감시망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가 정리된 텍스트 더미들을 죽 바라보았다.


“거기다 술이랑 고기 들어가서 나 때 찾던 양반네들 말에 따르면, 그 영주 성과가 영 별로였나보네.”

[긍정. 이델린 지방의 장년층, 이전 영주에 대한 불만족비율, 82%]

“옆 동네엔 장인들이 박혀 살았던 데다 본진엔 희대의 공학자인지 연금술사인지 뭔지가 뭔가 잔뜩 해놓고 살았는데 발전이 없었잖아. 무능한 영주였으니 다들 별로라고 생각했겠지.”


그 말을 중얼대던 일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우리 최면 마스터한텐 그런 공과를 따질 대가리가 안 되겠지. 그놈 머리속엔 증오만 한사발일거야.”


어느 새 현황판에는 몬델의 모습이 잡혔고, 일우는 그를 가리키며 혀를 찼다.


“그런 마인드겠지. 현 국왕 놈이 자기 아버지를 조져서 집안이 쫄딱 망했는데, 그 핏줄이 자기 땅이었을 걸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걔 포함해서 다 조지겠다는 거지.”

[요원의 결론, 일치. 해당 인물의 활동 근거, 증오.]

“민간인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날 전략을 굳이 쓴 것도 일종의 복수지. 감히 우리 아버지를 그따위로 생각해? 라고 하면서. 아주, 아아아아---주 몹쓸 복수심이지.”

[사고회로 계산 중. 가설 제시.]

“뭔데.”

[이델린 지방의 영주 축출은 단순한 정치 파벌의 결과물로 보기 어려움. 해당 지역의 기반 대비 낙후된 환경, 자치 체제를 고려하여 일종의 자유발전구역으로 지정한 것으로 추정됨.]


스카웃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했지만, 일우에겐 꽤 관심이 가는 분야였다. 기술력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이전 영주 시대의 낙후된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문제다.


“그렇겠지. 하지만 여긴 항만이 없는 지방인데다 인접지역의 경제적 요인 중에 원자재 공급 쪽이 불충분하니······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겠지. 산업도 원자재가 공급되어야 하니까.”

[해당 자유발전구역 지정 효과 미미로 인해, 영주령으로 재전환 시도로 추정.]

“왕족, 그것도 국왕 동생이 눌러앉으면 중앙정부가 명목상 지원할 여지가 넘쳐나니까.”

[스카웃의 사고 회로 계산 결과, 일치. 국가적 지원을 위한 임명으로 추정됨.]

“아무튼 그건 이 나라 양반네들 사정이고, 내 사정은 나랑 엮인 문제만 다루면 돼.”


본론으로 돌아간 일우는 다시 몬델에게 집중했다.


“나랑 접촉했던 당시 영상 불러와.”


일우에게 차이고 밟히고 뺨을 맞던 상황이 고스란히 녹화된 영상이 재생되었고, 몬델이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려다 일우에게 막히는 순간까지 도달했다.

일우는 손을 들어 영상을 멈춘 뒤, 몬델이 꺼내려던 뭔가를 가리켰다.


“그만. 품에서 뭔가 꺼내려고 하던 거. 이게 바로 원인이겠지. 혹시 정보 분석 되나?”

[분석 중. 해당 기기의 발신정보, 현재까지 수집된 해킹 정보와 일치. 해킹 디바이스일 가능성, 확실함.]

“혹시라도 직사로 맞으면 방화벽 뚫릴지 몰라서 못 꺼내 쓰도록 만들긴 했는데, 아무튼 저걸 어디서 얻었는지 정보도 확인해야겠어.”

[분석 중······ 분석 불가. 정보 불충족.]

"쓰읍."


몬델이 품고 있던 건 얇은 직사각형 판이었다. 스마트폰과 매우 유사한 모양새였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마법도구를 많이 봤기에 단정하진 않았다.


“가문이 망하고 모험가로 입에 풀칠을 하다······ 던전에서 저 최면 마법도구를 주웠는지, 아니면 이세계에서 떨어진 최면앱 깔린 스마트폰이라도 주웠다 뭐 그런 식으로 입수했을지 몰라.”

[일부 긍정. 최면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사항, 부정.]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망할 세계가 있는걸 봐선 최면앱도 있을 수 있어.”


다만 출처가 불분명한데다 직접 작동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무의미한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상대가 최면 마법도구를 가지고 있건, 최면앱 깔린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던 간에 일우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


“알 게 뭐람. 아무튼, 중요한 건 저 새끼 때문에 내가 방해를 받았다는 거야. 그것도 사이즈가 꽤 크니 피해도 막심하지.”

[해당 인물에 대한 보복 계획 수립 중, 계획 제안서 작성완료.]


스카웃은 나름의 복수 작전을 계산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곧바로 몇 개의 제안서를 띄워 올렸다.

쭉 훑은 일우는 이내 손을 저었다.


“아냐냐냐, 다 폐기. 너한테 이런 건 아무래도 무리구나.”

[사고회로 업데이트 조건 성립, 업데이트 패키지를 위한 데이터 요청.]

“저 녀석의 원동력은 원한, 그것도 자기가 가진 것을 상실한데서 비롯된 복수심이야.”

[해당 사항, 요원과 일부 일치.]

“아니, 저 녀석은 당사자도 아닐 뿐더러 아무 관련이 없는 지역 주민까지 보복 대상으로 삼았어. 제 3자에게 쓸데없는 원한을 갖고 있다고. 이건 명백한 잘못이지.”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스카웃의 작전 계획서들을 가리켰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작전의 마지막은 ‘몬델의 사악한 계획을 만 천하에 드러낸다’였다.


“그런 와중에 저 녀석에게 공개처형식을 한다? 아주 잘난 광경 펼쳐질 거야.”

[해당 사항, 목표 대상의 행적에 대한 공개 심판의 필요성으로 포함됨.]

“그게 문제야. 만일 그러면 저 자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여기 사람들에게 말할걸? 니들도 공모자야! 와, 나쁜놈들아! 이 모든 건 너희들의 죄로 태어난 결과다! 와하하하하!”


벌떡 일어나 흔한 비뚤어진 악당의 최후를 흉내낸 일우는 이내 의자에 앉으며 손을 까딱였다.


“······하지만 그러면 저 녀석의 목적이 일부 달성된다고 봐야 해. 일단 알고 봤더니 죽인다는 말은 허풍이었던 공주님 멘탈에 금이 쩍쩍 가겠지. 그리고 지역민에 대한 일부 앙갚음이 성립되고.”

[사고회로 계산 중.]

“여기 사람들 한동안 겁나 찜찜할 걸?”

[계산 완료. 공개 심판 과정에서 목표 대상의 성대 및 발성기관의 무력화 시 해당 문제점 보완될 것으로 추정.]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저 놈은 존재가 튀어나오고 정체가 뭔지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한테 데미지를 주는 놈이야.”


말을 못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수면 위로 끌려나오게 되면 지역 주민들과 아로엔 공주에게 일종의 심리적 부채감을 형성할 것이다.

일우는 그게 싫었다. 그게 몬델이 원했던 점이라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더없이 완벽하게 되돌려주려면, 그 몬델에게 단 하나의 이득도 없이 모든 사건이 끝나야만 한다.


“그래서 내 목표는 그거야. 저 새끼 의도가 알려지지 않은 채, 내막이 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즐겁게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이······ 쟤만 혼자 구석에 처박혀서 외롭고 쓸쓸하고 서럽고 고통스럽게 골로 가는 거지.”


일우는 그렇게 말한 뒤 벌떡 일어났다.


“함부로 무차별 테러를 벌이는 놈에겐, 그게 최고의 대응이야. 너 혼자 괴롭게 죽어가세요. 남들은 아무도 모를걸?”

[데이터 확보. 업데이트 패키지 구성 완료. 업데이트······.]

“아, 아. 지금은 작업에 집중해. 업데이트는 나중에.”


다음 날.

지역 주민들과 공주, 궁극적으로는 왕가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가는 몬델을 어떻게 엿 먹여야 하나 고민 중이던 일우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아로엔이었다.


“혹시 대화를 나눌 시간이 되는가?”

“물론! 고기에 대한 대화는 환영이지!”

“그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장소를 대여하고자 한다.”

“왜? 고기 굽게? 환영해!”

“······좀 더 자세를 고쳐줄 수는 없는 건가?”


한층 심각한 표정이 되어 나타난 걸 봐선 어제 먹었던 술과 고기가 오히려 역효과가 된 모양이다.

아니면 배가 꺼지니 억누른 고민과 걱정이 다시 튀어나왔거나.


“그래, 좋아. 봐줬다. 고기는 내일도 있으니까. 왜?”

“이 장소에서 일종의······ 이벤트를 여는 것을 허락해주었으면 한다.”

“아! 이벤트! 그거 좋지! 고기와 술 다음엔 즐거운 놀이가 함께 해야지! 음, 완벽한 구성이야. 근데 무슨 이벤트?”

“결투다.”


뜬금없는 내용에 일우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내뱉었다.


“축하해. 드디어 입버릇을 실천하리라 마음먹었군. 한 단계 발걸음을 내딛다니, 장하다! 우리 마음 약한 공주님!”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능력을 높이 사 주었건만 그대는 불경함으로 답하는가!”

“말했지? 나는 너희들보다 머리가 엄---청 좋다고. 마음씨 여린 공주님이 세게 나가려고 죽이니 줘패니 하는 건 나한테 안 통해! 왜냐? 난 진짜로 패거든!”

“······.”


대놓고 그 말을 퍼부었지만 아로엔은 할 말이 없었다. 어제 진짜로 누군가를 패버리는 걸 봤으니, 이 사람은 정말 해버린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할 말 없는 고귀한 분들이 다 그렇듯, 헛기침을 할 뿐이다.


“크흠, 흠.”

“고대에 제국 중에 이런 것이 있지. 술과 고기, 그리고 피가 튀기는 혈투! 그것이야말로 쾌락의 극한이다!”


어느 새 자신의 페이스로 말을 쏟아 붓기 시작한 ‘연금술사 우’는 두 팔을 좍 벌리며 오늘도 제공될 고기와 술의 향연 사이를 걸어나갔다.

하지만 이내 몸을 뱅글 돌려 아로엔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건 망해가는 제국에서 민심 돌리려고 부린 수작인데. 여기 망하니?”

“그건 아니다. 다만······.”

“자! 여기서 이 몸의 잘난 면모를 드러낼 시간이로군! 지금부터 덜떨어진 공주님을 위한 고기와 술! 그리고 쾌락과 국가 쇠락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겠다.”


그 말을 한 일우는 아로엔의 등 뒤로 휙 움직인 뒤 그녀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뭐? 자, 잠깐!”

“자! 직원 여러분! 이 공주님에게 이 특별 강사의 아주 특별한 교육이 실시될 예정이다! 왜 이런 교육을 하느냐? 이게 바로 고기의 역사거든!”

“······.”

“먹이고 배불리는 것도 좋지만, 배움도 중요하다! 고기를 가르치는 것도 고기를 위한 길이다! 하지만 너희들의 일은 고기를 굽는 거다! 알아서들 잘 하리라 믿는다.”


이제는 무덤덤해진 일꾼들은 또 다시 자신의 임시 주인의 미친 짓이 시작되었거니 생각하고 넘어갔고, 아로엔은 숱한 무관심 속에서 저택 안으로 끌려갔다.

응접실 소파에 내던지듯 앉힌 일우는 맞은편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였다.


“잘 듣고 어디 써먹으라구. ‘무능’하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말이지.”

“으······.”


그리고 앉자마자 아로엔을 최면 상태로 유도했다.


[해당 대상의 방화벽 일시적 무력화 확인. 원격 제어루틴 활성화, 정신 상태 일시적 무력화 확인됨.]

“좋아······ 그러면 얘가 왜 이런 소릴 하는지 본인에게 들어볼까? 메모리 인트루더 작동시켜.”

[매모리 인트루더 플러그인 가동. 필요 데이터 검색 중, 확인됨. 재생 개시]


아로엔의 성격 상 이런 결투 같은 건 벌이지 않을게 뻔했고, 보나마나 이유를 설명해 달라 해도 대충 얼버무릴 것이다.

그러니 직접 아로엔의 머리 속에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곧바로 아로엔의 머리 위에 스카웃이 추출한 아로엔의 기억이 1인칭 영상으로 재생되었다.

어느 새 과일을 들고 온 일우는 으적대며 영화 보듯 편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그 때의 일을 비난하고프다면······.]

[아아뇨, 공주님. 저는 그 일로 문책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안을 할까 싶어서 말이죠.]


아로엔의 맞은편에 나타난 건 몬델이었다. 그것도 양 볼이 퉁퉁 부운.

시간대를 봐선 새벽 일찍 찾아온 것이고, 당연히 경비나 출입 통제는 최면 때문에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아로엔의 당황하는 목소리 속에서 몬델은 두 팔을 내저었다.


[공주님의 뜻, 십분 이해합니다. 이 절망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위안을 주시려는 것이겠지요.]

[그······ 그렇게 이해해주다니 다행이로군.]

[그래서 제안합니다. 여기에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는 건 어떻습니까?]

[볼거리? 조, 좋은 생각이군. 허면 어떠한 것을······.]

[결투입니다.]


아로엔이 꺼낸 결투는 몬델의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래보여도 저도 한 때 기사의 길을 걸어갈 뻔 한 자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전차를 모는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보다 훨씬 오래 전에 기사로 재직하였다는 건 들었다.]

[1대 1 대인 전차 전투를 그 장소에서 선보이는 건 어떻습니까? 서로의 기량을 선보이며, 물론 제가 공주님의 창날에 멋들어지게 쓰러지는 겁니다.]


딱 제안만 봐선 이 어려운 시국에 공주님을 영웅화시키려는 좋은 연극과도 같았다.

허나 그런 좋은 일을 할 리 없는 인물이고, 지켜보던 일우도 잘 알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개수작 부릴 거면서.”

[그건 거절하겠네. 아무리 그러해도······.]

[어허, ‘무능’하게 왜 이러실까. 이건 기회잖습니까?]


곧바로 아로엔이 거절 의사를 밝히자마자 몬델은 아로엔을 최면 상태로 만들었다.

눈빛이 흐려진 채 멍하니 선 아로엔을 향해 다가간 몬델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자아, 공주님. 공주님은 그 결투장소에서 어린아이가 탈 법한 세발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겁니다. 그리고 제 창끝에 공주님의 갑옷이 벗겨지며 그 천박한 알몸을 만 천하에 공개하는 겁니다.]

[내 몸을······드러내······.]

[허기를 채우고 술이 들어가니, 당연히 볼거리를 제공해야죠. 우리 공주님은 패배자가 되었으니 그 몸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뭇 남성들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볼거리 말입니다.]

[볼거리······.]

[참 굴욕적이고 모멸감이 드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런 걸 즐긴답니다.]

[그런 걸······ 즐겨······.]

[예에. 모두가 즐기는 겁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기사로서의 의무이자 왕족으로서의 책무입니다······.]

[의무······ 책무······.]

“아, 그만. 꺼.”


보다 못한 일우가 손을 내으며 미간을 구겼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일우는 과일을 씹어대며 조금 전 본 상황을 한 번에 정리했다.


“······와, 이 새끼는 대놓고 19금 상황을 연출하려고 하네. 급전개야. 근데 너무 전형적이기도 해. 창의성이 없어.”

[해당 계획 의도, ‘프린세스 원’의 상식 개변을 기반으로 한 대인 평판 하락 전략.]

“아, 아. 설명 됐어. 보나마나 지금은 더한 걸 못 시키는 수준이니 저것만 시키겠지. 이걸로 진도 빼고, 다음 스탭은 뭐······ 아이, 씁. 설명해서 뭐하냐. 뻔한데.”


더 이상 스카웃의 분석도 듣기 싫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손을 내저은 일우는 단번에 과일을 입에 밀어넣고 와그작 씹었다.


“최면 구조분석 끝났고 해제도 되지? 일단 새벽에 걸어놨던 거 중에 자전거 타고 결투하는 거 빼곤 다 지워.”

[해킹 침식 대상 재작업 개시.]

“천천히 밟을까 했는데, 마침 판 깔려고 하니 이용해 준다. 얘가 원하는 게 공주가 완전히 멘탈 터질 상황을 바라는 거지?”


스카웃이 공주에게 심어진 19금 시츄에이션 관련 지시를 지워나가는 사이, 일우는 조잡한 상황 연출을 시도한 몬델을 어떻게 조질 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나갔다.


“터지는 건 공주 멘탈이 아니라 너야. 더불어 공주님 명성도 좀 올려줘 볼까? 그 새낀 공주가 잘나가는 건 존나 싫어할 거니까.”

[작업 완료. 해당 계획에 대한 세부 사항 요청.]


어느 새 작업을 끝낸 스카웃이 계획 세부사항을 요청하자, 일우는 아로엔을 향해 말을 걸었다.


“자, 공주님? 골라봐. 뇌격, 폭렬, 화염, 초속······ 아무튼 쎄 보이는 접두사. 원하는 게 뭐야?”

“······.”

“제일 마음에 드는 거로 만들어 줄게. 공주기사님 앞에 붙을 접두어 말이지.”


최면 상황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건, 무의식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고르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로엔이 고른 건 일우가 예상도 못한 것이었다.


“······튤립.”

“응?”

“나는 튤립이 좋아······.”

“······아, 됐어. 꽃 말고. 이 아가씨 확 깨네.”


꽃 좋아하는 마음씨 여린 공주님의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지만, 일우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됐어, 넌 폭렬이다. 폭렬의 창! 멋대가리 없지? 괜찮아. 내 칭호 아니라 네 거니까.”

“싫어······. 너무 유치해······.”

“유치하니까 고른 거야. 난 공짜로 해주진 않거든. 하하하하하!”


아로엔이 무의식적으로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칭호는, 이제 영영 그녀를 따라다니게 생겼다.


작가의말

항상 업로드는 예약 설정을 걸고 올립니다만, 그래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어제 분량은 남들 2회분이었잖습니까? 그러니 이런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오늘 분량이 어제 다 올라왔는데 또 올라왔다고 생각해주시면 매우 제가 좋습니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 제목만큼, 공짜로 베푸는 고기 없고 무료봉사같지만 다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공주님의 문제를 해결해준 대가로 이제 반영구적으로 붙을 낯부끄러운 칭호가 생겼습니다. 와오! 본인의사를 고려하지 않아요!

자, 고기와 술과 이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이걸 뭐라고 부르죠?
다음 에피소드 제목이 될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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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99 Leafsoul
    작성일
    21.06.04 12:31
    No. 1
  • 작성자
    Lv.40 모닝스타
    작성일
    21.06.04 13:48
    No. 2

    튤립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누티러
    작성일
    21.06.04 22:47
    No. 3

    폭렬마법!!!!'익스플로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마루마루나
    작성일
    21.06.22 08:00
    No. 4

    최면어플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은색의왕
    작성일
    21.07.04 20:27
    No. 5

    이 사단→사달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papercra..
    작성일
    21.07.04 22:41
    No. 6

    애석하게도 사달이 아니라 사단 맞습니다. 예상 못한 돌발상황이 아니라 주인공이 상대방 맥을 끊어버리고 있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은색의왕
    작성일
    21.07.05 15:24
    No. 7

    오타 지적이 들어오면 지금처럼 우기지 마시고 사전을 찾아보세요;;;
    사단이 아니라 사달이 맞습니다.

    사달: 사고나 탈

    --------------------------이하 사전에 나오는 모든 '사단'의 사전적 의미--------------------
    사단(1): 철학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 ≪맹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사단(2): 절과 시주하는 신도.

    사단(3): 개인의 판단.

    사단(4)
    1. 사건의 단서, 일의 실마리
    2. → 사달

    사단(5)
    1. 법률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두 사람 이상이 결합하여 설립한 단체. 개인을 초월한 독립 단일체로서 법인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
    2. 법률 법률에 의하여 법률적인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을 받은 법인.

    사단(6): 임금이 토신(土神)인 사(社)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

    사단(7):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군단(軍團)의 아래, 연대(聯隊) 또는 여단(旅團)의 위이다. 여러 병과(兵科)가 모여 있으며 이를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어 어느 정도 독립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사단(8): 사승(師僧)과 단도(檀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사단(9): 사(紗)와 비단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단(10): 비스듬히 자름.

    사단(11): 그물코의 마디 한 다리만을 끊어 삼각 그물감을 만드는 일.

    사단(12): 문인(文人)들의 사회.

    사단(13): [기독교] 적대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대립하여 존재하는 악(惡)을 인격화하여 이르는 말.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papercra..
    작성일
    21.07.05 20:44
    No. 8

    끄응, 전 이 단어를 단절된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아예 다른 거군요. 의도한 어휘가 아니었으니 이 문구는 수정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99 은색의왕
    작성일
    21.07.05 15:30
    No. 9

    저도 사람인 터라 쓰기 전에는 사전이나 문법을 한 번 뒤적여서 확인해보고 쓰는데, 작가님도 오타 지적 들어오면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글 쓰시다 보면 댓글로 오타나 비문 적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틀린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뮤
    작성일
    21.07.20 21:29
    No. 10

    세발 자전거 ㅋㅋㅋㅋ 이거 그 짤이잖아 ㅋㅋㅋ 푸른창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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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10. 모난 놈이 맞는다 [2] +3 21.06.17 2,548 88 18쪽
46 10. 모난 놈이 맞는다 [1] +4 21.06.16 2,587 90 15쪽
45 9. 모자람 없는 고민 [7] +5 21.06.15 2,588 96 19쪽
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42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41 9. 모자람 없는 고민 [3] +8 21.06.11 2,873 95 18쪽
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6 86 15쪽
39 9. 모자람 없는 고민 [1] +7 21.06.09 2,993 95 14쪽
38 ?. 건드리지 마시오 +7 21.06.08 3,022 83 13쪽
37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7 21.06.07 3,056 99 17쪽
36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4] +7 21.06.06 3,052 91 18쪽
35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6 21.06.05 3,052 82 21쪽
3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2 89 19쪽
33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1] +2 21.06.04 3,267 74 18쪽
»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10 21.06.04 3,466 96 19쪽
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3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6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59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5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8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0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1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7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4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8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0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7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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